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은 가볼수록 정감이 가는 고을이다. 그곳엔 대순으로 만든 맛난 요리가 있어서도 양반들이 즐겨 들던 감칠맛 나는 떡갈비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도 유홍준 청장이 쓴 대로 ‘창평들과 자미탄가에 흩뿌려진 정자와 원림’이 있어서도 더욱 아니다.
글:박상인(창경궁 궁궐지킴이) | 사진 : 김종기, 강성철(사진가), 낭만, 구자춘 | 기획, 편집 : 구자춘
@김종기
담양이 정감이 가는 이유는 언제 와서 봐도 서슬 푸른 대숲과 민초를 위한 역사 생태유산인 《관방제림》이 있고 거기에다 금상첨화로 나를 잡아당기는, 거리에 올곧고 반듯 하라고 일러주는 저 거리마다 도열해서 반겨주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고장 담양을 들을 때마다 내가 시골 산골 중고등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내 고장의 가로수가 생각나서가 아니라 형편상 도화지며 그림물감 등을 준비하지 못해 정말 소가 무판(도살장)에 끌려들어 가듯 싫은 미술 시간 때문이라는 걸 늦게 깨달았다.
@Meindert Hobbema
그때 미술 교과서는 당시로선 보기드믄 유일한 천연색 그림이 있었고 다른 책보다는 좀 큰 4. 6배판으로 된 두꺼운 종이로 만든 책인데 그 미술 책 어느 한 쪽에 실린 그림이 이곳 담양에 올 때마다 생각난다. 서양 작가가 그린 작품인데 그 사람 이름은 옛날에 잊어버렸지만 바로 그 그림, 원근법 설명을 하려는 장면 그림이 실물로 여기에서 보게 된다는 것을 늦게 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네덜란드 화가 홉베마(Meindert Hobbema)의 작품, 《미델하르니스의 마을 길(The Avenue at Middelharnis)》이었다.
@구자춘
그래 지금 담양읍을 중심으로 타지로 나가는 길은 모두 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로 하여 원근법의 실체를 보여준다. 사다리꼴로 쭉 벋은 길 그리고 그 양가에 자로 잰 듯한 이등변 삼각형이랄까 시네마스코프 화면의 스크린 같은 구도. 더구나 대도시와는 다른 게, 비교적 한가한 도로가 더 나를 당긴다.
@낭만(현영찬)
우리는 가끔 고향의 서정을 이야기 때 텔레비전 화면에서나 계절을 미리 알리는 달력사진에서나 이따금 로맨틱한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젊은 주인공들이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띠며 자전거를 굴리며 이 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을 봤을 것이고 또는 날렵하고 반짝이는 새 승용차를 몰며 머플러 휘날리며, 휘파람 불며, 드라이브하는 그림을 봤다면 그 배경은 거의 이곳 담양의 어는 한 거리일 것이라고 단언해도 무방하다. 내 이야기는 그만큼 멋진 거리이고 아름다운 거리이고 알려진 거리란 뜻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답사 일정에도 들었지만 읍내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이 있는 순창으로 나가는 24번 국도와 15번, 29번 국도변이 그야말로 쭉쭉 빵빵 가로수 절경의 백미이다.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언제쯤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확실한 기록은 아직 못 봤다. 아마도 1960년대쯤 공원이나 가로수로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담양의 명물 메타세콰이어는 대략 1972년에 내무부 가로수 조성사업 시범 지역으로 지정되어 당시 3~4년생의 묘목을 심었다고 이곳 관계자는 증언한다.
눈여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나무는 그야말로 콩나물처럼 잘 자라는 나무다. 내가 사는 아파트 건설 준공이 1980. 5월인데 당시에 단지 내 화단에 심은 이 나무가 30년이 덜된 지금 12층 높이 와 키 겨루기 자랑은 하고 있으니 헛말은 아닌 것 같다.
