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합니다. 가지고 있는 자기 것보다 남의 것에 대한 부러움을 뜻합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기를 꿈꿔봅니다. 그런데 그 푸른 초원에 가까이 가보면 어쩌면 잡초로 무성한 푸르름일 수 있습니다. ‘100m 미인’이라는 말도 있지요. 좀 떨어져서 보면 그렇게도 예쁜데 가까이 가서 맞닥뜨려 보니 영 아니올시다, 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라는 것과 당해서 보는 것과는 괴리가 생기기 쉽습니다. 흔히 이상과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좇아가려 합니다. 정작 손에 쥐고 나면 실망하기도 하지요. 바라던 대로 얻은 것이 아니기 쉽습니다.
사람은 천사가 되어보고 싶어할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싶으면 그런 소망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천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할까요? 일단 사람이 된다면 편리한 것보다는 불편한 점이 꽤나 많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견뎌낼까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장소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마치 감옥에 갇히는 것과도 같은 일입니다. 여기저기 마음대로 다니면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한 곳에만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답답하지 않을까요? 감옥생활이 쉽겠습니까? 물론 익숙해지면 됩니다. 그 때까지는 견뎌야지요.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천사가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동행했다가 목숨을 살리려는 의사의 간절한 노력에 감동을 받습니다. 천사인 ‘세스’는 의사인 ‘메기’를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기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다 그만 사랑에 빠집니다. 메기 또한 세스가 마음에 들지요. 자꾸 생각이 떠오릅니다. 둘은 종종 마주칩니다. 물론 세스의 마음입니다. 자기를 좋아하고 결혼까지 이루려는 동료 의사가 있음에도 그에게보다는 세스에게 마음이 가고 있습니다. 세상 말로 좋은 결혼을 마다하고 잠시 한적한 곳에 피하여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정말 사람이 맞아?
만약 칼로 손가락을 잘렸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금방 손가락이 제자리에 그대로 붙는 장면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런 사람을 본다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겠습니까? 이 사람이 사람 맞아? 그런 생각 들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교제할 수 있는 상대입니까? 더구나 결혼까지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지? 혹 외계인? 아니 이렇게 착하고 잘 생긴(?) 외계인도 있나? 그런데 왜 혼자 와 있지? 어떻게 온 거지? 나를 사랑한다고? 내가 사랑해도 되는 건가? 나를 사랑하고 위해주는 것은 확실한데 이런 관계가 언제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거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듯이 또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는 건 아냐?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미 천사에서 사람으로 바뀌어 살고 있는 동료를 만나게 됩니다. 조언을 듣지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와 반대로 함께 하였던 동료는 걱정스럽게 주의를 줍니다. 사람과 천사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죽음’일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죽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사실을 감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자신이 죽는다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목도하는 것이 더욱 힘들 것입니다. 과연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안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으로 산다는 의미는 무엇으로 그 가치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천사가 경험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기대하고 구태여 천사를 벗어나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까? 세스는 바라던 대로 사람으로 바뀝니다. 얼마나 바라던 일입니까? 메기를 찾아갑니다. 이제는 손으로 느낍니다. 상대방의 따듯함이 손으로 몸으로 전해옵니다. 육체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서로가 그 느낌을 즐길 수 있습니다. 천사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러 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특히 사람 사는 세상에서 목도한 죽음은 바로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그 죽음을 견뎌야 하는 고통일 것입니다. 그러할지라도 사람이 되려는가? 함께 누려본 사랑의 환희는 어쩌면 잠깐입니다. 그것을 위해 오랜 시간을 걸 수 있겠는가? 글쎄, 행복한 기억이 오랜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천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람의 사랑과 삶을 그린 듯합니다. 오래 전 영화네요. 젊은 ‘니콜라스 케이지’와 ‘맥 라이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City of Angels)’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영화평 잘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감사합니다. 예, 복된 주말을 빕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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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우님은 작가이신가요? 표현력이 탁월하네요.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계간지 한국문학정신 작가로 있답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