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9번째 편지 - 전업화가로 출발하는 딸 조윤아를 응원하며
지난 10월 1일 목요일 오후 가족과 함께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을 찾았습니다. 평일에 가족들과 같이 이곳을 방문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2시, 영릉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에서 열린 제9회 전국 세종 한글디자인 공모전 시상식에서 딸아이가 특선과 입선 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딸은 오랜 기간 다른 길을 걸어오다가 얼마 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몇 달 만에 이룬 첫 결실이었기에 그 시간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그 결심이 얼마나 무거웠을지를 알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더없이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시상식에 참석한 후 전시장도 둘러보았습니다. 전시된 모든 작품이 한글을 주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딸의 수상작은 두 점이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한글 초성을 아름답게 직조해 훈민정음을 하나의 화면으로 옮겨 놓은 시도였습니다. 작품 아래 놓인 힌트처럼, 14개의 한글 자음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 딸아이만의 독창적인 언어였습니다.
미술 전문가가 아닌 제가 보기에도 이 작품의 매력은 분명했습니다. 초성만으로 기하학과 색채의 체계를 세워 '읽기'와 '보기'를 하나로 겹쳐낸 점, 훈민정음의 본질인 분해와 조합을 현대의 시각 언어로 다시 살려낸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해독의 놀이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미적 경험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해독이 지나치게 어렵다면 관객은 금세 좌절하고 작가의 의도는 공허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작품 곁에는 <해독 키>가 있습니다. 관객들은 난독과 해독을 오가며, 마침내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특별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의도한 바입니다.
또 한 작품은 한글을 이용해 세종대왕을 그린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세종대왕의 온화한 얼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모든 선과 면이 글자들로 촘촘히 직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영어 알파벳을 활용한 작품에서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으로는 Dan Duffy라는 작가의 Art of Words 작업입니다. 그는 수백, 수천 개의 글자를 손으로 겹쳐 인물과 장소를 그려내는 워드아트 작가로, 오바마 대통령의 2009년 1차 취임사 전문으로 그린 초상화가 유명합니다.
한글 타입 디자이너 윤민구는 한글 디자인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글은 더 젊은 문자이기 때문에 타입 디자인의 역사가 짧습니다. 그래서 한글 폰트의 종류가 많지 않습니다. 이는 동시에 한글 폰트 디자인의 방향이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한글 폰트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과 실험, 그리고 아름다움에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최근 한글날을 맞아 블랙핑크 제니가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만든 신규 한글 글꼴 ‘젠 세리프’(ZEN SERIF)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수년 전부터 현대카드, 배달의 민족, 네이버 같은 기업들도 자신들만의 서체를 만들어 대중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제 딸도 이제 한글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 막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딸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레트리즘(Lettrism)'이라는 다소 낯선 예술 사조와 마주했습니다. 1945년 파리에서 루마니아 태생의 시인이자 이론가 이시도르 이수(Isidore Isou)가 시작한 이 운동은 문자를 언어의 틀에서 해방시켜 그 자체로 하나의 빛나는 예술로 바라보려는 시도였습니다.
레트리즘 예술가들은 문자를 그래픽적, 음성적 형태로 탐구하며 언어적 소통의 경계를 뛰어넘는 작품을 창조합니다. 이시도르 이수의 작품을 보면 레트리즘이 지향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레트리즘은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여러 예술 운동에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예술의 기반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함으로써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 영역을 넓히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제 딸은 이시도르 이수의 한국판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자의 아름다움 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오롯이 담아내는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니까요.
2019년 2월 18일 "내가 미술공부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월요편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현대미술의 중요한 사조인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는 이성적 소통이 아닌 감성적 소통을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을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 절박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표현(expression)이었습니다. 관객은 화가가 표현하려 한 감정과 소통할 뿐입니다."
저는 현대미술 감상을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훈련이라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워낙 난해하여 화가의 감정을 읽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늘 ‘힌트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곤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딸의 작품은 난해함 속에 숨지 않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입니다. 초성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작가의 글이 한눈에 읽히지는 않습니다. 집중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여러 번 바라보는 사이, 초성이 어느새 눈에 스며듭니다. 힌트가 곁에 있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자음들이 색과 형태로 다채롭게 디자인되어 있어 화가의 감정이 은은하게 전해집니다. 딸아이의 작품 몇 점을 보시면 제 말이 금방 이해되실 것입니다.
오늘 월요편지는 미술 공부를 빙자하여 딸바보의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인생의 아픔을 작품 활동으로 조용히 극복해 나가는 딸아이를 응원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5.10.13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