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한글학교’ 행사에서 만난 한인 입양아 가족 인터뷰
한인 입양아 벤(Ben)의 집은 웃음과 행복이 담장을 넘어 섰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낯선 이의 품 안으로 자연스럽게 달려드는 커다란 개 페퍼(털이 회색이라 붙여진 이름), 도도한 고양이 로즈마리, 두 마리의 토끼와 금붕어 몇 마리, 늘 재미난 농담을 즐기는 아빠 존(John)과 사려깊고 우아한 엄마 조지나(Georgina), 그리고 활발하고 귀여운 미소를 가진 금발소녀 메리(Marie)… 이상이 벤의 가족이다.
시드니 북부 와라위의 한적한 동네. 공기 좋고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우거진 이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하우스에는 손으로 문지르면 따뜻함이 듬뿍 묻어 나올 것만 같았다. 거실 벽에는 2008년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찍었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한국 소년 벤은 생후 6개월 때 이 가정에 입양됐다. 현재 와라위 초등학교 6학년이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던 존과 조지나가 입양을 결심하고 커뮤니티서비스부(DOCS)에 입양을 신청, 사진으로 벤을 먼저 만나고 한국에서 직접 아이를 만나기까지는 2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처음 벤을 보았을 때 존은 ‘이 애가 내 아들이구나’ 하는 것을 바로 알았다고 한다. 아빠 품에 안겨 아빠의 손목시계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지작거렸던 기억, 그리고 존은 아내와 벤이 특별한 감정 소통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벤이 어떤 아이인가를 묻자 여느 엄마처럼 아들 자랑이 이어졌다. “음악적으로 소질이 많아요. 학교에서 브라스밴드로 활동하며 트럼본을 불고, 노래도 잘하고 기타와 피아노도 다루죠. 그리고 스포츠에도 재능이 많아 크리켓, 축구, 농구를 잘하죠. 뭐든지 빨리 배우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인기도 많고, 나이에 비해 성숙해요.”
그러나 벤은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세서 가끔 엄마 속도 끓였다고 한다.
벤이 입양되고 나서 존과 죠지나에게는 예쁜 딸 메리가 생겼다. 메리는 벤과 같은 학교의 3학년생이다. 2008년 10월, 온 식구가 2주간 한국을 다녀 왔다. 갑자기 메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디에선가 설악산 권금성(901m)을 올랐을 때 받은 메달을 찾아와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벤에게는 그것이 첫 모국 방문이었다.
벤에게 한국에서의 에피소드를 묻자 “공항에서부터 한국사람들이 나에게 한국말로 자꾸 뭔가를 물어 당황했다”며 웃었다. 당시 가족들은 멋진 설악산 말고도 서울, 경주, 부산 등을 여행했다. 경주에서 본 거대한 왕릉과 박물관, 사찰, 그리고 설악산의 단풍은 네식구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다음엔 제주도를 꼭 가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존과 조지나는 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입양아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늘 말해왔다고 한다. 덕분에 벤은 커가면서 자신이 부모와 외모가 다르다는 것도 빨리 이해했고 왜 자신의 친엄마가 양육을 포기했는지 궁금하다고 이들에게 직접 물었다고 한다. 그 때 존과 죠지나는 “너의 친아빠는 군대를 갔고, 친엄마는 결혼을 안한 상태에서 너를 혼자 낳아야만 했기에 너를 키울 환경이 한국에서는 안됐었다”고 답해주었다고 한다. 벤은 인터뷰 중에도 왜 많은 나라들 중에 하필 한국 아이를 택했냐고 엄마에게 묻기도 했다.
벤은 자신의 한국이름이 ‘김성훈’이라고 말했는데 메리도 오빠의 한국이름이 샘났는지 본인이 직접 한국이름을 ‘김성군’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기자가 ‘그 이름은 남자이름인데’ 라고 하자 온 가족은 박장대소를 했다.
벤은 한국음식 중 불고기, 만두, 김치를 좋아하고 특별히 한국사과는 크고 맛있어 가장 좋아한다고. 벤은 한국인 입양자녀와 그 가족 교육단체인 ‘샛별한글학교’에서 만두를 다같이 만든 적이 있었는데 무척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엄마는 불과 10년전과 비교해 시드니에 한국음식점들도 많고 가게도 많아졌다며 잡채, 만두, 김밥 등의 한국음식을 할 줄 안다고 말했다.
‘훌륭한 부모를 만난 벤은 정말 행운아’라고 하자 조지나는 “아니예요, 우리 부부가 벤을 만난 게 축복이죠”라고 말한다.
벤의 장래희망은 사진가이다. 엄마와 아빠는 벤이 대학진학을 꼭 했으면 한다면서 “직업은 뭐든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면 오케이”라고 했다. 아빠는 한국에 가보니 한국 사람들이 대화가 없고 늘 바쁘며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만 하는 게 안타까왔다고 말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존은 진지하게 “난 세상에서 정말 운 좋은 사람 하나를 잘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누구냐고 묻자 “It’s me!”라고 답하며 껄껄 웃는다. 그는 “결격 사유없는 가정에서 아이가 없어 아이를 간절히 원한다면 입양은 문제의 베스트 해답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마더스 데이’(5.9)를 앞두고 만난 벤과 조지나를 보면서 애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울고 웃고, 추억을 한 사진첩에 차곡차곡 모아간 네식구야 말로 핏줄을 넘어 선 ‘천하무적’ 가족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