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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나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쓰는 글이라서 다소 시간상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내용은 한글자도 빼지도 더하지도 않고 사실을 이야기하렵니다
진실이 아닌 허구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 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식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년 전 쯤의 일입니다
나는 중고 기계를 사서 파는 장삿꾼 입니다
지금도 그일을 하고있읍니다
꽤 수입도 좋은편이였읍니다
주로 공단이나 개인 공장에서 중고 기계를 사서 청계천 황학동에 있는 중고가게에 파는 일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돈만 버는 재미에 푹 빠져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우연히 현대 건설 주식이 13000 원씩이였는 데 8000 원으로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읍니다
그 때에는 주식에 대하여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읍니다
그저 초 우량주인 현대 건설이 13000 원에서 8000 원으로 떨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식에 뛰어들었읍니다
그 무렵에는 사이버로 하는 홈트레이딩 주식 매매가 아니고 수기로 매수 매도 전표를 써서 주문을 하거나 증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매수 매도 주문을 내곤했었읍니다
현대 건설 주식을 8000 원씩 10000주를 샀읍니다
그 것이 내가 맨 처음으로 시작한 주식 매매였읍니다
단순히 13000 원씩하던 주식이 8000 원으로 떨어졌으니 8000 원에 사 두면 언제인가는 13000 원으로 되돌아가면
10000 주를 매수 했으니 5000 만원을 손쉽게 벌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계산이였읍니다
그런데 웬걸요 내가 8000 원씩 현대 건설 주식이 6000 원으로 떨어졌읍니다
그러더니 다시 4000 원으로 떨어지데요
그리고 다시 6000 원으로 오르더군요
본전이 8000 원이니 6000 원에는 절대 팔지 못하겠더라구요
다시 4000 원으로 , 또 다시 6000 원으로 내리고 오르기를 서너번 했읍니다
그 때 나는 손절매라는 주식용어를 알게 되었읍니다
주식을 산 가격보다 싸게 손해를 보면서 싸게 팔아버리는 것을 손절 혹은 손절매라고합니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 현대건설 주식을 어떻게 얼마에 손절매를 했는지 기억조차 없읍니다
아마, 20대 1로 감자 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겁이나서 500 원인가 800 원에 팔았던 것으로 기억 됩니다
내가 8000 원씩 주고 산 현대건설 주식 20주를 빼앗고 1주를 준다는 뉴스였읍니다
그 무렵 컴퓨터 열풍이 일어나고 드디어 홈트레이딩 매매가 생겨나고 그때 부터 주로 컴퓨터로 주식을 매매하기 시작했읍니다
나는 지방의 여러 공단을 돌아다니며 중고 기계를 사러 다녔기 때문에 집사람이 하루 온종일 컴을 켜 놓고 내 전화를 기다려야했읍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서 나는 일을 하다가 말고 틈틈히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 집사람에게 주식 시세를 묻곤하였읍니다
점 점 손실이 늘어나고 나는 신경이 예민해져 갔읍니다
일도 손에 않잡히고 운전을 하고 돌아 다니면서도 주식 생각만하기 시작했읍니다
어쩌다가 집사람이 내 전화를 받지 못하면 전화기에 대고 갖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더니 점 점 내 히스테리는 폭팔하고 또 폭팔했읍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밥상을 집어던지기 시작했고 집사람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읍니다
내 전화를 늦게 받거나 ,, 내가 주식시세를 물었을 때 즉시 대답을 못할 때 마다 폭력을 휘둘렀읍니다
내가 밥상을 집어 던지면 거실 벽에는 김치 쪼가리가 달라 붙고 시뻘건 김칫 국물이 살인 현장의 핏자욱처럼 얼룩지기 시작했읍니다
내 미치광이 고함소리에 아이들은 겁에 질려 바들 바들 떨고 나는 서서히 미쳐가고있었읍니다
주식을 사고 파는 게 아니라 주식에 빠져들고있었읍니다
아내는 내가 무서워 마실도 다니지 못하고 하루내내 컴을켜 놓고 내 전화를 기다려야했읍니다
이미 손실은 눈덩이처럼 늘어나 있었읍니다
이미 손실액이 수억원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른 손실액을 만화해야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경제 신문에 나오는 주간 하락률 1위를 찿아 헤메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떨어졌으니 더 떨어지지 않고 오르면 더 많이 오른다는 판단에서 였습니다
하지만 사는 주식 마다 더욱 더 하락폭이 커져갔습니다
이제는 일이고 뭐고 컴퓨터 두 대를 마련해서 사이버 주식 매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들어 않아 새벽에 일어나서 다우 지수와 나스탁 지수를 체크하고 주식 시장이 개장하면 주식 시세를 관전하고 매매했습니다
컴 두 대를 켜 놓고 24시간 주식 공부를 했읍니다
주식 시장이 끝난 오후에는 거래소와 코스탁 2000 여개가 넘는 종목들의 차트를 보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공부를 하자 !
