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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가나안’(‘함’의 자손)의 이방인]의 신들[잡귀신의 우상]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가인’과 ‘아벨’은 종말[세상 끝날]때까지 이 세상에 있을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표[선과 악의 모본]한다.
한 부류는 죄를 위하여 지정된 희생을 이용하지만[회개의 순종], 다른 부류는 자신들의 공로를 감히[불경스럽게] 의지한다. 그들의 제사는 하나님의 중보의 공로가 없는 제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해줄 수 없다. 예수의 공로를 통하여서만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보혈]의 필요를 느끼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 그들의 행위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자들은 ‘가인’과 동일[꼭 같은 불순종]한 과오(過誤:잘못)를 범하고 있다.
정결케 하는 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정죄 아래 있다. 그들이 죄의 속박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아무데도 없다.(PP 72.5)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창4:26)다.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전에 하나님을 경배하였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두 부류 사이의 구별이 더욱 현저[분명히 나타남]하게 되었다. 한 부류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주저 없이 고백하였고, 다른 부류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순종하였다.(PP 80.2)
모든 아이들은 참된 의지력(意志力:목표를 성취하는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 선물[하나님의 은혜]에 포함된 책임[개인적 임무]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아야 한다. 의지는 사람의 성질에 있어서 지배하는 힘이요, 결정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이성을 가진 사람은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경험에서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수24:15)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람은 하나님 의지의 편에 자기의 의지를 순종 시킬 수가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힘에 결합시켜, 어떤 경우에라도 악을 행하지 않게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모든 청년과 아이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실한 품성을 형성하고 유익한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Ed 289.1)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섬기거나, 어둠의 왕자의 검은색 깃발 아래 모인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야 한다.(BLJ 213.4)
승리하시는 그리스도-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제시한 후에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섬길 자를 택[선택]하라고 촉구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기를 갈망(渴望:간절히 바람)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바로 종교의 기초이다. 단순히 상급에 대한 희망이나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분의 사업을 하는 것은 무가치하다. 위선과 형식적인 예배보다는 공배적인 반역[공개적인 불순종]이 그분께는 덜 혐오(嫌惡:악하고 추한 수치)스러울 것이다.(CTr 139.6)
교회 안에서 질서를 잡으려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위치로 사람들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생길 때에, 한 부류는 그 노력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며, 어두움을 뚫고 빛으로 나아가는 열렬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진리의 성화시키는 힘이 그들의 마음과 삶에서 나타나서 보일 정도로 끈기 있게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 염려[걱정근심]에 치중(置重:죄 된 세상에 집중)하여 반성과 은밀한 기도를 게을리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무장해제[구주를 잃어버림]를 당하고 사단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결국 그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그의 계교를 의심하지 않도록 만들었다.(2T 126.1) 이 세상에는 오직 두 부류만이 존재한다. 한 부류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자, 주님을 찾아 구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고, 자기 영혼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기와 관련된 모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는 자이며, 다른 부류는 불순종의 자녀이다. 이 세상에는 단 두 부류밖에 없다. 그러면 알고 계시는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4:4,5). 영혼들이 기만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사랑이 지배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세상이 그들의 주인이며, 그들은 그 기만적이고 알랑[눈속임의 행동] 거리는 신기루(蜃氣樓:안개같이 사라지는 허상)를 좇고 있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요3:15)시려고 세상을 위해서 그분의 생명을 버리신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그분께서는 인간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 요 15장 전체는 지극히 중요한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읽으라. 그 말씀에 순종하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또 다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느니라”(마6:24)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TM 270.3) 첫 번째 부류는 그리스도를 자신들이 품성에 짜 넣었으며, 자기들이 한 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는 것은 축복이다.(2SAT 37.2)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는 항상 두 부류가 있어 왔다.
