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보건체계 이탈리아와 상이한 데 고민
이탈리아 정신보건시스템 알리고 싶어 책 집필
정신장애인 정치적 조직화와 투쟁 자체가 치유 과정
정신장애운동 진보적 사회운동과 결합해야
시민사회의 차별과 낙인에 대한 운동 펼쳐야
이탈리아는 정신보건센터가 정신병원 완벽 대체
이탈리아와 정신보건시스템 틀려도 정신병원 폐쇄라는 방향성 가져야
타시설에 부정적 인식만 있으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수용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도록 해야
현 정신의료 시스템이 아니다 싶으면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1988년 15살의 소년 문송면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중 수은중독으로 2년 뒤 사망한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그 사건 이후 원전레이온직업병 사건이 터졌다. 1982년에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그는 그때 학생 신분이었다.
스스로 ‘최루탄 세대’를 관통해 온 그는 그 사건들을 접하며 사회적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민주화운동까지는 아니더라고 자신이 발 딛은 자리에서
시대적 상황을 점검해야 했다.
그는 모순에 저항했고 원전직업병관리재단이 출범하는 데 자신의 작은 노력을 보탰다. 이후
이 재단 산하에 인권친화적 병원인 녹색병원이 설립되자 자신이 5년째 근무하던 국립중앙
의료원을 나와 녹색병원에 합류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젊은 시절의 치열했던 사유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냐고.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너무나 세상이 단단해서 나는 하나의 계란에 불과한 거 같았다고.
혹은 아팠지만 견뎌야 했던 청춘이었으며 나를 시대의 험준한 강물에 바칠 만큼 의지가
없었다고 어쩌면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과 의사가 된 인간 백재중(56)은 그같은 질문으로 시대를 관통해 왔다. 그가 믿은 건 세상은
변혁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자신의 치열한 사유가 이끄는 대로 삶을 밀어왔다. 그
내과의사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신장애 분야에 기념비적인 책을 세상에 상재했다. ‘자유가
치료다’. 이탈리아 정신보건 체계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정신과 의사 프랑코 바살리아
(1924~1980)의 일대기와 그의 정신장애운동의 실천적 사상과 해방 운동을 연옥의 고고학자처럼
하나씩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정신장애인들의 협동조합 이야기를 담은 영화 ‘위캔두댓’을 본 이후 그 고민이 이탈리아
정신장애 해방운동의 사유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는 국공립 정신병원들이 다수였던 이탈리아와
민간 정신병원이 다수인 한국의 정신의료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정신병원의 전면적
폐쇄라는 ‘방향성’만 국가 정책이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정신병원이 사라진 한국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사가정역 인근의 녹색병원으로 찾아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살리아를 안 게 이탈리아 협동조합을 소재로 한 ‘위캔두댓’을 통해서라고 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2012년에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졌잖아요. 그때 위캔두댓 영화가 우리나라
공동체상영방식으로 상영이 됐어요. 저희 병원 강당에서 처음 봤어요. 그때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사회에 협동조합이라는 게 붐처럼 관심이 늘 때에요.
처음 볼 때는 협동조합 영화구나라고 생각하고 봤어요. 그러고 나서 저희들이 우연한 계기로
출판을 하게 됐어요. 왜 만들게 됐냐면 일본에 사회적 공익성을 강조하는 민의련(전일본민주
의료기관연합회)이 있는데 그 연합회 50년 역사를 쓴 책이 있어요. 그걸 누군가가 번역을
했어요. 그런데 수익성이 없어서 일반 출판사에서 안 받아준 거죠. 굉장히 소중한 원고인데
버릴 수도 없고.
그럼 우리가 협동조합으로 출판사를 하자라고 해서 2014년에 건강미디어협동조합이라는
출판사를 내게 된 거죠. 그때 창립총회를 하면서 다시 위캔두댓이라는 영화를 틀었어요.
그때는 두 번째 본 건데 정신장애인들이 협동조합을 운영을 해 나가는 내용을 보면서 시각이
달라졌어요. 왜 이탈리아에서는 정신장애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면서까지 저렇게 해야
되는가. 사회적 배경이 뭔가. 여기에 관심이 갔어요.
그러고 나서 개인적 관심사로 이탈리아의 정신보건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는데 단편적으로만
있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게 없어요. 그러다가 우리나라 정신보건의 실태도 조사하다보니까
너무나 이탈리아와 상반되고 대조적이었어요. 결국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의 갈 방향이
이탈리아 쪽이다 (생각했죠). 현실 조건은 서로 안 맞죠.
문제는 방향이거든요. 방향을 아예 잡으면 길은 다르지만 가야된다는 생각, 저게 맞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바살리아가 이탈리아의 정신병원을 없애고 지금 40년이 지났는데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거기에 정신질환자들이 사고치고 다니는 거 봤냐. 이게 보여지는 거죠.
