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죄 청년 “휴대폰 다 털고, 배후 추궁… 文, 국민 민주주의 못따라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소당한 청년 김정식씨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소당한 청년 김정식씨/박지현 기자
전례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청년을 모욕죄로 고소했다가 2년 만에 취하했다. 대통령이 시민을 ‘직접’ 고소한 건 사상 최초다. 자신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에서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5월 4일 “문 대통령이 이번 사안에 대한 모욕죄 처벌 의사를 철회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이번 일이 국격과 국민의 명예, 국가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 고소당했던 김정식(34)씨를 만나봤다. 소(訴) 취하 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다소 지친 기색이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방송에서 대통령이 되면 자신에 대한 비방을 참겠으며 어떤 고소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방송화면캡처
-성찰하고 있나.
“‘성찰'을 나쁜 의미로는 안 본다. 인간은 누구나 성찰하며 성숙한다. 최고 권력자 대(對) 일반 시민의 구도가 아니라, 단순히 연장자의 입장에서 젊은이에게 할 수도 있는 말이지 않나.”
-소 취하 소식을 접한 심경은.
“대체로 덤덤하다. 문득 ‘아, 이제 끝났구나’ 했다.”
청와대의 입장 표명 직후 그는 소셜미디어에 장문의 소회를 밝혔다. 그중 한 구절이다.
“권력자가 타인에게 모욕죄 고소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부자이니 세금을 더 내라’ ‘나는 초보운전자이니 당신이 양보하라’ 같은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축됐다고 해석해도 되나.
“아니다. 권력자에게 무조건적인 양보를 바라는 건 나 스스로 약자임을 인정하는 거잖나. 청와대 또한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이라고 했다. 이는 시민과 대통령은 동등한 관계라는 뜻이다.”
-해탈의 기운이 감지되는데.
“그런가. 아쉬운 점은 있다. 이번 송사로 인해 전단을 뿌리면서까지 알리고자 했던 당초 내 메시지가 희석됐다는 거다. 청와대는 왜 일개 국민 하나가 이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정부에 바라는 게 뭐기에 저렇게까지 했을까, 헤아려 봤으면 한다.”
문제의 그 전단, 무슨 내용?
-‘당초 내 메시지’라 함은.
“전단을 뿌렸던 2019년 당시 4·15총선을 앞두고 특히 ‘노 재팬’ 운동이 극렬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일본과의 외교 관계, 국익을 훼손하면서까지 반일 프레임을 내세웠다. 자신들은 독립투사고 애국자이며, 상대 진영은 친일이며 매국 세력이라고 양분했다. 이웃나라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해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정부·여당의 반일감정 조장과 국민 갈라치기를 막고자 한 게 목표였다.”
지난 2019년 7월 17일. 김씨는 3명의 일행과 전단 한 묶음을 들고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분수대 인근에서 이를 던졌다. 널리 흩뿌려지길 기대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둔탁하게 수직 낙하했다고 한다. 한 일행이 말했다. ‘이거 이렇게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다시 주워 담았다. 근처 벤치 위에 전단 뭉치를 모아서 올려두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고 방호원의 저지도 없었다”고 했다.
-온라인에 ‘그때 그 전단’이라며 도는 이미지가 많다. 그중 진짜는 뭔지.
“타노스(마블 캐릭터 중 하나) 이미지가 많이 돌던데 그건 아니고….”
그가 사진을 보여줬다. ‘북조선의 개 한국 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와 함께 일본 잡지의 한 페이지가 실려 있다. 문 대통령이 2016년 9월 26일 트위터에 일본 음란물을 올린 사실을 기사화한 내용이다. 그 아래에는 ‘문재인 대통령님! 트위터에 올린 일본 근친 야동, 일본 잡지에 실렸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이러니까 대한민국을 만만하게 보지…’라는 글귀가 있다.