한 부류는 구주의 생애를 연구하고 그들의 결점들을 고치고 위대한 모본되시는 분과 같아지려고 열렬히 노력하는 반면에, 다른 부류는 그들의 잘못들을 폭로시키는 분명하고 실제적인 진리들을 피한다. 그 최선의 상태에 있을 때에라도 교회는, 진실 되고 순결하고 진심 어린 사람들로 구성되지 못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고집스럽게 죄 가운데서 방종 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그럼에도 그분은 품성에 잘못이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시고, 그들에게 가르침과 모본을 받고 따를 혜택들을 허락하셔서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들을 보고 고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셨다.(CTr 321.2) 연합한 것처럼 과장하는 것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진정한 연결을 이루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함으로 사람들이 교회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산[살아있는]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와 생명적 연결을 이루고 있음을 입증하지 않는다. 진실한 제자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분을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자들과를 분별하는 하나의 법칙이 주어져 있다. 한 부류는 과실을 맺고 있으며, 다른 부류는 과실이 없다. 한 부류는 더 많은 과실을 맺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정(剪定:가라지치기)
가위에 자주 잘리 움을 당한다. 그러나 다른 부류는 마른 가지들처럼 미구[곧 바로]에 산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끊어져 나간다.(2TT 72.2) 성령의 사역은 측량할 수 없이 위대하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일꾼들에게 능력과 효율성이 이르러 오는 것은 이 근원으로부터이다. 그리고 성령은 보혜사로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개인적 임재와 같은 분이시다.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의 작용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모든 만물의 머리되시는 분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순절 날에 영화롭게 되셨듯이, 그분은 복음 사업을 마치는 일 가운데서 다시 영화롭게 되실 것이다.
그때에 그분은 대 쟁투의 끝마무리 쟁투에서 최후의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한 백성을 준비시키실 것이다.. (CTr 365.4) 유혹에 들어가지 말라—그대는 이 세상의 일시적인 사물 때문에 유혹에 빠지도록 허용하겠는가? 그대는 그대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의심하겠는가? 그대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그대에게 부여하신 사업을 소홀히 하겠는가?
그대는 세속적이며, 관능적이며 악마적인 사람들과 사귀고 있다. 그대는 도덕적인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있어서, 그대가 만일 그리스도의 생애와 품성을 그대의 표준으로 삼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였더라면 승리할 수 있었을 일에 실패할 위험이 짙다. 이제 그대는 이 세상의 정욕으로 인하여 썩어질 것들을 피하기 위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대의 영혼을 하늘의 분위기 가운데 계속 보존하는 것이 그대가 해야 할 의무이다.(Te 192.3) 우리는 얻어야 할 큰 승리가 있고, 그 승리를 얻지 못하면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하늘이 있다. 육신의 마음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왜냐하면, 육신의 성향은 도덕적 부패로 기울어지고 그 종말은 사망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는 복음의 감화력 외에는 아무것도 심령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소생시키고 회복시키며 변화시키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마비 상태가 된 심령에 전기 충격과 같이 나타나서 모든 신경이 새 생명으로 전율케 하고, 세속적이며 정욕적인 죽은 상태에서 영적 건강으로 전인적(全人的) 회복이 이루어지게 기도하라. 그렇게 됨으로써 그대는 세상에서 정욕으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대의 심령은 그대를 고치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분의 형상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2TT 100.1)
우리는 사람들을 고상하게 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들이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길을 택하여 열렬하게 노력하도록 이끄는 중대한 사업을 맡고 있다. 사역자들의 모든 사상과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은 그들이 옹호하는 거룩한 진리와 조화되는 고상한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2TT 235.1)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우리 주님께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 하노”라고 말씀하셨다(계3:19).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는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12:11).
비록 징계가 고통스런 것일지라도, 그것은 우리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 아버지의 부드러운 사랑으로 정해진 것이다.(2TT 293.2) 하나님은 온 우주의 생명과 빛과 기쁨의 근원이시다. 태양에서 광선이 비추이듯이 그분에게서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축복이 흘러나온다.
그의 무한하신 사랑 안에서 인간에게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리고 먼저 받은 자들을 통해 동료 인간에게 그 축복이 확산되도록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영예요, 최대의 기쁨이다. 이렇게 해서 사랑의 수고에 참여하는 자들은 창조주에게 가장 가까이 가게 된다.