이탈리아의 사례를 그냥 보여주자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없는 자료를
찾아서 정리를 했어요.
2014년에 작업들을 하고 2~3년 자료 모아서 ‘자유가 치료다’라는 원고는 다 써놨어요. 그런데
이게 내가 하는 게 맞느냐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당사자가 아니면 전문가가 해 주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는데. 제가 인권의학연구소라는 데를 관여를 해요. 거기 정신과 선생님들도 계신
데 저의 자료를 선생님들하고도 회람을 했어요. (책이) 필요하겠다라는 의견들이 있었고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결국 냈어요(웃음). 이탈리아에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게 중요하겠다.
그 다음에 평가는 같이 토론을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바살리아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습니까.
“바살리아는 정신과 의사잖아요. 자기가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구금하는 게 결코 치료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체험한 사람이에요. 격리와 강제입원이 당사자에게는 트라우마가
되는데 그것을 해체하는 작업을 한 거잖아요. 그 분이 했던 건 정신장애인 운동이 당사자들도
중요하지만 사회운동하고 결합을 해요. 당시 이탈리아의 진보적인 사회운동하고 결합하면서
성과를 이뤄냈던 거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한 평가를 할 만하다고 보는 거죠.”
-이탈리아의 정신병원은 대부분 국공립이고 한국은 민간정신병원 중심이어서 이탈리아의
병원 폐쇄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적용이 안 되죠. 토대가 달라요. 그렇지만 방향이 중요하죠. 정신병원 없이도 사회는 돌아
가더라. 처음에는 책 제목을 ‘정신병원 없는 나라’로 쓸까 고민했어요. 그래야지 명확하잖아요.
정신병원 없이도 나름 굴러가는 게 가능하다면, 그런 나라가 지구상에 있고 40년 동안 존재했
다면 우리나라가 안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우리나라 민간 정신병원이 90%지만
정책적으로 국가가 그쪽 방향으로 키만 잡고 가면 맞다라는 거죠.”
-바살리아의 정신보건 개혁의 핵심 철학이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살리아가 정신병원이 해체되기 전에 지역 정신보건센터를 정신병원 있는 동네 곳곳에
만들어요. 만들면서 실험을 계속 합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가서 적응하는 훈련을 계속
해요. 바살리아법이 생기고 병원이 해체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을
해 왔었거든요. 그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바살리아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져요. 이게 미친 법이다라고 비난 받았죠.
정신병원을 대체하는 건 지역 인프라가 중요한데 그게 지역 정신보건센터잖아요. 그걸 전국에
이식하면서 성공적으로 갔다는 거죠.”
-1978년 법률 180호(바살리아법) 제정 이후 이탈리아의 모든 정신병원이 폐쇄되는 데
20년이 걸렸습니다. 왜 이렇게 더디게 진행된 겁니까.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역 인프라가 구축되는 기간, 그 다음에 환자나
전문가들이 그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진행하는 시간들이 (필요한 거였죠). 그리고 제도의
체계가 잡히는 시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사회적 인식. 사회가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편견을 안 갖게 하는 노력들을 하는 데도 시간이 걸려요.
지역에 센터만 짓는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정신장애인들은 우리랑 별 차이 없다는 인식을
갖도록 차별과 낙인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하거든요. 이렇게 해 오는 기간들이
많이 걸리는 거죠. 지리적으로 남부 지역은 좀 늦게 인프라가 닦이고 북부는 좀 빨리 되고.
또 자원의 불균형, 행정 조직 이런 여러 가지 과정들이 시간이 걸렸던 거죠.”
-바살리아가 말한 시설화병(institutionalization)는 현재 한국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서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 탈시설화의 이유는 차이가 있지만 탈시설이 되면서 지역의 정신보건센
터들이 정신병원들을 대체한다는 생각과 방향이 있었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나라는 1995년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지면서 정신보건센터가 설립이 되는데 어설프게 설립이 되잖아요.
그러면서 정신병원도 확대되고요.
지역 건강보건센터가 있는데 이 센터가 정신병원을 대체하면서 생겨난 게 아니고 병행하면서
서로 보완관계가 돼요. 대부분의 경우는 정신병원에 종속되거나 의존하는 시스템인 거죠.
정신보건센터들이 정신병원을 보완하는 관계가 돼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정신병원은 정신
병원대로 계속 진행을 해 나간 거죠. 지역 인프라가 아직 굉장히 부족하죠.”
