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딸 아이가 보낸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지난번에 시집간 딸이 친정에 내려왔다가 집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후리이팬을 보고
고물이 다 됐다고 버리라고 하면서 신품을 사 보낸 것이 프라스제인 테팔이다.
작년인가 코스트코에 가서 작은 후리이팬을 하나 샀었다. 혼자 있을 때 계란 후라이나 하나 해서 식빵을 사다가
토스타에 구워 내고 커피 한 잔 곁들여 양식으로 바꾸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후라이팬을 사용하고 난 다음에
깨끗이 씻는다고 철수세미로 바닥을 박박 문질렀더니 코팅이 다 벗겨져 버렸다. 코팅이 일어나고 나니 계란 후라이도 바닥에 눌러 붙고 다른 음식들도 달라붙어 청소하기가 상당히 귀찮아졌다.
내 어릴 때 시골에 살 때에는 후라이팬이라는 용어 자체도 들어보지 못했다.
계란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아니었다. 모아서 장에 갖다 팔아야 했다.
귀한 손님이 오시면 밥 솥에 계란을 따로 공기에 부어 간장을 한 숟깔쯤 넣고 쪄서 반찬으로 내었다. 계란 후라이 자체를 몰랐고
설사 알고 있다해도 후라이퍈이 없었으므로 할 수도 없었다.
부침개나 파전, 고추전, 부추전 같은 것을 만들때 아궁이 위에 걸린 무쇠로 된 조선솥 바닥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가면서 구워 냈다. 명절 때는 마당가에 따로 돌을 주워다가 임시 아궁이를 만들어 소두방을 거꾸로 해서 옴방한 그 위에서 기름칠을 하고 구워내기도 하고 산자나 유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래를 달구고 그 속에 쪄서 말린 밥알을 티겨냈다. 우리 고장에서는 조선솥 뚜껑을 소두방이라 했다. 까만 모래속에 파묻힌 밥알이 탁탁 소리를 내면서 부피가 커져 나오는 게 신기 하였다. 정월 대보름날 달집을 태우고는 그 불에 콩을 볶아 먹을 때는 자루가 긴 다리미를 이용했다. 때론 쌀,보리 밀도 그렇게 볶아 먹기도 하였다. 다리미는 옷감을 다릴 때엔 그 위에 숯불을 얹어 사용하였고 동전을 붙여 다릴 때는 아주 작은 윤디를 화로에 꽂아 달구어 쓰기도 하였다.
내가 후라이팬을 처음 구경한 것은 중학교때였으니까 시골에서 마산으로 이사를 와서 산호동 바닷가에 살 때였다.
오동동 다리밑에 있는 동네였으니까 서원골 계곡에서 물이 내려와 바다인 합포만으로 빠지는 하구였으니 도랑가에 붙은 집들이 제법 많았다. 그 중에 한 집에서 드럼통을 두드려 펴서 후라이팬을 만들어 시내에 가져다 파는 공장이 있었다. 직공이 네댓명으로 가족적인 기업이었다. 그 옆을 지나가면 항상 망치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당시 드럼통을 도라무깡이라고도 했는 데 도라무깡을 펴서 무엇을 만들어 내던 공장이 지금은 아주 큰 대기업으로 성장한 곳도 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고 한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배를 탈 땐 아침에 살롱으로 식사를 하러 내려가면 갤리에서 쿡이나 사주장이 계란 후라이를 해서 직접 들고 왔다.
음식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 난다. 계란 후라이도 식어 빠진 것은 맛도 떨어진다. 그래서 사롱사관들이 식사하러 내려오면 그제서야 후라이팬에 계란을 깨어 후라이를 시작하여 다 익으면 따뜻하게 해서 가져다 주었다.
쿡이 계란 후라이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계란 후라이 뒤집는 방법을 배워 보려고 몇번 시도해 봤으나 잘 되지 않았다.
서니 사이드가 아니고 양면을 웰던으로 구우려면 노련한 쿡은 후라이팬을 살짝 추겨들면 계란후라이는 춤을 추듯이 저절로 공중제비로 한바퀴 돌아서 후라이팬 바닥으로 정확히 떨어지는 것이었다.
첫댓글 계란 후라이로 오물라이스 하는 기술이 참 멋 있던데 밥덩어리 전체를 계란 후라이로 덮는것.배에서는 주자를 잘만나야 잘 얻어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