“하나님과 동역자”(고전3:9)가 되기를 거절하는 자들, 이기적인 방종 때문에 동료 인간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기의 재물을 지상에 쌓는 가엾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부요한 축복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CS 23.3)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게 미혹당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세상의 이득으로 인한 찬란한 번영의 장면으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매혹을 당하여 그들 앞에 완전한 행복을 주는 번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명예와 재물과 지위를 얻을 희망으로 매혹된다. 사단이 그 영혼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 모든 것, 그대가 그대의 동료 인간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이 모든 권세와 재물을 주겠노라.”(눅4:6)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찾던 목적이 달성될 때 그들은 자기를 부인하신 구속주와 아무 관련도 없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아니다. 그들은 지상의 보화를 붙들고 진리를 위한 극기와 희생과 굴욕의 요구를 경멸한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이끌리는 세상 보화로부터 떠나고자 아니한다. 그들은 주인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섬기는 대신에 재물을 섬기는 것을 선택하였다.
사단은 세상 보화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이 기만당한 영혼들의 경배를 확보해 오고 있다.(CS 214.2) 회개는 구원하는 은혜의 첫 열매 중 하나이다 우리의 크신 교사께서는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가르치신 교훈 중에서 생명을 주는 그분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시며 선언하시기를, 그분의 은혜를 따라 인간들은 거룩하고 순결한 새 생애를 할 수 있다고 하셨다.이런 생애를 사는 자는 하늘나라의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배운 그는 이웃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 그가 이웃을 인도할 때는 불확실한 길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 그런 자의 생애에 역사하시어, 그가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성령으로 역사함을 받은 모든 영혼이 풍부한 은혜를 받으므로 나타나는 그의 선한 행실을 믿지 않는 세상에 보고 그는 거룩한 능력으로 지배를 받고 지탱해 살아감을 깨닫는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AG 138.2)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UL 284.7) 하나님께서는 단호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을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위기의 때에 두 마음을 가진 자를 쓰실 수 없으시다. 주님께서는 그릇된 일에 저들의 손을 얹고 “이것은 주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하신다.(2SM 153.1)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통해 한 때 불법과 죄악에 빠졌던 사람들의 생애에 나타난다. 저들은 품성과 언행을 통해 저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임을 나타낸다. 이 놀라운 은혜가 ‘바울’에게 주어졌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진리를 알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복음은 성령의 지도하에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똑같이 전파되었다.(UL 309.4)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무한정한 지력이 있어야 되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분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연합시켜 인간들로 하여금 품성이 완전하신 그분을 통해 마지막에 하나님을 그분 본래의 영광 가운데서 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다.
우리는 희생을 통해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될 수 있다(벧후1:4). 신성의 광채가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UL 316.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오, 이 사랑!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이토록 적다니 말이나 될법한 일입니까! 그분께서는 놀라운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시면서 이 계획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아끼지 않을 것을 결심하셨습니다...우리를 덮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또 그분의 위대하심과 공의, 자비, 사랑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우리의 마음을 결코 헛되이 채우지 않을 것입니다.(UL 361.4)
시종[처음과 끝]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안녕을 돌보는 일을 잠시도 소홀히 하지 않으십니다. 저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저들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육욕으로 인한 세상의 타락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 그분의 지혜, 그분의 성실, 그분의 보호하시는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UL 369.4)
혈과 육으로 난 옛 본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옛 방법들, 타고난 경향성들, 그리고 그 전의 습관들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은혜는 상속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생은 새로운 동기와 새로운 취미와 새로운 경향성을 갖는데 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고, 그들의 모든 기질과 습관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관계를 증거 해 보여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품성과 기질의 선천적인 결함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 그들의 자리가 세속적인 사람들의 것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그들은 진리를 성화케 하는 자, 정결케 하는 자로 바르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6BC 1101.1)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7-10) (1T 180) “사단은 최초의 큰 반역의 지도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저주스런 노예제도의 죄를 그처럼 오랫동안 존속하도록 용납해 온 북부[미국]를 징벌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하늘의 안목으로 볼 때 그것은 가장 극악[최악]한 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남부[미국]와도 함께 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마지막에 그들을 무섭게 징벌하실 것이다. 사단은 모든 반역의 선동자[죄악의 본체]이다.
A 형제여, 나는 그대의 정치적 원칙이 그대의 판단력과, 진리에 대한 그대의 사랑을 파괴하도록 그대가 허용한 것을 보았다. 그 원칙들은 참된 경건을 그대의 마음에서 잠식하고 있다. 그대는 노예제도를 결코 올바른 빛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한 그대의 견해 때문에 그대는 사단과 그의 부하들이 선동한 반역에 가담[스스로 합류]하게 되었다.