-바살리아는 ‘의학적 이데올로기가 폭력적 법률에 기여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렇죠. 정신보건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게 있죠. 의학에서 명제가 주어지면 그거에 근거해서
법률이 생길 거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동성애 문제를 놓고 봤을 때 의학자들이 동성애는
질병이다, 치료해야 할 대상이다 이렇게 규정하면 사회제도나 시스템이나 법률 체계가 생길
거 아니에요. 그런데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고 취향이고 자연스럽다 해 버리면 질병이 아니
잖아요. 그럼 이걸 갖고 법률에서 왈가불가할 조건이 없어지는 거죠.”
-바살리아는 정신보건 개혁 당시 시대적 배경인 68혁명, 반정신의학운동, 미셸 푸코, 자율적
시민운동인 아우토노미아 운동 등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까. 현재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사회개혁 운동과 사상운동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살리아법이 나올 당시에 이탈리아 분위기는 68혁명, 신좌파의 등장, 그리고 여성운동,
환경운동, 동물권 운동, 장애운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운동들이 등장하거든요. 이탈리아에서
70년대 핵심 이슈로 여성운동이 등장하면서 낙태 문제가 제기되고 아우토노미아 운동이
나서면서 다양한 대중운동이 벌어지죠. 그때 장애인운동이 벌어지는데 장애인운동이 사회
운동하고 같이 갔어요. 이게 우리나라는 약간 동떨어져 있잖아요. 사회운동 진영에서 장애인
운동을 아직 안지 못해요.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당시에 같이 갔어요. 바살리아가 정신병원 원장할 때 정신병원들이
굉장히 큰 공간이에요. 68혁명 할 때 학생운동 그룹들을 초청하고 진보적인 정치운동
세력하고 캠페인도 같이 하고 어우러져서 보조를 맞췄어요. 바살리아로 상징되는 그룹들이
있어요.
민주정신의학회라고 하는 게 바살리아 혼자만이 아니라 진보적 그룹들이 사회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같이 진행해 나갑니다. 그래서 바살리아법이 1978년에 통과하죠. 이탈리아에서
1978년은 굉장히 기념비적인 해에요. 바살리아법이 통과됐고요. 그 다음에
NHS(National Health Service) 보건의료를 국가가 보장하는 영국식 개혁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NHI라고 해서 국가가 하는 보험형태인데 이 NHS는 세금으로 모든 걸 다 해결하는 거예요.
그리고 여성운동에서 낙태죄가 폐지되는 게 1978년이에요. 1978년은 이탈리아 사회운동이 정점에
도달한 시점이죠. 그러니까 같이 가야된다는 거죠.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이 굉장히 중요해요.
당사자운동이 다른 운동들과 결합을 하면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을 하고 그걸로 사회에 압력을
넣고 하면서 난국을 헤치고 나가야 된다는 거죠.”
-이탈리아의 지역정신보건센터는 1천387개소가 있습니다. 한국은 243개소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적 바살리아법이 나와도 효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바살리아법이라는 건 국공립정신병원을 문 닫는 거잖아요. 우리나라가 정신병원 문 닫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대로 번역해서 할 수는 없고 문제는 방향성이죠. 바살리
아는 (해체로) 갔는데 우리는 더 어렵단 말이에요.
법 하나 만든다고 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근본적인 거는 민간정신병원들의 내부 인권상황을
개선시키고 그 다음에 줄여나가야죠. 그리고 지역 정신보건센터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죠. 정신병원과 의존적이거나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이를 대체한다는 명확한 방향성과 목적을
가지고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거죠. 그러려면 지금의 센터 정도로는 안 되고 이거보다 몇
배 커져야죠.
이탈리아의 경우는 센터에서 진료하고 투약하고 응급입원까지 다 했어요. 가정방문도 하면서
커버하고 급성기 때 자의든 타의든 며칠 있다가 나올 수 있게끔 하고요. 만약에 거기서도 안 된다면
병원으로 전원을 시키는데 정신병원 수용이 아니라 대학병원 병동에 잠깐 가서 급성기만 넘기고
바로 사회로 복귀하는 순환구조를 갖춘다는 거죠. 그런 과정 속에서 지역사회로 내려가면 재활,
고용, 주거문제 들을 지역건강센터가 같이 해결해요. 이런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게
지역정신보건센터가 되는 거죠.”
-이탈리아 정신보건 개혁 운동은 바살리아를 비롯한 사상가와 일부 정치인, 급진적 전문가
들의 통합적 투쟁의 결과였습니다. 거기에 정신장애인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개혁의 객체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어떤 문제를 낳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고민하면서 봤어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에 대한 거를 찾아서 넣어보려고
했는데 찾지를 못했고요. 바살리아가 자기 병원에서 개혁 운동할 때 장애인들이 참여하면서 같이
진행하는 것들이 나오는데 구체적인 활동 기록들이 없어요. 못 찾았죠. 그걸 꼭 넣고 싶었는데
제가 못 찾아서 못 넣은 거지 없는 건 아닐 거예요. 그걸 누가 기회가 되면 꼭 찾아서 모자랐던
부분을 보완해줬으면 합니다.”
