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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주보 제1895호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2020.6.14) 지팡이 마당 용서를 청하지 않는 사람까지 용서해야 하나요?
첫째, 용서는 불의를 용납하거나 가해자를 너그럽게 봐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둘째, 용서는 망각이 아닙니다. 과거의 일을 마치 없던 일처럼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용서는 지나간 고통을 없애주지 않습니다. 단지 미래의 고통을 없애줄 뿐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상대방에 대한 ‘사면’이나 ‘해방’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상처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이기에, 상대방이 잘못을 뉘우치거나 용서를 청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 자신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겪은 일이 부당할수록, 그로 인한 상처가 클수록 용서는 더욱 어려운 일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 머물기 위해 우리의 인간적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ἐχαρίσατο) 것처럼” 서로 용서하라고 권고합니다(콜로 3장 참조). 여기서 쓰인 에카리사토(ἐχαρίσατο)는 ‘거저 주다, 은혜를 베풀다.’라는 의미의 카리조마이(χαρίζομαι)의 변형된 형태로,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하는 시간적 배경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구속 사업이 과거에 일어난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며 여전히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 현존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거저 주시고,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우리를 대신하여 성부께 용서를 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루카 23,34 참조). 이를 마음으로부터 믿고 주님께 의탁할 때, 용서라는 ‘자기 치유’와 ‘해방’의 여정은 비로소 우리 안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콜로 3,12-13). 글 | 배기선 영덕막달레나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심리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