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先生말씀選集 3권
9) 뜻을 배신하는 자가 되지 말자 1957년 10월 20일(日), 전 본부교회.
3. 이 땅에 믿음을 세우려고 나타난 예수
하나님께서는 아담가정에서 저끄러짐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들이 여러 민족으로 화했으니, 그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고, 또 그 민족 가운데서 모세를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천륜의 법도는 세웠으나, 모세를 따랐던 그 민족은 하나님을 배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정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다시금 이스라엘을 바로의 수중에서 빼앗아 가나안족과 싸우게 하는 싸움의 역사를 거쳐 4000년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민족적으로 받들어야 할 모세를 배신한 인간들이 국가적으로 받들어야 할 예수를 과연 받들었던가? 오히려 그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가정적으로 배신했고, 사회적으로 배신했고, 국가적으로 배신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대의 선지들, 혹은 역대의 선조들이 뜻 앞에 나타나 하늘의 사명을 감당하고 나서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그들이 되어지길 바랬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조건을 세우려고 하늘의 사명을 맡았던 분들이 바로 노아요,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심정을 지니고 이 땅에 나타나셨던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신해서 나타났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말씀을 대신하여 나타났으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려던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셨던 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무엇을 느끼셨던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 세상을 향해 외치실 때, 그 말씀은 역사적인 말씀인 동시에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나타내고자 하였던 말씀인 것을 느꼈습니다.
나아가 그 말씀은 또한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간으로부터 배신당한 말씀인 것을 느꼈으며, 불신의 이 땅 위에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무한히 찾고 계시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인간을 지어 놓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영원한 이상적인 사랑의 실체로 세우고자 하시던 그 사랑의 심정을 느꼈고, 배반한 아담 해와의 입장을 자신이 복귀하여 완결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은 타락을 염려하시던 하나님의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인류의 아픈 심정을 느끼고 애달픈 역사 과정을 천륜을 걸어 놓고 저울질하는 입장에 서 계셨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실존에 대한 보이는 실존체로서 말씀을 부르짖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인간들로부터 배척받고 유린받던 그 말씀을 내 자신의 것으로, 배척받고 유린받던 그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성전으로서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예수님은 붙안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선 예수님께서 소망으로 찾고 요구하신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할진대 그것은 선의 한 날을 위한 염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는 소망의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웠고 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말씀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에, 역사적인 과정에서 배척받던 모든 말씀을 복귀하고 선조들이 그르쳐 놓은 배신의 죄악사를 탕감하여 아버지를 위로해야 할 책임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오, 아버지여! 아버지의 성전과 마음을 유린하고 짓밟던 선조들의 4000년 역사를 저를 보고 잊으시고 위로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땅 위에서 어떤 무엇을 청산해야 할 사명을 느끼신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배신과 현실적인 모든 배신의 내용을 추방하여 다시금 배신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에 사무쳐 사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