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女子에게는 미안하지만… 당나귀는 인류의 구세주"
#1992년 대선(大選)"그분이 민자당 대통령 후보 때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실수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여러 번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만…,'제가 정몽준 생가를…'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발음을 못 하면서 본인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연설문에 이중모음을 못 쓰게 했는데 매번 귀신이 곡할 상황이 벌어졌다. '분명히'가 '확실히'로 바뀌더니 마침내 '학실히'로 변하는 것이었다.
#2000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그는 '아이비(Ivy)리그 입학 티켓'으로 통했다. 하루에 영어 단어 500개를 암기시키고 100일이면 토익, 토플 점수를 획기적으로 올려줬다. 매년 4월과 11월 그는 미국 보스턴과 뉴욕으로 불려갔다. SAT 특강 때문이었다.
그가 차린 '하버드 초기 유학'학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한 해 4억원을 벌었다. 그랬던 이 학원이 2005년 이유없이 문을 닫았다. 사라진 영어의 신(神)을 두고 '당나귀에 미쳐 실성(失性)했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2009년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신팔리
경기도 포천을 샅샅이 뒤진 끝에 '당나귀에 미친 사나이'를 찾았다. 박관희(朴觀喜·56)는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신팔리 군용(軍用)도로 끝 산골짜기에 있었다. 척 보는 순간 "정상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박관희는 부(富)를 버렸고 가족도 버렸다. 당나귀에 미친 그를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당나귀 두 마리와 얼굴을 맞댄 그의 얼굴이 마치 당나귀처럼 보인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그는 "저기서 얘기하자"며 텐트로 안내했다. 인터뷰 장소라 했지만 말벌들의 왕국처럼 보였다. 그는 사무실과 침실이라는 곳도 보여줬다. 기자의 눈엔 영락없는 넝마 하치장(荷置場)이었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그 괴상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게 딱 한 가지 있기는 했다. 어디를 가나 토플 문제를 복사한 두툼한 A4 용지 묶음이 널려 있었다. 얼기설기 엮어놓은 높이 2m, 길이 10m가량의 책장에도 영문 원서(原書)가 가득했다.
■빈(貧)과 부(富)
박관희는 충북 제천에서 4형제의 둘째로 태어났다. 그에 따르면 아버지는 무면허(無免許) 치과의사, 즉 '돌팔이'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바람처럼 살았다. 가정은 바람을 가둘 수 없다. 어린 시절 그는 가난과 벗했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일했다. 돼지를 4년 키웠다. 아이스케키 장사를 4년 했다. 신문배달을 3년 했다. 시골 냇가에서 자갈도 골라 팔았다. 제천고를 나와 3수(修) 끝에 서강대에 진학할 때까지 그런 생활이 계속됐다.
삶에 순풍(順風)이 불어왔다. 유네스코 한국위에 다니다 방송위원회로 옮겨 부장을 했다. 케이블TV협회에서 기획관리국장, 조사연구실장, 국제협력실장 같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안 다녀본 외국이 없을 정도였다.
미국유학도 다녀왔다. 웨인주립대(Wayne State Univ.)에서 스피치(Speech)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연설문작성자조합(Speech writer's guild) 정회원도 됐다. 이런 자격을 가진 이는 국내에서 그가 유일하다.
방송을 알고, 영어 잘하고, 연설문까지 쓰는 그를 대권(大權)에 뜻 둔 이들이 놔둘 리 없었다. 정주영(鄭周永)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최근에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 최시중(崔時仲) 방송위원장이 그를 찾았다.
1994년 북한 김일성(金日成) 사망소식이 전해졌을 때다. 박관희는 감격에 겨워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옆에 있던 여성에게 물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무슨 생각이 드세요?" 그런데 말하고 보니 그 여성이 낯이 익었다.
정종식 사장 시절 연합뉴스 사무실에서 봤던 여성이었다. 둘은 사귀었고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중학교 2학년 딸이 있다. 운명(運命)의 심술이 없었다면 박관희는 지금 평온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스트레스
대화는 공포의 텐트 안에서 시작됐다. 박관희는 "다방 커피 어떠냐?"고 묻더니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진창에 놓인 항아리로 갔다. 국자로 정체불명의 검은 색 액체를 뜨더니 "솔잎을 발효시킨 천연 보약"이라며 내밀었다.
액체의 정체는 사람이 아닌 말벌들의 보약임이 분명했다. 마지못해 딱 한 모금 입에 댔을 뿐인데 흥분한 말벌들은 그 후 3시간 동안 입술 주변에서 왱왱댔다. 왼손은 파리채 역할을 하고 오른손은 필기하는 대화였다.
