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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의 값어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유대인의 오랜 가르침에 따르면, 한 사람의 생명을 저울의 한 쪽에 올리고 나머지 세상을 반대편에 놓으면 비로소 저울이 균형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이론(異論)의 여지는 있겠지만 그만큼 사람의 생명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의료분야에서 장기이식은 이와 같은 생명의 숭고함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장기이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간이든, 신장이나 심장이든, 췌장이든 기존의 치료법으로 회복하기 힘든 각종 말기 질환자의 장기를 뇌사자 및 생체에서 기증된 건강한 장기로 대체하는 수술을 말한다. 요컨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장기를 들어내고, 생명의 왕성한 기운으로 넘치는 새로운 장기를 들어앉혀줌으로써 죽음을 삶으로 치환하는 ‘소생술’에 다름아닌 것이다.
처음부터 외과의사의 길을 생각하고 있던 권준혁 교수가 이식을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소생술에 대한 경외감과 매혹을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외과 체질이라 자부한다.
“제가 인턴을 돌던 시절에는 혈관주사를 인턴한테 맡겼는데, 혈관을 잡기 어려운 환자들의 혈관을 제가 많이 잡아줬습니다. 동료들은 어려워하는 혈관잡기가 저한테는 굉장히 쉬웠어요. 그때 ‘아하, 나한테 손재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리고 수술방에 들어서면 뭔가 확 끌리는, 즐거운 흥분 같은 것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아마 외과 체질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웃음)
권준혁 교수는 이식외과에서 간암과 간 이식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다. 왜 이식외과 중에서도 그는 간 이식을 선택했을까?
“우리 몸의 장기 중에서 간 만큼 매력적인 장기도 드뭅니다. 간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잖아요. 간은 재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일부를 절제해도 얼마 뒤 원래 크기로 회복됩니다. 또한 간이 손상되더라도 이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하긴 죽음을 앞둔 말기 간암환자가 간이식 수술을 받고 멀쩡하게(?)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보면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식외과의는 그런 기적을 행하는 의사다.
“지금은 간이식 환자들이 수술 후 경과가 좋아 생존율도 높지만, 제가 레지던트 할 때만 해도 간이식 수술을 하면 3명 중 1명은 수술방이나 회복 과정에서 돌아가실 정도로 성적이 형편없었고, 아침에 수술 시작하면 그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계속될 정도로 부담이 컸지요.”
아무튼 그런 어려움 앞에 좌절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의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거듭한 결과 이제는 거의 모든 진료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우리나라 의료인들의 피땀이 일궈낸 성과다.
권 교수는 특히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 복강경 수술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복강경을 이용한 간 수술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10여 년간 큰 진전이 없다가 2005년 무렵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권준혁 교수에 따르면 간 복강경 수술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큰 혈관들이 많이 몰려있는 간에 출혈이 있을 경우 복강경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숙련도가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대량 출혈 사태가 생겨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적극적인 접근을 못 하고 있고 2000년대 중반부터 이런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었지만 아직 많은 복강경을 하는 외과의에게 두려움을 주는 부분이다.
2011년에 호주와 프랑스에 단기 연수를 가서 현지 복강경 수술 현황을 둘러보고 온 권 교수는 본인이 2008년부터 시작했던 복강경 프로그램에 몇 가지 개선사항을 추가해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복강경 수술을 시작했다.
“복강경 수술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복강경을 이용한 우측 간 절제술을 할 수 있는 전문가는 다섯 명에서 열 명 내외 밖에 안됩니다. 따라서 제 목표 중 하나는 복강경 간 절제술을 안전하고, 편하고, 쉽게해서 복강경 수술을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시키는 것입니다. 아무튼 향후 5년, 10년 내에 복강경이 대세가 될 겁니다. 지금 제 수술 환자의 80%도 복강경으로 수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의 오픈 마인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우리 병원 선생님들은 굉장히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고 계십니다. 후배들한테 “하고 싶으면 해! 적극 도와줄 테니까.” 라는 식이죠. 예전에 제가 복강경 수술을 하고 싶어서 우리 과 조재원 선생님께 여쭈어봤더니 “그렇게 해.”라는 아주 간단명료하게 대답해주셨어요. 그때 정말 감사하게 생각했죠.”
