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평때는 풀기에 급급해서 제대로 읽지 못했던 시를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보면 어떨까하여 모아봤잔아
중간에 양식이 다른 것은 실수가 아니라 편애 맞잔아 (〃⌒▽⌒〃)ゝ
14,15년도는 A,B형 노나져있어서 양이 어마어마하네
2014학년도 3월 A형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오래 정드리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B형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보섭대일땅이 잇섯더면 - 김소월
나는 꿈꾸엿노라, 동무들과내가 가즈란히 벌까의하로일을 다맛추고 夕陽에 마을로 도라오는꿈을, 즐거히, 꿈가운데.
그러나 집일흔 내몸이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보섭대일땅이 잇섯드면! 이처럼 떠도르랴, 아츰에점을손에 새라새롭은歎息(탄식)을 어드면서.
그러나 엇지면 황송한이心情을!날로 나날이 내압페는 자츳가느른길이 니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거름, 또한거름. 보이는山비탈엔 온새벽 동무들 저저혼자...........山耕(산경)을김매이는.
면면(綿綿)함에 대하여 - 고재종
너 들어 보았니 저 동구 밖 느티나무의 푸르른 울음소리
날이면 날마다 삭풍 되게는 치고 우듬지 끝에 별 하나 매달지 못하던 지난겨울 온몸 상처투성이인 저 나무 제 상처마다에서 뽑아내던 푸르른 울음소리
너 들어 보았니 다 청산하고 떠나 버리는 마을에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소리 죽여 흐느끼던 소리 가지 팽팽히 후리던 소리
오늘은 그 푸르른 울음 모두 이파리 이파리에 내주어 저렇게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저렇게 생생히 내뿜는데
앞들에서 모를 내다 허리 펴는 사람들 왜 저 나무 한참씩이나 쳐다보겠니 어디선가 북소리는 왜 둥둥둥둥 울려 나겠니
4월 A형
상행 - 김광규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 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
B형
고향 앞에서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구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간다.
예 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7월 A형
江건너간 노래 - 이육사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밤 앞 내ㅅ 江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르던 노래는 江건너 갔소
江건너 하늘끝에 沙漠(사막)도 다은곳 내 노래는 제비같이 날러서 갔소
못잊을 계집애나 집조차 없다기 가기는 갔지만 어린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 모래ㅅ불에 떨어져 타 죽겠소
沙漠은 끝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먹은 별들이 조상오는 밤
밤은 예ㅅ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가락 여기두고 또 한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江건너 갔소
B형
님의 沈默 - 한용운
님은 갔읍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읍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읍니다. 黃金의 꽃닽이 굳고 빝나든 옛 盟誓(맹서)는 차디찬 띄끌이 되어서 한숨의 微風(미풍)에 날려갔읍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追憶(추억)은 나의 運命(운명)의 指針(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처서 사라졌읍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읍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되고 놀란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源泉(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것인줄 아는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읍니다. 우리는 만난때에 떠날것을 염려하는 것과같이 떠날때에 다시 만날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읍니다. 제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노신 - 김광균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잠들은 아내와 어린것의 베갯맡에 밤눈이 내려 쌓이나 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 담배를 피워 문다. 쓸쓸한 것이 오장을 씻어 내린다. 노신이여 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 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밤 상해(上海) 호마로(胡馬路)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거린다. 여기 하나의 상심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10월 A형
추억에서 – 박재삼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B형
삼수갑산 - 김소월
삼수갑산(三水甲山)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 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三水甲山)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三水甲山)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불귀(不歸)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율포의 기억 - 문정희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무위(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2015년 3월 A형
힌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저녁 이 좁다란방의 힌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것만이 오고 간다 이 힌 바람벽에 히미한 十五燭(십오촉)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해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 이 힌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씿고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끊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서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사이엔가 이 힌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一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것으로 호젓한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하며 주먹질을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一하늘이 이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쨈과’ 陶淵明(도연명)과 ‘라이넬•마리아•릴케’가 그러하듯이
B형
추천사 - 서정주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 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느티나무로부터 - 복효근
질 그 안쪽으로 속살이 썩어 몸통이 비어가는데 그 속에 뿌리를 묻고 풀 몇 포기가 꽃을 피워 잠시 느티나무의 내생을 보여준자 돌아보면 삶은 커다란 상처 혹은 구멍인데 그것은 또 그 무엇의 자궁일지 알겠는가 그러니 섣불리 치유를 꿈꾸거나 덮으려 하지 않아도 좋겠다 때아닌 낮 모기 한 마리 내 발등에 앉아 배에 피꽃을 피운다 잡지 않는다 남은 길이 조금은 덜 외로우리라 다시 신발끈을 맨다
4월 A형
절망을 위하여 - 곽재구
바람은 자도 마음은 자지 않는다 철들어 사랑이며 추억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싸움은 동산 위의 뜨거운 해처럼 우리들의 속살을 태우고 마음의 배고픔이 출렁이는 강기슭에 앉아 종이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절망의 노래를 불렀다 정이 들어 이제는 한 발자국도 떠날 수 없는 이 땅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머리 위를 짓밟고 간 많고 많은 이방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이웃에게 눈인사를 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웃을 위하여 마음을 불태우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서 두려움에 떠는 눈짓으로 술집을 떠나는 사내들과 두부 몇 모를 사고 몇 번씩 뒤돌아보며 골목을 들어서는 계집들의 모습이 이제는 우리들의 낯선 슬픔이 되지 않았다 사랑은 가고 누구도 거슬러 오르지 않는 절망의 강기슭에 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이 땅의 어둠 위에 닻을 내린 많고 많은 풀포기와 이슬이고자 했다
B형
마음의 태양 - 조지훈
꽃 사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자. 가시밭길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이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른다.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자.
