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오기륭
Lady First 니까 화려한 여성 의복을 위주로 찝니다잉.
우선 왕비의 대례복이야. 왕비의 대례복도 시기에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조선초기 왕비의 대례복. 사극에 나왔던거하고는 좀 다르지?
금박이나 화려한 치장이 별로 없어.
조선 중기 왕비의 대례복. 전기와는 다르게 조금씩 장식이 늘어나고 있는게 보이지?
조선 후기의 대례복. 사극에서 많이 보던 왕비의 대례복 모양이지?
소맷단과 몸부분의 금박은 꿩의 문양이야. 그래서 치적의라고도 해.
꿩(치) 붉을(적) 이렇게 해서 치적의라고 하고.
후기로 오면서 조금씩 화려해 지고 하는 이유는 초기와 중초기까지는 명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만의 뚜렷한 특징이 없었는데 명나라가 멸망한 후 우리나라
고유의 왕실 의상들을 만들기 시작한거야. 그 전까지는 명나라에서 모두 내려준걸 받아왔음.
그리고 이 대례복과 함께 쓰는건 대수(大首)라고 해서 큰머리라고도 하고
사극에서 많이 봤던건데 이것도 조선초기와 중,후기가 달라.
요게 조선 초기의 대수모양. 그나마 고증이 그럴싸 하다는 왕과비의 캡쳐야.
그리고 채시라가 입은 대례복이 위 사진과 다른 이유는 아무래도 드라마의 경우엔
시각적인 효과 또한 무시를 못 하기 때문에 더 화려하게 치장한건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조선초기에는 대수가 아니라 '적관' 이라고 표현했다고 하더라구. 우리나라의 왕비는
명나라 황실보다 아랫계급인 군왕의 부인이라고 해서 칠적관을 썼어. 그리고 황실의 황후는
구적관을 썼고. 보통 왕실 의복에서는 홀수를 쓴다고 보면 돼. 주로 9, 7, 5, 3 이 숫자들.
더 웃긴건 저 칠적관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지도 못했어. 명나라에서 내려줘야 받아올 수 있었고
광해군때는 명나라에서 칠적관을 내려주지 않아서 뇌물을 주고 사왔다는 기록도 있어.
조선 초기의 의복은 고려시대와 별 다른 차이점이 없다고 볼 수도 있어. 특히 왕실쪽은 더더욱.
요게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대수의 모양이야.
(수애 오른쪽 상궁이 공주로 언플드립 친 이 홍임.)
대략 대수의 무게는 15~20kg정도 된다고 하는데 요즘은 현대 기술로 만들어서
좀 가볍고 예전에는 더 무거웠을거라고 하더라구.
(괜히 궁중 여인네들 고질병이 가체와 대수로 인한 목디스크가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님.)
대수의 경우엔 병자호란이 끝난 후 부터 해서 조금씩 개량해오다가 영조때 확립화
되었다고 해. 그러니까 우리가 사극에서 보는 흔한 저 대수머리는 인조때나 비슷하게 구체화 된거.
그 이전의 시기를 다룬 사극에서 저 대수머리가 나온다면 틀린거라고 보면 되는거구.
그리고 이 사진은 실제로 대수를 착용 한 의민황태자비의 사진이야.
황후와 왕비 그리고 왕세자빈의 대수에 있어서도 차이가 좀 나는데,
황후의 경우엔 구룡칠봉관, 왕비는 칠룡오봉관, 왕세자빈은 오룡삼봉관
이런식으로 해서 대수에 0용 0봉황 이렇게 나뉜다고 하더라구.
(요건 나도 오래 전에 본 자료라 살짝 틀릴 수 있음요)
대수머리를 할 때에는 진주계, 용잠(용비녀), 마리삭 금댕기, 가란잠, 떨잠,
소립봉잠, 전입계 앞꽂이, 백옥립봉잠, 금봉잠등 30여개의 장신구가 화려하게 장식이
된다고 해. 아, 더불어서 조선 초기에는 위에 올린 것 같은 적관을 썼는데 임진왜란때
적관이 소실되면서 대수로 바뀌었다는 기록도 있어.
