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간송 전형필
나와 간송 전형필의 첫 만남은 2008년 10월 ‘신윤복의 미인도’를 전시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접하고
아이들과 함께 간송미술관을 찾은 때였다.
신윤복의 미인도,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서체, 김득신의 야묘도추 등 그동안 책을 통해서 보던 것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많은 국보와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 전형필은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 그의 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교육가이며 문화재 수집가로 본관은 정선(旌善 ). 호는 간송(澗松)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3.1 운동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셨던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선생을 만나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기만 한다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문예 부흥의 근거를 마련해 둘
수 있으니, 일시 국권을 상실하고 강압으로 문화 전통이 단절된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간송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 한남서림을 인수하고 우리나라의 고서적과 서화 골동품들을 구입해 많은 민족문화재들이 간송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런 문화재들은 1938년 ‘나라의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의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에 수장되는데, 1950년 한국전쟁 중에도 보화각의 중요 수장품은 큰 피해 없이 잘 지켜졌다.
전쟁 후 간송은 고고미술동인회의 결성과 동인지 『고고미술』의 발간에 힘쓰다가 1962년 1월 26일 급성
신우염으로 갑자기 타계한다. 간송이 돌아가자 간송의 문화재 수호와 육영공적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그해 8월 15일에 곧바로 대한민국문화포장을 추서하고 뒤이어 1964년 11월 13일에는 대한민국문화훈장국민장을 다시 추서한다.
1965년에는 간송 측근의 고고미술동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할 것을
발기하고 보화각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하여 부속박물관으로 하기로 한다.
그리고 2014년 간송의 뜻을 지금 세대가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시대의 조류에 발을 맞추도록 도움을 주기위해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동대문DDP(Dream, Design, Play)에서 1부: 간송 전형필, 2부: 보화각으로 나뉘어 전시회가 열었다.
전시는 훈민정음, 도자기류 24점, 서화류 63점 등 총 91점이며, 이중에는 국보 8점과 보물 3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전시된 작품들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내가 꼭 보고 싶었던 것은 짧고 좁은 목과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 굽까지 내려오는 유려한 S자 곡선, 고려청자의 백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이다.
『청자를 가지고 있던 일본 골동상인 마에다는 물건을 보러 온 30대의 간송을 보며 ‘나이 어린 식민지 백성이 설마 이것을 살 수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2만원을 불렀다.(당시 한양의 기와집 한 채값이 천원정도함) 간송은 매병의 주인이 되었고, 그 후 무라카미라는 일본인이 찾아와 두 배의 가격을 주겠다며 되팔기를 권했으나 간송은
“무라카미 씨가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을 저한테 가져오신다면 그 때 생각해 보지요. 저 역시 값을 치르는 데는 인색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지켜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국보 제 68호로 전시회장 안쪽에 이중 유리 속에 담겨 담당 보안직원의 보호를 받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간송은 매병을 돌려보며 천 마리의 학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나도 느낄 수 있을까하여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키워야 할듯하다.
겸재 정선의 ‘단발령망금강’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이 너무 아름다워 머리를 깍고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회화이다. 겸재가 35세 되던 해에 단발령에 올라서 처음 금강산을 대하고 그린 그림이다. 진경산수화법의 창안을 꿈꾸어온 겸재가 이 신산을 보았으니 그 첫 대면의 감흥이 어떠했겠으며, 그 얻은 그림 또한 어떠했겠는가. 회화의 제목이 그 마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 회화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짙푸른 단발령에 오르는 선비들과 흐릿하게 멀리 금강산이 보인다. 특히 겸재가 72세가 되어 진경산수화의 대가로『해악전신첩』을 다시 꾸며낼 때 36년 만에 다시 그린 그림이다.