김씨가 2019년 7월 국회의사당 분수대에 뿌린 전단지 이미지./김정식 제공
-이 내용이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은 안 했나.
“일부 진보 매체에서는 마치 악의적인 합성으로 음란한 사진을 연출한 것처럼 보도하던데, 문재인 대통령이 본인 트위터에 올린 사진이고, 이를 기사화한 잡지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쓴 거다. 혹 공연 음란법 위반이 될까 싶어 주요 부위는 모두 가렸다. 그런데도 만일 (공연 음란죄로) 건다면, 대통령을 맞고소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정작 공연 음란 행위는 대통령이 하지 않았나. 반일을 외치며 일본 야동이라니. 한국 주재 일본인 기자가 ‘한국인을 지켜보니 낮에는 반일이지만 밤에는 친일이더라’라고 했다지 않나.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정작 모욕을 당한 건 국민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모욕죄로 걸 줄이야.”
-전단을 배포하기 전에 다른 수단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해봤는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집회도 나가보고, 1인 피켓 시위도 해봤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브 채널에도 나가봤는데, 효과가 없었다. ‘메시지’는 수신자가 봐야 의미가 있다. 대자보를 하나 쓰더라도 빨간펜과 형광펜을 써가며 강조를 하지 않나. 효과적인 방법을 찾다가 선택했다.”
지난 2018년 12월 역사왜곡전시 반대 집회에 참석한 김정식씨./김정식 제공
“누가 시켰나, 공범이 누구냐”
그 결과는 호됐다. 그로부터 4개월 후, 2019년 11월. 반갑지 않은 전화가 왔다.
-경찰에 누군가 신고를 한 건가.
“국회 방호 담당 부서에서 수거한 후 영등포경찰서에 넘겼다고 했다.”
-그런데 왜 4개월이나 걸렸는지.
“4개월 동안 내사를 했다고 한다. CCTV 동선 추적, 휴대폰 기지국 조회, 출연했던 유튜브 방송 등을 찾아서 인물을 특정하고 인적 사항 등을 확보해놨더라.”
-경찰은 전단을 보고 뭐라던가.
“‘북조선의 개'는 심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핑계 같고 아무래도 음란물 사진이 역린이었던 것 같다.”
-경찰 조사는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그해 11월 첫 출석 후 2020년 5월까지 약 6개월간 10차례 정도 불려갔다. 당시 친동생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었는데 이 사실을 대며 ‘누가 시켰나’ ‘(전단은) 누가 제작했냐’ ‘공범은 누구냐’고 했다.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출석이었는데 자꾸 ‘공범’이라기에 지적했더니 정정하더라. 일행은 잘못이 없고, 모두 내가 한 일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휴대폰을 압수해갔다. 포렌식을 하겠다며.”
이땐 무력감이 들었다고 한다.
“휴대폰을 압수하고 패턴을 푸는데, 앞서 내가 패턴 그리는 모습을 뒤에서 동영상으로 찍어놨다가 그걸 보고 열더라. 이거 불법 아니냐고 했더니 합법이라더라. 아무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변호사가 없었나.
“연락이 많이 왔지만, 다 거절했다. 권력자가 찍어 내리면 일개 시민이 어디까지 찍혀 내려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모욕죄는 보통 한차례 출석해 조서를 쓰고, 이후 합의 과정도 있는 걸로 아는데.
“내 생각이지만 배후에 야당의 누군가 있다고 여긴 것 같다. 합의 과정 같은 건 물론 없었다. 고소인이 누군지 알아야 합의를 보든지 사과를 할 텐데,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모욕죄는 친고죄니, 고소 주체를 짐작할 수 있지 않았나.
“‘대통령 측'이라고는 알았다. 본인인지, 기관인지, 법률대리인인지는 몰랐다. 경찰에게 물었더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 알면서 왜 묻느냐고 하더라. 경찰도 곤란했을 거다. 고소인이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니 굳이 윗선에서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고 여겼겠지.”