노예 제도에 대한 그대의 견해는 이 시대를 위한 거룩하고 중요한 진리와 조화될 수 없다. 그대는 그대의 견해를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버리든지 해야 한다. 동일한 마음속에 두 가지를 다 같이 간직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서로 상치[반대]되기 때문이다.”(1T 359.2)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서로 떨어져 갈라짐]된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요일2:15). 세상이 애정을 차지하고 있는 한, 어떤 사람도 진리를 분별할 수 없다. 세상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개재하여 시야를 흐리게 하고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그들은 거룩한 사물을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호소하신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4:8,9). 세상의 부패로 손을 더럽힌 자들은 그 더러움에서 스스로를 정결케 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세상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들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며,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대한 모든 책임을 잃어버리고 있으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한다. 그들은 어느 하나에 속하지도 않고, 다른 것에 속하지도 않은 자들이다. 그들이 순결한 진리의 원칙에 순종함으로 손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두 가지 세계를 다 같이 잃어버릴 것이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4:17).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1T 530.3)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앞에 두 주인, 곧 하나님과 세상을 제시하시며, 우리가 양자를 동시에 섬기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하셨다.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주도권을 쥔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의 주의를 끌 가치가 있는 사물을 옳게 식별[분별]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추방시켜 버릴 것이며, 우리의 최고의 관심은 세상에 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애정과 헌신에 있어서 세상의 사물과 같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3T 478.1) 부[재물]에 대한 정신병적인 사랑을 가진 자들의 행동은 두 주인, 곧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돈은 그들의 신이다. 그들은 돈의 능력 앞에 경배를 드린다. 그들은 모든 의도와 목적에 있어서 세상을 섬긴다. 그들의 명예, 곧 그들의 장자의 상속권은 세속적 이익 때문에 희생된다. 이 지배적 능력이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고, 그들은 개인적 이익을 돌보고 세상의 보화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범[불순종]하게 된다 (3T 479.1)
결정적인 노력과 믿음이 그 핵심임(마11:12)—'야곱'이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얻으려고 애쓸 때에는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그는 그 거룩하신 손님을 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그의 힘이 다 없어질 때까지 싸웠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내어 던졌을 때에, 그는 원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없이 영원]하신 사랑의 팔에 안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여 보았고, 그의 죄는 용서를 받았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22). 여기에 침노한다는 말은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것을 말한다. 두 마음을 품으면 안정이 없다. 준비하는 일을 하려면 결심, 자아 부정, 헌신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예지와 양심이 한데 어우러져야 하겠지만, 의지가 그 일을 착수[헌신의 순종을 즉시시작] 하지 않으면 우리는 실패하고야 말 것이다.
열렬하고 진지한 기도가 나태함과 무관심을 대신해야 한다. 열렬하고 결정적인 노력과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고, 하늘왕국을 얻을 수가 있다. 일할 시간은 짧다.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다.(1BC 1095.8)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심으로써만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들이 될 수 있다는 보증을 얻게 된다.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하여 냉담한 태도를 보이며 우리가 정직하기만 하다면 무엇을 믿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어떤 진리의 생명 있는 씨를 버리고 안전할 수 없다. 십자가를 피하려고 애쓰지 말라.
만일 우리가 의의 태양이신 주님에게서 아무런 빛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든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접촉할 수 없으며, 이 생명과 빛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1SM 299.2)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은 자[하나님과 사단]의 종이”(롬6:16) 된다.
만일 우리가 분노나, 정욕이나, 탐심이나, 증오나, 이기심이나, 그 외의 어떤 다른 죄를 품으면, 우리는 죄의 종이 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6:24). 만일 우리가 죄를 섬기면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충동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자신이 원하는 세상 욕심]은 성령을 거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육체[세상죄악의몸]를 대적[세상마귀의 유혹]하여 끊임없는 투쟁을 계속하신다.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 되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인간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되고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라고 부르짖는다.(MYP 114.3)
높은 부르심-그리스도의 종으로 헤아림[부르심의 선택함]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사단의 종[영원한 멸망의 길]으로 헤아림을 받든지, 그것은 우리가 택[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행하는[믿음의 순종과 불순종] 것으로써, 우리가 누구를 섬기기로 선택했는지를 보여주게 된다....(OHC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