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유표읽기(15-3): 과거지규(科擧之規) 2, 인재(人才·人材·人災)
과거지규 2에는 ‘치선의 정원(治選之額)’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를 거치지 않은 문음자제나 은일지사를 관직에 임명하던 제도였던 남행(南行)을 말하는 듯하다. 모든 것을 시험으로, 그 시험을 능력으로 치환하는 능력 지상주의 시대에 다른 인재를 생각해 본다. 오늘의 능력주의가 조선시대의 문음자제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을까. 은일지사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만, 자신의 능력을 부끄러워하지는 않더라도 그 능력이 온전히 자신의 재능에 의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시대를 이끌 수는 없을까.
“치선하는 법은 과거라는 명목만으로는 나라 인재를 다 뽑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治選之法, 爲科擧之目, 不足以盡國人之材也.『여유당전서26』, 경세유표Ⅲ, 298쪽).”
“생각건대, 과거는 뜻있는 선비들이 매우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중세 이전에는 과거 규칙이 무너지지 않아 행실을 조촐하게 닦는 선비가 힘써 응시했으므로 조(조광조)ㆍ가(이이) 등 여러 선정이 모두 과거의 명목으로 출신했는데, 인조조 이후로는 과장이 더욱 흐려져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모두 장옥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리하여 경술이 넉넉하고 행실이 돈독하다는 지목은 산림으로 돌아갔고, 과거 출신은 다시 감히 유자로 자처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예와 지금이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지금 과목으로 망라할 수는 없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데 생태가 억만으로 다른 것이니 대저 뿔이 있는 놈은 이빨이 없고 깨물지 못하는 말은 달리지도 못하며 얼룩소는 때에 따라 음흉한 너구리에게 양보하고 난봉은 쥐의 성냄은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다. 과목으로 어찌 족히 망라하겠는가?
세상에는 진실로 정심한 학식이 무리에서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시ㆍ부ㆍ표ㆍ책을 짓게 하면 도리어 경박한 어린아이가 보잘것없는 재주를 부리는 것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 전일에 한 선비를 보았는데 6경을 널리 꿰뚫고, 여러 사서에도 거침없이 통했으며 역상에 정통하고 수리에도 밝아서 털을 가르듯, 까끄라기를 쪼개듯, 미세한 경지에 들었으며 언변이 하수 같아서 4좌가 얼굴빛을 가다듬는다. 그러나 다만 문학의 재주가 지극히 졸렬하고 거칠어서 종일토록 창자를 쥐어짜도 두어 편의 문장도 이루지 못하니 이런 사람을 굳이 과목으로 개괄하려 한다면 비록 학식이 천ㆍ인을 관통하고 재주가 관(관중)ㆍ갈(제갈량)과 비교된다 하더라도 끝내 버려진 인물이 되고 말 뿐이다.
내가 이런 사람을 직접 보았으므로, 과거로 어진 사람을 다 뽑아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물며 효우하고 돈박한 선비는 으레 문장에 능하지 못하고, 거룩하고 우뚝한 사람은 본래 조전하는 것을 부끄러이 여긴다. 이것은 모두 성명한 임금이 매우 급하게 여겨야 할 것인데 유사가 매양 빠뜨리고 있다. 비록 무과로써 말하더라도 발로 쇠뇌를 벌리고 뛰어넘으며, 굳센 활을 당겨 굳은 것을 뚫으면서 한 사람 대적하는 것을 스스로 영웅으로 여김을 호걸이라면 혹 부끄럽게 여길 자가 있을 것이다.
