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사건, 그리고 남과 북, 1992년 시론
은호기 / 자유기고가 / 샌디에고 거주
• 해방후 가장 큰 간첩단
한국정부는 지난 10월 6일 어마어마한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였다. 이 사건을 수사해 온 안기부에 의하면, 북조선의 권력서열 22위이며 대남공작지도부 총책,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이선실(70세 가량)이 1980년. 초 부터 1990년 10월 까지 10여년 간 서울에 잠복하면서 장관급이 포함된 10여명의 대남공작원을 지휘, 재야(운동권)와 대학가의 주사파 좌익세력을 규합, 남로당 성격의 「남한 조선노 동당」을 결성, 활약해 왔다. 이 조직활동에 재야세력은 물론 학생, 종교인, 회사원, 교사, 군인, 언론인등 각계의 사람 395명이 연류되고 그 중 95명을 검거, 62명을 구속하고 나머지는 체포를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에 김낙중, 장기표씨등 재야의 대표급 인사들이 관계되어 있어 그 사건의 비중이 1958년의 진보당 사건에 버금가고 있으며, 400여명이 수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 후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내용이나 규모에 있어서 국민들이 가히 놀랄만한 사건이다.
안기부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런데도 놀라기보다는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앞서는 것 같다. 그간의 수많은 간첩단 사건에 이 골이 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어딘가 알맹이가 빠지고 앞뒤가 뒤바뀐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북조선의 거물급 이선실을 비롯 10여명의 남파 공작원 가운데 한사람도 검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이선실 여인은 10여년 동안 버젓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면서 안기부의 사찰대상인 문익환목사, 장기표씨 등을 만났으며, 민중당 창당에도 깊숙히 개입했는가 하면 재야단체들과도 관계를 맺어왔는데도 안기부의 사찰망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또한 북조선의 거물급 남파 간첩단 10여명 '전원'이 '무사히' 한국땅을 벗어난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 질 것이며, 그들이 빠져나간지 2년이 지난 지금에야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는 것은 시간이 너무 흐른감이 없지 않다. 지난 1987년 말 대통령선거 때의 KAL기 폭파사건의 범인 체포에서 보인 '신 속과 정확성'이 이 사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김낙중씨와 장기표씨등은 적어도 그들의 말과 글에 따른다면, 북조선의 추종자들은 아니다. 그들도 여느 민족운동가들과 같이 북조선을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철저히 인식하고 있으며, 북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민족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기는 하되, 그렇다고 북조선의 공산주의 체제를 가지고 통일할려는 혁명론자들은 아니다. 그들은 진보적 개혁론자들이며, 오랫동안의 재야활동을 청산하고 정당을 합법적으로 만들어 제도권 정치판으로 뛰어든 '제도권 정치인'에 속한다 할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목적적으로 간첩단에 끼어들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말려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안기부가 본래의 목적대로 정치사찰보다 애초부터 방첩활동에 충실하였다면 사전에, 적어도 초기에 막을 수 있었을 터이며, 국가안보와 국민보호라는 점에서 당연한 임무인 것이다. 아무래도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한 책임은 당연히 안기부에 돌아간다 하겠다.
북조선은 아직도 혁명을 고집하는가
예상했던데로 북조선은 조국평화통일 위원회의 성명을 통하여 잘라 부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조선의 자작극'이라 몰아부치고 있다. 북조선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북조선은 7• 4공동성명에 입각한 연방제 통일안을 개발, 이제까지 꾸준히 '고려연방제 통일안' 을 밀고 왔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위에 남과 북의 상이한 정치체제와 정부를 그대로 인정한 채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연방정부를 평화적으로 구성, 통일을 이룩하자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이번에 안기부가 발표한 사건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하겠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남한의 조선노동당' 결성은 남한의 공산화를 위한 혁명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을 보면, 혁명가들이라기 보다는 평화적 통일운동가들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혁명로선을 분명히 스스로 밝히고 있는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사노맹) 같은 단체를 외면하고 합법운동가들에게 접근한 북조선의 입장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안기부 발표가 사실이라면, 평화통일을 부르짖는 북조 선이 평화통일을 부르짖는 남한의 민족운동세력을 한꺼번에 '작살'낸 꼴이어서 북조선의 논리를 의심 할 수 밖에 없다.
간첩활동만 해도 그렇다. 첩보활동이란 어느 나라에서나 공식 • 비공식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국가 기본업무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특히 남과 북이 날카롭게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 북 다같이 첩보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상대방으로 부터 정보를 빼낼려면은 집권세력 내부에 침투하는 것이 상식이며 또한 효과적이다. 그런데도 국가 기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보가 철저히 차단 되어 있는 재야 민족운동가들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첩보의 논리에도 어긋난다.
안기부의 발표가 옳다면 북조선의 그간의 논리와 주장이 거짓이며, 북조선의 반박이 옳다면, 안기부의 발표가 거짓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정부는 그간에 북조선의 이중성을 기회있을 때마다 말하여 왔다. 북조선의 연방제 통일안을 비롯한 평화공세는 기실 폭력혁명(적화통일)을 감추 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 21청화대 습격 기도사건, 아웅산사건,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통혁당 사건 등을 예로들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 점에서 미국이 북조선을 국제테러국가라고 규정하는 논리와 맞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북조선은 이번 사건에 과학적으로 대처 함으로써 통일의 목적과 수단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진상은 꼭 밝혀져야 한다
이번 사건의 기본 연결고리는 이선실이며, 대부분 황인호의 진술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남파된 일이 있는 이선실이 빌미를 제공하고 월북한 사실이 있는 황인호가 이번 사건수사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듯 하다.
장독대 밑에서 큰 액수의 미국돈이 나왔다. 뒤뜰에서 권총을 찾아냈다 등은 증거보강이라는 지엽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민중당이라는 합법정당도 지난 번 총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해서 해산 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겨우 인원400여명 (안기부 발표는 395명)으로 중부 지역당, 경인 지역당, 호남 지역당, 영남 지역당 등을 포괄 하는 '남한의 조선노동당'을 만들었다는 것은 어딘가 논리가 허전하다.
남북기본합의서 및 이에 따른 3개 부속합의서가 채택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통일의 앞날이 밝은 이 때에 이러한 사건이 터졌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을 뿐더러 불행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번의 사건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에 따라서라도 그 진상이 꼭 밝혀져야 한다.
으레 '간첩단'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사건이 어물어물 넘어갔던 지난 날과는 달라야 하며, 북조선도 남한의 일방적인 조작이라고 잘라 부인만 하지 말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에 협조하여야 한다.
대통령 선거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 국가보안법의 폐지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점, 따라서 안기부의 기능과 업무가 재검토되고 있다는 점등을 들어 이번 사건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층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아웅산사건, 대한항공기 폭파사건등을 들어 북조선을 비난하는 층도 적지 않다.
이번 간첩단 사건은 기본적으로 이선실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다른 사건과는 달리 북조선은 대응 하기가 좋으리라 본다. 설혹 이선실이 이 사건과는 관련없이 달리 남파된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에 따른 다소의 불이익이 초래된다 하더라도 진상을 밝히는 데에 과학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이 선실이 실존인물이라면,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따라 법적증언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렇지 않고 종전의 방식대로 대응한다면, 양쪽이 짜고 간다' 라는 불신을 면기 어려울 것이다.
통일은 화해를 기반으로 하며, 화해는 불신을 없애는 것으로 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깝고 귀한 생명이 분단상황으로 인하여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199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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