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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자본주의에 종속되는 국민주권
― 코스피 상승과 민주주의 위기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최근 코스피 상승을 두고 정부와 언론은 “한국 경제 회복의 신호”, “미래 성장 기대의 반영”이라고 평가한다. 코스피 4000, 5000을 넘어 8000 시대까지 거론되면서 증시는 마치 국가 경쟁력의 상징처럼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코스피 상승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한국 경제 전체의 건강성을 반영한다기보다, 특정 산업과 금융 유동성 중심으로 형성된 매우 편중된 상승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금융시장 팽창이 단순한 경제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국민의 노후와 생존 구조 자체가 금융시장에 연결되는 ‘연금 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역시 점차 자산시장 안정 논리에 종속되기 시작하고 있다.
외국인 중심 시장에서 ‘연금 금융시장’으로
2020년 코로나 위기 직후만 해도 한국 증시는 외국인 자금 흐름에 거의 절대적으로 좌우됐다. 외국인이 대규모 순매도에 나서면 코스피는 급락했고 환율은 폭등했다.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성과 금융 취약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시장 구조는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이 수십조 원 규모로 순매도해도 시장은 예상보다 견조하게 버틴다. 때로는 외국인 매도 속에서도 지수가 상승한다.
핵심 원인은 국내 자금의 금융시장 편입 확대다. 개인 투자자 자금,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자금, 상장지수펀드(ETF) 중심의 패시브 투자 자금(passive investment capital, 특정 기업을 적극적으로 분석·선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지수나 특정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도록 자동적으로 운용되는 자금)이 지속적으로 시장에 유입되면서 증시의 수급 구조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위기 당시 개인투자자의 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는 약 47조 원에 달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연금 자금과 상장지수펀드 중심의 기관성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특히 상장지수펀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9년 약 50조 원 수준에서 2025년에는 200조 원을 넘어섰다. 반도체·AI·미국 기술주 지수 추종 ETF에 자금이 집중되면서 시장 상승을 떠받치고 있다.
이는 국민의 노후 보장 체계 자체가 금융시장에 직접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은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공적 금융투자 기관 가운데 하나다. 국민연금기금 적립금 규모는 2025년 말 기준 약 1,213조 원 수준이고 세계 3위권 규모의 공적 연기금인데, 그 가운데 상당 비중이 국내외 주식시장에 투자된다.
퇴직연금 적립금 역시 400조 원을 넘어섰는데, 마찬가지이다. 특히 2022년 도입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가입자가 별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퇴직연금 자금이 자동으로 금융상품에 투자되도록 만든 제도다.
그 결과 과거 은행 예금 중심이던 퇴직연금이 ETF(상장지수펀드), TDF(목표시점형 연금펀드),주식형 펀드 같은 시장연동형 상품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오늘날 코스피 상승은 “부자들의 돈놀이”가 아니다. 국민 다수의 노후와 생존 구조 자체가 금융시장에 편입되는 새로운 체제 변화다.
노동자이면서 금융 투자자인 사회
산업화 시대 민주주의의 핵심 갈등은 노동과 자본 사이였다. 시민들은 임금, 고용 안정, 복지 확대, 노동권 보장에 민감했다. 정당과 정치 역시 분배와 계급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움직였다.
그러나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는 시민의 위치 자체가 달라진다.
