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중이다.
어르신들은 천사처럼 주무신다.
아픈 다리 덜 움직이라고 생각해 주시는 듯 하다.
그래도 자주 들여다 본다.
발로 찬 이불을 다독인다.
인기척에 잠을 깨시면 엄마처럼
토닥토닥 해 드린다.
어르신들의 칭찬과 사랑은 덤이다.
"우리 선생님은 전문가예요.
늘 사람을 기분좋게 해 주고 칭찬하는 기술자예요."
구순이 가까운 00 어르신은 표현의 달인이다.
'변호사'뺨친다.
좋은 말만 하시면 얼마나 좋으랴.
한 방을 쓰는 어르신께 욕도 하시고 가림막으로
가리기도 한다.
이동변기를 사용하신다.
앉으실 때 마다 습관적으로 넋두리를 하여
이젠 예사로 듣는다.
"나는 죽어야 해요. 왜 이렇게 정신없는지
몰라요. 그냥 캭 죽어버리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거짓임을 안다.
"어르신! 절대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저희들이 어르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어르신들과 대화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아 낸다.
어제부터 한의원에 다닌다.
수다상에 올렸더니 독자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아픈 부위를 말하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눈다.
치료비가 많이 들까봐 돈을 빌려 주겠다는
부처도 있다.
아파도 걱정이 없다.
이렇게 큰소리 치면서 당당하게 아픈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랑을 듬뿍 받고 산다는 포만감에 벌써 나은 듯 하다.
아프다는 수다상을 이른 아침에 배달하고는
종일 바쁘게 보냈다.
놀다보니 잊었다.
최고의 치료법은 잘 노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잊으면 되는 것이다.
남편은 진심으로 걱정을 해 준다.
새벽 운동을 다녀 온 내게 사랑 밥상을 차려 주며
한의원에 가서 야물게 치료하란다.
술술 잘 넘어가는 슴슴한 된장국이다.
어떻게 끓였는지 맛있다.
육수가 중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육수는 정성이다.
뭉근하게 끓이는 모습이 장인 같다.
올해는 된장 담그기에 도전해 볼까 하면서
시어머님께 묻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난 한 번도 된장 담그겠다는 생각을
해 본 역사가 없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겠다는 단순한 생각만 한다.
남편의 정성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이상하게 힘이 솟는다.
부부란 무엇으로 사는가.
이틀 째 한의원에 갔다.
절룩거리면서 걸어도 좋냐고 물었다.
당연히 걷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아프다고 걷지 않으면 체중이 불고
퇴화한다고 겁을 준다.
당연한 말인데도 의사의 입에서 나오면
믿음이 간다. 못 걷게 할까봐 은근슬쩍
걱정했는데 기우다.
삼총사와 뭉쳤다.
그냥 집밥을 먹이고 싶단다.
엄마 마음이다.
동화사 미나리,삼겹살,장조림,무생채,아기멸치볶음.
잘 익은 김장김치,직접 만든 쌈장 등.
다리 아픈 것도 잊게 만든 우정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난 친구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 삼겹살 맛 억수로 좋대이!''
식탁 위에 미니 가스렌지를 얹었다.
금방 구운 것을 먹이고 싶은 뜨거운 사랑이다.
친구는 선 채로 바지런히 삼겹살을 굽는다.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과 살짝 익은 미나리는
환상적인 궁합이다. 마치 잘 익은 삼총사의
우정처럼.
친구의 냉장고는 화수분이다.
쉴 새 없이 먹을거리를 내놓는다.
알딸딸 행복술에 취했다.
우린 아프지만 행복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박완서 시인의 시가 불쑥 새치기 한다.
[시를 읽는다 / 박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 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던
박완서 작가는 하늘나라에서도 시를 읽고
바지런히 쓰리라.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오는데 긴 액자와 마주쳤다.
보왕삼매론이다.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잘도 견디고 버텼다.
내겐 수다상과 독자와 책이 보약이다.
보왕삼매론까지 지렛대가 되어 주니
천군만마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로써 성인이 말씀하시되「병고로써 양약을 삼아라」하셨느니라.
◎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하셨느니라.
◎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어라」하셨느니라.
◎ 수행하는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아라」하셨느니라.
◎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하셨느니라.
◎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하셨느니라.
◎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園林)을 삼아라」하셨느니라.
◎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을 베푸는 것을 헌 신짝처럼 버려라」하셨느니라.
◎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하셨느니라.
◎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아라」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