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 라파 / 마경훈 목사
본문 : 출애굽기 15장 22-26절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
상처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막는 담입니다.
인도네시아 에디 목사님이 길거리 한 불량아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의 얼굴이 분노로 가득차더니 “그 하나님 내가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불량아가 되었고, 그 상처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은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이 아픔의 연속인 이유는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사랑을 받아드리기 힘듭니다. 손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반가워서 손을 덥석 잡으면 그 것이 아픔이 됩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관계에서 방어적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힘들어집니다. 자기보호를 위하여 방어적이 됩니다.
우리들은 너무나 자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내가 의도하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내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상처는 자꾸만 늘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참 걷다가 피곤함을 느낀 할머니가 “영감, 나 좀 업어줄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업어주기 싫었지만 나중에 들을 잔소리가 겁이 나 할머니를 업어주었습니다. 업혀 가던 할머니는 조금 미안했던지 “나, 무겁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럼, 무겁지!”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할머니가 “왜?”하고 되묻자 할아버지는 “머리는 돌덩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할멈, 다리가 아파. 나 좀 업어 주라.” 할머니가 갈 때의 일도 있고 해서 할아버지를 업어주었습니다. 이에 미안한 할아버지가 “나, 무겁지?”하면 자기를 따라할 것 같아서 “나, 가볍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가볍지!”라며 “머리는 비었지, 입은 싸지, 허파엔 바람만 잔뜩 들었으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땅도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성호(이름) 중에 ‘여호와 라파’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호와 라파’라는 이름은 ‘나는 너희의 의사인 주’, 혹은 ‘나는 너희를 치유하는 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치유자이십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횡단하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흘간 물을 찾지 못해서 고통을 당하다가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그곳에 물이 있어서 마셔보니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라’라는 지명의 뜻은 ‘쓰다’, ‘괴롭다’라는 뜻입니다. 그 지명 그대로 물을 마셔보니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 일로 백성들은 모세를 대하여 원망합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들은 모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곧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모세가 하나님의 응답대로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쓴물이 치료되어 단물로 변했습니다.
이 사건 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주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하나님 자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치료하는 여호와, 의사이신 하나님에 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무엇을 치유하십니까?
하나님께는 치료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요약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을 치유하십니다.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그 말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들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이 같아야 섞일 수 있고 본질이 다르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되면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하는 순간 사람들의 영은 죽게 되었고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병든 정도가 아니라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물을 치료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의 영을 치료하십니다. 요5:25에 보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살아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영이 치유된다는 말씀입니다.
2)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의 한 여인을 찾아가셨습니다. 그 여인은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남편이 다섯이었는데 그 사람들과 헤어졌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함께 살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그 남자는 유부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여인을 주님께서는 찾아가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찾아가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그 여인과 대화를 통해서 진정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고, 주님을 만난 여인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 온 동네를 다니며 주님을 소개했고, 치유 받은 한 여인의 헌신으로 온 동네가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육체의 질병 치유를 부정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병든 자를 치유하시는 치유자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치유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도 성자 하나님도 성령 하나님도 치유자이십니다. 사도들도 치유사역자들이었고, 막 16장에 보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표적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질병이 치유 된 사례들이 많습니다.
4) 가정을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보면 큰 구원의 역사가 있을 때 가족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홍수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때 하나님은 노아만 구원 받게 하시지 않고 노아의 가족들을 함께 구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의 관영함으로 멸망할 때도 보면 롯과 롯의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리고가 무너질 때도 구원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입니까? 기생 라합과 라합의 가족들입니다. 성경 행 16장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의 간수를 구원한 일이 있는데 그 때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가정이 치유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변하면 그가 가는 곳이 변하고, 그가 하는 일이 변하고, 그가 속한 공동체가 변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파괴가 심각한 이 시대에 진정으로 가정을 살리고 치료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5) 환경을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만 치유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도 치유하십니다. 본문에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했던 환경을 치유하신 것입니다. 성경 사 43:19에 보면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환경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왕하 2장에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첫 번째 행하신 이적은 여리고의 물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여리고의 물이 좋지 않아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여리고가 농사를 짓기에 환경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물을 고치시고 물이 고쳐지니 농사를 짓는 환경이 좋아져서 토산이 익게 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환경도 고쳐주실 것입니다.
6) 국가를 치유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게 되면 국가적으로 안정이 되고 건강할 때가 있었고, 국가적으로 병들고 불안정한 때가 있었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이 건강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좋을 때는 국가도 건강했고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병들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면 국가적으로도 병들고 불안정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병든 국가도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신앙이 좋았던 왕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국가적으로 가장 건강하고 왕성하던 시기입니다. 반대로 극악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에는 국가적인 고통이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민족이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실제로 자랑할만한 역사가 별로 없습니다. 늘 주변 국가들로부터 침략을 당했고 괴로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엄청나게 큰 축복을 받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딱 한 가지를 말하라면 하나님의 치유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무엇으로 치유하십니까?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구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치유하시는데도 여러 가지 도구들과 치료약이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치유하십니다.
