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은 길한 숫자인가/ 양성보
나는 숫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특별히 수학을 좋아했다. 일제 강점기 때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한 학년 위인 동갑내기 친구들과 어울려 밤마다 수학공부를 했다. 참고서나 자습서가 귀하던 시절이다.
한 친구가 수학 자습서를 구해왔다. 같은 문제를 풀고 서로의 답을 맞추어 보는 것이다. 항상 내가 제일 먼저 풀고 정답을 내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내가 수학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1을 3으로 나눈 무한소수나 1을 7로 나눈 순환소수가 재미있어서 여러 가지 조합을 해보면서 흥미를 느꼈다. 순환소수 142857에 1부터 6까지 차례로 곱해 보면 똑같은 숫자 6개가 자릿수만 바꿔서 나타난다.
숫자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숫자가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수數로 이루어져 있고, 수로써 표시되고 표현한다. 숫자가 없다면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주의 신비한 원리와 법칙이 숫자가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 오늘날의 과학기술도 숫자에 기초를 두고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아라비아 숫자는 전 세계가 언어는 달라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0,1”로 구성된 이진수로 컴퓨터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우리가 수학적 용어로만 사용하던 숫자들이 모두 신비롭다. 숫자 7과 12를 예로 들어본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안식을 의미하는 완전수로 본다. 일주일이 7일이다.
불교에서도 극락은 일곱 천계로 되어 있다. 석가모니는 7년 구도했으며 보리수를 7바퀴 돌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49제도 7과 관련이 있다. 무지개도 7가지 색이다. 북두칠성도 7개의 별이다. 숫자12도 신비롭다. 일 년은 왜 열두 달일까. 12는 ‘우주의 질서’와 함게 ‘완전한 주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12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한 숫자로 간주 돼 왔다.
그리스 신화의 신은 모두 12명이고 예수의 제자도 12명이다. 서양에는 ‘띠’가 없지만, 한자문화권에는 12개의 ‘띠’로 그해를 표시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숫자에도 음양이 있고 길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각각의 숫자는 단순히 수치를 나타내는데 그치지 않고 각국의 문화를 내포하고 있다 대체로 동양은 음양오행설의 정신사상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홀수는 양을 나타내는 강세이며 짝수는 음을 나타내어 음보다 양을 더 좋은 길수吉數로여겨왔다.
우리는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아 7을 행운의 숫자로 여기고 있다. 4는 ‘죽을 사死자’와 발음이 같아서 불길한 숫자로 여긴다. 우리나라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와 싫어하는 숫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중국인은 2, 6, 8, 9의 수를 선호하며 3, 4, 7을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선 좋아하는 숫자 2는 짝을 이루고 서로 화합한다는 뜻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숫자 6은 류流와 발음이 같아 물 흐르듯 순조롭게 잘 풀린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66이라는 숫자는 모든 것이 두 배로 잘 풀려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더 인기가 있다.
숫자 8은 중국어 발음이 “빠八”인데 ‘돈을 벌다’의 뜻을 가진 글자 “파”와 발음이 비슷하여 8이 많이 있는 번호를 가지면 그만큼 돈이 많이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8888’ 등 8자로만 구성된 자동차 번호판이 거액에 경매되기도 했다는 뉴스도 있다.
이 외에도 1988년 8월 8일을 길일로 여겨 이날 결혼 날짜를 잡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며, 베이징 올림픽을 2008년 8월 8일 저녁 8시 8분에 개최하고 폐회식도 저녁 8시에 거행한 것을 보면 숫자 8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랑은 정말 무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숫자 9는 ‘오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 “구久”와 발음이 같아 선호한다.
예를 들면 자금성의 문이 9개이며 그 문에 박힌 못들도 가로, 세로 9개씩, 궁전의 계단도 9 또는 9의 배수로 이루어져 있다. 숫자 8과 함께 묶어서 자주 사용도며 98은 “구빠久八” 즉 ‘오래 돈을 벌다’로 해석된다.
싫어하는 수사 3은 ‘흩어지다’는 뜻을 가진 “산散(san, 싼)”과 발음이 같으므로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소매치기, 좀도둑을 “삼지수三只手(싼즈쇼우)”라 하며, 우유부단하다. 딴마음을 품다는 뜻의 “삼심이의三心二意(싼신얼이)” 등과 같이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숫자 4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죽다’의 뜻을 가진 “사死(si, 쓰)”와 발음이 같아 꺼린다.
마지막 숫자 7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중국인들이 기피하는 숫자이다. 중국에서는 망자에 대한 제사를 7일 주기로 7회 지낸다는 것 때문에 ‘사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물에서도 7자를 피하고 길일을 고를 때도 7을 제외한다.