-한국 정신보건센터는 ‘1995년 체제’로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어떤 시스템으로
구축돼야 합니까.
“지금 사회가 컨센선스(동의)를 해야 되는 부분이 정신장애인 문제는 강제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탈리아 모델은 우리에게 강력한 방향성을 제시해 줍니다. 조건은
달라요. 그러면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이냐를 찾아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된다.
그게 대원칙이고 여기에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느냐 (의 문제죠).
합의하든 안 하든 이건 그렇게 가야 되는 게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거라면 그 대원칙
하에서 지역 정신보건센터를 강화하고 역할을 확대하는 투자를 하는 거죠. 지금보다 더
키우고 인력을 늘려서 지역 인프라를 구축하고 급성기 대책을 마련하고 그런 속에서 자연스럽게
민간정신병원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이를 축소시켜 나가야죠.”
-‘1995년 체제’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켜야 된다?
“현재의 우리 조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저항이
있겠지만 법률 하나가 통과가 되면 바살리아에 버금가는 혁명적인 내용이 담겨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우리나라 정신보건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시설과 입원 중심에 근간을 두고 나머지는 다 부속화돼 있는 게 핵심이죠. 일본이 그렇게 돼
있잖아요. 일본만 쫓아왔던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환자들이 시설로 들어가면 눈에 안 보이
잖아요. 어쩌다 사건 하나 나면 난리치고 다 시설로 들여보내라고 하죠.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면 일반인들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장애인당사자들을 죄인도 아닌데 어딘가에 갇혀
살아야 되는 상황인 거죠. 시설에서 나와야 돼요. 올바른 의미의 탈시설화가 돼야 하고 정책
방향도 이쪽으로 향해서 가야 돼요.”
-민간 정신병원 감소를 위해서는 어떤 정치적 기획들이 필요합니까.
“첫 번째는 강제입원율을 떨어뜨려야 되는 거고. 그리고 가족이나 사회적 인식이 입원만이
다가 아니고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입원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겠죠. 민간병원은 수익성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수요가 줄면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 전환하는 병원들이 생기죠. 정신병원을 해도 돈이 안 되더라.
지금은 돈이 되기 때문에 자꾸 확장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돈이 안 되게 되는 구조를 만들어
놓으면 경제적 원리에 따라 축소가 되고 다른 데로 전환하게 되죠. 문제는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개입이나 의지가 따라줘야 합니다. 민간 정신병원들에 무조건 손해 보면서 문
닫으라고 하면 저항이 심해지니까 다른 요양병원이나 노인병원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줘서 퇴각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낫겠죠.”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신병원 전면 폐쇄는 굉장히 급진적 이데올로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주장할 수는 있다고 봐요. 이탈리아가 이렇게 하는데 왜 못하냐. 예를 들어 우리가 최저임금
1만 원을 외치면 한 8천 원이 되는 것처럼 하나의 슬로건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당사자 입장
에서는 정신병원 폐지하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면 폐지는 너무 심하지 않느냐부터
해서 살살하자라는 얘기도 나오겠지만 중요한 건 당사자들이 왜 폐지해야 되는지를 명확히 설득할
필요가 있죠.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 때문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았고 병 보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더 힘들다.
그래서 이건 없애자. 당사자 입장에서는 민간이냐 공공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구조 자체가
이탈리아처럼 쉽지는 않죠. 그렇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어내면 가능하다고 봐요.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당사자운동이 전면적으로 이런 슬로건을 내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정신보건 체제의 기득권 세력은 정신의료시스템을 바꾸려하지 않을 겁니다.
바꾸더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겁니다. 정신장애계의 개혁 추진 세력이
사상적으로 집단적으로 너무 약한 상황입니다.
“기득권라고 했는데 당사자, 전문가를 포함해서 정책하는 사람들 다 얽혀있는 그 구조를
극복하려면 더 큰 힘이 있어야 되잖아요. 당사자들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운동과
결합해야 되고 실제 이탈리아는 그렇게 해서 성공했어요.
