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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고구려
▲ 일본은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승리하며 한산도를 점령했다. 근세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에서는 이 해전을 '가라시마 해전'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이 거둔 최대 승리로 찬양한다. 사진은 조선의 거북선과 일본 수군의 전투 장면. 학고재 제공 |
2012년 임진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 된 해. 임진왜란은 조선, 명, 일본의 3국이 총력전을 벌이며 동북아 질서를 뒤흔든 근세 최대의 국제전이었다. 일본에선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이후 일어난 내분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새 정권이 들어섰다. 명나라 역시 과도한 원정 비용 탓에 재정난을 겪으며 50여 년 뒤 멸망했다. 조선도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고 경작지 3분의 2가 파괴됐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일본의 침략으로 규정한다. 반면 근세 일본인들은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들이 본 임진왜란'은 17~19세기 일본인이 이야기해온 임진왜란을 전한다. 김시덕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는 에도 시대 대중적 문헌을 통해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어떻게 정당화했고, 근대 일본인들이 어떻게 임진왜란을 기억하는지를 보여준다.
문헌들은 에도 시대 200여 년간 베스트셀러였던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전기물'도요토미 히데요시보',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18세기 말~19세기 초 유행했던 장편 역사소설 '에혼 다이코기'등이다. 명나라의 '양조평양록'과 류성룡의 '징비록' 등도 인용했다.
저자는 왜 역사서가 아닌 전기와 소설에 주목했을까. 에도 시대 일본인들의 임진왜란을 비롯한 역사관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고문서가 아니라 대중적 문헌이었다. 전근대에는 고문서 같은 1차 자료가 공공연히 유포되지 않았다. 에도 시대 다이묘들은 고문서, 고문헌이 번 바깥으로 공개되는 일을 엄격히 제한했다.
"예부터 중화는 우리나라를 여러 번 침략했으나 우리나라가 외국을 정벌한 것은 진구코고(신공황후)가 서쪽 삼한을 정벌한 이래 천 년 동안 없었다.…슬픔이 나의 목숨을 갉아먹을 듯하구나. 대장부가 어찌 백 년 인생을 이처럼 헛되이 끝낼 수 있으랴!…명나라를 치기 전에 조선을 정벌할 것이다. 조선이 나의 명령에 따른다면 일본군의 선봉에 서게 해 명나라로 나가리라. 만약 나의 명에 따르지 않는다면 조선을 섬멸한 뒤에 명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뭐 어렵겠는가?"
에도 막부를 연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비서이자 어용학자인 하야시 라잔이 쓴 전기 '도요토미 히데요시보'에 나오는 내용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정치적, 심리적 동기가 나온다. 그는 늘그막에 얻은 외동아들의 요절이 가져온 슬픔을 잊고, 명나라 황제가 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또 명나라 침략군의 선봉에 서라는 자신의 명령을 조선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징벌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이처럼 전근대 일본인들의 기억 속에는 한국, 중국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한 피해의식과 저항의식이 깊숙이 존재한다. 일본인의 이러한 의식을 만들어낸 계기가 13세기 원과 고려의 일본 침공이었다. 하야시 라잔은 일본이 명과 조선으로부터 여러 차례 침략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들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정당한 전쟁, 즉 '정벌'이라고 본 것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쳐 대동아공영권에 이르는 제국주의 일본의 맹아적 형태를 보여준다.
17세기 후반까지 나온 명나라, 일본 문헌에는 임진왜란에 대한 자국 중심적 시각이 농후하다. 국왕 선조의 음란함과 류성룡, 이덕형 등 간신의 발호로 조선이 일본을 막지 못했고 명나라 군대가 조선을 구해준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1593년 권율의 행주대첩에 대해서도 왜곡된 시각을 드러낸다. '다이코기'를 보면 첫날에는 명군이 우세했지만 둘째 날에는 명군이 일본군을 두려워해서 철수했다고 서술한다. 조선군이 주체가 돼 승리한 행주대첩을 명군으로 기록하고 이들이 도망갔다고 함으로써 조선 측의 승리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반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들에게 가장 잔인한 장군으로 회자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인자하면서도 창으로 호랑이를 잡는 용맹한 장수로 묘사된다. 가토 기요마사를 신으로 숭앙하면 병이 낫는다는 영험담까지 생겨난다.
그러나 징비록 일본판인 '조선징비록'이 간행되고 이를 일본어로 번역한 '조선태평기'와 '조선군기대전'이 간행되면서 이런 상황은 반전된다. 유극량, 송상현, 류성룡, 신각, 곽준, 곽재우 등의 영웅적 활약이 대서특필된다. 또 '조선군기대전'에서 이순신을 다루며 근세 일본 최초로 '영웅'이라 부른다. 이순신을 영웅시한 데도 '꼼수'가 있었다. 이순신과 같은 조선 영웅을 이긴 일본 장군은 더 위대하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세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군에 등장하는 조선 영웅들도 일본 영웅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당혹감과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저자는 "임진왜란에 대해 한국의 관점 말고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전쟁으로부터 다각적으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시덕 지음/학고재/240쪽/1만 5천 원.
첫댓글 쪽바리 새끼들이야 역사를 모두 하렘으로 만드는상상력을 가진 뛰어난 녀석들이니 뭐든 왜곡 못하겟냐
징비록 읽어보니깐 정말 참혹했더만.. 인육을 먹었다고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