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 朴履道(1825년~?) 본관은 고령, 자는 성직 부친은 박승규이다.
청주 목사, 승지,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어사 박이도의 비는 문경 점촌, 창원, 함안 월포리에 남아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창원 용지공원에 있는 어사 박이도비인데. 박이도가 올린 서계에는 前 경상 좌병사 정주응을 벌주라는 내용이 있는데 용지공원에는 재미있게도 창원부사 정주응 선정비와 같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철종 13년 임술(1862) 7월 25일(병오)
경상좌도 암행어사의 서계로 전 좌병사 정주응 등을 벌하다(마침표 삭제)
경상좌도 암행어사 박이도(朴履道)의 서계(書啓)로 인하여 전 좌병사(左兵使) 정주응(鄭周應), 전 경주 부윤(慶州府尹) 송정화(宋廷和), 전 안동 부사(安東府使) 김상현(金尙鉉), 전전 부사 엄돈영(嚴敦永), 비안 현감(比安縣監) 이승교(李承喬), 군위 현감(軍威縣監) 정대석(丁大錫), 전 안동 영장(安東營將) 정극현(丁克鉉)을 죄주었다.”
박이도비는 3좌이며, 그를 칭송하는 명문은 3군데 다 있지만, 함안 월포리의 비는 마멸과 마모로 인해 선명하지 않아 여기서는 논하지 않으며, 먼저 문경 점촌의 碑 부터 풀이하여 소개 한다.
비제: 수의사도박공이도영세불망비(繡衣使道朴公履道永世不忘碑)
廉察公明 청렴과 관찰을 공명하게 하시어
捐八百緡 8만여 돈을 줄이시고
■蘇一域 우리 지역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어
補諸十驛 열 개의 역참을 도우셨도다
후면:
光緖 元年 乙亥 九月 日 1875년 세우다
洛東 落原, 德通, 幽谷, 耶城, 洛陽, 洛平, 安谷, 仇尾, 廷香
낙동, 낙원, 덕통, 유곡 야성, 낙양, 낙평, 안곡, 구미, 정향
어사 박이도의 고성 옥천사에 축원현판이 남아 있어
옥천사에서 많은 도움을 주어 축원 현판이 남은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암행어사박공이도축원현판(暗行御史朴公履道祝願懸板)
思深去沒 깊은 생각 버린 적 없으시니
佛必憐哀 부처님의 大悲로다------------ 憐哀(련애)는 슬프다는 뜻으로 보아서는 불교의 대비로 풀이 하였다.
公之爵祿 公의 작록은
六部三台 삼태육경에 오르며
公之壽福 공은 수복은
海闊山嵬 바다처럼 넓고 산처럼 높으니
公之苖裔 공의 후손
百世流來 백세동안 이어 지리라
光緖 元年 乙亥 四月 日 1875년 4월 일
이외에도 어사 박이도의 비는 함안과 창원에 남아 있다.
옥산 이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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