국민들이 갖고 있는 편견도 깨뜨려야 되고요. 언론에서 그런 기사도 있었어요. 조현병 환자가
병원에 있었는데 잠깐 나와서 마트에서 뭔가 소매치기를 했대요. 왜 안 가두고 돌아다니게
하냐는 둥(웃음). 이 언론과의 싸움들도 필요하죠. 이탈리아에 보면 바살리아법이 통과되기
직전에 국민투표를 해요. 만약에 국민투표가 통과가 되면 정권이 흔들릴 정도의 상황이 된
거에요. 정신보건 관련해서 국민투표죠. 바살리아 그룹들이 연대를 해서 국민투표 발의를
하고 서명운동을 해요. 그렇게 되니까 이게 국민투표까지 가면 정치적 타격이 우려가 돼서
급하게 만든 게 바살리아법이에요.
정신장애와 관련돼서 이탈리아는 사회당, 공산당도 강력한데 이런 정당들은 정신장애운동에
거리를 뒀어요. 가장 밀접하게 했던 데가 급진당이라고 있어요. 소수당인데 아주 진보적이죠.
당시로는 낯선 의제들인 낙태 문제와 장애인 문제를 (담론화) 하면서 정당 차원에서 결합을
해요. 서명운동 같이 하고 정치적인 힘을 쟁취를 한 거죠. 그래서 밀어붙인 거죠. 바살리아
혼자서 단독 플레이한 건 절대 아니란 말이에요. 바살리아를 중심으로 한 정신보건의 이런
그룹들이 있었고 이게 정치세력과 결합한 거죠.”
-한국의 정신요양시설 입소자 중 65%가 입소 10년 이상입니다. 6천500명이 그렇게 시설에
갇혀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정신요양원이 정신보건법 되면서 양성화된다고 했는데요. (시설에) 아주 오래 있다 보면 이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면 진짜 아무것도 못해요. 노숙자로 전락할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이
상황을 놔둬야 될 거냐.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죠.”
-지역사회가 정신장애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는데 한국 현실에서 너무 낭만적
으로 온정주의적 사유가 아닐까요.
“내가 볼 때는 병을 잘 이해를 못해서 그런 거 같아요. 잘 이해를 못하니까 정신장애인이면
폭력적이고 범죄적이라는 선입감(을 가지겠죠). 예를 들어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등장했더니
이슬람이고 여성이 어떻고 이러면서 선입관들이 허상을 만들고 이 허상에 따라서 반대를
하고 그러잖아요. 이 사람들은 재난과 전쟁을 피해서 온 선량한 시민인 거죠. 명확하게 이
사람들의 내용을 전달해주면 사람들은 대부분 수긍할 거라고 보는데요.
정신장애인에 대해 일반 시민이나 국민들이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정신장애인은
이런 병이고 범죄율도 낮고 급성기 때 괴롭지만 일상생활 하는데 거리감 없고 같이 해 나갈
수 있다라는 캠페인도 해야죠. 막연한 불안감에서 오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차별이 따라오고
낙인으로 연결되고 범죄시하는 거거든요.
한센병 환자들은 일상생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한센병이라는 선입관이 있으면
악수하는 것도 무서워서 피하게 되죠. 그 사람들이 소록도에 갇혀 지내다가 그 후 사회로
나와서 사회에 적응을 못하면서 자기들끼리 주거지를 형성해서 살아나가거든요. 일상생활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든 노인이든 약자, 소수자들이 섞여
사는데 우리들의 삶의 방식, 태도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직접 정신장애인들을 만나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직접 환자를 보지는 않는데 이 근처에 정신장애인 병원들이 있잖아요. 내과적인 문제가
생기면 와서 진료를 받고 입원도 해요. 정신병 환자랑 우울증 환자 다 오는데 굉장히 착해요
(웃음). 병원에 입원하면 진짜 얌전히 있다 가요. 사고 안 치고. 의료진도 선입관이 있기 때문에
간호사들도 조현병이라는 진단만으로 경계를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실제 보면 조용히 치료
받다가 가요. 그래서 별 문제 없이 와요. 그리고 사실 왜 계속 병원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문제는 당장 나갔을 때 누가 저 사람들을 돌보고 스스로 뭔가를 해 나갈 수 있겠느냐.
나가서 막막한 그런 상황인 거죠.”
-수용과 격리에서 벗어나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수용과 격리에서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최고 좋겠죠. 근데 정신장애인들이
가족과 갈등이 있는 경우가 많죠. 강제입원 사인은 가족들이 하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서
가족들과 더 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가정으로 못 돌아가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서 같이
모여서 살 수 있는 주거 문제가 필요하고요.
그 다음에 고용 문제, 질병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니까 이런 것들을 지역사회에서 마련해야죠.
지금 커뮤니티케어라는 걸 보건복지부에서 작년 1월에 발표했어요. 정부에서 커뮤니티케어
하려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설에 들어가는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도 있는데 원칙상
지역이나 재택에서의 생활이 삶의 질을 높인단 말이죠.