요기서 하나 더 짚고 가야 할건 바로 황후의 적의인데 우리나라가 대한제국으로 칭제하면서
유일하게 황후의 12등 적의를 입은 분이 딱 한 분 계셔. 바로 순종의 계비였던 순정효황후 윤씨.
순종의 즉위식에서 한 번 걸친 후로는 입으신 적이 없다는데 순정효황후의 12등 적의는 명나라의
황후의 적의를 빗대어서 만들었다고 해. 지금도 완벽하게 남아있지는 않아서 순정효황후의 12등 적의를
재현한 의상만이 전시되어 있어. 바로 아래의 사진.
[제대로 된 왕비의 대례복 고증과 잘못 된 왕비의 대례복 고증의 예]
※ 제대로 된 왕비의 대례복 고증 (대왕세종)
소헌왕후의 대례복이야. 제대로 된 적의와 칠적관을 고증하려고 노력했어.
그동안 사극에서 본 의복들과 좀 달라서 새롭지만 저게 거의 실제와 흡사하다고 보면 될 것 같아.
※ 잘못 된 고증의 사례 (왕과 나)
구혜선은 극중에서 폐비윤씨, 그러니까 조선초기의 왕비로 나오는데 입고있는 옷이며 머리는 전혀 달라.
특히 입고있는 적의의 경우엔 순정효황후가 입었던 12등의 황후적의야.
고증을 시망똥망에 발로 한 케이스지.
그리고 왕비의 평소 옷차림도 전기와 후기로 나뉘게 되는데 사극에서 흔히 보는
당의의 경우엔 왕비가 소례복(작은행사)때 대강 입던 건데 후기로 오면서 당의가 궁중의
일상복으로 바뀌게 됐어. 왕비와 왕세자빈의 경우엔 몸통의 앞 뒤부분과 양 어깨에
봉황 문양의 흉배가 달려있어. 그래서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가 입었던 당의에 있는
꽃문양의 흉배는 틀린거라고 보면 돼. 당의에 흉배를 달 수 있었던건 오직 왕실의 후계비
그러니까 왕비와 왕세자빈, 왕세제빈 뿐이었으니까.
이게 조선 초기의 왕비 복장이야. 이런 스타일의 긴 저고리의 장삼을 걸쳤어.
치마는 보통 스란치마를 입는데, 스란치마는 치마에 금박이 박혀있는 치마야.
이건 조선 후기를 다루고 있는 장희빈에서 인현왕후의 의복 모양이야.
일반적으로 많이 본 당의의 모양이지? 가운데와 그 뒷편, 그리고 양 어깨에 흉배가 달려있어.
저 흉배는 위에도 썼다시피 왕비와 왕세자빈에게만 사용이 가능했어.
흉배의 모양은 보통 봉황을 수놓았다고 하는데 사극에서는 용을 수 놓기도 하더라구.
그리고 저고리에 박힌 금박들 또한 봉황을 박은거구.
아 그리고 내가 깜빡했는데 저 위의 대례복과 당의의 흉배는 대왕대비, 왕대비, 대비 또한 사용이 가능했어.
죽은 왕의 부인들이지만 후계자 비였으니까.
대왕대비와 왕대비, 대비가 헷갈리는 여시들을 위해 막간을 이용한 알고가기 시간.
대왕대비 = 왕의 할머니
왕대비 = 선왕의 정비
대비 = 선왕의 정비
왕대비와 대비가 둘 다 선왕의 정비? 그럼 둘이 뭐가다름? 글자 하나 더 있는게 다름? 이라고 궁금해 하는
여시들을 위해 더 자세히 들어가자면 조선왕조에 대왕대비, 왕대비, 대비가 함께 있던 삼궁(三宮)의 경우는
두번이 있었어. 성종조에 한 번, 고종조에 한 번.
성종조에는 대왕대비 정희왕후, 왕대비 안순왕후, 대비 소혜왕후
이 경우엔 좀 특이 케이스인데 성종의 할머니인 정희왕후, 숙모인 안순왕후, 어머니인 소혜왕후.