이처럼 중국인은 한국인에 비하면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도가 크다. 이는 곧 중국인들의 문화를 상징한다. 중국과의 교류가 많아지고, 국내에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러한 중국인들의 숫자 문화를 잘 숙지하여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우리나라가 어찌하여 중국인이 꺼리는 3을 선호하는지 모르겠다. 3은 예로부터 길한 숫자라고 여겨졌다는데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음양오행설로 양의 수인 홀수를 길수로 여기고 음의 수 짝수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3만 원, 5만 원, 7만 원 등 경조비를 내는 것도 홀수이다. 음력 절기를 보면 1월 1일 설날, 3월 3일 삼짇날, 5ᅟᅯᆯ 5일 단오, 7월 7일은 칠석날이다. 홀수가 길한 숫자로 여겼기 때문에 홀수의 돈과 함께 길한 기운을 담아 주는 것이다.
“하나는 외로워, 둘은 모자라, 3이 딱 좋다.”라고 흔히 말한다. 특히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3을 길한 숫자로 여기고 사랑해 왔으며 3을 이용한 용어가 많다.
숫자 3은 시작과 끝을 이루며 우리의 생활에 긴밀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3칠일 동안 치고, 죽어서도 3일장과 삼우제를 거치고, 노리개를 만들어도 삼작노리개를 만들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3은 길한 숫자인 탓에 3월 3일을 길일로 쳐왔다.
3.1운동은 3월 3일로 예정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2일을 앞당겼고, 독립선언을 낭독한 종교단체도 천도교, 기독교, 불교이고, 민족대표도 33인이다. 만세도 3창을 하고, 응원에도 337박수를 친다. 한글 창제의 원리도 하늘과 땅, 사람의 세 가지를 중심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고구려인의 무덤의 수호신으로 삼족조三足鳥(머리가 하나에 다리가 셋인 까마귀)와 삼두일족응三頭一足鷹(머리가 셋인 매)은 고구려인의 힘찬 기상을 상징하는 3에 기초한 상징물이라 한다.
속담이나 생활에서 나오는 말에도 3이 많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고,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 잘못하면 뺨이 석 대, 홍어에 김치와 돼지고기가 함께 먹는 삼합, 맛있는 것은 삼삼하다고 하고, 재판도 삼심제, 야구에도 3진 아웃, 삼사일언三思一言, 삼다도三多島 등이 있다.
근래에는 한글로 이름을 짓는 경향이 있으나 작명 사주 궁합도 숫자를 이용하여 풀이한다.
매사에 3을 이용한 용어들을 모두 주워 담으려면 대형 트럭도 모자랄 형편이다.
인간을 감동시키는 세 가지 액체는 땀, 눈물 피라고 하며 세 가지 만남의 복으로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을 꼽는다. 그리고 세 가지 후회로 남에게 베풀지 못한 것, 참지 못한 것,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 없는 세 가지는 존경, 신뢰, 우정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남에게 주어야 할 세 가지는 필요한 이에게 도움을, 슬퍼하는 이에게 위안을, 가치 있는 이에게 올바른 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3가지 병신, 3가지 바보, 3가지 중요한 것, 성공적인 사람을 만들어주는 3가지, 실패하는 사람을 만들어주는 3가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검색창에서 ‘인생에서 세 가지 진실’을 찾아 보았다.
인생에서 한 번 오고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시간, 말, 기회이고, 인생에서 누구나 항상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희망, 평화, 정직이며,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사랑, 친구, 자신감이다. 인생에서 결코 확실하지 않은 것은 성공, 꿈, 행운이다. 인생에서 사람을 파괴하는 것은 자존심, 욕심, 화라고 한다.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에 의하면 인생에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고 했다.
첫째 자연과 인간의 싸움이다. 둘째 인간과 인간끼리의 싸움이다. 셋째 자기와 자기와의 싸움이다.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라고 했다.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숫자에 대한 길흉이나 성명, 사주풀이, 꿈의 해몽은 과학적 설명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지방마다 국가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해석을 달리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숫자에 대한 동서양의 해석이 다르고 국가마다 다르다면 그것은 과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심리적인 영향이 있을 수는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남들이 꺼리는 4자와 인연이 많다. 중학교 입학시험번호가 444번이고 입학성적이 4등이다. 고등학교 때에 체육대회에서 릴레이 선수로 뛸 때도 4번 레인에 4번 주자가 되었다. 육군 보병학교에서 간부후보생으로 교육받을 때도 402번이다. 이상하게도 LG정밀회사에 입사하여 사원 아파트에 들어갈 때도 402호였다. 4자로 인하여 내 일생에 불리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지 않는다. 3이건 7이건 4이건 길한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고 불길한 숫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숫자는 단순히 숫자일 뿐이고 구태여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