노인들도 거동 못하고 똥오줌 못 가리는 상황이 돼서 시설 가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본인이
거동할 수 있으면 집에서 있는 게 삶의 질이 훨씬 높아요. 그걸 가족이 못하면 사회가
서포트하는 거거든요. 그게 존엄성과 삶의 질을 유지하는 거고 비용이 더 싸요. 정신장애인
영역도 마찬가지에요. 수용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수용에 들어가는 비용을 차라리 정신
장애인들의 고용 문제, 주거 문제에 투자하면 훨씬 더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죠.”
-갑작스러운 탈원화는 정신장애인을 노숙화, 범죄화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것도 감내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제는 탈시설이 맞는데 부정적인 것만 얘기하다보면 못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래 왔다는
거죠. 왜냐하면 전문가들은 인권 문제도 있으니까 다 지역사회로 나가야 되는데 지금은 그럴
여건이 안 돼서 못 나간다. 그러면서 안 해요. 문제는 이런 저런 핑계 대다보면 아무것도 못한
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갈 데 없으면 노숙자가 되는데 노숙자 안 되게 만들고 나갈 준비를
시키라는 거죠.”
-이탈리아는 1904년 정신보건법령에서 최초 입원은 법원 판사가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입원 판단을 법원이 하도록 하자는 논의가 있습니다. 100년이 뒤쳐진 느낌이
듭니다.
“좀 다를 거예요. 그 당시 1904년에는 자의입원도 안 됐을 거예요. 그러니까 사법에 의한
입원만 됐다는 거죠. 그리고 입원되면 시민권이 박탈이 돼요. 이건 거의 범죄와 동일 수준
으로 보는 거예요. 정신질환자는 범죄자에 준한다 이런 의학적 이데올로기가 전제되기
때문에 판사가 땅땅땅 해서 강제수용(하죠). 교도소인 거예요. 내가 정신병원 넣어주세요
한다고 해서 넣어주는 게 아니고 판사가 땅땅땅 해야 간단 말이에요. 가는 순간 시민권이
박탈되고 거의 교도소에 준하는 거거든요.
그게 1968년도에 바뀌어요. 바잘리아의 이탈리아는 어떻게 하냐면 강제입원 10% 미만이
잖아요. 입원도 단기입원. 예를 들어 급성기 때 정신보건센터 직원들이 가서 이 사람 강제
입원 며칠 해야 되겠다 해서 입원을 시키고 짧은 기간 가능하고 그 이상 입원을 시키려면
사법이 개입을 하라는 거예요. 이건 뭐냐면 의료진들의 독단을 막기 위한 거예요. 하다못해
흉악한 연쇄 살인범도 일심, 이심, 삼심 거쳐서 하는데 장애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의사
하고 가족들이 ‘짬짜미’ 해갖고 10년, 20년씩 가느냐.
급성기 때는 의학적인 판단이 되지만 장기화될 때는 사법이 개입해서 정말로 필요한지를
제3자가 판단해서 객관적인 공권력이 개입하는 게 필요해요. 우리나라는 그런 개입조차
없이 10년, 20년 막 가는 거예요. 이탈리아를 비롯한 선진국의 사법은 장애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개입하는 거거든요. 가족들이나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일방적인 자의적인
강제수용과 구금을 막기 위한 차원이 커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급하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시설과 인력이 전면적으로 지금의 서너 배는 돼야죠. 한 센터 단위당 50명. 이탈리아는 30~
40명 될 거예요. 시설 키우고 24시간 운용되게 하고 투약도 가능하고 간단한 쉼터도 만들어
야죠. 급성기 때 입원실 비슷한 개념으로 만들고 가정 방문하고 응급대응팀 운영하고
그러면서 정신병원이 아니라 지역의 일반병원과 연계해서 응급상황에서 기동 나가는 팀들도
꾸리고요.
유럽 같은 경우에는 종합병원에 응급정신대응팀이 있어요. 그래서 정신장애인 문제가
생기면 출동을 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상담을 하고 이 사람이 정말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강제로 정신병원이 아니라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병동으로 가요. 치료하고
며칠 있다가 퇴원시키든지 장기입원이 필요하다면 사법적 판단을 해서 인권 차원에서 개입을
하는 거죠.”
-정신장애인은 어떤 기획을 갖고 정치적 행동을 해야 합니까
“바살리아 책 쓰면서 제가 좀 찜찜했던 게 이게 전문가 운동의 일환이 되고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운동에 대한 내용들이 좀 빠졌어요. 지금 우리나라의 전문가들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노력을 하는 정신보건 하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집단적으로 하는 건 없잖아요.
이탈리아의 민주정신의학회 같은 게 안 생기고 혼자 해 나가기에는 촉박하고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단 말이에요.