폭풍 - 정호승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날으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 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난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7월 A형
정주성(定州城) - 백석
山턱원두막은뷔였나 불빛이외롭다 헌깁심지에 아즈까리기름의 쪼는소리가들리는듯하다
잠자리조을든 문허진城터 반디불이난다 파란魂들같다 어데서말있는듯이 크다란山새한마리 어두운 곬작이로난다
헐리다남은城門이 한을빛같이훤하다 날이밝으면 또 메기수염의늙은이가 청배를팔러올것이다
B형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 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 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 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아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가 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싹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 아닌 봄을 불러 줄게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목개장태 -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10월 A형
시의 맛 - 김현승
멋진 날들을 놓아두고 시를 쓴다. 고궁(古宮)엔 벚꽃, 그늘엔 괴인 술, 멋진 날들을 그대로 두고 시를 쓴다. 내가 시를 쓸 때 이 땅은 나의 작은 섬, 별들은 오히려 큰 나라.
멋진 약속을 깨뜨리고 시를 쓴다. 종아리가 곧은 나의 사람을 태평로 2가 프라스틱 지붕 아래서 온종일 기다리게 두고, 나는 호올로 시를 쓴다.
아무도 모를 마음의 빈 들 허물어진 돌가에 앉아, 썪은 모과 껍질에다 코라도 부비며 내가 시를 쓸 때, 나는 세계의 집 잃은 아이 나는 이 세상의 참된 어버이.
내가 시를 쓸 땐 멋진 너희들의 사랑엔 강원도풍(江原道風)의 어둔 눈이 나리고, 내 영혼의 벗들인 말들은 까아만 비로도 방석에 누운 아프리카산(産) 최근의 보석처럼 눈을 뜬다. 빛나는 눈을 뜬다.
B형
향수 - 김광균
저물어 오는 육교 위에 한줄기 황망한 기적을 뿌리고 초록색 램프를 달은 화물차가 지나간다. 어두운 밀물 우에 갈매기떼 우짖는 바다 가까이 정거장도 주막집도 헐어진 나무다리도 온-겨울 눈 속에 파묻혀 잠드는 고향 산도 마을도 포플라나무도 고개 숙인 채 호젓한 낮과 밤을 맞이하고 그 곳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조그만 생활의 촛불을 에워싸고 해마다 가난해 가는 고향 사람들 낡은 비오롱처럼 바람이 부는 날은 서러운 고향. 고향 사람들의 한줌 희망도 진달래빛 노을과 함께 한번 가고는 다시 못오지 저무는 도시 옥상에 기대어 서서 내 생각하고 눈물지움도 한떨기 들국화처럼 서글프다.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바람 소리 - 나태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밤사이 내려와 놀던 초록별들의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가 떨어져 있다. 어린 날 뒤울안에서 매맞고 혼자 숨어 울던 눈물의 찌꺼기가 비칠비칠 아직도 거기 남아 빛나고 있다. 심청이네집 심청이 빌어먹으러 나가고 심봉사 혼자 앉아 날무처럼 끄들끄들 졸고 있는 툇마루 끝에 개다리소반 위 비인 상사발에 마음만 부자로 쌓여주던 그 햇살이 다시 눈 트고 있다, 다시 눈 트고 있다. 장승상네 참대밭의 우레 소리도 다시 무너져서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내 어린 날 여름냇가에서 손바닥 벌려 잡다 놓쳐버린 발가벗은 햇살의 그 반쪽이 앞질러 달려와서 기다리며 저 혼자 심심해 반짝이고 있다. 저 혼자 심심해 물구나무 서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