공부를 열심히 해서 주식에 대해서 통달을 하면 지금껏 손실난 거는 복구 될 거야 !
나는 정말 하루에 4시간만 자고 신문을 뒤적이고 컴퓨터에 매달렸습니다
배워서 이 세상에 있는 돈을 모조리 쓸어 담을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져 먹으니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정말 대학 입시 공부를 하듯 ,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처럼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컴퓨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다룰 줄도 모르고 그져 주식 창띄워서 검색하는 정도였습니다
어찌 어찌하다가 천리안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천리안에 가입을 하고 증권사랑방이라는 주식방에 가입하였습니다
주식 시장이 끝나면 모두들 들어와 주식에 대한 대화를 하곤했습니다
서로 정보교환도 하고 고수들은 대박주를 추천도하곤했습니다
방장은 상록수라는 닉네임의 40 대 남자였고 실제로 방을 운영하는 사람은 30대의 선영이라는 30대의 여자였습니다
방 식구는 약 200명 정도였으나 매일 드나드는 상시 멤버는 약 50 명정도였습니다
주식방의 남녀 비율은 여자가 더 많았던 거로 기억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자라는 닉네임의 남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늦은 밤 시간에 잠시 들러서 3개나 4개의 코스탁 종목을 추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였습니다
그 감자라는 고수가 추천한 종목들은 다음 날 모두 다 상한가로 마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맨 처음에는 방 식구들이 멍하니 그 고수의 추천주를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여러 날이 지나자 방식구들은 그 감자를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추천한 종목이 늘 상한가로 마감하였으니까요
어떤 종목은 오후 늦게 장 마감 직전까지도 마이너스에서 맴돌다가도 장 마감 10 여분을 앞두고 상한가로 직행하기도했읍니다
감자는증권방에서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감자가 추천한 종목을 사기만하면 곧 수익이 날것만 같았기 때문이였읍니다
나도 처음에는 하도 신기해서 어리둥절하다가 그 감자의 추천주를 사기로 결심했읍니다
드디어 내가 감자의 추천주를 사기로 한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감자는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5 종목 정도를 지난 밤에 증권방에 들러 추천하고 나갔습니다
아침 나절에 주식 시장이 개장을 하고 감자의 추천주 중에 이미 4종목은 개장하자마자 상한가에 올라있었습니다
상한가 매수 잔량이 수십만주 혹은 수백만주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상한가에 매수 주문을 해 봤자 사지 못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종목이 상한가가 풀리고 매도 잔량이 나왔습니다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얼른 10000주 매수주문을 냈습니다
그 종목이 바로 마인이라는 종목이였습니다
그 마인이라는 종목은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종목 아름이 바뀌었는 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미 상한가 6번을 연속으로 친 종목이였습니다