나는 내과 의사이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하고는 좀 다르다(웃음). 그래서 내가 책을 쓸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정신과 의사들이 저 책을 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진짜 그 사회에서
왕따 당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어요. 어찌 보면 내 전공이 아닌 다른 전공이니까
그냥 써서 낼 수도 있었던 건가 (생각하죠). 아니면 정신과 의사 중에 쓸 수 있는 사람 있었을
거라 봐요. 안 나왔기 때문에 내가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쓴 거고요.
지금 우리나라 전문가들이 바살리아 같은 그룹들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당사자
들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사자들이 자기주장을 계속 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연대 그룹들을 자꾸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사회운동 진영에 가서 호소하고. 왜냐
하면 사회운동 하시는 분들도 어떤 편견을 갖고 있을 수가 있어요. 편견보다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정신장애인 운동이 사회의 진보와 사회발전의 중요한 영역이라는 걸
인식시켜서 연대할 수 있는 그룹을 찾고 같이 해 나가는 거죠. 성명서를 하나 발표하더라도
같이 해 주면 힘이 되고 세력화되는 거죠. 저쪽이 막강한데 이쪽도 정치적 힘을 키워야죠.
나중에는 이게 정치적 힘 대결이 될 수 있거든요.”
-왜 자유가 치료라 생각하십니까.
“바살리아가 옛날에 감옥에 갇힌 적이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가 그런 구금에 대한 경험을 했고
자기가 병원을 하면서 전문가니까 구금과 격리가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라는 걸 깨달은 거
같아요. 그래서 구금이 치료가 아니고 병세를 악화시킨다는 거예요. 절대 도움이 안 된다.
그냥 풀어놓는 게 치료다라고 본인이 체험한 거 같아요. 이건 의학적으로 증명할 문제는 아니고
실제 본인이 느꼈던 거 같아요. 사진에 보면 병원 벽에도 자유가 치료다라고 나오잖아요.”
-선생님도 자유가 치료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제가 호흡기 의사거든요. 천식이라는 병이 있는데 그 병은 만성병이고 고질병이에요.
빨리 치료하면 좋아져요. 그리고 잘 지내다가 어떨 때 확 악화가 돼요. 기복이 있단 말이에요.
정신병도 마찬가지잖아요. 빨리 치료하면 좋죠. 잘 지내다가 급성기 때 적시에 부담 없이
편견 없이 치료만 하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면 돼요. 치료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고.
그런데 여기에 편견이 들어가고 차별이 들어가고 딱지가 붙고 조금만 하면 난리가 나고
이러니까 당사자들은 겁이 나고 피하게 되고 도망가고 말아요. 그럼 치료가 늦어지고 더
악화되고. 그러면 강제력이 동원되고 구금해야 되고 당사자들을 또 저항하고 이러면서
제대로 된 치료가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트라우마를
받는 거고 가족간의 갈등이 커지는 거죠. 치료 과정 자체가 왜곡된 거죠.”
-‘자유가 치료다’를 쓰기 이전과 이후에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저는 신체를 다루는 의사잖아요. 그래서 신체적인 환자를 주로 보고 정신장애인들은
어쩌다 보고 이런 정도였는데 이탈리아와 우리나라 상황을 보다보니까 이건 해도 너무 하고
정말 엉뚱한 산으로 가고 있다 싶었어요. 누구도 노력하지 않고 있고 사회도 무관심하고 이거는
뭔가 달라져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느꼈던 거죠.”
-정신과를 선택할 걸 하는 후회는 없었습니까.
“(웃음) 모르겠습니다. 지금 하라 그러면 어떨지.”
-비정신과의사가 정신보건 개혁 운동의 사상가를 한국에 소개했습니다. 다른 정신과
의사들이 질투할 법도 합니다.
“책 서문을 쓰신 분이 정신과 의사에요. 인권의학연구소에 같이 계시는 이영문 이사님이고
저도 이사에요. 이영문 선생님은 그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데 원고를 미리 보여
줬어요. 처음에는 인권의학연구소 이름으로 낼까 생각도 했었는데 글이라는 게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잘 안 돼요. 그래서 혼자 나중에 내겠다고 해서 이영문 선생님 추천사를 받은 거거
든요.
모르겠어요. 정신과 선생님들 중에서도 문제의식이 있는 분들이 많다고 봐요. 이미 구축된
거대한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의 무기력을 느낄 당사자들도 많고
전문가들도 많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썼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그 다음은 정신과 의사들의 숙제에요. 이런 문제가 있는 거를 오죽하면 내과 의사가 쓰냐,
당신네들이 써야 되는 거 아니냐. 당신네들이 써야 되는데 당신네들이 안 쓰고 있으니까
내가 쓴다라는 하나의 메시지일 수도 있죠. 결국 고민하다 쓴 게 그거죠.