―유명인들의 연설문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습니까.
"방송위원회에 근무할 때 공보처 장관이 오인환씨였어요. 그분의 연설문을 쓰던 게 퇴임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저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정치인들과 만나게 된 거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국민당 후보로 대선에 나섰을 때도 함께 일했습니까?
"그분의 연설문은 10번 정도 썼을 겁니다. '반값 아파트 공약'이 반쯤은 제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가장 많이 같이 일한 분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면서요.
"30회 정도 썼습니다. 대통령 취임사 가운데 '사회주의 모자를 벗어버리고…'라는 부분도 제 작품입니다. 그분은 연설문 쓰는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되지 않았어요. 어찌 보면 낭만적인 분이라고 할까,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른다고나 할까, 이 시대에 볼 수 있는 마지막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함께 일했습니까?
"5번 정도 연설문을 썼는데 DJ는 뭐든지 자기가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분들은 연설문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나는 며칠 밤을 새우면서 쓰는데 '그게 다 그거 아니냐'는 식이었습니다. 퍼블릭 스피킹(Public speaking)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지요."
―청와대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지요.
"권노갑(權魯甲) 전 의원으로부터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3급으로 오라는데 그러면 모든 걸 제가 다 해야 하거든요. 미국에선 연설문을 쓸 때 보통 13~15명의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각 분야의 최고 지식을 망라하는 힘든 작업입니다. 혼자 다할 수는 없지요. 연봉(4000만원)도 낮았고요."
―그래도 당나귀 씻기는 것보다 연설문을 쓰는 게 낫지 않은가요?
"남들은 이해를 못 하지만 스트레스가 말도 못했습니다. 연설문 쓸 때도 그렇고 영어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영어 전문가도 영어에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다 알아듣고 다 쓸 수는 있지요. 그렇지만 제가 1등을 할 수는 없잖아요. 죽을 때까지 해도 그럴 겁니다. 당나귀를 키우면 죽는 순간까지 일 할 수 있잖아요. 세계최고도 될 수 있고요. 문 기자님, 혹시 아세요? 성경(聖經)에만 당나귀가 300번 정도 등장합니다.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번개를 맞을 때 다른 동물은 다 떠났지만 당나귀만은 남아 있었어요. 십자가가 떨어지면서 당나귀 등에 십자가 무늬를 새긴 겁니다. 당나귀는 에쿠스과(科)에 속하는데 eq가 들어가는 단어는 균형을…."
―아, 잠깐. 그런데 가족들이 지금 이렇게 사는 걸 이해해주던가요?.
"아내는 2003년 9월에 집을 나갔어요. 아이와 함께요. 이혼을 안 했으니 법적으로는 아직 부부이긴 하지요. 지금 강남 어디선가 순댓국밥집을 한다더군요. 가보지는 않았지만요. 저는 그 사람을 이해해요. 돈은 안 가져다주고 있는 돈마저 모조리 당나귀에게 쏟아부었으니까요. 딸 아이는 길거리에서 가끔 만나요. 영어를 가르쳐주러요. 딸은 거리에서 영어 가르쳐주는 게 창피하다고 했어요. 그것도 1년 반 전 이야기지만."
―부모 형제들은요.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노모(老母)가 참 안타까워하시죠. 형제들과의 인연도 이미 끊어졌습니다."
―가족보다 당나귀가 좋습니까?
"(…)당나귀 때문에 세 여자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어머니, 아내, 딸…."
■내 사랑 당나귀
진로를 모색할 때 외국에서 본 당나귀가 생각났다. 때마침 흥행한 만화영화 '슈렉'의 친구도 당나귀였다. 스페인 세르반테스 동상의, 미국 민주당 상징인, 프랑스인들이 우유보다 더 즐겨 마신, 바로 그 동물이었다.
박관희는 추억이 된 과거의 영화(榮華)를 이야기할 때 침울한 표정이었다. 목이 메기도 했다. 그런데 당나귀로 화제가 넘어가자 표정이 획 변하더니 말이 속사포처럼 빨라졌다. 당나귀가 그를 흥분시킨 게 분명했다.
―농장에 있는 당나귀들이 전부 작은 것 같습니다.
"아! 저 당나귀들은 '미니어처 당나귀'라고 합니다. 땅에서 등까지 높이가 90㎝ 정도 됩니다. 보통 나귀들은 1m20㎝쯤 됩니다. 당나귀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입니다. 소아시아, 티베트에도 살았는데 다 멸종되고 지금은 99%가 아프리카 북부가 원산지지요."
