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전 이야기를 연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복음과상황〉 400호(2024년 3월, 송지훈이 만난 활동가)에 성서대전 대표로서 인터뷰했는데, 그것으로 부족했나? 한 번도 아니고 총 여섯 번을? 성서대전을 알릴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말로 일단 수락은 했지만, 그때부터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를 써야 하지?
성서대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목회를 시작한 이유, 목사가 된 이유, 그리고 교회를 개척한 이유를 잠깐 언급하려 한다. 교회 목회와 성서대전 사역은 결코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나에게 교회는 그 자체로 선교이다. 선교란 단어 속에는 사회란 용어가 숨겨져있으며, 따라서 교회가 곧 사회선교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겨울 수련회 때 처음으로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가 아니었다. 남들 앞에 서는 일 자체를 극도로 부끄러워하는 내향형 인간이었고, 설교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설교하지 않는 목사가 될 방법은 없을지 꽤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일이며,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이 세상의 수많은 공동체와 구별되어야 한다.’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이 귀국해야 했다. 비자 거절 이유는 현저한 은행 잔고 부족이었다. 처음 영국 유학을 떠났을 때도 800만 원이 전부였고, 재정 지원을 해줄 부모님도 계시지 않았다.
뜻밖의 귀국으로 가족 부양을 위해 학원 강사 및 과외 교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목사였다. 유학 가기 전, 2001년 6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 후로 목사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 공동체에서 어떤 모양으로든 목사직을 수행하려고 했다. 남편은 아내가 있을 때 남편이고, 부모는 자녀가 있을 때 부모이듯, 목사는 신앙 공동체가 존재할 때 성립되는 직분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 때문에 하는 발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영국 유학 초기에는 우리 집에 유학생들을 초대해 매주 목요일 저녁 식탁 교제를 나누고 가정예배를 드렸으며, 그 후 한인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일했다. 갑작스러운 귀국 후에는 교회를 개척했다.
하지만 언급한 바와 같이, 회중 앞에서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싶어서 교회를 개척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 교회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무료 공부방이었다. 무료 공부방 전단지를 만들어 주민센터로 찾아가 차상위계층 가정에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그 후 찾아온 10여 명의 아이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치고 함께 책 읽기를 하면서 나의 작은 목회가 시작되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후에는 동네 목회자들을 만나 작은 교회들이 연합해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지역사회를 위한 뭔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제안은 불발되고 말았다. 사람들을 전도해 교회에 안착하는 일을 목회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는 그들과, 교회의 존재 자체가 선교이며, 따라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일이 곧 목회라고 생각했던 나의 목회관의 차이에서 생겨난 일이었다.
교회 개척은 시각장애인 목사와 함께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의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들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은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주중에 교회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전 교인이 찬성했고, 교회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일이었다.
2012년 10월 26일 성서대전 창립예배. (이하 사진: 필자 제공)
그런 시점에서 어느 날 성서대전이 결성되었다. 나와 같은 부류의 목사들을 만났던 것이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삼상 18:1).” 정기적으로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고, 밥을 먹고, 간혹(글자 그대로다) 술 한잔(이것도 글자 그대로다. 믿어주시길)을 나누면서 동지 의식을 갖게 되었고, 2012년 10월 26일 성서대전 창립예배를 드렸다. 그 후 곧바로 지역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예배하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그것이 ‘고함기도회’의 시작이었다. 하나님께 고한다,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찾아간다(go)는 중의적 의미로 이름을 정했다. 이 기도회는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밀양 송전탑 반대,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집회 등 우리 주변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대전 지역 보문산 난개발을 반대하는 기도회로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무려 2년 이상을 지속해오고 있다.
보문산 난개발 반대 고함기도회
성서대전을 시작하고 두 가지 사회적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그리고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성서대전은 ‘침묵하라’는 대다수 교회의 움직임 속에서 곧바로 세월호 참사 현장, 단원고와 안산 합동분향소와 컨테이너에 마련된 사무실을 방문하고, 유가족들을 초대해 그들의 아픔을 들었고,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개최했다. 이태원 참사 때도 같은 태도를 이어갔다. 세월호 유가족, 이태원 유가족 중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상당수 있는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참사 후 교회는 더는 따뜻한 환대의 공동체가 아니라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들을 밀어내는 배제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진짜 교회, 진짜 목사를 만났다.”
마이클 고힌은 《교회의 소명 –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IVP)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성육신 사건을 토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그분의 선교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이해는 예수로부터 시작한다.” 뉴비긴에 따르면 선교란 역사적 현실 속에 참여하는 사건이며,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일이 성육신이다. 성육신은 신이 인간의 역사에 참여한 사건이며, 하나님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준 예시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
한마디로 선교는 교회의 존재 이유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실체다. 기독교 신앙은 개념이나 교리를 통해 이해되지 않고, 몸을 통해, 몸으로서의 교회, 공동체적 경험을 통해 습득된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초월적 영역에 비가시적으로 계셨던 하나님이 가시적인 몸을 입고, 역사 속에 찾아오셨으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다.
예수께서는 높은 하늘을 떠나 낮은 땅으로 찾아오셨고,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가셨으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따라서 교회는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교회가 된다. 성서대전은 그런 의미에서 찾아가는 교회이고 길 위의 교회라 할 수 있겠다. 누가복음에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옷이 벗겨지고 맞아서 거의 죽게 된 예수님의 말씀이 나온다(눅 10:30).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교회로 오라고 할 수는 없다. “너희는 가서(go)…” 이것이 지상명령이고, 교회의 방향성이다. 따라서 교회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 사회선교다.
성서대전이 주관한 이태원 유가족 응원 콘서트 ‘이태원, 편에 서다’
성서대전은 강도 만난 이웃을 찾아가 그들의 상처를 싸매고, 곁에서 그들이 여기에 있다고 외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다. 성육신 사건을 통해 초월과 내재, 신과 인간의 경계선을 극복했듯, 성서대전은 교회 안과 밖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하나님 나라의 실루엣을 보여주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라는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정말 작고 연약한 성서대전은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보고 싶다.
2019년 성서대전 7주년 공동기도문을 작성하면서 이런 문구를 썼었다. “처음 교회는 이 땅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모임이었고, 약한 사람들의 피난처였습니다. … 작고 연약한 중에도, 작고 연약한 사람들,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얼마 전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10년 후 성서대전은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 하나요?” 전혀 고민하지 않고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10년 후에도 성서대전은 지금처럼 작고 연약할 거예요. 그리고 지금처럼 작고 연약한 이웃들을 찾아가,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고 있을 거예요.” 내가 생각해도 참 소박한 꿈이다.
첫댓글 고함기도회~넘 좋은데요^^
하나님께 고한다,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찾아가다(go)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실체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