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치 ‘왜냐면’에 실린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원 연구위원의 글을 잘 읽었다. 새 전자주민증 성명에 한자를 병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자식에게 훌륭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일가 친척과 족보와 항렬을 고루 살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내 자식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름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일 게다.
그런데, 작명가의 도움을 빌리더라도 한자 이름이 부르기 좋은가? 뜻을 제대로 알면서나 쓰는가? 성 빼고, 항렬 빼고, 나머지 한 자도 좋은 자를 제대로 지을 수는 있는가? 박 위원 말마따나 서기도 담겨야 하고, 나라 이름, 해와 달, 보이지 않는 병명, 산천의 이름, 음양오행, 사촌들 이름 등등을 빼면 쓸만한 한자 이름이 없다. ‘박팽년’의 경우에서 보듯이, 고르고 고른 이름이 어렵고 부르기 힘든 경우도 다반사다. 남자나 여자나 어차피 상대방에게 한자 이름을 설명하려면 한자를 글로 써 보여야 하는 것은 똑같은 번거로움이다.
박 위원은 “그 성씨와 항렬자의 한자를 보면 일가 간 서계까지도 금세 알 수 있다”고 했다. 과연 ‘홍길동’ 석 자를 보고 일가 친척과 서계를 금방 알 수 있을까? 이것은 농경사회 또는 씨족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졸기’에도 죽은 사람의 이름만으로는 어느 집 자식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느 일가, 몇 대손, 누구의 아들, 누구의 동생 식으로 설명한다.
박 위원은 또한 “(성명 표기에서) 한자를 뺄 경우 같은 한글 음을 가진 성씨는 조상이 다른데도 모두 한 개의 성을 가진 일가가 될 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한자를 써도 마찬가지다. 오얏 리(李)자만으로는 전주 이씨, 함평 이씨가 모두 한 조상, 한 서계, 한 후손이 된다. 버들 류(柳) 자를 써놓았을 때, 베풀 류(劉) 자와 다르기 때문에 두 성의 조상은 다르다는 것을 변별할지 모르지만, 한 가지 한자를 쓰는 각기 다른 집안의 경우, 한자 표기로도 조상을 변별할 수 없게 된다.
현재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한자 이름패를 쓰는 의원은 32명인데, 이들 중 19명이 60대 이상이라고 한다. 박 위원의 논리로라면 이들을 뺀 한글 이름패를 쓰는 의원들은 성씨가 같은 발음이면 모두 같은 조상의 후손이 된다. 그런가? 세종대왕이나 김유신, 덩샤오핑이라고 한글로 쓰면 모두 조상을 모르는 후안무치가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한자를 써야 한다. 이름을 외자로 지을 때는 몇 곱절 까다롭고 신중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자 이름에는 엄청나게 어렵게 짓거나 없는 한자를 만들어서 지은 이름이 많다. 이들을 위하여 주민등록에 한자 병기를 의무화한다면 그 작업을 위한 경제적 비용도 엄청나다. 더욱이 동사무소 직원이나 일반인들이 어려운 한자를 틀리게 쓸 가능성도 높다. 그저 이름은 ‘돌쇠’라도 지은이의 뜻이 소중하면 되고 명예롭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첫댓글"그저 이름이 '돌쇠'라도 지인의의 뜻이 소중하면 되고 명예롭게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아주 맞는 말씀입니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것이 없는 훌륭하고 자랑스런 제 나라 말 글이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 이름을 남의 나라 글자를 빌려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겨레의 얼이 빠진 사람들입니다.
첫댓글 "그저 이름이 '돌쇠'라도 지인의의 뜻이 소중하면 되고 명예롭게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아주 맞는 말씀입니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것이 없는 훌륭하고 자랑스런 제 나라 말 글이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 이름을 남의 나라 글자를 빌려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겨레의 얼이 빠진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