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자리에서(요나 2:1-10)22.09.18.주일낮설교
어느 집에 키우는 앵무새가 말이 하도 거칠어서 어떻게 하면 좋은 말을 배우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그 길을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좋은 말을 배우게 하려고 길가에 걸어놓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 아가씨가 출근하려고 그 앞을 지나가면 "못생겼다X2"
그러는 것입니다. 약이 오른 아가씨가 막대기로 때리려고 하면 "때려봐X2" 그러면서 약을 올리는 것입니다.
아가씨는 속에서 화도 났지만 약간의 충격을 받아서 성형 수술을 결심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나면서 이번에는 예쁘다고 하겠지 하고
가는데 앵무새가 뭐라 그런지 아십니까? "나 너 잘 안다." 그러더랍니다.
성형수술을 한다고, 외모만 고친다고 못 알아볼까요?
하물며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는지 모르실까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나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왜 요나가 큰 풍랑을 만났을 까요?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요나가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3절).
어느 날 하나님이 요나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앗수르가 “악하기 때문에 내가 가만히 둘 수가 없다. 너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성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2절).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갔습니다.
다시스는 니느웨와 반대가 되는 곳입니다.
동으로 가야하는데 반대되는 서로 도망을 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바로 풍랑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요나가 불순종한 이유는 요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생각은 '침략을 일삼아 온 앗수르의 악독한 도성은 회개할 필요 없이 망해야 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불순종한 것입니다.
불순종한 요나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안 맞아도 우리는 내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대로 살면 안 됩니다.
내 생각, 내고집대로 살면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내 생각에 안 맞아도, 상식에 안 맞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불순종한 요나에게 풍랑을 주셨지만,
그를 살리시기 위해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해졌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말을 합니다. 12절을 보면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했습니다.
결국 선장과 선원들은 바다의 흉융함을 자기들의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자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바다에 준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업의 현장... 직장의 현장...우리의 모든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의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과 자신의 사명 앞에 불순종하다가
큰 물고 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이 물고기 뱃속이 어떤 곳입니까?
요나는 물고기 뱃속을 ‘스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스올" 은 음부, 지옥을 의미합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처절했던지
이게 바로 지옥이구나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통과 고난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2절을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했습니다.
요나는 지옥과 같은 고난을 당했을 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세계 2차대전때 독일의 히틀러가 영국을 침공했을 때 영국의 처칠 수상은 미국의 루주벨트 대통령에게 1,100번의 편지를 써서 도움을 요청 했다고 합니다. 결국 미국의 도움으로 영국이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지옥같이 힘들 때 인내를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10년 넘게 장기불황에 빠져 있던 일본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
말(馬)이 있습니다. ‘하루우라라’는 말입니다.
이 ‘하루우라라’는 중앙경기장인 아닌 지방 경기장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한 결과 113연패,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말입니다.
'화창한 봄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루우라라'는 몸집이 작아 폐활량이
떨어지고 발목이 작아 치고 나가는 힘도 딸려 해외 명마의 혈통을
이어받은 경주마들에겐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1988년 데뷔전에서 꼴찌를 기록한 이래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지만
너무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에 하나 둘씩 하루우라라 팬들이 생겨났습니다. 2003년 12월 하루우라라가 100연패를 달성하는 날에는 멀리 시골 경마장까지 5000명이 넘는 관중이 응원하러 몰려왔고,
전국에서 5억엔에 이르는 마권이 팔렸습니다.
사람들은 질 것을 알면서도 하루우라라의 마권을 사고 응원을 합니다.
우승할 확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마권을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이 말이 매번 경주에서 패배하지만, 매번 전력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으며, 바로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암에 걸린 채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 아주머니는 “승부야 어떻게 되든
열심히 달려주는 하루우라라의 뛰는 모습만으로도 격려가 되고 힘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또 다니던 직장에서 밀려난 후 여러 직장을 찾아 문을 두드려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이 말을 보면서 희망을 갖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이 와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양과 돼지가 함께 진흙탕 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진흙탕 속에 번듯이 드러누워 있는 놈은 돼지입니다.
진흙탕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놈은 양입니다.
성경 어디에 보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 "너는 돼지다"라고 말한 곳이 없습니다. "너는 어린양이다. 나의 양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실패의 진흙탕 속에 드러눕지 마십시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면 어떤 실패의 자리에 있다할지라도 용기와 소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의 고난의 자리에서 감사하였습니다.
요나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요나는 영혼이 피곤할 때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의 지옥과 같은 고통에서, 감사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29살의 이지선씨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귀가하는 길에 그녀가 탄 차는 신호선에 멈췄습니다. 그때 음주운전자의 차가 뒤에서 들이받았는데 그녀는 잠깐 정신을 잃었고, 차는 폭발해 버렸습니다.
짧은 순간이 한 여자의 운명을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전신 55%의 3도 화상을 입고 20여 차례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의 인터뷰가 신문에 소개 되었습니다. “내 고통은 분명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살아있는 자체가 감사하다!”(08,1월 조선일보)
악수를 위해 내민 이지선씨의 손은 엄지를 빼고 손가락의 끝 마디들은
모두 절단돼 뭉툭해져 버렸습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이 화상으로 망가졌습니다.
웃는지 찡그리는지, 그녀의 표정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순간에 감사가 나왔을까요?
그러나 이지선씨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국교회를 다니면서 신앙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이지선씨는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나처럼, 이지선씨처럼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는 아픈 실패의 순간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로 결단했습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졌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벼룩은 몸의 크기가 3mm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벼룩이 높이뛰기를 하면 자기 몸에 110배나 뛴다고 합니다. 33cm를 뛴다고 합니다.
벼룩을 유리병 안에 넣고 뚜껑을 씌워 놓으면, 뚜껑까지만 뛰어오릅니다. 그렇게 병뚜껑 까지만 뛰는 것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뚜껑이 없어도 그만큼만 뛰어오릅니다. 벼룩 스스로 자기의 한계에 갇히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몸의 몇 십 배를 뛸 수 있지만 뛰지 못합니다.
‘뛰어 봤자 벼룩이 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 ‘뛰어 봤자 벼룩일지라도 그래도 뛰어야 하지 않습니까?’
어제까지는 뚜껑으로 인하여 주저앉았지만, 우리는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얼마든지 뛰어 오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죽으려 했지만, 오늘은 살기 위하여 희망을 품고 뛰어 봅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는 고난의 자리에서 아픈 실패의 순간에 기도했습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졌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