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가을 무교회전국집회 후기
날씨도 화창한 토요일.
예정대로 순조롭게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하신 분들은 홍순명 선생과 이승진 여사. 그리고 속속 도착하시는 홍성 식구들. 또 서울에서 보령에서 전주, 부산, 인천, 광명에서 꾸준히 참석해주시는 분들 때문에 강당은 금세 자리가 찼습니다. 반가운 인사, 웃음소리가 가득하여 오랜만에 만나는 기쁨으로 장내가 화기애애하였습니다.
강의 기록은 간단히 소개합니다. 왼쪽의 '전국집회 강의록' 코너에서 원고를 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한일무교회의 의기투합
일본무교회의 후지오 마사히토(藤尾 正人) 선생으로부터 받은 50여 년 전의 '제암교회 재건축을 위한 사죄위원회' 활동을 보고하였습니다. 1919년 4월에 발생한 화성의 제암리 방화 학살사건을 알게 된 무교회 독립전도자 마사이케 진(政池 仁) 선생과 해외선교회 소속의 오야마 레이지(尾山 令仁) 목사의 주도로 일본인에게 이 사건을 알리고, 사죄의 의미로 제암교회재건축을 위한 모금운동을 했던 일이 있습니다. 2년만에 당초 목표액 1천만엔을 달성하고 1970년 '속죄의 교회당'과 공민회관을 완공하였지요(이 교회는 1997년까지 사용).
이 사죄위원회의 모금운동에 일본무교회의 각 집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한국에서 이뤄져야 하는 연락업무, 방한자들의 안내와 접대, 통역 등의 뒷바라지는 송두용 선생과 노평구 선생과 집회원들이 담당하였습니다. 그 모든 과정의 회의록, 강연회 기록, 회계 기록, 회보 つぐない(속죄) 1-10호, 언론 가사 등의 사진 자료를 함께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속죄의 교회당'도 사라지고, 기록도 지워져 모든 공로는 일본 개신교(오야마 목사)의 활동으로 알려져 아쉽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그것이 무교회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김복례)
2. 요한복음 공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이 구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여 성육의 본질적인 성질을 뜻합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은 성육신하신 로고스의 역사적 삶을 가리키고, 지상에 거하신 그리스도의 숭고함과 위대함을 목격했다는 고백이 '그의 영광을 보니'라는 말에 들어 있습니다. 또한 로고스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계시자라는 사실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손문일)
3. 엘리야 이야기
그동안 소예언서를 공부하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 생활, 그리고 본토 귀환의 역사를 살펴보았는데,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겪은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는지를 알고 싶어 열왕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먼저 엘리야가 활동했던 시대를 알아보고, 하나님이 엘리야를 어떻게 인도하였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엘리야의 사역과 함께 우리는 '한 인간의 삶과 사명은 어디에서 궁극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엘리야는 사실 이루고자 했던 일을 그의 생애 안에 완성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주어진 사명을 감당했지요. 엘리야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우리의 삶과 신앙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생각하게 합니다.(조득환)
4. 다니엘서 공부
다니엘서는 '간절히 기도하며 믿음을 지키면 놀라운 기적으로 승리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온다'는 주제일까요? 풀무불에서 보호받은 것은 죽음까지 각오한 용기 있는 신실한 믿음 때문에 받은 응답일까요? 하나님은 어떨 때는 기도를 들어주시고 어떨 때는 내버려 두실까요? 어떨 때 사자 굴에서 건져 주시고, 어떨 때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내버려 두실까요?
우리가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항상 그걸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다만 우리는 많은 경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합니까 하며 타협하고 물러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려고 할 때 직접 위로해주시고 살길을 열어주고 힘을 주십니다.(배지현)
5. 하나님 앞에서 '힌네니'
힌네니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또는 '듣고 있습니다.'하는 순종의 대답입니다. 마태복음 14장의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사건에서 우리는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의 '오라' 하신 말씀에 곧장 응답한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 '제게 명령하십시오, 물 위로 오기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대담한 순종속에서 믿음의 본질을 봅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힌네니는 자신의 뜻과 한계를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 말씀에 자신을 맡기려는 신뢰의 응답입니다. 자기 부인과 주님을 향한 신뢰, 곧 믿음의 삶입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제가 듣겠습니다 하는 경건에서 시작합니다. 베드로와 같이 자신을 던져 맡기며, 말씀 속에 뛰어드는 것이지요. 비록 두려움과 떨림이 있지만 내 몸을 맡기는 때에 믿음은 비로소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황호석)
6. 제 7복 화평케 하는 자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겉 테두리의 안정을 위해 평생을 애씁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루터는 봉건 영주의 편에서 농민군을 가혹하게 진압하라 촉구했습니다. 캘빈은 세르베투스를 주도적으로 사형에 처하게 했지요. 쯔빙글리 역시 재세례파 펠릭스 만츠를 강에 익시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김교신 선생은 아무리 시대적 조류가 투쟁과 반항을 외쳐도 성서는 오로지 평화를 주장하며 하나님은 평화의 신,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라 주장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말한 영적 예배는 평화의 산 제사입니다. 예수가 열어놓은 절대 평화에 분단의 아픔과 미움의 늘에 빠지 우리 민족의 살 길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져 현세의 손해와 모욕, 죽음까지도 취하나, 타인은 절대 해치지 못하는 바보스러움. 그 평화성에 기독자 한 사람만이라도 눈을 뜬다며, 우리 한민족은 희망이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 전체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반영운)
그리고 참석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감화회 시간.
모두가 '오길 잘 했다'는 말씀들이어서 마음이 찡했습니다.
이번에는 뜻밖의 즐거운 체험도 했습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열차도 타면서 마음껏 웃었고, 마을에서 '촌스러운 이웃기웃' 선물꾸러미도 받았으며, 1인당 지원금 15,000원씩도 제공받았습니다.
첫댓글 그 외의 많은 사진은 카페앨범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