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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종 락
현재 미국 대통령을 통칭하는 ‘오바마’는 내가 예전에 가장 즐겨 사용하던 건배사의 축약어다. ‘오바마’ 건배사는 각 글자마다 담고 있는 의미가 누가 들어도 부담이 가지 않은 아주 기분 좋은 덕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석한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바람직한 건배사 용어다. 또한 오바마란 서두의 글자가 나의 姓과 같아서 친척 아우의 이름을 부르는 느낌마저 들어 친근감을 느꼈다. 이런 이유로 자연히 건배사 중에서 가장 많이 애용한 나의 브랜드 건배사였다.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평범한 말로 구성된 ‘오바마’ 건배사에는 아주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다. 건배사의 정도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배사의 교과서이며 이름에 걸맞게 건배사 중에서도 대통령급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당초 오바마 건배사는 아래의 첫 번째 의미로 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부수적으로 두 번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첫 번째, 오바마(오로지,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모두 이루어져라.)는 모임 참석자들의 소망이 뜻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두 번째, 오바마는 ‘오바(즉 오버) 마(하지 마라)’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술자리에서 과음을 하여 실수를 하거나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또 세상살이에도 오바(오버)하는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니 그것을 경계하라는 뜻까지 품고 있다.
이런 좋은 뜻을 담고 있어 ‘오바마’ 건배사를 자주 사용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신선한 맛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때맞추어 오바마의 지지율도 하락세를 보이는 시점이었다. 하루는 회식자리에서 옆에 앉아 있던 B과장은 내가 오바마 건배사를 한 후 자리에 앉자, 요즘 ‘오바마의 지지율도 많이 하락하고 인기도 시들하던데’ 했다. 우스갯소리로 했지만 그동안 많이 애용하던 ‘오바마’ 건배사에 대한 반응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내심으로 나의 ‘오바마’ 건배사의 깊은 속뜻은 그게 아닌데 하면서도 나의 건배사도 새로 바꾸어야 할 시점이 왔구나 싶었다.
내가 다른 건배사를 몇 번 사용하며 새로운 건배사를 물색하고 있을 즈음, ‘오바마’ 건배사는 처음 출시될 때와 달리 ‘오빠 어쩌고저쩌고’ 하는 성희롱 조로 변질되어 세상에 유통되고 있었다. 저렇게 풀이하는 것이 아닌데 하는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좋은 뜻으로 풀이하지 않고 인기 위주로 오버 해석해서 부적절한 건배사를 사용하여 결국 사달이 났다. 2010년 당시 대한적십자사 K부총재가 공식석상에서 ‘오바마’ 건배사를 유흥주점에서나 해야 할 성희롱 조로 풀이하며 ‘오바마!’를 외친 것이다. 그 건배사 한마디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물의를 빚으며 사임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처음의 ‘오바마’ 건배사처럼 소망을 기원하는 의미로 풀이하고 ‘오바마!’라고 외쳤으면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단장으로서 안성맞춤 건배사로 찬사를 받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꿈보다는 해몽이라는 말이 있듯이, 건배사는 단어 풀이가 정말로 중요하다.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풀이하고 사용해야 빛도 발할 수 있고, 화도 부르지 않을 수 있음을 그 사례가 잘 말해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건배사도 ‘오바(오버) 마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셈이다. 건배사도 유행가처럼 유행을 많이 타고 새로운 건배사가 자꾸 생겨난다. 너무 오래 사용하면 식상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 그 때문에 새로운 건배사를 늘 생각하게 된다. 요즘 대기업에서는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건배사를 배우기 위해 학원까지 다닌다고 하니 그 위력은 정말로 대단하며 재미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건배사보다는 건배송이 더 좋아 보인다.
재직 당시 몇 해 동안 감사업무를 전담하는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한 해는 정기 감사 시즌이었다. 경남에 소재하는 P기관에 정기 감사를 해야 하는데 대상기관이 연달아 발생한 사고로 직장 분위기가 몹시 침체되어 있을 때라 감사를 가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다. 감사반장과 총무팀장인 나는 이번 감사를 지적 위주보다 격려 위주로 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주기로 마음을 모았다.
