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대균 교과토의 6과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들
류
말씀은 더 깊게,
교과는 더 쉽게.
안녕하세요.
류대균의 교과방송 류대균입니다.
서
안녕하세요.
마석교회 서주영입니다.
오늘 함께 공부할 말씀은
6과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들”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분쟁도 있었고,
음행도 있었고,
우상 제물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살펴볼
고린도전서 12장부터 14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람의 몸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몸에는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습니다.
모양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릅니다.
그런데 다양함 속에서 하나될 때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은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가르치는 은사를,
누군가는 섬기는 은사를,
누군가는 찬양하는 은사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권면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양한 은사를 주신 이유는
누가 더 뛰어난 사람인지 경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몸에 서로 다른 지체가 있을 때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듯이
다양한 영적 은사를 가지고
연합하여 일하라고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류
사실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은사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은사는 많았지만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은사는 많았지만
연합하는 정신은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부터 14장까지에서
'성령의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서
일요일 교과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들어오면 바울은 새로운 주제를 시작합니다.
바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흔히 방언이나 예언, 병 고치는 은사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특별한 은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의 은사부터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오늘날에는 이 말씀이 너무 당연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를 향해 "카이사르 즉 황제가 주님이다."라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 "우리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은
권력에 반대하는 선동으로 여겨져
처형당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드리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게 우리 힘으로 될리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첫 번째 은사라고 강력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류
맞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은사는 믿음이지요
그래서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의 믿음 사랑 소망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영적 은사인 것이 고린도 전서 12장 9절에서도 분명히 알수 있는데요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똑똑해서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열어 주셨기에 믿게 된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도,
말씀을 읽고 싶은 마음도,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모두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가장 큰 기적은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은사는 방언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믿음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서
월요일 교과에서는 하나를 더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믿음의 은사 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섬기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찬양하는 은사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권면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그런데 다양한 은사를 주신 목적이 뭘까요?
교과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개별적으로 은사를 받지만 그 은사들은 모두 신자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류
너무 중요한 말씀 아닙니까?
은사를 왜 주셨다구요?
각 사람은 개별적으로 은사를 받지만 그 은사들은 모두 신자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부터의 말씀 보시겠습니다.
이 말씀만 잘 기억해도 오늘 교과는 다 배운 것이 할수 있겠습니다.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많은 분들이 "내 은사가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추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로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함께 나눌 두 번째 질문
나는 하나님께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나누어 보겠습니다.
더나가 주님과 교회를 위해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서
월요일 교과입니다.
월요일 교과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읽다 보면 바울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입니다.
같은 성령,
한 몸,
한 성령,
그리고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다는 말씀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이걸 통해 유추 할수 있는 것 있지요
바울은 연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울이 연합을 이야기하면서도
모두 똑같아져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에서는
여럿, 각각, 몸의 지체 같이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류
바울은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 몸을 예로 듭니다.
몸에는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습니다.
그리고 발이
"나는 눈 없이도 잘 걸어."하면 많은 사람이 웃을 것입니다.
또 눈이 나는 발 없이도 잘 갈 수 있어 말한다면
도저히 될수 없는 말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지체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즉 "다름은 분열의 이유가 아닌, 연합을 위한 하나님의 설계."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름은 분열의 이유가 아닌, 연합을 위한 하나님의 설계다.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은
연합을 위한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어떤 은사는 높게 평가하고,
어떤 은사는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교가 생기고, 결국 분열이 일어 났습니다.
이때 바울은 아주 중요한 결론을 말합니다.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입니다.
그럼 6과 교과의 중심이 되는 화요일 교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부족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은사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은사는 넘치는데,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은사가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비교하고 자랑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은사가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보다는
분열하고 분쟁하는데 쓰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겠다."
