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화산을 오르다, 비야리카화산 트레킹
유럽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도시 푸콘Pucon. 칠레에서 가장 화산활동이 활발한 해발 2,847m 높이의 비야리카Villarrica화산과 호수가 있어서 더욱 유명하다. 도시 어디에서도 비야리카를 볼 수 있다. 정상은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비야리카화산 아래에는 화산이 터지면서 흘러나온 용암으로 만들어진 노천 온천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푸콘 시내에서 분화구까지 가이드를 동반한 트레킹이 가능하다. 지진이 일어나거나 화산활동이 강화될 때는 중단되기도 한다. 겨울시즌인 7~9월에는 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래프팅과 카약, 짚라인, 수영 등 각종 야외 액티비티뿐 아니라 온천까지 즐길 수 있는 종합 휴양지다.
여행사에서 비야리카화산 트레킹을 신청하면 모든 장비를 대여해준다. 배낭, 중등산화, 헬멧, 방수용 상의와 하의, 피켈, 크램폰, 장갑 등등. 단 점심과 간식, 식수는 본인이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장비를 배낭에 메고 올라가야 하니 평소 등산을 해보지 않은 이들은 조금 힘이 들 수 있다. 트레킹 전날 여행사에 가서 등산화를 신어보고 옷을 입어봤다. 2명의 칠레노와 함께 가이드 한 사람, 그리고 나까지 4명이 한 팀이었다. 단출해서 좋긴 한데 여러 가지 중장비들을 보니 쉬운 트레킹이 아니겠구나 싶어 조금 긴장이 되었다.
1,400m 화산재 길을 리프트 대신 두 발로 오르다
컴컴한 새벽에 푸콘을 출발, 비야리카 화산 입구에 도착해 관리사무소에서 입산신고서를 제출했다. 가이드와 함께 트레킹 기점인 비야리카화산 리프트 승차장까지 이동해서 차를 세웠다. 이곳이 트레킹 들머리였다. 리프트를 타면 조금 더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비용은 1만 페소, 10달러 정도 금액이다. 우리 팀은 모두 걷기로 했다.
힘은 조금 들었지만 머리 위에서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다. 리프트에 올라앉아 있는 이들이 아래쪽에서 걷는 트레커들에게 아침인사를 보냈다. 경사가 무척 심하고 모래사장처럼 푹푹 빠지는 화산재 위를 걷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하며 오르니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올라서야 리프트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만났다. 아주 쉽게 10달러를 벌었다. 이때부터는 일요일 도봉산 풍경과 흡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뒤로 빽빽하게 줄을 서서 비야리카화산을 올랐다. 이제야 동이 트는 새벽인데 벌써 저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다니!
적당한 곳에서 쉬거나 비야리카화산을 즐길 여유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무채색의 산에 컬러풀한 옷을 입은 많은 인파가 카메라 렌즈 속으로 들어오니 검게 죽은 산이 생명을 꽃피우는 듯 참으로 근사한 풍광이었다.
눈인 줄 알았던 구간이 얼음이었다. 화산재가 섞인 탓인지 얼음은 만년설처럼 새하얗지 않다. 크램폰은 신지 않고 피켈에만 의지하고 걸었다. 완전히 얼어 있는 빙하라기보다는 눈 자체가 얼은, 서걱서걱한 소리 나고 습기가 있는 상태여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크램폰을 신고 걸으면 훨씬 안전하겠지만 눈이 많이 파이고 산도 많이 상하게 되니 가능한 한 크램폰은 신지 않도록 하는 것 같았다.