성종의 선왕인 8대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는 왕비의 신분으로 대비가 됐고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의 경우엔
남편인 의경세자가 세자의 신분으로 죽어서 세자빈의 신분이었는데 아들인 성종이 아버지인 의경세자를 덕종으로
추숭해서 왕후의 직책을 받은거라 안순왕후보다 손윗동서지만 대비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고종조에는 대왕대비 신정왕후, 왕대비 효정왕후, 대비 철인왕후
여기도 좀 꼬인 케이스인데 고종 자체가 방계 of 방계이기 때문에 할머니뻘인 신정왕후를 양어머니로 삼아서
왕위에 오르게 된 케이스기도 해서 이 경우엔 왕위를 계승 한 순서대로 되었다고 보면 돼.
신정왕후는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부인이자 24대 왕인 헌종의 어머니고 헌종이 효명세자를 문조로 추존하면서
세자빈이었던 신정왕후가 왕비로 함께 추숭 된 케이스, 효정오아후는 24대 왕인 헌종의 계비, 그리고 철인왕후는
25대 왕인 철종의 부인이야.
원래는 대비까지 밖에 없는게 다반사인데 종종 이렇게 선왕의 부인이 3명이면 삼궁이라고 해서 대왕대비, 왕대비, 대비
이렇게 나뉘기도 했어. 아무래도 선왕의 부인이 4명까지 살아있은 경우는 없으니까 따로 예법을 정해놓지는 않은 것 같아.
이번편은 요기까지! 다음편에는 후궁의 복식과 함께 잘 된 고증의 예와 잘못 된 고증의 예도 사극 사진으로 가지고 올게!!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무슨사진이 엑박이야? ㅠ_ㅠ
아 구랭? 다시 올려야겠다 ㅠ_ㅠ 알려줘서 고마워!
쩐다 진짜 잼따 ㅋㅋㅋㅋ 좋은 정보야 나도 엑박! 실제 대수를 착용한 사진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난 조선전기에 엽전을 쓰는게 젤 어이없었음 ㅋㅋㅋㅋㅋ 엽전이 있긴했어도 유통이 잘 안됐으니까 엽전을 준다는건 완전 날로먹겠다는거지 ㅋㅋㅋㅋㅋㅋ
ㅇ와 언니 고생했어 사극보면서 그런생각 한번도 못한거 반성합니다 ㅜㅜ
나 이런거 조아.. 더 쩌주세여.. ㅎㅎ 스크랩염~~~
여시야 완전 이거 좋다! 흑 개인소장하고 싶다 여시야 .... 요새 글 적는데 이런 자료가 넘 필요했거든. 어디서 이런 훌륭한 걸 다 익혔어? 부럽다 ㅠ
난 원래 이런데에 관심많고 그래서...... 근데 말 안하고 스크랩 긁어가는 비양심러들 때문에 스크랩 닫았어 미안
삭제된 댓글 입니다.
드라마가 아니고 영화야. 불꽃처럼 나비처럼.
오재밌다언니 나한복좋아해잘봐썽!!!
우왕...
우왕 이런거 완전좋아
나 이런거 너무 좋아. 어릴떄 막 찾아보고 그랬었는데.ㅋㅋㅋㅋㅋ난 그래서 고증 시망똥망인거 너무 싫어..ㅠㅠ
근데 언니 옛날에 네이버 찾아보다가 공주와 옹주, 대군의 부인, 군의 부인은 모두 쌍봉 문양의 흉배를 착용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또 지금본건 '왕비나 왕세자, 왕세자빈은 반용 또는 봉황흉배를 사용하였다. 공주는 다산을 의미하는 뜻으로, 7마리의 작은 봉황이 수놓인 흉배를 사용하였다.' 어디선 옹주는 흉배를 착용하지 못했다고 하고ㅠㅠ 어디서는 봉황도 했다고 하니 넘 헷갈려ㅠㅠ 잘못된 정보들인가??시대가 다른거임? 알려주세뮤ㅠ
아마 옹주는 제외될꺼야. 조선만큼 적서의 구별이 뚜렷한 시대도 없었기 때문에 공주는 몰라도 옹주는 제외일거라고 추측됨.
이런거 진짜 좋아ㅠㅠㅠㅠㅠㅠㅠ 언니 많이많이 쪄죵><
진짜 쉽게 이해된다 ㅋㅋㅋㅋㅋㅋㅋ 다음편도 고고씽 ㅋㅋㅋ
너무 좋아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