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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거센 눈보라
나쓰에는 요코가 우유 배달을 시작한다고는 했지만 기껏해야 한 달쯤 하다가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 오는 날이 며칠씩 계속되어도 요코는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다. 라일락이 아름다운 6월이 지나 흰 감자꽃이 피는 한여름이 되어도 요코는 좀처럼 그만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요코는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언제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소리를 죽이면서 살짝 뒷문을 빠져 나와 곳간에서 자전거를 꺼내 가볍게 올라탔다.
우유 보급소에 도착한 요코는 40병 들이 우유 상자를 자전거에 실었다. 이것이 제일 힘든 일이었다. 요코가 뒤쪽이 무거워진 자전거를 누르고 있으면 보급소 주인이 우유 상자를 자전거 짐받이에 동여매 주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흔들흔들 했으나 석 달이 지난 지금은 익숙해졌다.
아직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를 덜컹거리는 병 소리를 내면서 요코는 페달을 밟았다.
요코가 우유 배달을 한다는 소문이 어느새 학교에까지 쫙 퍼졌다.
“요코, 무엇 때문에 우유 배달을 하는 거니?”
단짝인 게이코가 물었다.
“노트나 연필을 내가 번 돈으로 사고 싶어서야.”
“어머, 난 내 용돈으로 살 수 있는데.”
게이코는 철공소집 딸이었다.
“하지만 게이코, 난 용돈보다 내가 일해서 번 돈이 좋아.”
“흥, 넌 이상하구나. 쓰지구치 병원은 부자 아니니? 그런데도 우유 배달을 하는 건 남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일 거라고 우리 엄마가 말했어.”
게이코는 마음이 착한 아이였다. 따라서 요코에게 심술이 나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냐, 남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가 아냐.”
“하지만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곧 신문에 날 거래. 신문에서 칭찬해 줄 거라고 했어.”
게이코는 요코를 칭찬해주려는 마음에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코는 좀 쓸쓸했다. 자기 마음을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그러나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요코는 오해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벽마다 아직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릴 때의 즐거움, 우유를 배달하고 빈 병만 남아 짐이 가벼워졌을 때의 만족감을 맛보기 좋아하는 요코를 아무도 몰라주었다.
2학기가 시작되자 갑자기 아침 바람이 싸늘해졌다. 어느새 키가 커진 옥수수가 바람에 사각거렸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내릴 때면 뱃속까지 싸늘해져 오기도 했다. 눈이 내리면 길이 나빠서 자전거를 타기가 힘들었다. 드디어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겨울이 닥쳐왔다. 요코로서는 한평생 잊을 수 없는 겨울이었다.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겨울엔 자루 속에 우유병을 넣어서 배달했다.
20병씩 든 자루를 양손에 하나씩 들면 팔이 뻐근했다. 그러나 익숙해지니 어디서 힘이 생기는지 그것도 참을 수 있었다.
겨울에는 여섯 시에 일어났다. 너무 일찍 배달하면 우유가 얼어서 병이 깨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일어나 문을 열 무렵에 맞춰 배달해야 했다. 그런 것도 요코는 잘 알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요코는 먼저 창 너머 숲 쪽을 내다보았다.
나뭇가지가 마치 서리를 내뿜은 것처럼 얼어 있는 아침에는 밖에 나서면 눈썹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숨을 쉬면 콧구멍 속이 빡빡해졌다. 이런 날에는 귀마개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동상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곧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던 게이조와 나쓰에는 정월에 접어들자 놀라기도 하고 다소 어이없기도 했다. 나쓰에는,
‘역시 씨가 다르구나. 바깥 노동에 익숙한 사이시의 피가 흐르로 있는 거야.’
하고 배달을 마친 요코가 너무도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게이조가,
“요코는 어딘지 야무진 데가 있어. 끈기가 대단해. 좀처럼 그만둘 것 같지가 않군.”
