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얼마전까지 이런 선수가 있었는지도 몰랐구요.. 한국프로야구 최초 영구결번이란 사실도, 박철순 이전 두산의 최초 영구결번 선수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어쩌다 알게 된건데..
전 박철순 선수가 두산의 유일한 영구결번인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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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신 (金榮伸, 1961년 11월 9일 - 1986년 ..)
학 력: 원주중학교 - 상문고등학교 - 동국대학교
포지션: 포수 (우투우타)
경 력: 1984년 제23회 LA올림픽 야구 국가대표
1985~1986 OB베어스
1979년 제34회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 8강전, 상문고와 대구상고의 경기. 고교야구사상 최장시간 경기로 기록된 이경기에서
결승 2루타를 뽑아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연장23회 이틀동안 5시간 28분에 걸친 대장정 이었다. 20회초, 4번타자 김영신은 2사
2루에 주자를 두고 중전안타를 쳤지만 상대 중견수의 정확한 홈송구로 2루주자가 아웃 되면서 경기는 계속되었다. 운명의 23회초
선두타자의 안타와 후속타자의 희생번트로 만들어진 1사 2루의 찬스, 김영신은 상대투수의 초구를 쳐내 3루쪽으로 빠지는 적시
2루타를 쳐 팀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밑에 사진은 1979년 당시 신문에 나온 김영신의 기사입니다.
이경기로 김영신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으나, 팀은 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고교때 부터 유망주로 각광을 받던 포수였고
대학교 3학년때부터 국가대표 주전포수 마스크를 썼고, LA올림픽 야구대표팀 으로 뽑혔다. 대표팀 유일의 포수였다. 당시 라이벌
겪인 고려대 서효인, 연세대 장호익, 한양대 김상국, 성균관대 장채근 등보다 한수위라는 평가받았다. 특히 1루송구시 백업플레이
를 최초로 시도했다는 소리가 나올정도로 공격은 물론 수비면에서는 알아주던 선수였다. 프로에는 85년도 OB베어스에 2번째로
지명된다. 당시 OB에는 수비가 좋은 김경문, 조범현이 있었으나취약포지션으로 포수부분이 평가받았다. 이들 두선수는 수비에
비해 타격에서 다른 구단의 공격형포수 이만수, 유승안, 김무종 에 못미친다는 평가때문이었다. 고교시절 팀 4번타자를 맡아온
김영신에 거는 기대는 그만큼 컸다. 그러나 당시에는 프로에 입단후 곧바로 활약이 없으면 스카웃 실패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입단 즉시 활약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게 신인 선수들 사이에 있었다. 프로에서 김영신은 22경기에 출전, 타율 1할5푼6리,
5타점 홈런0..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으로 1군보다는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국가대표 주전출신인 김영신이 계속 2군에
머물러 있다는 건 엘리트 코스를 거친 그에게는 견딜수없는 상처였다.
결국,,,
1986년 8월 16일 아침 조간신문 한켠에 조그맣게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한강하류 부근에서 초병에 의해
익사체로 발견된 김영신의 기사였다. 당시 경찰은 급류에 휘말려 변을 당한것으로 추정했지만, 사람들은 성적부진으로 술을 자주
마셨고 그러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이 아니냐는 논란도 많았었다. 그렇게 그의 삶은 26세의 짧은 나이로 마감했다.
유족들은 사고후 당시 구단과 감독에게 선수기용 방식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강력하게 항의하고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프로야구 최초의 현역선수 죽음이라는 점에 큰 멍에를 짊어지게된 OB베어스 구단은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 처리하기로 하였고,
한국 프로 야구사의 최초의 영구결번 으로 남게되었다.
첫댓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