몸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은 가장 강력한 치료약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란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치유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상처들은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고 치유 됩니다. 그러나 큰 상처는 치유하지 않으면 세월이 지나면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그래서 큰 상처는 수술을 하거나 약을 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이 보혈은 영적인 치유약입니다.
이 세상이 가진 상처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 많은 상처들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율법의 저주’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죄의 삯’입니다.
율법의 저주와 죄의 삯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약이 있다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성경 갈 3:1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신 이유가 우리 믿는 자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또 성경 롬 6:23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죄의 삯을 치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세상이 고장 나서 치유가 필요하게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죄를 도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마다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을 살려내시고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고치신 환자 중에는 친히 손을 데셔서 치유하신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되었습니다.
한번은 몇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몇 마디 말씀만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은 중풍병자는 치유되어 침상을 들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성경 잠 4:22에서는 “그것은(말씀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에 건강이 됨이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부흥 집회를 인도할 때 하나님은 말씀에 은혜를 주셔서 설교를 듣는 사람들 가운데 병든 사람이 치유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을 지배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치료되고, 말씀이 단체를 장악하면 말씀의 능력으로 단체가 치유 되고, 말씀이 한 민족의 가치관을 지배하면 민족이 치료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성령으로 치유하십니다.
성령은 치유의 영이십니다. 성경 창 1:2에 보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세상을 성령께서 품으시니혼돈이 질서로, 공허가 충만으로, 흑암이 빛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이라 성령이 역사하면 치유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경 고전 12장에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가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성경 행 10:38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눌린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기계에 전기가 차단되면 기게는 능력을 상실합니다. 고장 난 기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기계에 전기를 공급하면 고장 난 기계나 다름없던 기계가 치료되고 살아납니다. 성령이 없는 인생은 고장 난 기계와 같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기계가 치유되고 살아나듯이 인생이 살아나고 치유되는 것입니다.
자동차에는 2만 여개의 부속품이 있는데 그 부속품들이 대부분 무쇠덩어리들입니다. 만약 윤활유가 없다면 무쇠덩어리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윤활유가 있기 때문에 상처 없이 무리 없이 2만개가 넘는 무쇠덩어리들이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윤활유의 역할을 성령님서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일하시는 대인관계, 성령이 일하시는 가정생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생활, 사회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4) 거룩한 사람들로 치유하십니다.
우상숭배를 하던 사람들 때문에 영적인 질병과 죽음 상태에 있던 가나안 땅에 거룩한 백성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가니 그 땅이 치유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게 되면 병든 역사가 치유 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출현했습니다. 사사시대를 보십시오.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 하니 땅이 병들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우시는 특별한 사람들, 사사들이 일어나니 그 땅이 치유 되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악귀 들렸던 사울이 치유되었습니다. 사울이 치유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수금이 좋았기 때문일까요? 메이커 수금이라 사울이 치유 되었을까요? 아니면 다윗의 수금 타는 실력이 탁월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악기를 탁월하게 잘 다루지만 치유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다윗의 존재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치유가 흘러갈 수 있는 그런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는 해적의 나라였습니다. 어느 날 해적들이 영국 서해안에 살던 패트릭이라는 경건한 사람을 잡아갔습니다. 그 결과 해적의 땅 아일랜드는 패트릭이라는 경건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음화 되기 시작했으며 해적의 땅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땅으로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존재들로 살아가면 우리가 가는 곳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가정도, 환경도, 회사도, 지역도, 국가도 살아나고 치유됩니다.
5) 사랑으로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영적인 죽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강권하심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치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치유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나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그 사람에게 치유가 일어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치유의 능력이 주님의 사랑을 통해서 그에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가정을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밀한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한 학교에 말버릇이 좋지 않은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말끝마다 “제기랄”이 붙어다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대뜸 어머니 하는 말 “제기랄, 그놈이 무슨 짓을 했어요?”
그래서 심리학자 셀(Sell)은 “우리 몸은 우리 부모 곁을 떠나지만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사티어(Satir)라는 사람은 “가정은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다. 건강한 가정에서 자존감 높은 건강한 자녀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상처를 받았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로 나와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병원이 필요치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병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상처받은 사람들은 영적 병원인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영국 황실 아카데미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피터 구르퍼라고 하는 사람은 한번은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일생 소원인 스트라디벨리우스라는 사람이 만든 바이올린을 연주해 보기를 원했습니다. 마침내 이 분이 258년 전에 스트라디벨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을 가지고 핀란드에 가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흥분한 가운데 스트라디벨리우스의 바이올린을 안고서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 바이올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실망 가운데 있는 그에게 런던의 악기를 손질하는 기사가 "내가 그 악기를 고쳐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기사가 다시 악기를 잘 만져서 감쪽같이 고쳐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친 바이올린을 가지고 연주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서 큰 찬사를 받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개인의 상처, 가정의 상처, 국가의 상처 등 어떤 상처가 되었든 치료하여 더 좋은 상태로 돌려놓으실 수 있는 창조주이십니다. 마치 나아만의 문둥병이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므로 더 좋은 피부를 갖게 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고 더 좋은 상태로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