라고 말하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누가 더 좋은 은사를 가졌냐 하면서
티격 태격 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한 충격적인 이야기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우리는 보통
말 잘하는 사람, 예언하는 사람
믿음 큰 사람을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은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 없이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서
그래서 바울은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특별히 사라을 설명하면서 바울은
사랑이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해야 될걸 안하고
안해야 되는건 할 때 답답한데~~~
어떤 것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바울은 사랑한다면 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 참고
친절하고
진리안에서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낸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할것이 있는데요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쉽게 성내지 않고
앙심을 춤지 않고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사랑을 모두 동사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사는 행동하는 것을 표현할 때 쓰잖아요
사랑을 감정으로 생각하는데
사랑은 동사입니다.
즉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고, 실천임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15개의 동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은
받은 은사가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은사를 얼마나 사랑으로 잘 사용하고 있느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랑으로 잘 사용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나눌 세 번째 질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지 나누어 보겠습니다.
류
수요일 교과 보시겠습니다.
여기에는 방언의 은사가 나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방언을 말했을 때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는다."(행 2:11)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8절입니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8.11)
즉 성령께서 주신 방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각 나라의 언어를 말하게 하신 은사였습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성령께서 선교를 위해 주신 외국어를 말하는 은사였습니다.
지금처럼 알아 듣지도 못하게 쉘라 쉘라 하는 방언과는 너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는 이 방언의 은사가
잘못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방언은 의사 소통이 안될 때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방언 자체를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아 들을 사람도 없는 곳에서
외국어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가 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바울은 "알아들을 수 있는 다섯 마디 말이
알아듣지 못하는 수만 마디보다 낫다."고까지 말합니다.
더나가 다 방언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은사로 불려 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10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0-11)
성령의 침례를 받기 전에 모두가 방언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바울의 가르침을 한참 잘못 왜곡해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언을 비롯한 은사들이
자랑을 위해 주어지지 않고
믿음의 공동체를 더 잘 세우기 위함임을 잊지 않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나눌 네 번째 질문입니다
은사가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나 분열의 원인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서
목요일 교과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목요일 교과에는 예언의 은사가 나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방언보다 예언을 더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예언의 목적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절입니다.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예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을 세우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류
우리는 '예언'이라고 하면
미래를 맞히는 것부터 떠올립니다.
물론 성경에는 미래를 예언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예언의 은사에서 강조하는 것은
미래를 맞히는 능력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세우는 사역입니다.
사도행전 15장 32절을 보시면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언은
미래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권면하고 믿음을 굳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32절입니다.
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위로하며,
믿음을 굳게 하는 은사입니다.
은사를 주신 이유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돕고
공동체를 더 잘 세우기 위함인데
그런 의미에서 예언의 은사는 너무 소중한 은사입니다.
서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예언의 은사는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영적 은사들이
사도 시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재림교회는
마지막 시대에도
예언의 은사가 계속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몇가지 중요한 원칙도 함께 가르칩니다.
누군가 자신을 선지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참된 선지자를 분별하는 기준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예언의 은사로 인정되려면
첫 번째 성경의 선지자들과 일치되는 말씀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혹시 미래 일을 예언 하면 반듯이 성취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말만하면 안되고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 일상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네 번째 거짓 선지자는 그 열매로 알수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좋은 결과로 판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도 예언의 은사가 나타날 것을 믿는
재림교회는
이런 근거를 토대로
엘렌 G. 화잇의 사역 가운데
그 은사가 나타났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령의 충만한 은사가 주어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교과 공부시간입니다.
함께 나눌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의 은사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십니다. 최근 성경이나 엘렌 G. 화잇의 저서를 통해 하나님께 위로를 받거나 믿음이 더욱 굳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류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부족한 교회가 아니라 사랑이 부족한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혹시 은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교과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은사를 주신 목적은 경쟁이나 자랑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서로를 섬기며 하나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은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믿음임을 배웠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은사였고,
예언의 은사는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은사였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하여 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세워 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
그럼 저희는 7과 “사랑의 본 모습”이라는 주제로 성도들을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 안에서 평안하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