하고 말했을 때,
“대체 어떤 부모였을까요? 다카기 씨에게 한번 자세히 물어 보는 게 좋겠어요.”
하고 나쓰에는 게이조의 아픈 데를 슬쩍 건드리고는 시치미를 뗐다. 이웃 사람들이 요코를 칭찬하면 나쓰에는,
‘요코는 어째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거나 무용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까? 열 살 때부터 돈을 탐나 일을 하다니 정말 핏줄은 속일 수 없나봐.’
하고 마음속으로 표독스럽게 뇌까리곤 했다.
“요코, 넌 이제 5학년이 돼. 그러니 우유배달은 그만두렴.”
하고 말했더니 요코는 생글생글 웃을 뿐,
“네, 그만둘게요.”
하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쓰에는 그런 요코가 고집스럽게 보여 화가 났다. 어린아이가 밖에서 일한다는 건 나쓰에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쓰에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요코는 나쓰에가 뭐라고 해도 우유 배달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요코가 우유 배달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는 아직 겨울 방학 중이었다.
그 날 아침에는 밤중부터 몰아치던 눈보라가 더욱 사납게 불고 있었다. 바람이 유리창이 덜컹거리고 눈이 몰아친 창문은 새하얗게 보였다. 나쓰에는 바람 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요코에게 쉬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마 말려도 절대로 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쓰에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요코가 눈보라 속을 헤치고 나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요코는 코트 깃을 세우고 그 위에 털실로 짠 목도리를 칭칭 감았다. 그러고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금세 몰아치는 심한 눈보라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힘껏 발을 내디뎠으나 정면으로 불어닥치는 바람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길도 보이지 않았다. 요코는 한 걸음 한 걸음 눈 속을 헤치며 걸어갔다. 전선이 바람에 윙윙거렸다. 온몸을 떠미는 듯한 바람에 요코는 자신도 모르게 등을 돌리고 허리를 굽힌 채 걸어갔다. 상당히 많이 걸은 듯했으나 바람에 숲이 울어대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장화 속으로 눈이 들어와 녹았다.
조금 가니까 눈이 쌓인 곳이 있었다. 요코의 허리까지 닿는 높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눈의 깊이를 확인하면서 요코는 앞으로 나아갔다. 땀이 이마를 흠뻑 적셨다. 요코는 숨을 몰아쉬면서 멈춰 섰다.
‘하지만 물 속보다는 무섭지 않다. 흐르지 않으니까 지치지 않는다.’
요코는 이러헥 생각하면서 기운을 냈다. 눈이 쌓인 곳을 간신히 빠져나오자 눈이 바람에 휩쓸려 얼어 있는 길가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자 계속해서 3미터도 걸을 수 없었다.
여름이라면 우유 보급소까지는 5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걸어도 걸어도 그 길은 멀기만 했다.
‘되돌아갈까?’
요코는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안 보였다. 요코는 길가에 높다랗게 쌓인 눈에 기대어 한참 쉬었다. 바람이 때때로 눈가루를 날리면서 지나갔다.
‘아이들이 우유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요코는 다시 몸을 앞으로 굽히고 걷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고 바람을 막으며 필사적으로 눈 속을 걸었다. 또 다시 눈이 쌓인 곳이 나왔다. 그곳을 지나 몇 발짝 걷기도 전에 몸에 땀이 흥건히 배었다.
‘갈 수 있을까?’
‘가고야 말 거야!’
어른이라도 심한 눈보라가 치는 날에는 자기 집 앞까지 2,30미터를 남겨 놓고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요코는 그 눈보라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 요코는 차츰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기쁨이었다.
세찬 바람이 눈을 몰고 스쳐갈 적마다 하얀 눈가루가 주위에 막을 둘러쳤다. 요코는 눈가루가 사그라들기를 기다렸다가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방향을 잃고 말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군데군데 집이 서 있었으므로 길을 잃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간신히 우유 보급소 앞까지 이르렀다.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요코는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우유 보급소의 낡은 문을 어깨로 떠밀었다. 주인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허, 요코 아니냐? 이 누노라에 용케 왔구나.”
