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늘맨, 제늘맨/금문교에 반달이 정말 좋습네요/보셔요/목포 선창가에서/코리언 제늘맨께서 사 자시던/큼직한 꽃게도 인주빛으로 잘/바닷가에 산더미로 삶아 놓았네요/한개 집어 자셔요. 제늘맨, 제늘맨” -서정주의 시 ‘샌프란시스코’ 중에서.
미국 여행중 샌프란시스코에 들른 미당(未堂)에겐 바닷가재집 앞에서 ‘제늘맨’을 외치는 호객꾼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여정을 담은 기행문에서 미당은 영어가 너무 오랫동안 객지를 떠돌아 다니는 바람에 모서리가 닳아서 ‘젠틀맨’은 간데없고 ‘제늘맨’만 남았나보다라고 썼다.
해방직후 지방 소도시의 어느 중학교엔 ‘자갈’이라는 별명을 가진 영어선생님이 있었다. 일본 산세이도(三省堂)판 콘사이스 몇권을 씹어 먹으며 공부했다는 전설이 내려 올 정도로 이름난 영어선생님이었다. 그러나 그 실력파 선생님도 일제시대에 배운 발음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지 언제나 ‘더 걸’을 ‘자 갈’로 발음하곤 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자갈’이었다.
굳이 세계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경없는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자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영어는 이제 어느 특정국가의 언어가 아니라 ‘만국공용의 국제어’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가 서울대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제적인 의사소통에 필수적인 언어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를 손꼽고 있다. 영어의 필요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통계다.
요즘 거국적으로 불기 시작한 영어회화 교육열풍도 이같은 세태의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다. 영어를 듣고 말할줄 모르면 ‘불출’이라도 되는 것처럼 영어회화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그 열풍은 중·고등학교가 아니라 유치원에까지 불어닥치고 있다.
이른바 조기교육이니 뭐니해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엔 이미 늦는다는 조바심이 유치원에까지 영어회화 열풍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말, 우리글도 제대로 익히기 전에 영어회화부터 먼저 배우는 웃지못할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영어를 현지발음처럼 구사해야 한다는 구실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혀를 늘리는 수술까지 유행하고 있다는 기막힌 소문까지 들린다. 영어의 ‘R’를 제대로 발음하자면 혀가 길어야 한대나 어쩐대나, 아직 뼈도 채 굳지 않은 어린 아이들의 혀를 길게 늘려내는 위험한 수술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영어열풍도 단순한 열풍수준이 아니라 광풍에 가깝다.
그런가 하면 영어회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문법이나 독해력, 작문실력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무모한 주장까지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영어회화만 놓고 보면 문법같은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외국과 접촉하는 것은 직접 대면하는 경우보다는 우편이나 문서를 통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뿐 아니라 하다못해 상품소개서 하나를 읽고 주문을 하는데도 독해력과 작문능력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회화만 잘 하면 그만이라는 논리는 자칫 외국어교육의 근본을 그르치는 위험한 주장이다.
이른바 그 현지발음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외국인이 현지발음을 흉내낸다고 ‘제늘맨’ 운운했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은 미국어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두루 쓰이는 국제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배워야 할 영어발음은 서투른 현지발음이 아니라 사전에 실려 있는 발음부호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는 소설가 복거일(卜鉅一)에 따르면 아시아권에서 영어를 쓰는 인구만 해도 인도, 필리핀 등 3억5천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을 합친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그들은 결코 ‘젠틀맨’을 ‘제늘맨’으로 발음하지 않는다. ‘자 갈’도 곤란하지만 외국인이 ‘제늘맨’ 운운하는 것은 더 꼴불견이다. 현지발음을 핑계로 멀쩡한 혀까지 수술하는 세태가 걱정돼서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