오늘날 시민은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다. 퇴직연금 가입자이고 ETF 투자자이며 국민연금 수익률의 이해당사자이고 주택과 금융자산 보유자다.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금융 투자자가 된다. 이 구조에서는 자산가격 상승이 곧 생존 안정성과 연결된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불안해지고, 주가가 급락하면 노후 불안이 커진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은 더 이상 일부 재벌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ETF 수익률,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 퇴직연금 성과와 직접 연결된다. AI·반도체 호황이 발생하면 국민 상당수가 간접적인 자산 효과를 체감하게 된다. 이것이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자본시장과 시민의 이해관계가 점점 결합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민주주의의 우선순위 자체를 바꾸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과거 민주주의가 노동권 강화와 재벌 규제, 복지 확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금융화 사회에서는 점차 “시장 안정 유지”가 정치의 핵심 과제로 부상한다. 시장 충격이 곧 국민 다수의 노후 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코스피 상승의 허구성
그러나 현재의 코스피 상승은 한국 경제의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당 부분은 반도체 중심 초대형주 편중,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 과잉 유동성, 연금 자금과 ETF 자금 유입이 결합된 결과에 가깝다.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 수준이다. 여기에 일부 AI·반도체·방산·조선 대형주가 지수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내수기업, 지방 중소 제조업, 자영업 관련 기업, 건설·유통 업종 상당수는 장기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 현실 경제에서는 지방 상가 공실률 증가, 자영업 폐업 증가, 부동산 PF 부실 확대, 청년 실업 증가, 비정규직 확대, 실질임금 정체, 가계부채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즉 “지수는 오르는데 국민 삶은 더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코스피가 국민경제 전체보다 글로벌 자본 흐름과 반도체 사이클을 더 민감하게 반영하는 구조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 확대와 엔비디아 중심 반도체 수요 급증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기대를 끌어올렸다. 외국인 자금은 이들 종목에 집중 유입됐고, 그 결과 코스피 역시 상승했다.
그러나 반도체 수출 증가가 곧바로 자영업 매출 회복, 청년고용 안정, 지역경제 활성화, 중소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재의 코스피 상승은 “한국 경제 전체의 회복”이라기보다 글로벌 반도체 호황의 수혜에 더 가깝다.
유동성이 만든 금융시장
오늘날 세계 경제는 과잉유동성 체제 위에 놓여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은 경기침체 때마다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코로나 시기에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돈이 시장에 풀렸다.
그 결과 실물생산 증가보다 금융자산 가격 상승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국내총생산(GDP)의 핵심은 소비(C), 투자(I), 정부지출(G), 순수출(X-M)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민간소비 둔화, 내수 침체, 실질임금 정체, 가계부채 증가가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이 급등하는 것은 시중 유동성이 생산부문보다 자산시장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부동산 편중 경제, 연기금의 주식시장 의존 확대, 초저금리 이후 자산시장 과열이라는 구조적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식시장은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유동성과 기대심리에 의해 움직이는 비중이 커졌다.
AI 산업 기대감이 형성되면 실제 수익 이상으로 높은 PER이 부여되고 미래 기대수익이 선반영되며 주가가 급등한다. 그러나 정작 서민들의 소비 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결국 금융자산 보유 상위계층은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크게 받지만, 노동소득 중심 계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금융시장 상승이 오히려 자산불평등을 확대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동학개미의 승리”라는 신화
언론은 종종 “동학개미의 승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 손익 구조는 훨씬 불균형적이다.
최근 국내 증권사 분석에 따르면 상당수 개인투자자들이 수익을 기록했지만, 실제 수익은 반도체·초대형 우량주 투자자 중심으로 집중됐다.
수익 상위 종목은 대부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한미반도체 같은 대형 제조업이었다. 반면 카카오, 2차전지 테마주, 바이오주, 중소형 성장주에 투자한 개인들은 여전히 손실 상태인 경우가 많다.
개인투자자 내부 양극화도 심각하다. 고령층은 우량주 장기보유, 큰 투자 원금, 안정적 자산 운용을 통해 높은 수익을 얻는 반면, 청년층은 신용거래, 레버리지 ETF, 테마주, 단기매매 비중이 높아 손실 위험이 훨씬 크다. 현재의 코스피 상승은 “모두가 돈 버는 장세”가 아니다.
소수 초대형 반도체 기업이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으며, 상당수 개인은 지수 상승의 실질적 수혜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외국인이 차익실현에 나서는 동안 개인이 추격매수와 신용융자를 확대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과거 금융버블 말기에도 자주 나타났던 위험 신호다.
시장을 두려워하는 민주주의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와 민주주의 자체가 점점 자산시장 논리에 종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국 정치가 부동산 가격에 인질 잡혀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이제 여기에 주식시장까지 추가되고 있다.
