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남원 요천수궁가 이야기 / 문화대간 기행
남원은 판소리 동편제가 생겨난 이후 소리꾼이 많이 살아온 고을이다
판소리가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전수되는 구전심수의 면전 학습법을 가지면서 소리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스승이 사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러한 결과로 남원에 소리꾼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남원은 소리꾼의 유적지와 일화가 많이 생겨났다 그중 남원을 흐르는 섬진강 상류인 요천에 전해오는 소리꾼이 남긴 일화 하나는 이렇다
일제 강점기 동편제는 단절위기를 맞았다
제자를 양성하여야 할 소리선생들이 남원을 떠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신식 음악의 유입으로 소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동편제를 수호해 낸 소리꾼은 남원권번의 소리선생인 김정문과 박중근 명창이었다.
두분 다 다른 지역의 동편제 소리꾼이었으나 소리꾼 제자 양성의 기회를 가진 권번이 생겨나자 남원 권번의 소리선생이 되어 동편제 전승과 제자 양성에 나선 인물이다
수궁가를 특기로 가졌다는 박중근 명창은 구둥바우에 살면서 권번의 학생들을 데리고 요천의 용바위로 가서 수궁가를 가르쳤다고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르는 수궁가는 요천수궁가라면서 요천에는 수궁가에 나오는 용과 자라와 토끼가 있는데 요천 광한루 앞의 용바위와 도통리요천의 자라바위 그리고 그 옆 광암의 토끼산이 그곳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동편제 소리꾼들의 실체를 조사하면서 여러 후손들을 만났고 당시 소리꾼들의 구전을 채록하던 중 요천수궁가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날 이후 그 이야기에 나오는 요천의 용바위와 자라바위 그리고 요천 주변의 토끼산을 찾아 나섰다
용바위와 자라바위는 찾았으나 묘산 즉 토끼산을 찾을 길 없었다. 그러다가 남원의 기우제 조사에서 그 단서를 찾게 되었다
즉 가뭄에 비를 내려달라며 용왕에게 제를 지낼 때 살아있는 토끼를 제물로 올리고 제를 마치면 그 토끼를 광암산에 방생하였는데 그 광암산을 토끼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 기우제 이야기는 이렇다
남원의 기우제는 주로 대강사촌과 송동 외사촌 그리로 금지방촌과 대강 앙촌 거기에 사직단에서 치루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백성들은 촌자가 들어간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원님은 사직단에서 지냈다
기록에 보면 임금은 한강에서 지내던 기우제 제물로 호랑이 머리를 사용헀다고 하는데 이는 물에 사는 용을 자극해서 용이 화가 나면 비를 뿌리게 하기 위한 민간신앙의 생각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용을 화나게 하는 제물로 개피를 바위에 바르기도 했고 용이 산다는 연못이나 우물에 피를 뿌려 흐리게해서 용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원의 기우제는 고을의 이름 용성처럼 용이 수호신이었던 지라 수호신의 격에 맞는 기우제의 문화가 활용 되었고 그것은 토끼의 제물과 그 토끼가 산다는 달나라의 상징을 낸 월봉의 지명을 활용한 것이었다.
용을 불러낼 수 있는 유일한 유인체는 토끼뿐이다 그래서 육십갑자의 순서도 토끼해 다음이 용의 해이고 수궁가에서도 토끼와 용왕의 관계를 설정한 것이다
그래서 남원 사람들은 기우제 제물로 살아 있는 토끼 다리를 묶어 제상에 올리고 기우제가 끝나면 다시 광암산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러면 그 토끼가 용을 찾아가 남원 사람들의 비내려 달라는 염원을 전했고 용이 비를 내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 기우제 제물이었던 토끼가 나이들어 죽고 그 영혼이 달나라로 올라간 산봉오리를 달봉 즉 월봉이라고 이름짓고 고지도에 표기해 놓았다는 것이다
박중근 명창은 요천에 있는 용바위와 자라바위 토끼산을 자신의 수궁가에 들이고 요천 수궁가라며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설은 알수가 없고 요천 수궁가에 등장하는 용바위 자라바위 토끼산만이 내 앞에 왔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 동편제가 절명의 운명을 맞이하고 있을 때 구원자로 나선 박중근 명창은 수궁가를 개작한 요천수궁가로 꺼져가는 동편제를 살리겠다는 열정과 재주를 쏟아 붓다가 진주에서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바다 수궁가를 꺼내 육지 요천 수궁가로 변신시키던 일제 때 박중근 명창은 저 세상에 계시나 요천 수궁가의 용바위 자라바위 토끼산은 지금 그 무대의 유전자를 품고 있다
요천의 자라바위도 토끼산도 모두 용바위를 향하고 있으니 나라와 고을의 주인인 용을 향한 충의가 요천에 있음이고 우리는 그 기개를 가진 만인정신의 후예들이다
천년고도 이름값 나이 값의 탯줄은 문화이고 그 품격 활용이 고을의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