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 가운데 가장 기록이 잘 나오는 대회가 바로 이 서울국제마라톤인데 역시나 기록을 살펴봐도 2002년에 처음 참가 한 이후 두 번의 서브3를 비롯해 첫 회와 작년을 제외하곤 모두 싱글의 범위로 완주했다.
(3:37:22, 3:07:28, 3:09:06, 2:56:51, 2:58:06, 3:06:22, 3:01:45, 3:10:15)
체중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있고 훈련량과 그 질이 가장 형편없는 이번 시즌에선 목표자체를 싱글로 잡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기록 따위는 얘깃거리도 되지 않고 완주 자체가 불투명한 극한의 상황까지 갔다 오게 되었다.
역시나 정직한 운동!
토요일 낮에 안선생님과 함께 병주아빠 차를 타고 서울로 상경.
송원장이 신천역 부근 자신의 한의원 건물에 있는 모텔을 잡아놨기에 행선지를 거기로 잡은 것인데 별다른 교통체증이 없어 순탄하게 3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저녁 먹고 대회 준비를 한 뒤 잠을 자고 아침 먹고 전철 갈아타며 대회장까지 도착하는 것도 별다른 이상이 없이 순탄하게 척척.
미세먼지가 좀 있을거라는 예보가 나와 있고 기온이 출발당시 8℃, 도착 무렵엔 15℃정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 별로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나쁘지도 않다.
목표인 3시간 9분대를 달성하려면 매 5Km 랩타임을 22분 내외로 유지하면 되니까 아무리 연습과정에서 부족한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출발 이후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달리는데 랩타임이 목표한 그 수준에서 제대로 기록된다.
하프지점까지 달리는 동안 발바닥이 물집이 잡혀가는지 불편함이 전해져 오는 것 이외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1:33:16 통과)
하지만 이후로 지하차도를 지날 무렵부터 몸의 이상신호가 점점 크게 느껴지더니 발바닥에서 시작된 불편함이 다리 전체에 악영향을 준 듯 햄스트링 쪽에서 움찔움찔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급기야 어린이대공원 무렵에서 왼쪽 햄스트링에 최초로 경련이 발생한다.
뒤로 돌아서 걸으며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데 깜빡 잘못해서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으로 가게 되었고 휀스 때문에 다시 되돌아 올 수가 없다.
다른쪽은 교통이 통제된 게 아니기 때문에 차들이 씽씽 지나가는데...에이구 무시라!
어쩌다 이렇게 됐누...
한 100미터 쯤 더 지나다보니 마침 휀스가 갈아진 곳이 있길래 얼른 되돌아 와 대열에 합류하고 그 즈음엔 일단 쥐가 가셨기에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30Km지점에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2:16대를 가리킨다.
이미 싱글을 하기는 힘들어졌고 안선생님이 배번을 가리키며 12분대를 달성할 거라고 했던 그 목표는 달성이 가능할 것 같다.
재작년엔 두 번이나 큰 쥐가 내리고도 3시간1분대로 완주하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10Km주자들과 합쳐진 33Km 부근에서부턴 시도 때도 없이 양쪽 다리고 번갈아 쥐가 내리고 나중엔 동시에...우와 미치겠다!
갈길은 아직 먼데 힘도 충분하고 의욕도 넘치는데 다리가 안 움직이니...
싱글에서 미뤄지기 시작한 목표치가 이제는 완전히 '완주' 하나로 바뀌었다.
거꾸로 가면 괜찮기 때문에 하염없이 거꾸로 걷고 또 거꾸로 달리기를 반복하며 41Km지점까지 정말 길고 긴 역주행(?) 고난의 행군을 계속한다.
그 덕에 이제까지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달리는 주자들의 생생한 표정과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끽(?)할 수가 있다.
완전 리얼 생중계!
간절하게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걷더라도 좋으니 제발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으면...
결국 1Km를 남겨둔 지점에서야 방향을 바꿔 그렇게도 바라던 앞을 보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운동장에 들어서며 느껴지는 감회가 남다른 건 물론이고...
그래도 달리는 폼으로 앞을 보며 들어갔으니...
5Km 21:50
10Km 21:40 [43:30]
15Km 22:21 [1:06:21]
20Km 22:18 [1:28:09]
25Km 23:38 [1:51:46]
30Km 25:11 [2:16:57]
35Km 26:27 [2:43:24]
40Km 32:40 [3:16:05]
Finish 11:37 [3:27:41]
이 대회에서 첫번째 참가 이후 가장 나쁜 기록을 남겼고 역대 평균치인 3:12:08를 27초나 끌어올렸지만 엄청 큰 교훈을 얻었으니 충분히 그만큼의 가치는 있다.
신발을 딱 10년전 신었던 두철의 '이봉주화'를 고집했던 것이 가장 큰 악재였는데, 지난 목요일 말리랑 둘이 천변을 달려보니 엄청 가볍고 기록이 잘 나오길래 좀 수월하게 그 덕을 보려다 그만...거기다가 양말 또한 뿅뿅 돌기가 있는 미끄럼 방지표를 신었으니...
아 어제 저녁하고 오늘 아침에 옆사람들 하던 얘기를 들었어야 했는데...괜히 혼자 고집을 피워서 쌩고생을 사서 했다.
달리던 중간에 밑창이 떨어지지 않을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신발이 하도 오래되다보니 몸통의 메쉬하고 밑창을 붙여놓은 본드가 다 날아가서 헤벌레 하고 벌어진 것을 얼마전에 다시 붙여놓은 것인데...어제 저녁에 보니까 오른쪽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결승점을 지나 숨을 좀 돌리고 발을 내려다보니 신발 밖으로 피가 베어 나와 있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
그 뒤로는 한발 한발을 내딛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발바닥에 무슨 장치를 달아놓은 듯 바닥에 딛기가 힘들어서...
안선생님도 다 죽어서 들어오고 주변의 많은 분들이 후반에 고생들을 많이 했나보다.
전체적으론 기온이 높은 것이 공통된 원인인 것 같은데 가을대회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아직은 몸이 겨울 그대로에 적응이 되어 있는 상태라 15℃가까운 정도로도 이렇게들 무너지나보다.
칩을 반납한 뒤 물품을 찾고 셋이서 만나 신천역까지 걸어가는 길도 고난의 행군 연장판.
새마을시장 내에 있는 동네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송원장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무한반복.
48번째 마라톤은 끝났지만 그 이야기는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