가슴에는 손(손빈)ㆍ오(오기)의 책략을 쌓았고 마음에는 한(한신)ㆍ팽(팽월)의 계획을 포치하여, 치거에 누워 꾸민 꾀가 적을 격파하기에 충분하나 끝내 갑옷 하나 뚫는 활 솜씨를 이룩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이와 같은 사람을 모두 버릴 것인가? 또 무릇 산야 사람은 경상 집 자제를 자세한다고 지목해서 매양, “고기 먹는 자는 꾀가 없고 비단 옷 입는 자는 식견이 적다.”라고 한다. 그러나 어릴 때 배우고 아이 때에 익히는 것이 관방의 일이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은 묘모에 익숙하므로, 순ㆍ범 집 아이는 모두 4방에 전대하기에 족하고, 왕ㆍ사 집 자제는 끝내 보통 백성과 달랐다.
특히 그 문정이 매우 분주하고 수응하는 것이 호번해서 과거 공부에 전심할 수 없으니, 갑자기 장옥에 들어가서 한미한 집에서 열심히 공부한 선비와 힘을 겨루고 능함을 다툰다면 진실로 적수가 될 수 없거니와, 직을 맡겨 벼슬에 있게 하여 국론을 결단하고 국정을 시행하는 데에는 패연해서 강하를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반드시 과거로서 얽어매려 한다면 마침내 말라서 죽을 것이고 벌레가 잎사귀를 새기듯, 범을 수놓듯 하는 작은 재주가 묘당을 차지하게 되면 그 인재를 거두어서 치화를 밝힘에 또한 소홀할 것이므로 치선의 조목을 적게 여겨서는 안 된다(臣竊伏念 科擧者, 志士之所深恥也. 中世以前, 科規未壞, 修潔之士, 黽勉赴試. 故趙ㆍ李諸先正, 皆以科目出身. 自仁祖朝以降, 科場益淆, 自好者皆不入場屋. 於是經行之目, 歸於山林, 而科目出身者, 不復敢以儒者自處, 此古今之別也. 然此等之人, 今不可以科目囿之. 且夫天之生材, 億變萬殊. 大抵與角者不齒, 無齧者未走, 犂牛有時乎讓貍, 鸞鳳不顧於嚇鼠. 科目豈足以網羅哉? 世固有邃. 精識絶類超群, 而以之爲詩ㆍ賦ㆍ表ㆍ策, 反不如輕薄小兒, 逞其斗筲之才者. 昔見一士, 淹貫六經, 融通諸史, 精於曆象, 明於數理, 劈毫剖芒, 入於微密, 騁辯如河, 四座斂容. 但其詞翰之技, 至拙極澀, 盡日擢腸, 不成數章. 若是者苟必以科目槪之, 則雖學貫天ㆍ人, 才比管ㆍ葛, 終於棄物而已. 臣 目見此人, 故知科目不足以竭賢也. 何況孝友敦朴之士, 例短於文華, 奇偉卓犖之人, 素恥於雕篆, 斯皆明主之所深急, 而有司之所每遺者也. 雖以武科言之, 蹶張距躍, 挽強穿堅, 以自雄於一人之敵者, 豪傑有或恥之. 胸蘊孫ㆍ吳之略, 心布韓ㆍ彭之算, 臥輜之謀足以破敵, 穿札之射終不成技者, 又不可勝數, 若是者皆在所棄乎? 又凡山野之人, 每以卿相家子弟目之爲席勢, 每云‘肉食無謀, 紈袴寡識’. 然幼學童習, 在於官方, 耳聞目見, 熟於廟謨, 荀ㆍ范家兒, 皆足以專對四方, 王ㆍ謝子弟, 終異於尋常百姓. 特其門庭熱鬧, 應酬浩穰, 有不能專治科擧之業耳. 以之猝入場屋, 與寒門苦工之士, 角力鬥能, 則誠不能相爲敵手, 而以之任職居官, 決國論而行國政, 則沛然若江河之不可禦者多矣. 若是者又必以科目囿之, 卒枯槁以死, 而雕蟲繡虎之技, 盤據廟堂之上, 則其於收人才而亮天工, 亦已疎矣. 故治選之目, 不可少也. 같은 책, 299~3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