내가 매수 하자 마자 상한가는 계속 풀렸다 다시 상한가를 말아올리기를 여러번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대량거래가 터진 것 입니다
나는 당황하고 놀라서 감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감자는 연락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급해진 나는 방 식구중에 엑사라는 닉네임의 남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엑사도 내 전화를 받더니 자신도 초보인데 뭘 알겠냐고 하더군요
그렇게 허둥대는 동안 30분이 지나고 내가 상한가에 매수한 마인이라는 종목은 하한가에 꼿혀있었습니다
나는 좀 망설이다가 하한가에 매도 주문을 냈습니다
다행히 하한가에 매도 되었습니다
내가 하한가에 매도한 그 마인은 내가 하한가에 매도한 시점에서 연속 하한가를 3번 더 떨어지더군요
휴,,, 상한가에 사서 30분만에 하한가에 팔았으니 그때 당시 코스탁은 상한 하한 상승과 하락폭이 12% 였으니 나는 30 분만에 투자금의 24 % 손실을 본 것입니다
1400만원 손실이였습니다
나는 얼굴색이 시퍼래지고 숨이막혔습니다
거실을 대여섯 바퀴 뛰어서 돌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서야 호홉이 정상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큰 손실을 봤지만 그 마인 종목을 추천한 강원도 감자가 원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담해지고 대담해 지기 시작했읍니다
감자가 추천한 5종목중에 다른 것은 일찌감치 상한가에 올라가 있으니 내가 재수 없게 그중 한 종목을 사서 큰 손실이 났으니 다음번에는 잘 골라 사서 만회하면 될거라는
희망이 싹터오기 시작했읍니다
아자아자 힘내자 !!
나는 더욱 더 주식 공부에 몰두했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천리안 증권사랑방에 감자의 소식이 날아들었읍니다
감자가 계단에서 굴러 골절상을 입고 강릉 동인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읍니다
나는 지리적으로 원주근처에 살기도했고 내가 기동성이 있어 내가 자청해서 방 대표로 병문안을 가게 되었읍니다
주식장이 서지 않는 토요일 오후에 강릉에 도착했읍니다
동인병원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있는 꽃집에서 꽃다발을 한아름 사들고 3층인가에 병실을 찿았읍니다
감자는 나를 정말 반갑게 맞이하여주었읍니다
감자는 나보다 나이가 5살정도 아래의 젊은이였읍니다
명문대 출신이였고 회계사 출신이였던 그는 주식으로 깡통을 차다 싶이하다가 주식을 배워 지금은 수십억의 주식 보유자가 되었다고합니다
또한 국내에서 아주 유명한 주식 사이트인 씽크풀의 시샾이기도 했읍니다
병실과 복도에서 마주친 감자의 부인은 귀엽게 예뻤으며 국내에서 제일 명문여대의 메이 퀸출신이라는 소문이였읍니다
감자는 병문안 간 나에게 그동안 손실을 만회하려면 씨크롭이라는 주식을 사라고 추천했읍니다
지문인식 도어록 개발 생산 업체인데 , 지금은 관리대상 종목이지만 서울에 커다란 사옥이 있는데 그 사옥이 매각되고 관리대상 종목에서 벗어나면 지금 시세의 세배는 뛸거라고 귀뜸해주었읍니다
감자 자신도 씨크롭의 주식을 3십만주 보유하고 있으며 곧 대박이 나기를 기다리고있다고 했읍니다
그래서 나는 감자의 말대로 감자의 추천주인 씨크롭을 샀읍니다
하지만 씨크롭은 수삼년을 기다려도 오르지 않더군요
감자는 가끔 증권방에 나타나 여전히 오르지도 않는 씨크롭 타령을 하다가 소식이 없었읍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그 지긋지긋한 씨크롭을 손절매했읍니다
한번인가 감자는 코스탁의 삼우라는 종목을 추천했읍니다
나도 삼우를 샀지만 떨어지길래 겁이나서 팔았더니 팔고나니 곧바로 두번인가 연속으로 상한가를 가더군요
나는 지치고 지쳐서 바라만보고 있었읍니다
나는 코스탁의 다음 종목을 십만원에 매수했읍니다
