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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이 특별계시인 성경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다룬 서론이었다면, 제2장부터 5장까지는 신론에 해당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제2장은 하나님과 거룩한 삼위일체, 제3장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제4장은 창조, 제5장은 섭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제2장은 1항이 하나님의 속성, 2항은 하나님의 자존성과 피조물의 관계, 3장은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해서 다루면서 하나님의 본질과 세 위격을 설명합니다. 제1장 성경의 항목에서는 로마교회와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신론에 있어서는 개혁교회와 로마교회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심지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적 문제인 ‘필리오케’에 대해서도 종교개혁자들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제2장 제1항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우리의 고백을 공부하겠습니다.
제2장
1항.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살전 1:9, 렘10:10)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신 6:4, 고전 8:4, 6). 그분은 존재와 완전성에서 무한하시며(욥 11;7-9, 26:14) 가장 순수한 영으로(요 4:24) 불가시적이고(딤전 1:17) 형체나 부분들이나(신 4:15-16, 요 4:24, 눅 24:39) 성정이 없으시다(행 14:11, 15). 불변하시고(약 1:17, 말 3:6) 측량할 수 없으시고(왕상 8:27, 렘 23:23-24) 영원하시고(시 90:2, 딤전 1:17) 불가해하시며(시 145:3). 전능하시고(창 17:1, 계 4:8) 가장 지혜로우시고(롬 16:27) 가장 거룩하시고(사 6:3, 계 4:8) 가장 자유로우시다(시 115:3). 그분은 가장 독립적이셔서(출 3:14)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잠 16:4, 롬 11;36) 자신의 불변하고 의로운 의지의 뜻을 따라(엡 1;11) 모든 것을 행하시며, 가장 사랑이 많으시고(요일 4:8, 16)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선함과 진실에 있어서 풍부하셔서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신다(출 34:6-7). 자신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이며(히 11:6) 그와 동시에 심판에 있어서 가장 의로우시고 두려운 분으로서(느 9:32-33) 모든 죄를 미워하시고(시 5:5-6) 범죄자들의 벌을 결단코 면제하시지 않는다(나 1;2-3, 출 34:7).
해설.
1.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에 관해 말하면서 첫 번째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라고 고백하면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신중에 하나가 아니며 여러 신 중에 가장 높으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이 사실은 성경의 여러 구절을 통해 확인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35),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신 32;39),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딤전 2:5), 이 외에도 하나님이 한 분 이시라는 증거 구절들은 성경에 가득 차 있어서 더 이상의 예를 드는 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2. 하나님과 같은 분이 결코 없다는 말은 참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으로 계시다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직 한 분뿐이라는 말은 하나의 신격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본질상 신성한 존재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뜻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는 2장 3항을 다룰 때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3. 신앙고백서는 오직 한 분뿐인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참된 하나님이라고 진술합니다. 하나님은 생명 없는 우상과 구별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상상이나 가공의 신이 아니라 참된 신입니다. 이방인들이 섬기는 많은 신은 현실이 아니라 그들의 헛된 상상과 탐심이 만들어낸 우상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은 신들로 불리지만 본질상 신이 아닙니다. 비록 하늘과 땅에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계실 뿐입니다. 다른 모든 신은 죽은 신과 거짓 신에 불과합니다(고전 8;5-6).
4. 살아계시고 참된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되 지극히 순수하고 가장 순결한 영이십니다. 순수(pure)라는 말의 신학적인 의미는 죄가 없이 깨끗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혼합되거나 합성된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피조물의 혼합이나 합성이 아니며 완전히 순수하신 분으로 절대적 의미에서 순일(純一, simplex)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순수한 영이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육체가 없으시며 부분으로 합성되지 않으시고 우리와 같은 성정이 없으므로 외적인 요인과 여러 감정에 의해 휘둘리는 우리의 변덕스러운 감정과 같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이 순수성(순일성)이 다른 모든 신적 속성에 선행하는 역할을 하여 모든 하나님의 속성들은 부분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로 일치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체 속성들이 상호 작용하는 관계 안에 거하십니다. 예를 들면 불변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하고 전지하며 영원하듯이, 거룩하신 하나님도 불변하고 전지하고 영원합니다.