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요코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멍하니 벌린 요코의 입에서 충치가 하나 얼핏 보였다.
“정말 놀랐어요. 이런 날 자식을 밖에 내보내는 부모가 있다니.”
남자처럼 눈썹이 굵은 우유 보급소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하고는 주인에게 눈짓을 했다. 요코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쉬라고 아빠 엄마가 말씀하시지 않더냐?”
주인은 난롯불을 굵은 쇠꼬챙이로 두세 번 쑤셔댔다. 난로는 찍찍 소리를 내더니 금세 활활 타서 연통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는 시키는 대로 잘 하지 않아요.”
요코는 부모를 나무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흠, 얼굴에서는 늘 웃음이 떠나지 않지만 시키는 대로 잘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오빠와 성격이 다른가 보지.”
요코의 장화에 묻은 눈을 털어 주면서 아주머니는 다시 눈짓을 했다. 굵은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요코는 아주머니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주인은 아주머니를 흘겨보고 나서 다시 난로의 불을 쑤셨다.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눈이 잔뜩 쌓여 있었지?”
하고 요코에게 물었다.
“굉장해요. 허리까지 찰 만큼 높이 쌓여 있어요.”
“어머, 허리까지? 큰일날 뻔했구나. 그런데 뭣 때문에 아빠와 엄마는 우유 배달 같은 것을 시키지?”
아주머니는 화가 난 듯이 말했다.
“뭣 때문이라니? 아이들을 올바로 교육시키기 위해서지.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말아요.”
“교육 때문이라면 왜 요코에게만 우유 배달을 시키겠어요? 오빠에게도 배달을 시켜야 할 게 아녜요? 아무튼 대단한 부모예요.”
아주머니는 따끈한 우유를 커다란 그릇에 따라서 요코에게 주었다. 눈에 젖은 요코의 장화와 바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저, 아줌마, 엄마는 우유 배달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제가 우겨서 시작한 거예요.”
요코는 아주머니가 아빠와 엄마를 나쁘게 말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흥, 그런데 요코는 어째서 우유 배달을 하고 싶어졌지?”
“어째선지는 잘 모르지만 일하고 싶었어요.”
요코는 따끈한 우유를 입으로 훌훌 불면서 어쩐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쉬어라. 바람이 가라앉으면 아저씨가 천천히 배달을 할 테니까.”
주인 아저씨도 우유를 마시면서 말했다.
“어머, 어린애의 맘마가 없으면 곤란하잖아요? 가엾어요.”
“그야 하지만 이런 날 배달을 하고 나면 녹초가 돼.”
“그래도 저 배달할래요.”
“아서라,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다.”
주인이 큰 소리로 말렸다.
쌓인 눈을 휘감아 올리며 불어닥치는 바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혼났을 텐데, 앞으로는 이런 철없는 짓은 하지 말아라. 우체부 아저씨나 어른들도 넘어져서 죽는 수가 있단다. 이렇게 심한 눈보라가 치는 날에는 말이야.”
주인의 말에 이어 아주머니가 덧붙였다.
“정말이야. 이 근처에는 더러 집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좀더 한적한 시골이었더라면 넌 죽었을지도 몰라. 어쨌든 바람이 멈출 때까지 푹 쉬었다가 가거라. 학교도 방학일 테니까.”
그러나 요코는 우유 배달을 하러 와서 난롯불만 쬐고 있자니 마음이 개운하지 못했다.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우유 배달을 그만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따끈한 우유와 난롯불 덕택에 몸이 완전히 녹았다. 요코는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피곤해서 이윽고 긴 의자에 드러누웠다. 눕자마자 곧 잠이 들었다.
