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을 찾아서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윤재석
여행은 즐겁다. 오늘은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회원들이 문학기행을 떠나는 날이다, 해마다 갖는 행사이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고 느낄까,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며 기대가
된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며 삶의 재충전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오늘 문학기행은 조선시대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귀양지였던 다산초당을 찾기로 했다.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다산초당이 있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을 찾아 아침에 문우들과 함께 출발했다. 모두 시간 약속을 잘 지켜 약속시간에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4월의 아침이라서 시원하고
여행하기에는 날씨가 안성맞춤이었다. 복장은 원색차림이어서 생기발랄하고 활기차 보였다.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산하가 신록으로 접어들면서 푸른 숲을 이루고, 넓은 평야는 농사일로 분주했다. 6·25전쟁 이후 빈곤국가로 봄이면 먹을거리가 없어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세계 경제 대국이란 말은 듣고 있다. 우리 민족이 대단하고 영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어디든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보낸다. 탁
트인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바깥 풍경이 초록으로 다가왔다가 휙휙 지나간다.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서 머물 사이도 없이 지나쳐 버린다.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다. 만나면 헤어져야 한다는 이치가 적용되는 것인가? 지나고 나면 다시 만나지 못할 시간이니 아쉬움이 남는다. 강진군 도암면까지 더
빨리 가고 싶어서 지름길을 택했다. 산골길은 구불구불하여 어릴 적 내 살던 시골길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이 된듯하다. 우리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좋은 경치가 있어도 때가 되면 식사하면서 천천히 여유를 가지라는 말인 성싶다. 내가 생활하던 곳을 떠나면 길손이
된다. 도암면 예약한 식당을 찾았다. 식사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식단을 골라 식사를 했다. 오늘 같은 날 반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막걸리며
소주 등 기호에 골라 들었다. 나는 유리잔에 소주 한 잔을 붓고 거기에 맥주를 섞어 만든 소맥이 시원하고 짜릿해서 한 잔 했다.
다산박물관에 도착했다. 난감한
일이 생겼다. 월요일은 휴관하는 날이란다. 일요일 관광객을 위해 일하고 월요일은 쉬는 날이라는 설명이다. 다산박물관은 대지도 넓고 건물도
현대식으로 새로 지었다. 조경 사업은 많은 신경을 기울여 잔디밭이 잘 가꾸어졌다. 모정도 몇 군데 지어 놓아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편히 쉴 수
있었다.
다산초당을 찾아가는 길은
비포장도로를 거쳐 산 비탈길이었다. 자세한 이정표가 없어 조금 헤맸다. 이정표를 다시 정리했으면 싶었다. 앞에 다녀오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찾아갔다. 초당 가는 길로 들어서니 경사진 길이 나섰다. 경사는 점점 심해졌다. 산길은 더욱 울퉁불퉁하고, 길바닥에는 굵은 돌들이 초당을 찾은
손님들의 발길에 닳아서 반질반질 윤이 났다. 이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담아갈 수 있기에 이리도 험한 길을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걸까?
돌과 어우러진 나무뿌리도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서 매끈매끈하다. 비포장도로 산길이어서 비가 오면 패이고 유실되어 걷기에 불편했다. 그래도 조선 시대 실학의 대학자인 다산이 어떠한
환경에서 생활했는지 보고 느끼고 싶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유배생활에서 불후의 저서를 남긴 숭고한 정신과 마음가짐을
조금이라도 본받고 싶어서 이 초당을 찾으리라.
다산초당에 이르렀다. 초당이라
해서 옛날 시골집을 연상하고 왔는데 기와집이 나타났다. 관리하기에 편리한 기와집으로 바뀐 것이다. 경내는 청소를 해서 깨끗했다. 초당에서 맞은
맑은 바람이 이곳까지 오는 고달픔을 한 번에 앗아갔다. 초당에는 다산의 초상이 있었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백련사를 찾아가는 길이
있었다. 백련사를 찾아가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유배생활에 지친 다산은 바다를 보며 자연과 함께하면서 심신을 달랬으리라.
다산의 생애가 떠오른다. 다산은
1762년 영조 때 경기도 광주군 호부면 마현리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은 진주목사 정재원이며. 어머니는 해평 윤씨로 고산 윤선도의 집안이다.
당시 정치 상황에서 노론 벽파의 시파 타도에 몰려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두 번째 귀양지인 강진으로 온 다산은 윤박의 정자로 옮겨 다산정이라
이름하고 학문에 열중했다. 다산은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게 되면서 실학에 정진했다. 실학의 원류는 시조 격인 유형원에서 이원진. 이익.
정약용으로 이어져 왔다. 유형원은 전북 부안에서 실학의 연구서인 『반계수록』을 저술했다. 다산은 성호 이익의 실학을 본받아 경세를 연구했다.
다산의 대부분 업적은 귀양살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후진 양성에 정열을 기울여 많은 제자를 양성하기도 했다.
다산은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여유당전서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50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경세유표는 국가경영의
지표를 저술한 것이다. 왕도정치로 백성이 국가 구성, 운영의 근간이 되어야 했다. 목민심서는 목민관 지방수령이 지켜야할 지침을 밝힌 글이다.
흠흠신서는 지방관리들이 형사사건을 다룰 때 알아야 할 계몽서이다. 다산의 업적은 방대해서 이루 말할 수 없다. 유배 생활에 고달프고 어쩌면
자학의 시련을 안기도 했겠지만,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후세에 규범이 되는 저술을 남겼다. 훌륭한 그 정신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해가 서산에 기울고 있다. 뒷산
그림자가 초당을 덮는다. 앞뜰에 이름 모를 작은 새가 사람 사이를 오가고 있다. 여러 날 이곳 사람과 지낸 듯 두려움을 볼 수
없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오랜 귀양살이 세월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많은 업적을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어찌 존경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는 천천히 초당을 떠나 산길을
내려와 관광버스에 올랐다.
(2017.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