5. 한편, 하나님이 순수한 영이라는 우리의 고백은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와 형태를 지니셨다고 주장한 고대의 이단인 ‘신인동형동성론자’들을 논박합니다. 성경이 눈, 귀, 손, 얼굴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묘사해도 그것은 우리의 이해에 맞추어 하나님을 설명하는 표현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하나님의 손과 팔은 하나님의 권능을, 하나님의 입의 말씀은 하나님의 교훈과 진리를, 하나님의 귀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표현하는 의미이지 하나님께서 몸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6. 하나님은 모든 완전한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속성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신학자들은 부정방식과 탁월 방식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완전한 속성을 설명해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정방식으로 불변성과 불측성, 영원성과 불가해성 등을 고백하고 탁월 방식으로는 전능하심, 지혜로우심, 거룩하심, 자유로우심, 독립적이심의 속성을 ‘가장’이라는 최상급으로 써서 인간의 속성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7. 먼저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불변하는 분입니다(약 1;17). 하나님은 본성이 완전하심으로 더 좋거나 더 나쁘게 변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질 수 없고 더 좋은 하나님이 될 수 없으며, 계획도 바꿀 수 없으며, 약속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라는 표현은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이 중요한 이유는 말 3;6의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처럼 이 속성이 우리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이 가만히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변하지 않는 본성에 따라 끊임없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8.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무소부재하며 영원한 하나님은 공간의 제약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창조되지 않았기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십니다(계 1:8). 이 속성을 공간적으로 표현하면 불측성, 시간에 적용하면 영원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무한한 하나님의 본성을 우리는 측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이를 신앙고백서는 불가해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불가해성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이 아니고 유한이 무한을 다 파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불가해성의 속성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계시의 분량에 만족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행복하고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0. 부정방식에 이어 탁월 방식으로는 먼저 전능하심을 말합니다. 인간과 천사도 일정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한 분이므로 그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다른 속성을 어긋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기쁘신 뜻대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과거를 바꿀 수 없으며 둥근 세모를 만들 수 없으며, 당신이 들 수 없는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궁금해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기 원하는지를 묻고 그것을 알기 위해 부지런히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11. 탁월 방식의 두 번째 속성은 지혜로움입니다. 천사도 지혜롭고 사람도 지혜롭지만, 하나님은 가장 지혜로우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만물에게 제각기 목적을 부여하고 그 목적에 정확히 부응하도록 이끄는 완전한 속성입니다.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지혜는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이 땅에 가득하니이다”라는 시편 104편 24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창조에서 찬란하게 드러납니다. 특별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거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는 로마서 11:32의 말씀처럼 그의 구원 사역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더할 수 없이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시 85:10) 구원의 사역보다 더 빛나는 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는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고전 2:7)이 나타났고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알려졌습니다(엡 3:10).
12. 전능하시고 가장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또한 가장 거룩하시고 가장 자유로우시며 가장 독립적이십니다. 인간도 거룩하고 인간도 자유롭고 인간도 어느 정도 독립적이지만, 하나님은 가장 거룩하고 가장 자유로우시며 가장 독립적이십니다. 인간의 자유는 자신의 능력이나 상태에 따라서 제약을 받습니다. 아무리 날고 싶어도 날 수 없으며, 죄의 영향으로 은혜의 개입 없이는 스스로 선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므로 원하시는 일을 제약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13. 또한, 하나님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모든 피조물을 당신에게 의존하게 하시는 분이므로 다른 존재들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가장 독립적인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피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서 영광을 구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유익을 끼치는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피조물이 자신의 길을 온전하게 한다 해도 하나님께 이득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계 4:11, 욥 22:2-3). 하나님은 스스로 만족하십니다. 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독립성이 하나님을 가장 자유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독립적이고 외부의 어떤 것에도 전혀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 기도의 내용과 목적도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14. 이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변함없고 의로우신 의지의 목적에 따라 일하실 때 가장 많은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인내와 인자와 진실로 행하시면서 악과 죄를 용서하십니다(출 34:6-7). 그러나 하나님은 악과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지만(히 11:6), 동시에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범한 자들에게 진노하시고 벌을 주시는 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입니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동시에 가장 의롭고 두려운 심판을 행하는 분으로(느 9:32-33) 모든 죄를 미워하시고(시 5:5-6) 범죄자들의 벌을 결단코 면제하시지 않습니다(나 1;2-3, 출 34:7). 심판하시는 엄위로우신 하나님과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진 시대에 신앙고백서는 가장 의롭고 두려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고양 시킵니다. 2항은 다음 시간에 하겠습니다. 한 주간도 우리의 신앙고백처럼 유일하고 참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