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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철학적 토대를 밝히다
1. 현대 스리랑카가 낳은 불세출의 불교 철학자
쿨라팃사 난다 자야틸레케(Kulatissa Nanda Jayatilleke, 이하 자야틸레케)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철학적 해석’으로 회자되는 《초기불교의 지식론(Early Buddhist Theory of Knowledge, 이하 EBTK)》이라는 책으로 세계적 인정을 받은 불교 철학자이다. 자야틸레케의 학문은 제자이자 후배 학자들인 데이비드 칼루파하나(David J. Kalupahana), 파드마시리 데 실바(Padmasiri de Silva), 구나팔라 다르마시리(Gunapala Dharmasiri), 아상가 틸라카라트네(Asanga Tilakaratne) 등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초기불교를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경험론과 유사한 일종의 ‘근원적 경험론’으로 해석하는 학풍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자야틸레케는 불교 고전어, 특히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서양의 철학적 전통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독특한 불교 철학자가 될 수 있었고, 남방 테라와다불교와 북방 대승불교의 수 세기 발전 결과로 가려졌던 초기불교의 사상적 동향을 명확히 드러냈다.
2. 서양철학 전통과 만남
1920년 11월 1일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태어난 자야틸레케는 어릴 때부터 영재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스리랑카 명문 학교 가운데 하나인 콜롬보의 로열칼리지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1939년에는 실론유니버시티칼리지에 입학하여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를 공부했으며, 1943년 런던대학교의 인도-아리안학 학사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정부의 장학금을 받게 되자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였고, 1961년에는 런던대학교에서 마침내 EBTK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야틸레케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오스트리아 태생의 분석철학 대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문하에서 공부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를 통해서 자야틸레케는 논리실증주의라는 당시 유럽의 지성 전통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이는 이후 그의 학문적 경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논리실증주의 운동은 유럽에서 비엔나학파라고 불리던 과학적 사고를 지닌 철학자들의 모임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과학이 지식의 패러다임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선험적 증거와 그러한 증거의 입증을 높이 평가하였다.
비록 비트겐슈타인은 비엔나학파와 직접적 관계도 없었고 비엔나학파의 일원도 아니었지만, 그의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 나타난 사상은 논리실증주의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40년대에 자야틸레케가 그의 강의를 청강하였을 무렵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실증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철학적 사고의 단계인 이른바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시기 동안 지녔던 자신의 견해를 가다듬고 있었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아서 나오게 된 저서가 바로 EBTK였다.
3. EBTK
앞서 말한 대로, EBTK는 불교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대가로서 자야틸레케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미국의 불교학자 리처드 로빈슨(Richard H. Robinson) 교수가 말한 대로, 이 책은 어떠한 기준에서 평가하더라도 역작이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제목이 약속하는 것 이하와 이상을 동시에 담고 있다. 우리가 인식론에 관한 현대 유럽이나 중세 인도의 논서들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는 많은 주제들, 예컨대 기억의 성숙과 작용, 오차론, 초자연적인(yogic) 인식과 결부된 기능들과 작용들이 전혀 나오지 않거나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다. 빨리 성전은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그다지 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이 많이 생략되었다. 하지만 내가 리뷰하는 이 책의 주요 한계는 비록 초기불교의 사상이 인도의 모든 고전 유파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되고 학문적으로 진보한 것이라고 설득력 있게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불교 사상의 단점들이나 인도철학의 후대 발전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도 사상의 중요한 역사는 《리그베다(Ṛg-veda)》에서 시작되어 논장(論藏, Abhidhamma-piṭaka)에서 끝난다는 점을 전달하려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도학과 철학사의 역작이다. 이 책은 과거의 어떤 저서보다도 철저하고도 명확하게 초기불교 이전과 당대의 사상가들을 개관하고서 빨리 성전 특히 경장(經藏, Sutta-piṭaka)의 권위 · 추론 · 경험의 문제들을 훌륭하게 논한다.
EBTK의 집필 목적은 그때까지 불교학자들이 생각해온 대로 초기불교의 지식론이 합리주의가 아니라 경험주의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자야틸레케는 EBTK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빨리 성전의 사상을 새로운 자료의 견지와 새로운 시각에서 평가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빨리 성전의 사상에 대한 인식론적 토대들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인식론에서 주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지식이 유래하는 방법의 문제이다. 이 책에서는 빨리 성전의 불교에 의해 알려지고 비판되고 인정되는 지식의 수단들과 관련된 질문들이 낱낱이 논의된다.