코스피가 급락하면 퇴직연금 수익률이 악화되고, 국민연금 운용 성과가 흔들리며,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정치권은 다시 유동성 공급 압력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정치는 노동권 강화, 공공성 확대, 불평등 완화, 복지 확대보다 오히려 증시 안정, 금리 인하, 반도체 산업 지원, 유동성 공급, 자산시장 방어에 더 민감해진다.
대표적 사례가 금융투자소득세 논란이다. 자본소득 과세 형평성을 위한 제도조차 “코스피 충격” 논리 앞에서 반복적으로 후퇴했다. 금융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조차 시장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변화는 국민주권 자체가 금융시장 논리에 종속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재벌과 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시민 다수와 어느 정도 분리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의 연금과 ETF 자금이 시장에 직접 연결된다.
국민주권의 금융시장 종속
시장이 오르면 안도하고, 시장이 떨어지면 불안해진다. 그 순간 구조개혁은 단순한 재벌 개혁이 아니라 자신의 연금 수익률을 위협하는 문제처럼 인식될 위험이 생긴다. 이것이 금융화된 사회가 민주주의를 보수화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단순히 부자가 돼서 보수화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노후와 생존이 자산시장에 묶일수록 체제 안정과 자산가격 유지를 우선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금융 투자자가 된 순간 정치적 이해관계 자체가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은 코스피 8000 시대의 위험을 단순히 버블 여부로 이해한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위험은 따로 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점점 “주식시장 상승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후는 연금 수익률에 묶이고, 연금은 ETF에 묶이며, ETF는 반도체·AI 대기업에 집중된다. 그 결과 재벌 의존, 금융시장 의존, 유동성 의존, 자산가격 의존이 동시에 심화된다. 이 구조에서는 주식시장 하락 자체가 정치적 공포가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점점 시장 안정과 자산가격 방어 중심으로 재편된다. 주가지수 상승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금융시장 상승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 역시 이러한 흐름을 단기적 정치 성과 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코스피 상승 자체를 경제 성공의 상징처럼 내세우며, 주가 상승을 국정 지지율과 직결시키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증시가 오르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홍보하고, 반대로 시장이 흔들리면 즉각적인 부양책과 유동성 공급 압력이 반복된다.
정부·여당, 코스피 8000의 진짜 위험을 극복해야
그러나 주가지수 상승이 곧 국민 삶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자영업 폐업 증가, 청년고용 불안, 지방경제 침체, 실질임금 정체, 가계부채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코스피가 상승해도 다수 시민은 생활의 안정감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구조적 개혁보다 단기적인 자산시장 부양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AI·대기업 중심 성장전략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도, 노동소득 확대나 내수 기반 강화, 지역경제 회복, 공공복지 확충 같은 실물경제 대책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특히 금융투자소득세 유예나 부동산 규제 완화처럼 자산시장 충격을 우려한 정책 후퇴가 반복되는 것은 현재 정치권이 얼마나 시장 눈치에 종속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가 장기적 산업 구조 개혁과 사회 불평등 완화보다 “시장 하락을 막는 것” 자체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방식의 정치가 국민들에게도 “주가만 오르면 된다”는 착시를 심어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가 상승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유동성 공급과 자산가격 부양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금융 불균형과 자산 양극화를 확대한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주가부양을 통해 지지율을 유지하려 할수록 한국 사회는 더욱 금융시장 의존적 구조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실물경제를 중심에 두지 못하고 자산시장 관리에 매달리는 순간, 민주주의 역시 점점 금융시장 안정 장치로 변질될 위험이 커진다.
진정 중요한 것은 노동소득 증가, 내수 회복, 중소기업 생존, 청년고용 안정, 지역경제 활성화, 가계부채 완화 같은 실물경제 지표다. 주가지수가 아무리 상승해도 다수 국민의 삶이 불안정하다면 그것은 건강한 성장이라 보기 어렵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마주한 가장 깊은 위기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