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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환경운동가 할미들- 일곱 번째 이야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일으키며 함께 일어난다.
- 환경운동가 박성율 목사를 만나다
(숲과 나눔재단 풀씨 지원사업)
강원도는 수도권의 식민지가 아니다
1984년 인도에서 3천여 명의 시크교도가 대량 학살되었다. 사람들은 종교 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다나 시바는 이 사건이 시크교도들이 주로 살던 펀자브 지역에 무지막지한 농약 사용과 단일 개량종 재배를 강요하고, 곡물값을 고정시켜 인도 전 지역을 식량 식민지로 만든 것이 시발점이었음을 밝혀냈다. 『녹색혁명의 폭력(The Violence of Green Revolution)』이 등장한 배경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침탈하듯, 한 나라 안에서도 특정 지역을 식민지화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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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양수발전소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그곳 주민들을 만나며 필자는 강원도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양수발전소는 강원도의 개발 열풍의 한 자락일 뿐이었다. 2011년 기준으로 여의도의 18배에 달하는 골프장이 83곳으로 급증했으며(환경아카이브 풀숲), 설악산 케이블카, 송전탑, 원주 열병합 발전소, 폐기물 매립장 등이 추진되고 있다. 강원도는 수도권의 놀이터이자 전기 생산지, 그리고 폐기물 처리장이 되고 있었다. 문제가 너무 많고 복잡해서 알려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고, 발을 들여놓기도 겁이 났다. “할 일도 많은데 강원도 문제까지 나서야 하나?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지”라는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박성율 목사
박성율 목사는 이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강원도 환경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강원도의 난개발, 법과 정책, 벌목, 생태 문제, 에너지 등 세상의 모든 문제를 두려움 없이 공부하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혹자는 그를 “극단적인 환경론자”라며 적당히 동의하고 합리적으로 살라고 비판했고, 혹자는 “그렇게 힘들게 해서 어떻게 사느냐”며 걱정과 우려로 공격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주우 작가와 함께 8월 초 홍천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 나섰다.
박성율 목사 마당 앞에 흐르는 개울
어렵게 찾아간 그의 집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집 마당 앞 개울이었다. 교통체증과 좁은 시골길을 지나느라 지쳐있었지만,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앞마당 개울에 발을 담그니 모든 피로가 단번에 씻겨 나갔다. 그는 어머니 자연의 치맛자락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대학교 교무처장에서 환경운동가로
박성율 목사는 40대 중반까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무처장으로 일했다. 대학 설립부터 참여해서, 학교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든든한 직장이었다. 무엇이 그의 안전한 삶을 뒤흔들었을까? 그는 그렇게 사는 것이 목사의 사명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영성이 살아 있는 농촌 목회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도자기를 굽던 아버지가 사는 홍천 첩첩산중으로 가족을 이끌고 이주했다. 아이들은 학교가 멀어 결국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고, 박 목사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농사도 짓고 일을 하면서 영성센터를 만들어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네 앞에 괘석리 골프장 문제가 생겨났다. 당시 그는 새마을지도자 협의회장이었기에 이장 협의회장과 부녀회장들과 힘을 합쳐 골프장 문제에 대응하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소금 공장을 운영해야 했기에 다소 물러서 홍보 담당과 네트워킹 조직화를 맡았는데, 그 일이 강원도 전반의 문제로 그를 끌어들일 줄은 몰랐다.
2015년 8월 강원도청앞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투쟁 선포식때 십자가에 달리는 퍼포먼스
박 목사는 원주 녹색연합과 골프장 문제에 대응하며 강원도골프장문제해결을위한범도민대책위에 함께했고 , 당시 8개의 주민대책위와 54개의 시민단체가 함께했다. 민주노총, 전교조까지 포함한 ‘범도민 대책위’가 만들어졌고, 박성율 목사는 집행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난개발 골프장, 케이블카, 그로 인해 쫓겨나는 사람과 동물, 그리고 말없이 손짓하는 나무들의 친구가 되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박성율 목사는 범도민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보게 되었다. 개별적으로 발생한 것 같지만 결국에는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강원도의 자연은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이곳 저곳 파헤쳐지고, 발전·송전·변전으로 이어지는 전원개발사업은 필연적으로 토지 강제수용 문제를 낳았다. 헐값 보상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주민들이 생겼다. 박 목사는 그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았다. 강원도 곳곳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홍천 양수발전소 문제로 풍천리 주민들이 그를 찾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싸움을 위한 약속>
2025년 풍천리 현장 방문자에게 양수 발전소 설명
풍천리 대책위가 찾아왔을 때 박 목사는 분명히 말했다. “나는 용병이 아니다. 당신들이 싸운다면 함께하겠다.” 그리고 네 가지 약속을 제시했다.
1. 싸움은 길어질 수 있다. 중도에 그만둘 거라면 시작하지 않는다.
2. 마을 분열이 생길 것이다. 단순히 보상을 더 받기 위한 싸움이라면 함께하지 않는다.
3. 나는 용병이 아니다.
4. 찬반으로 갈라져도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싸우겠다면 함께 끝까지 싸운다.
주민들과 2박 3일 동안 회의를 했다. 이후, 박목사는 친구들의 후원으로 집회 차량과 장비를 마련하고 싸움에 나섰다.