45도가 넘을 만큼 경사가 심해지면서 등로는 지그재그 S자를 그렸다. 마음 같아서는 질러 올라가고 싶었지만 해발 2,500m가 넘는 높은 산을 급하게 오르면 고산증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열심히 걸었지만 올라가는 높이는 그리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이드 없이 올라가기 어려운 산으로 알았는데 오서르노산과 달리 산길이 한눈에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올라가는데 당연하겠지. 장비가 있어야 입산허가를 내주니 장비를 빌리고 들머리까지 교통편만 찾으면 셀프 트레킹도 충분히 가능하겠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몇몇 사람이 가이드 없이 오르는 걸 보았다. 가이드와 동반하는 사람은 복장이나 배낭이 모두 통일되어 있어 누가 어느 가이드 소속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배낭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했다. 특히 허리가 엄청 아팠다. 유난히 배낭에 민감한 사람인데 오직 한 가지 사이즈 배낭만 제공하니 배낭에 몸을 맞출 수밖에. 불편은 감내해야 했다. 한국에 있는 내 배낭이 그리웠다.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도가 심해졌다. 이미 날은 환하게 밝았고 구름도 거의 없어서 푸콘 시내도 한눈에 보였고 근처의 산들도 볼 수 있었다. 가이드는 스페인어로 설명하고 있는데 산 이름과 높이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영어 가이드가 있는지 체크했어야 하는데 깜박 잊었다.
어느 덧 눈이 쌓여 있던 구간이 끝났고 다시 화산재를 밟고 걸었다. 얼마 오르지 않은 것 같았는데 GPS에는 높이가 2,800m를 넘었다. 이젠 다 왔구나 생각하고 걷고 있는데 함성 소리가 들렸다. 경사진 곳을 올라서니 저만치 화산의 분화구가 보였다. 배낭을 내려놓고 피켈만 들고 정상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함성소리는 더욱 커지고 내 궁금증도 더욱 커졌다.
여기저기 크랙이 많아서 조금만 방심해도 실족하기 쉬웠다. 한 발 한 발 가이드를 따라서 안전한 곳만 밟고 걸어야 했다. 빙하의 크랙을 조심하면서 걸었던 엘칼라파테의 빙하 트레일이 생각났다.
매캐한 유황냄새가 코를 찔렀다. 분화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궁금했다. 그 모습을 보려고 모두 힘들게 올라왔다. 분화구 가까이 가니 엄청난 굉음 소리가 들렸다. 분화구 아주 깊이 시뻘건 불구덩이가 보였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굉음을 내며 불길을 뿜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가까우면 입산 금지였겠지~.
분화구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펑”하는 소리에 화산이 폭발하는 줄 알았다. 화산재가 하늘로 높이 솟구쳤다. 너무나 무서워서 뒤로 물러섰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실제 화산폭발을 눈앞에서 보고 온 몸으로 그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또한 트레일 중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런 활화산을 트레일 코스로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화산의 상황을 항상 모니터링하고 있어서 위험한 상태가 되면 트레일이 금지된다고 하지만 우리의 상식으론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아마 그 위험과 스릴을 즐기러 올라오는 것이기도 하겠지.
앗! 분화구를 보려는 욕심에 몰랐었는데 다른 가이드들과 함께 온 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왜 우리 팀만 마스크가 없는 거야! 이미 유해가스는 내 몸으로 들어갔으니 항의를 해 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고, 하산할 때 기분이 상할 수도 있으니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잠시 유황가스를 마셨다고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는 건 아니겠지.
정상 부근의 위험한 크랙 부근을 벗어나서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새벽부터 걸었으니 무척이나 시장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가이드가 주변의 산들을 설명했다. 라닌Lanin산을 시작으로 칼부코Calbuco, 오소르노Osorno까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틀 전 올랐던 오소르노는 그때의 그 느낌! 다시 생각해도 너무 행복했다.
화산재 구간이 끝나고 눈이 나타났다. 배낭에 있던 장비들을 꺼냈다. 방수바지와 방수재킷을 입고 엉덩이를 보호하는 앞치마 비슷한 것도 입고, 스패츠도 착용했다. 플라스틱 눈썰매를 앞자락에 매달아서 깔고 앉았다. 가이드가 장비 사용법을 진지하게 설명했다. 아마도 안전사고를 무척이나 염려하는 듯했다. 브레이크는 피켈. 앞사람과의 간격을 충분히 두어야 하며, 봅슬레이를 타듯이 피켈을 이용해 적당히 속도 조절을 하면 큰 어려움 없이 탈 수 있다고 했다.