문득 눈을 떠보니 요코는 깨끗한 작은 방에 눕혀져 있었다. 요코는 깜짝 놀랐다.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곧 우유 보급소 주인집에 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래 잠을 잔 것 같은데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요코가 일어나 앉으려고 할 때 옆방에서 수군수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야.”
소리를 죽여서 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무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유 배달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요코야.”
요코는 자기에 대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다고 쳐요. 하지만 이렇게 심하게 눈보라가 치는 날에…..자기의……..라면 밖으로 내보낼 리가 없어요.”
“………하지만 알고 있을까?”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우선 얼굴이 닮지 않았거든요.”
미닫이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는 소곤거려도 잘 들렸다.
“그러나 닮지 않은 아이도 있어요. 도키코(時子)도 당신을 조금도 닮지 않았잖소?”
“참, 나. 그래도 걔는 분명히 제가 낳았잖아요?”
아주머니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어쨌든 요코는 모르는 일이오. 그러니 잠자코 있어요.”
“네, 알겠어요. 하지만 곧 알려질 거예요. 누구나 요코가 얻어온 아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쉿, 큰소리 내지 말아요.”
순간 요코는 놀랐다.
‘얻어온 아이? 내가 얻어온 아이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코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어린 마음도 요코는 훨씬 오래 전부터 나쓰에가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자기 스스로도 왠지 얻어온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 막상 그것을 분명히 알게 되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오빠도 진짜 오빠가 아니지 않을까?’
요코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남과 눈물은 남을 위해 흘려야 한다”고 하신 선생님 말을 행각해냈으나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난 얻어온 아이가 아니야.’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게이조도 나쓰에도 도오루도 갑자기 먼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요코는 외돌토리가 된 것처럼 쓸쓸해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우유 보급소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얻어온 아이라도 좋아.’
이렇게 생각했으나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요코는 눈물을 닦고 밖으로 나왔다.
“일어났니?”
아주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네.”
요코는 고개를 숙이고 장화를 신었다.
“이제 겨우 아홉 시야. 천천히 푹 자지 그래.”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으나 요코는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거짓말처럼 멎어 있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요코는 어쩐지 딴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눈 위로 좁게 길이 나 있었다.
‘어디서 얻어 왔을까?’
요코는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얻어온 아이여서 엄마는 급식비를 주지 않았을까?’
요코는 학예회 때 흰옷을 만들어 주지 않았던 일도 생각해 냈다. 뒤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노란 러셀(자동차 이름)이 물방울 같은 눈보라를 날리며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요코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물이 날 정도로 쓸쓸했다.
‘내일부터 우유 배달을 그만둬야지.’
요코는 자신이 일을 하는 것 때문에 우유 보급소의 아주머니가 아빠와 엄마를 나쁘게 말한 것을 생각해 냈다. 자기가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요코는 알아차렸다.
집 근처까지 왔을 때 요코는 갑자기 나쓰에의 무서운 얼굴을 생각해냈다. 나쓰에가 덮치면서 목을 조르던 때의 얼굴이었다.
‘어째서 얻어온 아이라고 귀여워하지 않을까?’
책에서 읽은 ‘백설공주’ 생각이 났다. 언젠가는 자기도 백설공주처럼 집에서 쫓겨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요코는 맥이 풀려 부엌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안에서 나쓰에가 뛰어나왔다.
“어머, 이 눈보라에 가엾게도…….”
이렇게 말하고 나쓰에는 요코를 껴안았다.
나쓰에는 아침 일곱 시경에 자리에서 일어나 심하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깜짝 놀랐었다.
이런 날 요코를 밖으로 내보낸 것을 생각하니 요코가 가엾게 여겨져 돌아올 때까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쓰에의 품에 안긴 요코는 기쁜지 슬픈지 자신도 알 수 없는 눈물을 참지 못해 ‘엉’하고 소리내어 울면서 나쓰에에게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