<생명평화기도회, 싸움의 교두보가 되다>
탈핵도보 순례(2024)
박 목사는 2008년부터 ‘강원도 생명평화 기도회’를 시작했다. 풍천리 주민들이 2019년에 새로운 문제를 들고 합류한 것이다. “강원도는 여러 문제가 있는데, 그때마다 모이는 것이 어려웠고 잘 모여지지 않았다. 난 목사니, 주일마다 모이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적용해 매주 한 번씩 도청이나 시청 앞에서 기도회 형식으로 모였다. 불교인, 무속인, 천주교인, 천도교인도 함께했다. 기도회는 단순한 예배가 아니라 학습과 연대, 지지의 장이 되었다. 밥통과 같이 외부의 식사 지원을 받을 때도 있지만 각자 식사비를 내는 공동식사를 하며 유대는 더 강해졌다. 처음에는 주제 설교를 했지만 지금은 시대 증언을 통해 참여자들의 발언을 듣는다.” 이렇게 생명평화기도회는 강원도 환경운동의 교두보로 자리 잡아갔다.
<싸움의 전략 4가지>
홍천 군청앞에서 203일, 강원도 도청 앞에서 463일..최근에는 홍천 양수 발전소 문제로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또다시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도 있는데 왜 관청에서 집회를 할까? 박성율 목사는 싸움의 전략을 4가지로 이야기했다.
1. 끝까지 싸우겠다는 각오가 있는 단호하고 강건한 지역주민 대책위가 필요하다..
2. 주민대책위가 확산되려면 연대 단위가 결합해야 한다.(환경단체, 시민단체, 종교단체, 정치 집단등을 통해 시민들이 함게 뭉쳐야 한다)
3. 모든 결정은 주민대책위가 결정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지역별 대책위 위원장이나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와서 집행위를 구성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반듯이 주민이 주도해야 한다
4. 싸움에 이기려면 사업자가 아니라 이 사업을 진행하고 허가하는 행정 관청이 싸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주민이 주도하며 연대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기업이나 사업가들과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박성율 목사는 ”사업자들은 행정관청의 합법적인 허가를 받고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방해할 경우 업무방해 등이 될수 있다고 언급한다. 행정기관은 연대의 강력한 정치적 압밥과 여론을 통해 움직일 수 있으니 그 방식으로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싸움의 방향을 분명하게 했다.
< 활동가의 삶>
박성율 목사가 그린 가족들
박성율 목사를 만나니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라는 베테랑 대사가 떠오른다. 노숙하고 집에 들어오면 반겨주었던 가족들, 그리도 또 농성장으로 돌아갔던 그의 일상을 가족들은 응원했다. 그는 골프장 싸움을 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재판에 지면서 집에 빨간딱지가 붙은 적도 있지만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자 나중에 찾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명의로 된것이없으니 아무것도 걸릴 것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의 집 가득한 책과 이곳 저곳에 걸린 그의 그림과 장식을 보면서 그의 가오(멋, 폼)를 느낄수 있었다.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것 같지만 스스로를 돌보고 살피는 일상이 묻어난다. 타인을 돌보기 위해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하는 돌봄의 원칙을 잘 지켜나가는 듯하다.
환경운동은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행위같다. 인간이 무엇이며, 돈이 무엇이고, 발전이 무엇인지 다시 성찰하고, 최근의 환경 정책 동향도 살펴야 하고, 지역에서 일어나는 난개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리, 토지, 생태까지 깊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집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순서지를 만들고 간식을 준비하고 지역주민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툭하면 고소당해 법적 대응까지 해야 한다. 연구자이고, 활동가이고 전략 결정까지 고민해야 하는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활동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활동을 일로 하지 말고 그 자체를 삶으로 살아야 한다”고 박목사는 응답했다. 내겐 개인 생활없이 운동만 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에게 환경운동은 그냥 그의 일상이다. 목사로서의 예배와 환경운동을 하나로 연결한 것처럼, 먹고 자고 일하고 활동하는 것이 모두 잔잔한 소중한 일상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활동가는 전문성과 영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성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박성율 목사는 예수 이야기를 꺼냈다. ”예수는 편파적인 사람이었다. 가진자와 권력자 편보다 가난하고 고난받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결국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았나? 남녀노소 누구나가 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세상이 존재할까? 손으로 막 긁어모으면서 청빈과 가난을 이야기해도 될까? 박성율 목사에게 영성은 신앙적 실행(practice)에 멈추지 않는다. 영적 충만함으로 갈릴리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갈릴리는 예수가 활동했던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홍천 양수발전소가 닦아놓은 길>
홍천 군청앞 홍천 양수발전소 반대 시위 주민들
풍천리 양수발전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박 목사는 의미 있는 성과를 짚었다.
“홍천의 싸움은 자발적인 주민들의 각성과 활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났고 중심을 잡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낸 것이다, 각성한 민중 혹은 시민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수 있는가를 보여준 모델이기도 하다.”
그는 이어 말했다. “전력 수급을 촉진하는 전원개발은 국가 기관 사업이니 막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번 양수 발전소 투쟁을 통해서 지방정부가 거부하면 얼마든지 취소 될수 있으니 싸움의 대상이 지방정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른 사람을 일으키며 함께 일어나는 박성율 목사>
원주지방검찰청 수갑차고 구속적부심
박성율 목사를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공부 욕심이 컸다. 실질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환경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나의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그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현재 환경운동가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 발생하고 있다. 글로벌 위드니스(Global withness)에 의하면 토지 삼림 자원보호 활동을 하는 이들이 주된 표적이다. 환경운동은 법과 제도를 바꿔서까지도 돈을 벌려고하는 거대한 자본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2010년 이후 10년동안 전세계적으로 1700여명의 환경운동가들이 살해당했다. 이틀마다 한 명의 환경운동가가 살해당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필리핀이나 중남미처럼 살해가 빈번하지 않다. 하지만 탄압, 소송 경제적 압박으로 환경운동가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박목사가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른 사람을 일으키며 함께 일어나는 그를 보며 함께 손을 잡는다.(We rise by lifting others, by Ingerso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