당초에는 1년에 거의 1m이상씩 쭉쭉 자라고 우리 눈에 낯설고 좀 희귀한 고가의 식물로 보여 졌기에 꺾꽂이하기 위해 남몰래 밤새 가지를 잘라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담양군 경찰서장도 밤에 이 나무에 손댔다가 들켜서 망신을 당했다는 현대판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담양천변 역사 있는 관방제림이 이 고장 사람들의 어머니 품과 같이 포근히 싸주는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라면, 사방으로 길 따라 퍼져나간 가로의 숲길은 이곳 사람들이 기상과 꿈과 희망을 주는, 젊은이들의 자전거 타기 와 드라이브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담양군에서는 매년 이 숲 거리에서 ‘가로수 걷기 대회’와 ‘가로수 음악회’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대 숲 ‘죽녹원(竹綠園)’ 과 연계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진 ‘죽향제(竹鄕祭)’도 매년 열어 문화 공간으로서 활용은 물론 지역 경제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강성철(사진가)
그렇다면 오늘날 저 아름다운 메타세콰이어 숲 거리가 심어놓기만 하고 혼자 저절로 저렇게 자랐을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저 숲이 오늘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2003년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상을 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눈물겨운 사랑과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
1차로 담양~보촌 사이 국도 확장 계획으로 한창 젊고 멋진 가로수를 베어버린다는 것이 알려지자 시민 단체들은 물론 외지에서 온 뜻 있는 분들이 호소와 항쟁으로 위기를 겨우 면했다. 남산리~학동구간 1km에 이르는 30년생 608 그루 메타세콰이어를 모두 베어낸다는 계획을 반대해, 상행선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그 위쪽에 새로 도로를 내어 하행선으로 쓰기로 타협해, 부득이 40여 그루는 희생되고 마무리 된 것이다.
단언하건대 담양~순창 간 24번 국도나 담양읍 석당에서 금성면 원율리 길 5km 구간을 한번이라도 달려 본 사람이라면, 왕복 2차선 양가에 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의 사열을 한번이라도 받아 본 사람이라면, 그는 평생 잊은 수 없는 추억 한 가지를 간직하게 될 것이다. 어느 계절이고 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지만 나의 경우 지금 이때쯤 연한 연둣빛이 나는 초봄의 이 길을 제일로 친다.
@구자춘
차제에 담양의 가로 숲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숨은 은인 한 분, 가로수 지킴이 한 분을 소개한다. 지금은 정년퇴임하고 현직엔 없지만 가로수가 낫자루 만할 때부터 담양군에 근무해오던 딸깍발이 하위직 공무원있었다. 그는 이 고장의 명물로 자타가 공인한 사람이다. 깡마르고 꼬장꼬장한 외모그대로 대단히 직분에 충실한 관계로 악명이 높아 위해하려는 힘 있는 자들의 밀고와 투서가 잇따른 충직 공무원 표상이 된 분이라고 한다. 일화를 들자면, 교통사고가 나서 가로수가 상처를 입으면 경찰서와 행적을 끝까지 추적하여 나무 치료비를 변상시켰으며 그뿐만 아니라 군수나 서장이 새로 부임하면 제일먼저 직접 찾아가 "예로부터 이곳 담양의 관방제림은 부사가 부임직 후 사재를 털어 관리해온 것이 이곳의 전통이니 당연히 군수 님께서도 관방제림과 가로수 관리기금을 헌납하시라"고 했다니.
그분은 그렇게 모은 기금에 자기의 사재를 더해 성심껏 숲 관리를 해서 오늘의 저 가로수를 이룩해 냈고 관방제림을 유지 해오게 한 숨은 공로자요, 진정 본받아야 할 지킴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이곳 담양사람들은 가로수 길을 차로 달릴 때는 다른 길보다 서행에 조심운전을 하고 있단다.
오늘이 저 아름다운 숲길은 그렇게 이루어진 숲이다. 우리가 궁궐을 걸을 때 옛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그들의 들리지 않는 음성을 듣는 것처럼, 부디 이 길을 지나다닐 때 한번이라도 이런 분들을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타세콰이어》는 어떤 나무일까? 처음에는 이름 부르기조차 헷갈렸다. 메타세콰이어는 영어로는 Dawn Redwood, 일본에서는 수송(水松), 중국에서는 수삼(水衫)이라고 불린다. 우선 메타(meta)는 ‘뒤’ 혹은 ‘후’라는 뜻이다.
@세콰이어 나무/http://sysnet.ucsd.edu
세콰이어(Sequoia)는 원래 미국 원주민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라고 한다. 미국 록키 산맥 동부 L. A 쪽 깊은 산에는 우람한 나무들이 많고, 그들 나무가 Red wood,나 Big Tree불리는 근연종(近緣種)인데 말 그대로 키가 100m을 넘고 가슴둘레가 8-9m나 되는 거목으로 인디언들은 자기 추장 이름을 그 나무에 대입한 것이다. 뒤를 뜻하는 메타란 현재를 기준으로 할 때는 앞이란 뜻일 터. 메타세콰이어란 이름은 세콰이어보다도 이전에 있던 나무이란 뜻이다.