해악전신첩은 골동품상 장형수가 친일파 송병준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던 때 뒷간을 다녀오는 길에 사랑채에 군불을 때는 머슴을 바라보다 불쏘시개 종이 뭉치에 쪽빛 비단으로 꾸민 책을 보고 재빨리 뛰어들어 집어보니 그것이 이 화첩이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전시장 한 쪽을 길게 차지하고 있는 길이 818cm, 높이 58cm의 유례없는 대폭산수화권인‘촉잔도권’. ‘촉’은 유비의 나라이며 현재 쓰촨지방인 이 지역은 기암절벽의 험준함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산으로, 강으로, 절벽으로, 걸어서, 배타고, 도르래타고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내가 그 길을 걷고 있는 듯 숨이 차고 힘이 든다. 그러다 도착할 때쯤 완만한 산과 마을이 나오면 ‘휴~’ 도착했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이 회화는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과 더불어 3재로 일컬어지는 현재 심사정의 작품이다. 조카 심유진의 부탁으로 62세에 그려졌으며 이듬해인 63세에 돌아가시니 현재 심사정의 마지막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다른 ‘노응탐치’라는 작품은 늠름한 매가 사냥감을 확인하고는 부리는 꽉 다물고 시선은 꿩한테 박힌 채 사냥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자신의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위험 상황도 모르고 풀밭에서 한가로이 먹잇감을 찾고 있는 장끼의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이 광경을 허공에서 한눈에 꿰뚫고 있는 참새떼들은 곧이어 벌어질 사냥에 지레 놀라 퍼덕인다. ‘큰일났어, 큰일났어’라며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심사정의 조부 심익창은 과거 시험 부정사건으로 귀양을 갔으며, 이후 해배되어 돌아왔으나 연잉군(이후 영조) 시해 미수사건에 연루되면서 대역죄인의 집안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집안의 내력 때문에 일생을 불우하게 보냈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였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내가 혜원 신윤복의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쌍검대무’도 전시되었다. 담뱃대를 물고 넋을 잃고 보는 사람들과 해금, 대금, 피리, 장구, 북을 연주하는 악공들 사이에서 붉고 푸른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모습을 보면 옆에서 ‘휙, 휙’ 바람소리가 나는 듯하고, 버선발을 살짝 들어 올린 모습이 무척 역동적이다. 주사거배, 상춘야흥, 연소답청, 무녀신무도 함께 전시 되었으며, ‘혜원전신첩’속 회화는 4회에 걸쳐 나누어 전시된다고 하니 다음에는 어떤 회화들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이 화첩은 당시 일본인 야마나카 손에 있었다. 간송은 이를 되찾기 위해 몇 년의 세월을 공들였고, 결국 야마나카는 조선의 젊은 청년의 기개를 마주하면서 탄복했고 혜원의 풍속화첩을 양도했다. 이를 되찾아 왔을 때, 위창 오세창을 비롯한 원로 대가들은 마치 어린애처럼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나중에 ‘혜원전신첩’이라 명명되었고 국보 135호로 지정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금싸라기 땅을 팔아 사기그릇을 사는 사람’이라는 손가락질 속에서도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온몸으로 막고,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 있는 문화유산을 되찾아 오는 일에 발 벗고 나섰던 간송 전형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신 간송 전형필선생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우리가 이렇듯 많은 보물들을 내나라 땅에서 볼 수 있는 것이리라. 문화는 한 민족의 혼이고 정신이다. 문화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평생의 시간과 전 재산을 바쳐 문화재를 수호한 간송 전형필의 뜻을 이어 나가는 것이 우리 후대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1부: 간송 전형필은 6월 15일까지 전시하며, 2부: 보화각은 7월 2일부터 ~ 9월 28일까지 전시한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함께해서 우리 민족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감동 받고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을 갖는다면 좋겠다. 물론 나또한 그럴 것이다.
첫댓글 간송전에 가서 설명을 듣고있는듯 하네요~
으~음...
오래전부터 성북동이 우리 동네인것 마냥 나들이를 하던시절이, 그런 시절이 분명히 내게도 있었다. 이번엔 넓은곳으로 옮겨 전시 한단 기사에 한편으로 반갑고, 한편으로 아쉽다~~성북동 나들이길이 그리운 밤에...
전시회 가기전 쌤 글을 읽고 가니 행운이에요~감사^^
간송전 꼭 가야겠다는 다짐하면서~
선생님의 간송사랑이 느껴집니다.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전에 수업을 위해 간송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감동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간송선생님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지요... 딸이 독후감으로 상장두 받아오구 했었답니다.^^
좋은 글을 쓰셔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