―보통 갑부들은 말(馬)을 소유하는데 왜 하필 당나귀에 빠진 겁니까.
"그건 모르는 말씀입니다. 말의 IQ는 당나귀보다 훨씬 떨어져요. 말은 자기만 알지만 당나귀는 공존(共存)을 압니다. 말은 균형감각이 없지만 당나귀는 있죠. 지구력도 뛰어나고요. 당나귀는 인간과 관계가 깊어요."
―관계가 어떻게 깊다는 겁니까.
"일례로 예수가 말 구유에서 태어났다고 하지요? 그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말 구유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실제론 당나귀 구윱니다. 당시 당나귀라는 단어가 없어 말이라고 성경에 썼을 거예요. 아까 성경 이야길 했지만 예수가 나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타고 온 것도 당나귀였고요. 클레오파트라 알죠? 평생 당나귀 젖으로 목욕했습니다. 로마 네로 황제의 부인도 당나귀 젖으로 목욕했어요. 마농의 샘에서 물을 길어나르는 것도 당나귀고 히말라야에서 짐을 실어나르는 것도 당나귀죠. 지구력과 끈기에서 당나귀는 최곱니다."
―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아닌가요?
"지금 신종플루 유행하죠? 당나귀 젖을 먹으면 면역체계가 강화돼 신종플루에 걸릴 염려가 없어요. 실제로 프랑스인들은 1930년대까지 당나귀 젖을 먹었어요. 우유는 100% 살균해야 합니다. 살균하지 않으면 결핵에 걸려요. 당나귀 젖은 살균이 필요없습니다. 인간의 모유와 가장 가까운 게 바로 당나귀 젖입니다. 미국 아이오와대 연구팀에 따르면 당나귀 젖은 남성의 전립선 강화에도 도움이 된대요. 그리고 인도에서는 국가적으로 당나귀를 연구…."
―아! 알겠는데요, 당나귀는 언제부터 키운 겁니까.
"1998년에 두 마리를 샀습니다. 의정부에 살다 당나귀를 키우려 포천으로 이사했습니다. 처음 산 두 마리는 국내 당나귀고요. 본격적으로 당나귀를 키운 건 2003년 4월입니다. 미국에 가서 40마리를 사왔어요. 그때 땅을 3400평 정도 팔았지요. 미국 당나귀협회 회원들과 함께 뉴멕시코주부터 캐나다까지 목장이란 목장은 샅샅이 훑으면서 좋은 것들로만 샀지요. 당나귀뿐 아니라 마차(馬車)·안장 같은 장비들까지 모조리 구해왔습니다."
―당나귀를 한꺼번에 들여왔나요.
"고생을 많이 했어요. 미국과 캐나다에서 산 당나귀를 켄터키주 켄싱턴 검역소로 이동시켜 30일간 검역한 뒤 대한항공 화물기편으로 수송해왔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다시 열흘 동안 검역을 했어요. 비행기에 그냥 태우는 게 아닙니다. 10마리씩 들어가는 '파레트'라는 우리를 만들어야 하고 당나귀를 돌보는 사람(groomer)도 고용해야 해요."
―당나귀는 가격이 얼마나 합니까?
"제가 40마리와 장비까지 구입하는 데 12억원이 들었어요. 가지고 있던 집까지 팔았습니다. 보통 마리당 2500만원쯤 하는데 저기 보이는 저 당나귀는 6500만원짜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제가 당나귀를 제일 많이 갖고 있습니다."
―당나귀에서 장밋빛 미래를 봤나요?
"제가 처음 산 당나귀를 끌고 의정부와 서울 종로에 나가봤어요. 종로에만 7번 정도 나갔습니다. 시장의 반응을 보려 한 거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입을 떡 벌리더군요. 교통경찰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는데 운전자들도 당나귀를 보느라 클랙슨을 울리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뿐 아닙니다. 청와대 앞에도 가보고 서울시장 선거할 때는 당나귀를 이용한 분도 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 대박이구나'하고 느꼈어요."
―당나귀로 뭘 했습니까.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가 한해 1200개쯤 됩니다. 그 중 연간 100개 정도의 축제에 참가하지요. 1t트럭 한대를 빌리면 당나귀 6마리와 마차 6대를 실을 수 있습니다. 보통 하루 50만원, 대전엑스포 축제 같은 곳에서는 하루 1700만원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동네 건달들에게 돈 뜯기고 당나귀 사료 먹이다 보면 남는 게 없지요. 비가 와도 공치고."