이와 같이 자야틸레케는 기본적으로 지식의 수단들과 그것과 관련된 질문들에 대한 탐구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분석을 윤리학, 형이상학, 미학 등에서의 지식론에만 한정시키지 않았지만 불교철학의 다른 측면들을 조사하기 전에 먼저 초기불교의 인식론적 토대들부터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를 위하여 자야틸레케는 붓다 당시까지의 인도철학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식의 획득과 관련하여 고대 인도의 모든 종교 · 철학의 유파들을 크게 세 범주로 정의하였다. 그 세 가지 범주는 ① 전통(anussava), ② 논리적 추론(takka), ③ 초감각적 인식(extrasensory perception)인 통찰과 직관으로 각각 요약되며, ① 전통주의자(anussavikā), ② 합리주의자(takkī vīmaṃsī), ③ 경험주의자로 각각 대표된다. 베다의 성스러운 권위를 떠받드는 바라문은 주로 성전의 전승을 권위 있는 지식의 출처로 삼았다. 초기의 우빠니샤드 철학자들과 회의론자들과 유물론자들과 대부분의 아지와까(Ājīvaka)들은 초감각적 인식을 주장하지 않고 오직 논리적 추론과 사색만으로 지식을 얻었다. 반면에 붓다는 중 · 후기의 우빠니샤드 철학자들과 일부 아지와까들과 자이나교도들과 마찬가지로 명상을 통해 얻은 초감각적 인식을 지식 획득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이러한 자야틸레케의 논조는 맛지마 니까야의 《상가와라 숫따(Saṅgārava-sutta)》에 근거하고 있다. 붓다는 이 경에서 사문과 바라문들을 그들의 지식 수단에 따라서 ① 전통주의자 ② 논리가와 사량가 ③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서, 지금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고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의 근본을 가르치는 자들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붓다는 자신이 세 번째 그룹에 속한다고 밝힌다.
계속해서 자야틸레케는 자신의 논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앙굿따라 니까야의 《깔라마 숫따(Kālāma-sutta)》를 예로 들고 있다. 붓다는 깔라마에게 10가지 근거들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서 어떠한 명제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는 붓다가 진리와 실재에 대한 지식을 얻는 방법으로서의 추론과 논리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고대 인도의 종교적 스승들이 받아들인 두 가지 지식의 획득 방법들을 거부함으로써 경험주의적 입장을 드러내었다고 보았다.
상윳따 니까야의 《앗티누코빠리야야 숫따(Atthinukhopariyāya-sutta)》에서 붓다는 구전과 추론에 의존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왜곡하지 않은 채 직접적인 경험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사념처 수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직접적 경험은 초기불교에서 중심적인 인식의 도구가 되며, 그 중심에는 사념처 수행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초기불교의 인식론적 입장을 실천 즉 명상에 적용했을 때, 구전과 추론은 법(法, dhamma)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자 반영이라는 측면을 지니며, 이는 사념처 수행을 통하여 궁극적 실재를 직접 경험하기 위한 보조적인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영원한 평화인 경지인 열반(涅槃, nibbāna)을 실현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초기불교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고 직접적인 수단은 명상이다.
4. 열반과 표현 불가능성
자야틸레케가 불교철학에 공헌한 또 하나의 측면은 바로 열반과 표현 불가능성에 대한 연구이다. 여기서 ’표현 불가능성‘은 산스끄리뜨어 아베야까르따(avyākṛta) 또는 빨리어 아브야까따(avyākata)를 옮긴 말이다. 그는 무르티(T.R.V. Murti)가 《불교의 중심 철학: 중관 체계의 연구》에서 처음 논의한 이후로 붓다가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답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포괄적이고 철학적으로 논의한 두 번째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자야틸레케는 붓다가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답변하지 않은 이유에는 실용주의적 이유 말고도 철학적으로 타당한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자야틸레케는 열반에 관한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초기불교의 태도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의 태도와 아주 유사하다는 점을 특히 흥미롭게 여겼다.
자야틸레케는 아라한의 사후에 관한 네 가지 질문들을 논의하면서, 맛지마 니까야의 《악기왓차곳따 숫따(Aggivacchagotta-sutta)》를 인용한다. 붓다는 “고따마(Gotama)여,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어디에 태어나게 됩니까?”라는 등의 질문을 던진 왓차곳따에게 마치 장작과 풀이 접촉하여 불이 타고 그러한 접촉이 없으면 불이 꺼지는 것처럼, 여래(如來, Tathāgata)도 5온(五蘊, pañca-kkhandhā)을 통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불이 꺼지고 나서 불꽃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를 말할 수 없듯이, 여래도 사후에 어디에 태어나는지 말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붓다는 ‘불이 꺼진 뒤에 그것이 사라진 방향’의 비유를 통해서 질문의 (논리적) 성격상 그것은 어떠한 (논리적) 대안들에 의해서도 단정적인 답변이 내려질 수 없는 질문임을 설파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푸른 갈색의 책》에 나오는 ‘양초의 불꽃은 그것이 꺼지면 어디로 사라지는가?’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자야틸레케가 도출해낸 가장 흥미로운 점들 가운데 하나는 의미의 분석 방법에서 초기불교와 비트겐슈타인 간의 유사성이다. 동시에 그는 초기불교와 논리실증주의자 간의 차이점도 분명히 하면서 붓다가 형이상학에 대한 질문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면서도 거기에는 증득될 형이상학적 실재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야틸레케가 초기불교의 철학을 해석하는 데 논리실증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수용하였음을 방증한다. 그러므로 자야틸레케가 초기불교의 철학을 현대의 논리실증주의와 너무 동일하게 보았다는 일부의 비판은 사실 부당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5. 업과 재생
자야틸레케에게 열반 다음으로 형이상학적 색채를 지닌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업(kamma)과 재생의 문제였다. 업과 재생은 붓다가 초감각적 지각을 통해서 스스로 실증한 삶의 두 가지 측면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는 붓다가 업과 재생을 수용한 것은 그것이 바라문교 전통과 수행주의 전통의 주류에 있었기 때문이지, 그가 이것을 몸소 체험하고 진리임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야틸레케는 재생의 문제를 서구 분석철학의 엄밀한 안목에 놓고서 그것이 논리적으로 사리에 맞는다는 점을 보이려고 상당히 노력했다.
