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천 시내
국제펜 보령 탐방 일정을 다 마치고 상경 중에 오천 시내를 지나서 간다. 오천항 동문낚시라는 가게 앞에서 버스가 잠시 정차한다. 나의 어버지, 어머니가 이곳 오천 시내에서 장을 보시며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 생활 터전이었던 곳이다. 결혼을 하시면서 둘째 아들인 아버지는 보령군 청라면 장현리로 분가하셨다. 부잣집 귀한 아들로 유산을 많이 받으셔서 대천 읍내에 '새나라 서점'을 차리셨다. 그러나 6.25 전쟁 때 폭탄을 맞아 다 사리지고 흔적이라고는 검은 옹기솥 하나였단다. 나의 아버지는 그때부터 고단한 삶을 사셨다. 훌륭하신 할아버지의 훈육 아래 서당에서 한학도 배우시고 학식도 풍부한 분이신데 맞지 않는 농부의 옷을 입고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도 우리 5남매 낳아 모두 사회에서 제 몫에 충실하도록 잘 길러 놓으셨다. 나의 시 '아버지', '겨울산', '사랑 1-아버지', '뜨거운 목숨' 등에 아버지의 값진 삶을 노래했다. 또한 나의 시 '능소화', '가을산', '사랑 2-어머니', '들꽃' 등에서는 어머니의 자식사랑에 대한 삶을 노래했다. 오천 시내를 떠나며 훌륭하신 나의 아버지, 어머니께 깊은 감사와 함께 시인의 길에서 더욱 사명에 충실하겠노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