눈이 많이 쌓인 곳으로 이동하니 이미 앞서 내려간 이들이 만들어 놓은 미끄럼이 수영장의 후룸라이드 같다. 앉아서 엉덩이를 살짝 들으니 속도가 엄청났다. 라인을 따라 엄청난 속도로 내려왔다. 처음엔 긴장되고 무척이나 무서웠는데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속도 조절을 하니 큰 어려움 없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었다.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비야리카호수와 푸콘을 파노라마로 바라보는 즐거움은 비야리카 트레일의 또 다른 묘미였다.
다시 화산재 길을 걸었다. 오를 때보다 훨씬 미끄러워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화산암이 뒤엉켜 있고 먼지로 뒤덮인 길은 앞사람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두고 걷는 게 좋다. 안전하기도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앞사람의 먼지를 다 뒤집어 써야 한다.
한참 긴장하고 내려오는데 저만치 무슨 사고가 난 것 같았다. 가까이 가보니 여자 분이 다리를 다쳐서 누워 있었다. 바로 앞에서 일어난 사고여서 순간 나도 많이 당황했다. 다리를 다쳤는데 꼼짝을 못 하고 고통만 호소했다. 가이드들이 응급처치를 하고 산 아래쪽에서 들것을 가지고 올라왔다. 내려오던 사람들도 모두 내려오지 못하고 한참 머물렀다. 30분 정도 지나서 사고현장을 피해 길을 돌아 내려왔다.
화산의 용암이 흘러내려 만들어진 돌들은 일반 바위보다 훨씬 단단하고 예리했다. 조금만 삐끗해도 뼈가 부러지는 건 예사일 것 같았다. 어느 산이건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특히 여행 중에 다치는 건 모든 걸 버리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별빛을 온몸에 바르고, 온천에서 화산재를 씻다
올라갈 때는 5시간, 내려올 때는 2시간, 정상 부근에서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환상적인 코스 덕분에 하산시간이 훨씬 짧았다. 비야리카화산에서 활화산의 마그마를 보았고 눈썰매를 타고 하산하는 새롭고 귀한 경험을 했다.
푸콘을 100% 즐기기 위해서 트레킹 후 이틀간은 오전에는 래프팅을 하고, 오후에는 유유자적 시내를 거닐었고, 해질 무렵이 되면 검은 자갈이 가득 깔린 비야리카호수로 갔다. 검은 자갈밭에 앉으면 태양이 내려앉고, 비야리카호수를 붉은빛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태양이 호수 너머로 내려갈 때까지 그 빛에 취했다. 그리고 밤이 늦으면 노천탕의 적당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계곡의 컴컴한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 있다. 마치 별들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눈을 감으니 고요한 세상 속으로 몸이 둥둥 떠올랐다. 세상의 어디로든 날아갈 것 같았다.
푸콘 200% 즐기기
■ 래프팅 상급과 초급 코스가 있다. 상급 코스는 경사가 급하고 물살도 세고 곳곳에 바위들이 많아서 더욱 스릴 있게 즐길 수 있다. 래프팅 경험자라면 상급코스를 추천한다.
■ 노천온천 비야리카화산이 흘러나온 용암으로 만들어진 온천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심야까지도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노천욕을 즐길 수 있다.
■ 비야리카호수 화산재로 만들어진 검은 모래사장이다. 비야리카 센트로에서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다. 비야리카호수의 백미는 일몰이다. 검은 자갈밭에서 바다 같은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즐겨보자.
■ 우에르케우에국립공원National Parque Huerquehue
푸콘 로컬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해 다녀올 수 있다. 다양한 트레일 코스가 있어 자신의 체력과 시간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울창한 원시림과 호수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