-대통령이 직접 고소했다는 걸 알고 나서 심경은.
“엥? 딱 이랬다.”
2년간의 경찰 수사 끝. 지난 4월 28일 영등포경찰서는 김씨에게 모욕죄 및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여론은 즉각 반응했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정의당과 참여연대 또한 성명을 내고 “부적절한 처사”라고 했다.
-‘대통령 모욕죄 사건’이 현시대에 던진 메시지는 뭘까.
“‘진영을 떠나, 현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권보다) 훨씬 자유롭다(깨어 있다)’는 것이다. 당장 주변 지인들 반응은 물론이고 심지어 범진보로 일컬을 수 있는 참여연대와 정의당마저 문 대통령에게 ‘이를 거두라’고 하지 않았나. ’86′으로 대표되는 집권세력, 자칭 민주화 세력들은 ’2021년 판'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못 따라가고 있다. 이상・이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민주주의를 공허하게 좇으며, 이미 훨씬 다양하고 자유로운 현세의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구태의연한, 구호뿐인 민주주의의 틀에 가두려고만 한다.”
“정치 욕심? 정치 참여였을 뿐”
일각에서는 김씨를 ‘일반 시민’으로 보기엔 무리라고 지적한다. 정치적 이력 때문이다. 그는 현재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터닝포인트’의 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신(新)전대협(전대협을 풍자한 청년단체) 대변인, 여의도연구원 청년 정책자문위원 활동을 했으며, 4·15총선에서는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다.
-만일 본인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 같나.
“글쎄, 대통령이 되면 정말 바쁘지 않을까?”
-이 사건 이후 특정 집단의 공격은 없었는지.
“악성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너도 모욕 한번 받아보라면서. 국민들이 정치권력자들의 대리전(代理戰)을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끼리 싸워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젊은 애가 벌써부터 자기 정치이익을 위해 눈도장을 찍으려고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를 권장한다. 정치권력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 말이다. 내 행보는 정치 참여일까, 정치권력에 대한 욕심일까. 이 경계를 교묘히 파고들어서 본말을 전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시민의 정치 참여와 출마는 결이 다른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우리 더 이상 숨지 맙시다. 부끄러워하지도 맙시다’라던 홍준표 의원의 대통령 후보 시절 발언에 감명받아 나름의 목소리를 내왔다. 피켓을 들었고, 시위에 나갔고, 전단도 뿌렸다. 그러다 2019년, 쏟아지는 듯한 사정기관의 수사를 통해 ‘거대 권력 앞에서의 나약한 개인’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일개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에는 힘이 부족했구나’라는 차원에서 봤으면 한다. 정치를 하고자 했다면 진작 당내에서 작은 직책부터 맡아서 활동했을 거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눈앞에서 신호 대기에 걸려 있다 5초 뒤에 출발한다. 딱 한마디 외친다면.
“‘야동 이미지를 인쇄한 건 미안했습니다. 같은 남자로서 그게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짐작이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그렇다. 실수로 올렸고 잊고 싶은 기억일 텐데 자기 자식보다 어린, ‘듣보잡’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걸 인쇄해 뿌리니까 얼마나 화가 났겠나.”
-2019년 7월 16일로 돌아간다면, 그 다음날 다시 전단을 뿌릴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전단은 부족했다. 돌아간다면, 애드벌룬을 띄우겠다. 이 일이 ‘대통령이 국민을 모욕한 사건’으로 끝나버려서 심히 유감이다.”
-‘정치 참여’ 차원에서 앞으로의 계획은.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있겠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하겠다. 멈추지는 않겠다.”
‘멈추지 않겠다’는 건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4일 브리핑에서 박경미 대변인은 ‘앞으로는 (대통령이) 이 같은 모욕적인 표현에 대해 고소하지 않을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안의 경중에 따라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이렇게 ‘열린 결말’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