학문에 대한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료를 연구하면서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고 비판의 안목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사실 어떤 믿음이 A 단계와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B 단계에서 연달아 발견된다고 해서 B 단계의 사상가들이 그 믿음을 비판 없이 독단으로 A 단계에서 받아들였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훌륭한 과학자조차도 우연히 공감하게 된 선배 과학자의 이론을 단지 그 공감만을 이유로 비판 없이 교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칼루파하나도 지적했듯이, 붓다가 인도의 철학과 종교 사상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공헌들 가운데 하나는 업과 윤회의 현상을 자아와 같은 실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의 실체를 가정하지 않고 설명한 것이다. 종전의 인도 유물론자들은 영원한 자아를 부정하면서 재생과 도덕적 책임도 함께 부정하였다. 그러나 붓다는 영원한 자아를 부정하면서도 업과 재생의 교리를 유지했다. 자야틸레케는 EBTK와 다른 저작들에서 이 점을 장황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6. 불교철학의 현대적 응용
자야틸레케는 단순한 불교철학자는 아니었으며 그가 추구해온 불교학을 사회에 응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야틸레케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파드마시리 데 실바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당시의 정치 ·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들에 열정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비록 철학자는 통치자가 아니지만, 철학자도 나라의 정치 · 사회적 이슈들과 관련하여 무언가 가치 있는 말을 해야 한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역시 그의 문하생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아상가 틸라카라타네의 회고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짧은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자야틸레케는 점점 자신의 철학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철학이 실현되지 않는 당시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왜 자야틸레케는 오직 인식론에만 관심을 두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EBTK 이후 저작들을 살펴본다면, 그가 붓다의 메시지에 대한 좀 더 포괄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다만 그가 막 이러한 넓은 지평으로 뛰어들려는 찰나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EBTK 이후의 저작들이 많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BTK 이후의 다른 저작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말라라세케라(G.P. Malalasekera)와의 공동 저술인 《불교와 인종 문제》, 그리고 그의 단독 저술인 《불교 교리에서 국제법의 원칙들》이다. 후자는 불교철학의 법체계에 대한 그의 주요한 공헌이자 그가 세계 불교학계에 기여한 마지막 공헌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이 일련의 연설문에서 빨리 성전에 나타나는 교리적 · 철학적 · 역사적 · 실천적 증거들을 통해서 불교철학의 법체계를 재구축하고, 그것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행되어온, 그리고 실행될 수 있는 것임을 밝힌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불교의 법 개념은 불교의 윤리학과 사회철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비록 윤리와 사회철학과 별도로 법을 연구할 수는 있지만, 법은 오직 윤리학의 기반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이는 다시 초기불교의 실재론과 인식론으로 연결된다. 이와 같이 자야틸레케는 초기불교의 철학적 견지에서 이데올로기적 쟁점들에 대해 참신하고 흥미로운 진단을 시도하였다. 그는 붓다의 메시지가 현대사회와 명확한 관련성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자야틸레케는 1969년에 인도에서 열린 붓다자얀띠 강연회를 마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로, 붓다의 철학은 현대인에게 도전을 선사하며, 그것은 반드시 근원적 질문들에 대한 솔루션을 검토하는 현대 철학자들의 주요 기능과 의무가 되어야 한다.
자야틸레케의 학문적 기여는 불교철학의 연구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으며 현대의 철학 쟁점들과의 관련성과 현대인의 문제들을 지적하려고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불교가 종교나 신앙이나 신조로서 소중할 뿐만 아니라, 철학과 현대 과학에서 인간의 지성이 이룩한 최고의 성취들이라는 측면에서도 소중하고 도전적인 사상체계임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했다.
7. 나가는 말
안타깝게도 자야틸레케는 지적으로 한창 왕성할 시기인 49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요절은 어쩌면 학문 추구에 너무 몰두하고 당시 사회적 이슈들에 관여함으로써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윳따 니까야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나온다.
“사람들의 몸은 늙지만 이름과 족성은 늙지 않도다!(Rūpaṃ jīrati maccānaṃ, nāmagottaṃ na jīrati)”19)
이는 실로 현대 스리랑카가 배출한 자야틸레케의 학문적 업적과 공헌을 기리는 데 걸맞은 게송일 것이다.
불꽃처럼 짧은 삶을 살다 간 자야틸레케, 그는 불교철학에 대한 그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는 후학들과 일반 대중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
김한상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후 스리랑카 켈라니아 대학의 빨리불교학 대학원에서 초기불교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능인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