1일 차 감사가 끝나고 저녁에 직원 간담회가 있었다. 감사반장은 직원들을 격려하고 난 후 나에게 감사팀 전체를 대표하여 일선기관의 직원들을 위하여 건배송을 한번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난 의례적으로 하는 건배사보다는 건배송이 전달하는 의미도 크고 직원들의 사기진작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흔쾌히 건배송을 선사했다. 흘러간 옛 노래 한 소절과 가수 나훈아가 부른 ‘건배’라는 노래 몇 소절을 부르며 건배사를 대신했다. 참석자들의 반응은 꽤 좋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젊은 후배 직원은 내 가까이 다가와서 볼펜과 메모지를 내밀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감사관님! 여기에다 덕담 한마디 적어주시고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순간 난 ‘내가 인기 연예인도 아닌데?’ 하니까. 오늘 뜻깊은 자리에 참석한 의미로 사인을 꼭 받고 싶다고 했다. 내 건배송이 일선 직원의 마음에 가 닿았는지 모르지만, 난 볼펜을 받아들고 그 후배 직원을 위해 덕담의 글귀를 적은 후 서명을 하여 건네 준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것이 나의 건배송의 시초였다.
요즘 우리 사회는 금수저와 흙수저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여 많이 회자되고 있다. 세상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금수저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험한 세상을 살다 보면 부모님도 마음먹은 대로 금수저를 쉽게 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살이 아니던가. ‘건배’라는 노래는 이렇게 해법을 제시해 준다. ‘팔자라 거니 생각을 하고 가엾은 어머니 원망이랑 말어라!’ 빈잔에다 꿈을 채워 마셔 버리자. 술잔을 높이 들어라. 건배~ 건배!라고.
가사 내용이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큰 울림을 주는 것 같다. 흙수저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원망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원망 대신 차라리 빈잔에다 꿈을 채워 마신 후 열심히 노력하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큰 용기를 주는 건배사나 건배송이 있을까 싶다. 난 앞으로 모임 때 건배송을 한번 해보려고 연습 중이다. 모임 분위기도 띄우고 참석자들에게 좋은 덕담이 담긴 가사 내용을 담아 음률에 맞추어 부른다면 금상첨화 건배송이 되지 않을까 싶다.
건배사든 건배송이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때와 장소에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짧은 그 한마디이지만 자신의 ‘격’을 나타내 주며 분위기에도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난 요즘 앞으로 사용할 건배사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중이다. 이런 건배사도 생각하고 있다. 술잔에 술을 절반만 채우게 한 후 절반은 모임의 성격에 따라 축하, 단합 등의 의미를 술잔에 절반가량 채우게 하거나, 또는 각자의 소망을 절반쯤 채우게 한 후 건배제의를 한다면 술잔도 쉽게 비워지고 형식적이고 거창한 건배사 보다는 더 뜻이 깊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를 담는 행위 자체가 좋은 건배사를 대신해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2016.04.03.)
첫댓글 감사반장으로 지적보다 격려위주의 감사도 획기적인데 건배송까지 불러주어 수감기관의 직원이 감동받아 싸인까지 요청한일 대단합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격려의 글 감사합니다.
건배사에 대한 지식이 멍통인 저 정말 건배사에 대한 재미있는 재치와 품격을 배웠습니다. 저는 오바마 건배사도 처음 들어봅니다. 건배사의 중요성도 알았습니다. 때와 장소에 어떻한 건배사를 해야할지 누군가가 불러준다면 배낀 건배사도 써 먹겠습니다.
스마트폰에 건배사 어플도 있으니 다운받아 한번 사용해 보십시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반만 채우는 건배사, 의미가 깊네요. 넘치는 잔,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진심을 담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건배사가 좋은 건배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공감의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건배사 얘기 잘 읽었습니다. 분위기에 따라 건배송이 더 좋을때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단장님, 감사합니다. 멋진 건배송을 함께 한다면 분위기도 한결 무르익어 가리라 생각합니다.
건배사와 건배송에 대한 좋은 내용과 두분 대통령의 건배하시는 모습 인상깊게 잘 보았읍니다.감사드립니다.
전선생님, 좋은 격려의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과 장소 분위기에 맞는 건배사를 디자인해 내는 것은 일종의 창작입니다. 좋은 디자인 많이 창출하기 바랍니다.
의미있고 여운이 남는 건배사는 한편의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들며 그 사람의 품격을 높여 주는 것 같습니다.
개성있는 건배사는 그 사람의 아이콘 같기도 합니다. 격려의 글 감사합니다.
건배사에 대한 의미있고 재미난 건배사를 잘 정리한 글을 단숨에 잘 읽고 머리를 끄덕이며 마음에 간직하고 나갑니다.
언제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