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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가끔 중고등학생때 배웠던 문학작품들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때가 있잔아
근데 그 기억이 아스라한 까닭에 무슨 작품이었는지 답답한 경우가 있잔아
또 국어도 국정교과서를 사용했던 7차교육과정을 거친 눈아들은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모아본 제7차 교육과정 당시 국어교과서 수록 근현대시 17편
(원제와 원표기를 살려서 찾아봤잔아)
중학교 1학년 2학기
내마음 고요히 흐른 봄길 우에 – 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풀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오날하로 하날을 우러르고십다
새악시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詩의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십다
어떤 마을 – 도종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담던 접동새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 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중학교 2학년 1학기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가정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나룻배와 行人 –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읍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 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방메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중학교 3학년 1학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배추의 마음 – 나희덕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 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 포기 묶어 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 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둑방길 - 유재영
개오동 밑둥 적시는 여우비도 지났다
목이 긴 메아리가 자맥질을 하는 곳
마알간 꽃대궁들이 물빛으로 흔들리고
빨강머리물총새가 느낌표로 물고 가는
피라미 은빛 비린내 문득 번진 둑방길
어머니 마른 손 같은 조팝꽃이 한창이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上
진달내꼿 – 김소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내꼿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거름거름
노힌그꼿츨
삽분히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니우리다
유리창 琉璃窓 -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닥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曠野(遺稿) ‘광야 (유고)’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
모든 山脉들이
바다를 戀慕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곧을 犯하든 못하였으리라
끈임없는 光陰을
부지런한 季節이 픠여선 지고
큰 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엇다
지금 눈 나리고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노아 부르게하리라
고등학교 국어 下
추억에서 - 박재삼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晋州) 남강(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설일 -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 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은 집
참새 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 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하.면……
하늘 – 임화
감이 붉은 시골 가을이
아득히 프른 하늘에 놀 같은
미결사의 가을 해가 밤보다도 길다.
갔다가 오고, 왔다가 가고,
한간 좁은 방 벽은 두터워,
높은 들창 갓에
하늘은 어린애처럼 찰락어리는 바다.
나의 생각고 궁리하던 이것저것을,
다 너의 물결 위에 실어,
구름이 흐르는 곳으로 띄워볼가!
동해바다 가에 적은 촌은,
어머니가 있는 내 고향이고,
한강 물이 숭얼대는
영등초 붉은 언덕은,
목숨을 바쳤던 나의 전장.
오늘도 연기는
구름보다 높고,
누구이고 청년이 몇,
너무나 좁은 하늘울
넓은 희망의 눈동자 속 깊이
호수처럼 담으리라.
벌리는 팔이 아무리 좁아도,
오오! 하늘보다 너른 나의 바다.
첫댓글 좋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이 시 엄청 좋아했어
와 고등학생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여자네집 보면서 속으로 한번씩 꼭 읽어봤는데 ㅋ 지금봐도 신선
광야도 진짜 멋진 시임...
냥희가 직접 찐 글이내!!!! 업로드 고맙잔아 ₍ᐢɞ̴̶̷.̮ɞ̴̶̷ᐢ₎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교과서에 실리는 시들 다 좋았어 분석하면서도 재미있었어 물론 시인이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더라도ㅋㅋㅋㅋㅋ
맞아 국정이 좋았던 게 같은 세대끼리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라 이야기 나누면 공감대 생기고 훈훈해져... 정성글 너무 좋잔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