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태종 과 위징 -
당나라 고조 신하이던 위징은 태자인 장남 이건성의 시종관 으로 있을 당시
차남 이세민을 제거 해야만이 왕이 될수있다 이건성 에게 수차례 건의하였으나 이건성은 그말을 듣지않았다,
그리할때 이세민이 먼저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형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을 제거하고 황제에 즉위한다 ,
이세민이 체포되어온 위징에게 묻는다 그대는 왜 형제사이를 이간시켜며 나를 죽이려 했느냐 ?
위징이 답한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섬기는 주인이 있습니다, 저는 태자인 이건성을 섬겼을 뿐입니다,
만일 태자가 제말을 들었더라면 오늘의 화는 초래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이건성 에게 충성한것이 무슨 잘못 입니까 ?
관중도 자기 주인을 위해 제환공을 죽이려 활로 쏘았지만 화살이 제환공의 혁대에 맞아 제환공이 죽지않고 살아 났으며
오히려 제환공은 관중을 제상으로 삼아 천하 패권을 잡았으며 오히려 중부라고 높혀 부르며 국정을 일임한 사실을 모르십니까 ?
그말에 좌우 대신들은 위징이 죽을말을 했다 생각하고 손에 땀을쥐며 긴장했다 ,
그러나 당태종은 솔직한 대답을 하는 위징 높이 평가하고 , 웃으며 간의대부로 임명하고 훗날 재상으로 등용했다 ,
위징은 언제나 당태종과 맞서며 직간을 서슴치 않았다 ,
한번은 당태종이 18세가 안되어도 몸이 건장하면 징집하라는 징집조서를 내렸다
위징은 조서를 받았으나 태종에 맞서서 반대하며 조서를 하달하지 않았다 ,
당태종이 노기충천하여 위징을 꾸짖는다,
짐의 조서를 막아서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
신은 폐하의 조서에 찬성할수 없습니다, 군대의 강하고 약한것은 군사의 숫자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떻게 훈련하고 어떻게 지휘하느냐 에 크게 좌우됩니다,
지금 어린남자를 모두 징집한다면 지금 당장은 군사의 수가 많아 좋을수 있으나
나중에는 징집할 남자가 모두 없어지기에 이러한 조서는 찬성할수 없습니다, 위징은 끝까지 맞서 간하여 철회시켰다,
또 군주가 널리 신하의 의견을 들으면 명군이 되고 일부 소수 사람들의 말만 믿으면 암군이된다 직간하였고 ,
조세와 부역을 가볍게 하여야 나라가 부강해 지며 가혹한 형벌을 줄여야 하고
상벌을 내릴때는 소원한 사람과 측근과의 차이를 두지말아야 한다고 간언 하기도 하였다 ,
그는 죽는 순간까지 당태종 에게 간한다 ,
지금은 나라가 창성하고 부강 하옵지만
이런 태평세월 일수록 위태로울 때를 대비해야 한다 ( 거안 사위란 말의 유래이다 ) 라고 나라걱정만 하며 세상을 떠났다,
당태종 은 나의 잘 잘못을 볼수있는 거울을 잃어버렸다 고 말하며 비통해 하였다 ,
위징의 직간과 조언을 잘 받아들인 태종 이세민의 당나라는 태평성대를 누렸으며 이 시기를 정관의 치 라고 부른다 ,
위징과 장손황후 또 장소무기의 충언과 간언을 잘 받아들이고 이를 실천한 당태종을
중국 최고의 황제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 |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히 즐독 하고 갑니다!
다녀가주셔서 고맙습니다 맛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