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사
박 정 애
건배사의 유래는 로마 시대에 술을 마시면서 상대방이 독을 넣었나 의심해서 잔을 부딪치면서 술이 섞이게 하는 의식에 출발이라고 하는 유래도 있고 술잔이 부딪히면서 서로 맘이 통한다는 유래도 있다고 한다. 상반되는 건배사 유래를 뒤로하고 우리나라 건배사가 날이 갈수록 발전해 나간다고 한다. 짧고 간결하고 품위와 재치가 있는 끼로 술자리를 이끌어야 한다니 그 몫 또한 확실하게 글 쓰는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 후 그 어렵고 배가 고팠던 시절, 품앗이 일을 하며 상부상조하며 살던 농촌의 일상은 종일 들에서 일하고 해거름에 집에서 저녁 식사와 곁들여 놓은 술주전자, 일꾼들이 농주를 마시면서 하는 건배사랄까 푸념이랄까 “햐! 이 맛에 산다”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다 붉그레한 얼굴로 각자 집을 향하던 그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가슴에 닿는 건배사다.
직장을 떠나온 지도 20여 년이 다되어간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곳이 직장에서 사람 관계다. 간혹 직원들 회식자리가 마련되면 건배를 하고 술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때는 주로 ~를위하여 선창을 하며 따라 하던 가장 많이 사용했던 건배사이었다. 높은 상사가 술잔에 술을 쳐주면 술을 보는 앞에서 먹으라고 하던 곤욕을 겪던 세월도 지금은 그리워진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나이가 많은 측에 든다. 여자들 모임에는 술을 잘 먹지 않지만, 남자들과 어울리는 자리는 술을 권한다. 특히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는 술을 빌미로 실수투성이다. 처음으로 많은 친구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난 초등학교 친구들이라 가장 어릴 때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흉허물없는 모임이기에 건배사도 유치 찬란하다.
몇 년 전 남편의 생일상을 아늑한 방을 예약해 가족끼리 모였다. 분위가 분위기인지라 술을 전혀 못 하는 남편을 향하여 아들들이 아버지 건배하십시오 하자 남편은 쥬스 잔을 들고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끝나기 무섭게 네 살 짜리 손녀가 한사코 재차례 인 듯 건배하려고 떼를 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에게 잔을 주었다. 놀랍게도 손녀가 두 손으로 술잔을 들고는 할아버지와 술잔을 부딪치며 “천 년 사시오” 라고 해서 가족 모두가 한바탕 왁자지껄 웃었다. 어미 아비를 따라다니면서 본 대로 한 모양이다. 말의 뜻도 모르는 손녀가 천 년을 살으라고 하니 이쁘다. 아들 며느리는 웃지만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딸 잘 가르쳤네” 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최고로 기분 좋은 술자리였다.
이렇듯 건배도 시대 장소에 따라 많이도 변하고 있다. 고된 하루를 달래기 위한 대접째 벌컥벌컥 마시던 일꾼 아저씨들의 한스런 건배, 퇴근 후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야할 시간에 회식자리서 억지 건배를 외쳐야 했던 직장모임, 고사리 손으로 할아버지 생신 축하 장소에서 뜻도 모르며 올리는 건배까지 누군가와의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지금은 건배의 자리도 세월과 함께 점점 줄어든다. 불러주는 곳보다도 내가 갈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70 대다. 어떤 장소는 내 스스로가 판단하여 끼일 장소가 아님을 알고 물러 앉아야 할 곳을 구분하는 현명함도 필요한 나이다.
이제는 나를 위한 건배가 필요하다. 아무리 백세시대 라지만 살아갈 날은 점점 줄어든다. 직장과 가정 둘 중 어느 하나도 버리지 못해 하루 24시간 모자라 종종걸음을 치던 시절이 지나 나의 게도 시간이 널여 있는지도 오래다. 이왕이면 좋은 추억이 깃던 세월 속에서 건배를 하고 싶다. 암이 오기 전 서부 유럽 여행 중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인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이드가 60초 반인 우리들에게 열정적으로 해준 설명의 귀를 기울였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황태자의 첫사랑 영화가 눈에 선하다. 황태자가 맥주를 마시면서 부르던 축배의 노래 게이트와 첫데이트때 부르던 세레나데를 허밍으로 따라 했다. 나는 지금 그 주인공이 되어 축배의 잔을 나에게 들어 본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건배 때 술을 못 하시는 분은 음료수나 물잔으로 대신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감사햡니다. 최상순드림
친정아버지 술을 전혀 못하시지 남편도 못하지 자연 술대접도 꽝이였답니다. 70년대 처음 집을 장만해 집떨이를 하면서 연탄불 위에 소주를 끓여 맹물 만든적이 있습니다. 술과 건배 많이 배웠습니다.
기다렸던 글 반갑게 읽었습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짧은 말로 모두를 신명나게 만들던 건배사는 일종의 불꽃놀이 같네요.
이제는 나를 위한 건배가 필요하다는 말 내마음에 콕 박힙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불러주는 곳도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스스로도 자제하고요. 옛일들을 생각하며
잔을 들어본다는 의미로 써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건배사에 대한 다양하고 진솔한 글 잘읽었읍니다. 건배란 술잔이나 음료잔을 마시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어 친목을 더욱 돈독히 하고 함께 나아가자는 출발 신호탄 같은것이 아닐까? .....
건배사 숙제 땜에 건배의 상식을 많이 배웠습니다. 참 재미있고 짧은 문장에 많은 뜻이 함축되었다는 재치 여러가지 배우고 갑니다.
형식에 치우친 요즘 건배사보다 해거름에 들판에서 막걸이 한사발 마시고 난후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감탄사와 같은 글입니다. 감동적인 내용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서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항상 허기진 모습으로 배를 채우는게 소원이든 사람 그 사람들이 마셨던 한이 담긴 술, 의식을 해결한지도 오래되었는데 그때 생각이 자주 납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건배사가 술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돋우기위한 덕담으로만 생각해 왔는데 인생 건배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대단한 발상입니다.나의 인생 건배사가 무엇인지 되새겨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숙제 제목이 좀 어려운 느낌이 들어 한참 미루다 숙제를 했습니다. 좀 부끄럽습니다. 옳게 정리도 되지 않은 글이지만 숙제는 꼭 해야만 실력이 늘어날것 같애서 쓴 글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칭찬도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