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숙제 덕분에 살겠어요!
“지민아! 뭐하니?”, “숙제요. 숙제가 너무 많아요. 숙제가 날 괴롭혀요. 숙제만 없으면 살겠어요.” 숙제로 지쳐 있는 딸과의 대화입니다. 딸은 학교 숙제, 학원 숙제, 엄마 숙제가 한 번에 몰려 버려 울상입니다. 숙제는 참 이중적입니다. 숙제는 ‘복습이나 예습 따위를 위하여 방과 후에 학생들에게 내주는 과제’로서 보통 학생들의 학습력 향상과 성장을 위해 선생님들의 내줍니다. 참 좋은 취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숙제는 학생들에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좋은 의도가 학생들의 마음에 도달되지는 않습니다. 학생 입장에서 대개 숙제는 ‘자발적 선택’이 ‘강요된 임무’로서 불편하고 부담되어 늘 ‘두고 생각해보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입니다. 숙제 때문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인문학 공부도 숙제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에서도, 기업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 아닌 강요합니다. 이로 인해 책장에는 쉽게 다가가기 힘든 책들이 쌓여가고, 할 일 목록에는 여러 인물과 각종 기관에서 제시한 추천도서 리스트가 기록됩니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두거나 구입한 책들이 쌓여 가는 양과 지적 성장과 행복감은 반비례합니다. 이 책들을 다 읽지 못하면 나는 성장하지 못하고, 남들보다 뒤쳐질 것이라는 강박과 불안감이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 공부는 ‘자발적 선택’으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회와 세태가 해야만 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강요된 임무’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모두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방법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학생 때처럼 숙제에 대한 불편한 경험을 합니다. 숙제 때문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한 신학자의 인문 고전 읽기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책 표지를 본 후 목차를 살펴보았습니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인문 고전 도서에 대한 저자의 서평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순간 지적 허영심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으로 또 숙제가 엄청 많아지겠구나 하는 부담감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이 부담은 괜한 노파심이었습니다. 이 책은 ‘해야만 한다.’는 당위로 지적 우월성을 나타내며 위협하는 교사가 아닌,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왜, 무엇을, 어떻게’ 인문고전 읽기를 할 수 있는지 알려주며 숙제를 도와주는 선생님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모티머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이 이론서라면, 이 책은 독서법의 적용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왜 읽어야 하는가?
‘아무리 많이 읽고 배워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얻는 것도, 남는 것도 없다. 반면 독자적인 사고를 구축하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지기 십상이니 위태롭다.’고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배우고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곤고한 날, 위기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와 목적, 그리고 나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것이 지혜인데, 책은 거울처럼 성찰하게하고, 새로운 길을 배울 수 있게 하는 창의 역할을 하게 합니다. 특별히 인문고전 읽기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표현한 것처럼 인문학 자체가 지닌 고유함을 사랑하는 ‘향유’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인문학을 수단으로 인용하는 ‘사용’이 모두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기독교인이란 것이 창피하게 여겨진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을 저자는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을 소개하며 정리해줍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집단 수용소에서 과학적이과 체계적으로 학살하는 일을 담당한 최고의 관료 칼 아돌프 아히히만이 패전 후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악마일 것 같은 아히히만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착한 아들, 좋은 남편, 멋진 아빠였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직장에서는 성실하며 국가에 더 없이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는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타인의 처지에 대해서 살피지 않았고 그런 끔찍한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저자는 이를 ‘무사려’에 기초한 ‘무배려’의 창피함이라고 합니다. 아히히만의 모습 속에서 코로나 상황 속에 이기적으로 비춰지는 교회와 정치판에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참여하며 하나님보다 세속 권력을 더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모습이 보여 집니다. 인문고전이 거울이 되고, 창이 되기에 읽어야 합니다.
2.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저자는 자신이 읽은 인문고전을 14가지의 주제로 묶어 소개합니다. 생각, 독서, 인문학, 경건, 종교, 정치, 리더, 복종, 사랑, 안식, 죽음, 믿음, 의심, 희생, 용서 등입니다. 그리고 각 주제와 관련한 핵심 고전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친절하고 열정적인 코치가 됩니다. ‘토라를 열심히 읽었다고 자랑하는 제자에게 토라는 너를 읽었느냐고 질타한 사막 스승’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내용을 풀어주는 듯합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희망의 인문학의 스승이자, 로고스서원의 글쓰기 사부로서의 그의 면면이 잘 드러납니다.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각 주제의 책들을 꼭 읽기를, 좀 더 친근하게 여기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각 주제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되고, 소개된 책이 내 삶의 창과 거울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 체득하게 됩니다.
3.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는 각 글 마지막에 있는 ‘함께 읽을 책’ 소개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각 주제에 관련된 책들을 추천할 뿐만 아니라, 각 책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비교하게 합니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사고력을 증진시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저자의 독서 비책을 훔쳐보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독서에 대한 많은 물음들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라고 무릎을 칩니다. 저자는 어느 순간 옆에서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는 코치가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모티머 애들러가 말한 신토피칼 독서법을 알려줍니다. 같은 주제의 책들을 동시에 읽고 연결 지으면서 통합적이고 능동적인 독서를 하는 것입니다. 저자와의 만남은 이 독서법의 의미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해주었고,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목사로서 ‘용서’를 말하며 설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용서라는 당위가 가진 피상성을 극복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는데, 나는 포도주를 자꾸 물로 만든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자크 데리다는 ‘종교란 악으로부터 구원이다. 악이라는 실재가 없다면, 고통이라는 주관적 현실이 없다면, 종교는 없거나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과는 현격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는 명제를 접하면서 용서를 말하는 것보다 앞서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저자가 추천하는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배제와 포용>, <희생양>등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용서의 구체성에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굿 라이프>의 저자 최인철 교수는 행복에 대해 말하며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 행복이라는 어떤 특수하고 개별적인 감정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경직된 사고가 우리의 행복을 억압했을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조건의 문제라기보다 내적 감정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으로 시간을 사야한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유쾌하지도 않고 의미도 느낄 수 없는 일들을 아웃 소싱해야 한다. 한마디로 ‘비서’를 두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행복 안내자, 관리자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강요된 숙제’를 ‘자발적 숙제’로 바꿀 수 있는 비서가 필요합니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인문학을 ‘사용’하기 위한 책 이상으로 인문학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비서와 같은 책입니다. 본인은 이 비서를 ‘행복한 숙제’라고 정의합니다. 행복한 숙제는 나의 성장하게 하고 살게 합니다. “행복한 숙제 덕분에 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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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사님 서평 덕분에 저도 살겠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