최고가가 27만원가다가 십만원으로 떨어져 있었읍니다
십만원대에 3만주를 사 놓았으니 30 만원으로 다음이 오르면 내가 손실본 9억원을 만회하고도 남는 장사였읍니다
하지만 십만원에 산 코스탁의 다음은 삼십만원으로 오르기는 커녕 팔만원에서 오만원으로 오만원에서 다시 삼만원으로
단돈 만원대로 떨어지고 , 떨어지고 또 떨어졌읍니다
증권 사랑방 식구들은 모두다 힘들어하고있었읍니다
상시적으로 저녁 식사가 끝나는 7시 쯤에는 40 에서 50 명씩 대화방에서 주식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곤했읍니다
하지만 방 식구 거의 다가 손실이 나있다고 실토하고 있었읍니다
종로에 낙원상가 근처에서 몇 차례 정모를 가졌는 데 연령대는 20 살에서 60 세까지 다양했으며 거의 수도권이였으며 충청과 강원등 두루두루 있었읍니다
모두들 서로를 위로하고 언제인가는 주가가 올라 웃을 날이올거라고 가녀린 희망을 가지고 버티는 실정이였읍니다
게중에는 닉네임을 라면이라고 쓰는 젊은이가 있었읍니다
그는 언제나 증권방에 접속해 있었지만 언제나 말이 없이 관망만하다가 나가곤했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방식구 중 누군가가 님의 닉네임 이 어째서 라면이냐고 라면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광진구 광장동에 살고있으며 미혼이라고 말했읍니다
가을에 결혼할 여자가 있었는 데 남 녀 모두 결혼자금을 뫃아 두고있었다합니다
결혼식 날짜는 6개월정도 남아있었는 데 신부쪽에서 그 결혼자금을 주식에 투자해서 불려볼 요량으로 주식 투자를 했는데 , 그 결혼자금을 거의 다 날려버렸다고했읍니다
혼사는 미루어지면서 다툼이 생기고 깨져버렸다고했읍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돈이 없어 라면만 먹고 살아서 닉네임을 라면이라고 지었다고 했읍니다
그 라면의 고백에 방 식구 전체는 충격에 빠져 아무도 위로의 말조차 하질 못했읍니다
모두들 손실이 났다고만 말하지 수익이 났다고 말하는 식구는 별로 없었읍니다
그런데 느시라는 닉네임의 젊은이 만큼은 언제나 잠신감이 넘치고 늘 수익이 났다고 자랑을 하곤했읍니다
오늘은 무슨 종목을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아서 얼마의 수익이 났다고 자랑을 한곤했읍니다
하루는 이건창호라는 종목을 하한가에 사서 상한가에 팔아서 24%의 수익이 났다고했읍니다
그날 이건창호가 하한가를 가다가 갑자기 상한가로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느시를 오프라인에서 서너번 만난 적이 있었읍니다
신림동 어느 빌딩사무실에 인터넷 사업을 하고있었읍니다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키도 크고 미남이였으며 인격을 갖춘 촉망 받는 젊은이였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증권사랑방이 발칵뒤집어졌읍니다
오로라라는 닉네임의 여자 회원이 울고불고 야단이 났읍니다
정모에서 한번 본적이있는 매우 매력적이고 귀여운 처녀였읍니다
정모 2차에서 노래방을 갔었는데 가수 이정현의 아라비안풍의 춤을 추면서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르던 발랄한 아가씨였읍니다
선남 선녀인 그 청춘 남녀는 어느새 연인으로 발전해 있었읍1니다
그런데 미용실에서 일한다는 오로라가 몇년 동안 뫃아 두었던 수천만원을 느시가 빌려달라해서 빌려줬는데 그만 그돈을 느시가 주식투자로 날려버리고 난감해진 느시가 잠적해 버렸다고했읍니다
나중에 느시가 나타나서 수습이 됐다고는 소문이 있기는 했읍니다
언제나 고수인양 수익이 난다고 떠들어댔지만 결국 느시는 미쳐가고있었던 것 같았읍니다
그후로 부터는 느시는 닉네임을 바꾸어 증권방에 들어와 한 바탕 방분위기를 휘젓고 나가곤었했읍니다
그렇게 모두들 방식구들이 힘들어하고있던 어느날이였읍니다
밤 늦은시간이였읍니다
중계동에 산다는 초이스라는 닉네임의 여자가 별안간 소리쳤읍니다
" 어머 어머 저 것좀봐 비행기가 건물에 부딛혔네요!
