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이라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만 연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너무 많이 듣고 그림으로 봤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그리스도를 2단계로 증거를 합니다. 첫 번째는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이 그에게 세례를 줄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태초 안에 계신 말씀이시며(요1:30) 성령세례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노라고 증거했습니다(요1:32-24)
두 번째 증거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는 수식어가 빠진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35-36) 계5장에 보면 이분은 죽음을 당하셨던 어린 양이신데 보좌에 앉아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피조물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십니다(계5:7-14)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 값을 갚으시고 다시 사셔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오르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만 새겨놓고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을 간다고 한 건 천주교의 공로가 큽니다. 그리고 계시가 없는 사람들이 육신으로 오셔서 행한 사역을 뒤돌아보고 그 능력의 예수를 믿자고 강조를 한 탓일 겁니다. 세례요한처럼 저 분이 바로 성령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믿으라 따르라 닮아가라 뭐 이런 식이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세례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하는 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외침뿐입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는 증거가 있은 후에는 제자들이 따르며 어디에 계시는가 소재를 물으니 와서 보라고 하십니다(요1:37-39)
요한의 제자였다가 주님을 따른 안드레가 드디어 우리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그의 형제 시몬(베드로)에게 증언합니다(요1:40-41)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을 만난 겁니다. 안드레가 데려온 베드로를 향해 진흙과 같은 시몬이 반석인 게바(베드로)가 되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가 모셔 들이므로 성령세례를 받아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지금 보좌에 앉아 하늘 문과 성경을 여시고 나를 그리로 부르시는 어린 양으로 바라보는 눈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면 아주 쉬운데 이를 글로 설명하려니 참 힘드네요. 이렇게 설명해도 모르신다면 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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