권 교수에 따르면 처음에는 다소 수술하기 쉬운 환자를 대상으로 복강경 수술을 해야했기 때문에 복강경 수술 대상자가 비교적 한정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럴 때 복강경으로 쉽게 수술할 수 있는 대상 환자가 조재원 선생님을 찾아오면 ‘우리 병원 내에 복강경 수술을 잘 하는 선생이 계시니 그 분한테 수술을 받으라’고 힘을 실어주셨어요. 이런 것은 우리 병원에서만 있는 일입니다.”
권 교수의 자랑(?)은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들이 수술의 운신폭이 너무 좁은 것에 한계를 절감하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온 것에 대한 비교로 읽혔다. 여기서 운신폭이 좁다는 것은 선배가 수술에 대한 방향이나 방법을 제시하면 후배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튼 ‘새로운 것을 개척해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 도와주겠다!’는 분위기가 우리 병원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든든한 의학계의 선배들 덕분에 그는 또 다시 새로운 분야의 개척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복강경을 이용한 간 절제술을 많이 해왔지만 올해부터는 생체 기증자에게 적용하기로 했다.
“우선 소아기증자를 대상으로 복강경 좌외측엽 간 절제술을 시작하고, 이후에는 성인기증자의 간 우엽 절제술을 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감사하고 든든한 의학계의 선생님들 외에 그에겐 또 어떤 롤모델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고모부를 뵈면서 ‘사람은 저렇게 무르익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항상 원대한 꿈을 위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하시고, 뜻있는 사람들을 모으시는 것을 보고 커다란 감동을 받았죠. 전문 분야에서는 확실한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당시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박사 학위를 최단기간에 취득하신 기록을 갖고 있는 분이시다.) 경제, 사회, 정치 할 것 없이 박식하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끊임 없는 애정과 관심을 가지신 분이세요.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이자 포항공대 초대 총장이었던 고(故) 김호길 박사가 권 교수의 고모부였던 것이다. 1994년 4월 30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호길 박사는 핵물리학을 전공한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포항공과대학교 설립 등 대학 교육의 선진화를 주도한 교육자이자, 퇴계학회를 창립하신 전통 유학에 조예가 깊은 유학자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한동대학교 김영길 총장의 형이기도 하다.
권준혁 교수는 좋은 의사의 길을 고민할 때마다 생각나는 환자가 있다.
“제가 레지던트 1년 차 때 주치의를 맡았던 40대 후반의 말기 위암 환자분이셨는데 수술을 받고서도 결국 돌아가셨죠. 그때 환자의 부인이 저를 부둥켜안고 “딸이 아직 다섯 살, 일곱 살인데 어떻게 하느냐”라며 엉엉 우시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화장실 가서 막 울었죠.”
그 일을 겪고 난 후 권 교수는 유명하지만 환자를 잘 보지 않는 의사와 유명하진 않지만 환자를 잘 보는 의사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마음으로 함께 울고 웃는 의사가 곁에 있다는 것, 환자에게 이보다 더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그가 되고 싶다는 의사의 모습이 이미 그에게서 설핏 비쳤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미래의 꿈’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60세 정도 되면 수술방을 벗어나 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의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게 무척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술활동을 하든지, 우리나라 시민단체나 국경없는 의사회,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군대 생활할 때 근무를 자원해서 동티모르와 서부사하라 해외파병도 다녀왔는데 정말 할 게 많은 것 같더라고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얘기, 정말 공감합니다. 수술방이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때 가서 뭐부터 시작할지는 지금부터 고민해봐야죠, 하하.”
역시 한 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라는 얘기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지금은 환자를 잘 보는 의사로서 절륜의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그를 항상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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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삼성홈피 안에 블로그 인터뷰 기사 퍼왔는데 심심할때 보시고요 , 요새 각병원 홈피가 잘 발달해잇습니다. 각병원
회원님들 보시고 조은 인터뷰 나온거 잇서면 올려주세요. 지나친 홍보성 인터뷰라고 해도 할수 없지만 의료진에 대한 이해도를
쉽게 한다는 정도로 이해해주세요. 다른병원도 이만큼 홈피가 잘되어 잇을겁니다.
사진은 컴으로 보세요 전화통으로 보면
안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