텔레비 좀 보세요 ,불바다 이네요"
나는 얼른 텔레비젼을 켜 보았읍니다
미국에서 이른바 911 테러가 일어난 것이였읍니다
참 별에 별 일이 다있구나하고 모두들 밤이 늦어 잠자리에 들어 갔읍니다
911 테러는 증권방 사람들에게는 그저 해외 토픽 같은 주식과는 무관한 일인줄로만 알았읍니다
꿈에도 몰랐읍니다
헌데 그 911 테러는 다음 날 아침 부터 증권시장을 강타했읍니다
그렇지 않아도 손실이 나있어 힘들어하던 방식구들은 망연자실해서 바라만보고있었읍니다
나는 벌써 손실이 10억을 넘어가고있었읍니다
제정신이 아니였읍니다
미수를 써서 , 즉 1억 원의 계좌 잔고가 있으면 외상으로 3억원 어치 주식을 사는 제도가있읍니다
1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면 그 1억원어치의 주식을 담보로 2억어치의 주식을 더 살수있는 외상거래였읍니다
미수를 써서 마구 사고팔았읍니다
오르면 사고 ,, 떨어지면 무서워서 또 팔고 미친듯이 마우스를 눌러 댔읍니다
아침에 1억원이였던 잔고가 저녁에는 3000 만원으로 반에 반토막이되어갔읍니다
내가 미수를 써서 거래한 금액이 내가 가진돈의 3배이니 손실도 3배가 납니다
그래도 나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주식으로 떼돈을 번다고 큰소리치고 다녔읍니다
손가락 하나로 마우스를 눌러 떼돈을 번다고 자랑하고 다녔읍니다
사촌들에게도 주식을 하라고 권하고 다녔읍니다
세상에 할 일은 주식밖에 없다고 입에 게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했읍니다
어제는 천만원의 손실이 나도,,, 오늘은 100 만원 벌었다고 애들 데리고 외식을 하러 다녔읍니다
이제와 되돌아보면 나도 내 자신이 도저히 이해가 않갑니다
가슴이 아팠읍니다
정신적으로 아픈게 아니라 정말 가슴이 오그라들어 정말로 저려왔읍니다
물리적으로 가슴의 통증으로 숨조차 쉬기어려웠읍니다
잠을 자는지 마는지 음식은 먹는지 마는지 혼이 나가 있었읍니다
천리안의 증권사랑방은 주식 시세가 폭락하고 이런 저런 일로 유명 무실해지더니 없어져 버렸읍니다
나는 마음이 너무너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읍니다
그래서 찿아간 곳이 쳇팅 사이트인 하늘사랑의 주식방이였읍니다
그 주식방에서는 내가 고수였읍니다
이 종목 저 종목 추천해 주고 아는 척을 했읍니다
이미 내 계좌는 깡통이 다 되어가는 데 막대하게 수익이 난 것 처럼 떠뜰어 댔읍니다
내가 왜 그렇게 미친짓을 했는지 나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조차 쉴수 없었읍니다
마당에 하나 가득 쌓였던 전기 자재들은 벌써 다 팔아서 주식에 투자해서 전부 손실이 나 있었읍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건 중량물을 내리고 올리는 데 쓰는 5톤 카고크레인 뿐이였읍니다
광림 산업 제품이고 모델 명은 1256 이였읍니다
경기도 광주에 삼우 자동차 매매 쎈터에 전화해서 팔기로했읍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내 앞에 무릅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읍니다
현관을 나와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아래에서 무릅을 꿇고 내게 매달렸읍니다
" 아빠 그 크레인은 우리 밥줄 아닌가요?