그 다음에는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당신네들이 인권을 생각하고 (지금의 시스템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바꾸기 위해 노력하라라는 거죠. 언제까지 지금의 문제가 많은 시스템에 매달릴 거냐.
인프라가 안 돼 있어 정신장애인이 지금 나가면 노숙인이 될 거라고 얘기하면서 그럼 그걸 위한 노력
은 왜 안 하느냐. 왜 기존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을 안 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만 하느냐. 바꾸라는
게 저의 입장에서는 메시지인 거죠. 비전문가가 건방지게 떠든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겠죠. 어쩔 수 없죠. 나는 내 나름의 제3자의 입장에서 얘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정신장애인들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과정이 치유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굉장히 사회적으로 위축되잖아요. 질병
때문에 그런 부분도 있을 테고 이차적으로 약으로 인한 것도 있을 테고. 또 사회적 시각, 차별,
편견, 낙인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는 게 있을 겁니다.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과정 자체가
치료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투쟁 자체가 치유 과정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를 함으로써 정당한 것을 찾아나가는 거잖아요. 장애인들끼리 연대를
구축하고 언론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면 쫓아가서 뭐라 하고 국회의원이 뭐라고 그러면 가서
얘기하고 아니라는 걸 주장하면 이 사람들이 정말로 아닌가 (생각하겠죠). 가만히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하겠죠. 내가 한 마디 했는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내 말이 맞는가
보다 생각하겠죠. 그런데 한 마디 했더니 문제제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럼 내가 잘못했나 보다.
찾아보고 공부를 하겠죠.
편견과 차별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꾸 얘기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끔 해야죠. 그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트라우마를 해소해 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생태계를 지역사회 병원 간 연대와 협동이 가능한 의료협동조합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의료병원의 생태계가 있는데 정신보건만큼이나 의료에는 재정, 돈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고
병원 시스템이 있죠. 병원시스템의 문제는 우리나라가 정신병원뿐만 아니라 국공립 병원
자체가 없어요. 공공병원이 6~7%밖에 안 돼요. 신체적 병도 공공병원이 아주 작고 민간병원이
크죠. 그리고 전달체계가 없어요.
내가 A병원 가려면 그냥 접수하면 바로 가요. 그러다보니 대형병원인 빅 5에만 몰려요.
교통이 좋아지다 보니까 대구, 부산에서 KTX 타고 와서 진료보고 돌아가요. 대형병원으로만
몰리고 지역병원은 공동화돼죠. 그게 아니라는 거죠. 공공병원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되고 정신병원도 공공병원들이 조금 더 낫단 말이에요. 그래서 의료도 공공병원이 더
확대돼야 되고 민간에서도 공공성을 띈 병원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돼요.
지금 우리나라가 영리병원은 없고 비영리병원들만 있는데 다 개인병원들이에요. 그래서
저희들이 민간병원 중에서 두 가지 과제, 하나는 공공병원을 많이 짓자, 또 하나는 민간병원이
너무 비대했는데 여기에 공공성을 띈 공익적인 병원들이 모이자. 일본에서는 민의련이라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라는 게 있어요. 작년에 출범했는데요.
그래서 의료협동조합 방식으로 만든 병원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사단법인, 재단법인들이
모여서 뭔가를 해 보려고 하고 있어요. 이제 시작단계입니다.”
-정신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죽지 마십시오(웃음). 위축되지 마시고 정신장애인도 당당하게 이 사회의 한 사람이라는
걸 주장할 필요가 있어요.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얘기를 해야 되고 많은 사람들한테 현실들을
알려서 같이 할 수 있는 우군들을 조직화할 필요가 있어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 되잖아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조직적으로 해 나가는 거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비관하지 말기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인터뷰 공유 감사합니다.
위캔두댓,‘자유가 치료다’ 바살리아법 이탈리아 병원없는 곳 센터가 대신하는 곳 가고파라
탈원화 탈시설로 독립, 자기결정권 주거권 노동권으로 사는게 소원.
국공립병원 많아지고 의료비 싸지기를. 좋은 약 먹었으면.
조현인 정치적 조직화와 시위투쟁이 담론형성, 치유이며 교육이다
조현운동 진보적 사회운동과 결합해 개혁 전진.
차별과 낙인에 대한 운동 펼쳐 코어커뮤니티 케어 가자
이탈리아정신보건센터가 정신병원 대체 정신병원 폐쇄라는 방향성 전진
부정적 인식버리고 심리학 사회복지학 장애학 도움으로 아젠다 바꿔야
감금수용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어울려살며 일하게.
정신의료 시스템만으론 악순환 반복. 구조악철폐!
감사드립니다! 글보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