@메타세쿼이아 화석/http://www.paleoportal.org
적어도 1945년 전까지는 실물은 없고 화석으로만 남았던 종인데, 그래도 옛날 번성하던 생물이기에 1941년 일본인 학자 미끼(三木)이란 사람이 작명을 해 두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멸종하고 화석으로만 보이던 그 나무가 1945년 중국 사천성 양자강 유역인 마도계(磨刀溪)라는 곳에서 산림공무원 왕전(王戰)이란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학계에 알려지고 급기야 세상에 알려 저서 퍼지게 됐다고 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커다란 유전적인 변화 없이 그대로 대를 거듭하여 오늘에 있게 된 생물들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이에 속하는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은행나무나, 소철 등인데, 여기에 메타세콰이어 한 종이 더 추가 된 살아있는 화석이 됐다. 약 2억 5000만 년 전 공룡이 득실 되던 신생대 쥐라기부터 있던 것이 용케도 오늘날까지 그대로 변함없이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메타세콰이어는 습기가 많고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데, 어릴 때 즉 30~40m까지는 훌쩍 자라고 공해에도 비교적 강하며 겨울에 낙엽이 져서 겨울에 도로 빙판을 막는데도 유용하니 가로수로서는 적격인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가구, 목재, 펄프 용 그리고 건축재로 쓰인다고 하나 우리나라에서 아직 도입된 지가 일천하여 이용도가 적어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메타세쿼이아 잎/김종기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은 겉모습이 비슷한 낙우송(落羽松)과 구별해야 한다. 둘 다 잎이 깃털처럼 생겼지만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메타쎄콰이어는 잎이 마주나고 줄기가 울퉁불퉁한 편이고 뿌리 근처땅위가 별다른 이상이 없이 평평하다. 반면에 낙우송은 잎이 어긋나고 줄기가 둥글고 줄기 땅 가까이 공기뿌리가 불쑥불쑥 솟아 나오고, 물가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 차이다.
그런데!!! 창경궁 홍화문 양쪽 궁장(宮墻) 안에 키를 자랑하던 100여 그루가 2004년 봄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리고 2005년 봄 이 자리에 소나무를 새로 심었다. 물론 복원 연간 계획에 따른 외래 수종 제거 방침의 일환이라지만 허전한 마음 숨길 수 없었다. 분명히 외래 수종이란 죄목이 베어진 이유였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종묘에서 관덕교라는 일본 냄새나는 구름다리를 건너 창경궁에 들면 만나는 곳, 화장실 앞에 그 우람하던 플라타너스도 함께 같은 날 사라졌다. 한동안 이곳을 휴식 터로 삼는 노인들로부터 험한 말과 항의를 받았지만 지금 그 자리엔 늙은 느티나무 몇 그루가 몸살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가끔은 무엇이 보존이고 보전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강성철(사진가)
어찌됐든 담양 메타세콰이어 거리 숲은 이웃한 관방제림과 죽림원의 대숲과 함께 일종의 생태 띠를 이루는 연결 고리로서 중요성이 크며 누가 뭐라 해도 이 고장 사람들과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정서적, 시각적으로 매력 있는 매우 고맙고 소중한 숲이요, 이 시대 사람들이 새로 만든 전통 생태 문화유산이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지금 모습 그대로 오래도록 자리하길 바란다.
그래도 못 다한 말~ 혹시 담양에 개인적으로 들을 기회가 있으면 담양읍 옛 죽물 박물관 근처에 있는 이곳의 별미 《떡갈비》를 꼭 한번 드셔보길 권합니다. 담양은 원체 양반 고을인지라 고급 음식 소고기가 잘 팔린다고 합니다. 양반이 체신 머리 없게 갈비 뼈다귀를 뜯는 모양새가 좋지 않아 소갈비 살을 잘다져 양념한 후 먹기 좋게 고물 없는 인절미 크기 원형 혹은 정사각형으로 석쇠에 노릇노릇 구어 낸 것이 바로 떡갈비지요. 먹어 보지 않고는 그 맛을 이해할 수 없답니다. 참 떡 갈비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집에서는 갈비뼈를 아예 빼고 구워냈고, 또 한집은 굳이 갈비뼈를 새로 붙여 구웠는데, 나 같은 서민은 아무래도 뼈가 붙은 것이 갈비 먹는 느낌을 더해줬습니다. 다음 주에는 담양 식생 삼제 그 마지막으로 <대나무 이야기>을 전합니다.
첫댓글 어느세 이런자료까지.. 대~~단하십니다 수고하셔습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번개함 쳐서 담양 제대로 보러갈가욤... ㅎㅎㅎ
내도 떡갈비랑 죽순회 먹고싶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