제발 팔지 마세요 !"
아들의 애원은 내게 들리지 않았읍니다
이미 미쳐버린 나는 그 어리고 어린 아들 놈의 가슴을 발길로 걷어차버렸읍니다
크레인은 내 명의로 되어있으니 내 맘대로 팔아버리면 그만이였읍니다
상우 자동차에서 사장이 직접 크레인을 끌러왔읍니다
아들은 가슴을 쥐어 뜯으며 내 앞에 엎드려 울었읍니다
내 바짓가랭이를 부여잡고 통곡하였읍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읍니다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들리지 않았읍니다
열쇠를 내어주고 1500 만원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 돈도 몇 달을 버티지 못했읍니다
초봄이였읍니다
온 집안이 썰렁했읍니다
몸도 마음도 추웠읍니다
보일러 기름이 떨어져있었읍니다
계좌에는 130 만원이 달랑 남아있었읍니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읍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구나 느꼈읍니다
화물차에 휘발유 드럼통을 가득 싣고 증권회사 건물을 향해 달려 부딛혀 폭팔시키고 나도 죽고싶었읍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읍니다
다급해진 나는 예전에 내가 물건을 대어주던 청계천 사장에게 전화를 했읍니다
다음날로 달려와 주었읍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다시 재기하고있읍니다
다행히 내가 예전에 사두었던 약 10000 여평의 땅은 남아있었읍니다
1200 평 대지에 40평 주택도 남아있었읍니다
팔려고 내 놓았으나 부동산 불경기로 팔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동산도 팔렸으면 다 까먹었겠지요
동네 이장님을 찿아가 땅을 팔아달라고 애원했었읍니다
불행중 다행이였읍니다
또한 내 자존심에 빚지는 걸 싫어해서 단돈 만원도 빚이 없었읍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우량주를 사서 증권투자를 하면 빠지더라도 언제인가 회복이 되는거니까 우량주에 투자하라고 권합니다
현대건설 동아건설 하이닉스 해태제과 진로 모두 다 초 우량주였읍니다
하지만 어느종목은 20 대 1로 감자 당하고 어떤 종목은 아예 상장 폐지 되었읍니다
우량주는 빠지더라도 언제인가는 회복 된다는 데
주식을 사서 빠지고 가슴 앓이하고 1년 3년 십년 기달려 회복이 됐다고 합시다
그 짓거리를 왜 합니까?
십년을 기다려 원금 회복이 되어도 이미 물가는 두 배 이상 올라있지 않던가요?!
주식에서 손을 뗀 나는,,,,,두 다리 곧게 뻗고 잡니다
나는 지금 행복해 지고있읍니다
난 이제 껏 라면이 얼마나 맛난 음식인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읍니다
길가에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읍니다
텃밭에 코스 모스도 키우고 아삭이 고추도 심고 상추 쑥갓도 심었읍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키면 상쾌하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주식은 사는 순간부터 지옥입니다
악마와의 거래 입니다
내가 산 주식이 올라서 돈을 벌 때도 있겠지만 그 것은 순간이고,, 결국에는 손실을 보게 되어있읍니다
주식을 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아름다운 것들과 단절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 더 행복해지려고 주식을 시작하는데 말입니다
억만금을 준다해도 들에 핀 이름없는 들꽃과 바꾸지 않겠읍니다
나는 지금 주식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합니다
이 글을 다 읽어 주신 분들께 한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이 글을 퍼다가 여기 저기에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주식 시장이 폭락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데
이 글을 읽고 주식 대박의 환상을 가진 님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는 나와 같이 고통 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램에서 부탁드리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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