―대박을 친다더니 쪽박을 찼군요. 부인도 그때 떠난 겁니까?
"제가 당나귀 40마리를 사온 지 5개월 뒤였어요. 이유는 뻔하잖아요. 돈을 집에다 가져다주지 못한 것은 물론 신용불량자까지 됐으니까요. (울컥하는 표정으로) 사실 우리나라는 당나귀를 너무 천대해요. 농협에서도 소를 기르면 대출해주는데 당나귀는 안 해주고. 제가 굶는 건 참을 수 있어요. 친구들에게 돈 5만원만 빌리면 당나귀들 배를 채워줄 수 있었을 텐데…. 당나귀 사료값이 마리당 하루 2500원 정도거든요. 그런데 아쉬운 이야기를 제가 잘 못합니다. 2007년 8월에 당나귀들이 굶는 게 안쓰러웠는지 어떤 분이 도토리 가루를 줬는데 그걸 먹고 얹혀서 그만."
■꿈
그는 오는 21일이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것이라 했다. 과천 서울대공원에 입주가 확정됐다는 것이다. 그는 "당나귀가 비로소 정규직(正規職)이 된 것은 미국 디즈니랜드에도, 일본 디즈니랜드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그의 당나귀들은 산타클로스를 태우고 다니는 루돌프 사슴으로 변하기도 하고 동화 신데렐라에 나오는 마차로 변신하기도 한다.
―끼니도 제대로 못 해결했다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았습니까.
"틈틈이 연설문도 쓰고 영어 레슨도 하거든요. 얼마 전까지 군대를 제대한 대학생이 저와 함께 있었어요. 정확히 100일 동안이요. 그 친구 토익에서 920점을 맞더니 가더군요. 강의료는 안 받는 대신 여기서 일을 시켰지요."
―주인이 가난하면 당나귀도 불행한 것 아닌가요.
"제기동 한약방에서 지게미를 얻어 먹이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지 않았으면 지금쯤 70마리가 넘었을 겁니다. 많이 배우긴 했어요. 예를 들어 빵만 먹이면 당나귀는 10년도 못살아요. 건초를 먹이면 40년은 삽니다. 전 60 넘은 당나귀도 본 적이 있어요. 저는 당나귀를 보면서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많이 느꼈어요."
―당나귀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 있습니까?
"그럼요, 쟤는 돈키호테, 쟤는 섹시해서 ○,저쪽에 있는 당나귀는 ○(육체파 여배우와 나이가 40 가까운 가수 이름이었다)고요, 저쪽 아이들은 ○,○,○(전부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이름이었다)라고 부르지요. 세상을 떠난 당나귀들은 저쪽에 묻혀 있고요."
―왜 저 당나귀 이름은 전직 대통령에서 현역 정치인으로 바뀌었나요.
"고집이 너무 세서 그런 이름을 붙였는데 나중에 보니 맹해서 개명(改名)한 거지요."
―서울대공원 입주가 왜 빛을 보는 건가요?
"서울대공원에서 관람객을 실어나릅니다. 서울대공원은 연간 회원권이 100만장가량 팔려요. 수입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거죠. 사실 2004년에 그 일이 잘됐으면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해에 에버랜드에 입주가 거의 결정돼 있었어요. 너무 기뻐 신데렐라 호박마차를 구입하러 미국에 갔는데 브로커라는 사람이 총 매출의 20%를 달라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일이 틀어졌지요."
―당나귀도 말처럼 심심하면 배변을 하는데 관람객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 없어요. 목욕시키고 샴푸하고 방향제 뿌리고 기저귀를 채우거든요."
―꿈이 뭡니까?
"당나귀 왕국을 만드는 겁니다."
―지금도 왕국 아닌가요? 초라하긴 하지만.
"당나귀 젖은 천연 영양식품입니다. 젖과 함께 치즈도 만들 겁니다. 여성들을 겨냥한 '당나귀 젖 목욕시설'도 건설할 계획이고요."
―그게 사업성이 있을까요?
"제 꿈이 이뤄지는 날 동남아 관광객들이 물밀듯 밀려들 겁니다. 자신있어요."
―그냥 영어 가르치고 연설문 쓰고 살았으면 이 고생을 안 했겠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행복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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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정말 재미있는 세상사람 내용이네요.. 갑자기 만나보고 싶은 생각도 ㅎㅎㅎㅎ
그분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선 대궐을 주고 오두막을 가도 갈 사람이군요. 그 주장력이 같은 감정느끼며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세상에 사람은 참으로 많으나 개척에 대해서 이렇게 미치도록 도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일이고
이연이 된다면 참마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