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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살이 중 아쉬운 것 하나.
지방 중소도시에 여건(시설) 좋은 영화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좋은(특히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부득불 서울 나들이를 해야만 한다. 오가는 시간이나 교통편을 감안하면 영화관 선정이나 시간대가 아무래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선을 고려하면 다행히도 최애 영화관(잠실 월드타워)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인데 일정이나 약속 여부, 귀향 시간에 따라 스크린을 택한다. 따라서 아이맥스(IMAX) 영화관은 물론이고 때론 월드타워의 '슈퍼플렉스'도 포기할 때가 많아 아쉽다.
잠실 월트타워 내의 영화관. 사정 상 아이맥스(IMAX) 대신 택한 스크린. 어마무시한 전면부, 측면 스피커의 위력이 빅스크린의 아쉬움을 대신한다.
이번 여름 최대 외화 블록버스터라는 두 영화를 하루에 섭렵한다. <스파이더 맨: 브랜뉴데이(Spider-Man: Brand New Day)>와 <오디세이(The Odyssey)>. 러닝 타임이 각각 145분, 그리고 172분. 막역한 후배 중 하나는 무리 아니겠느냐며 특히 <오디세이> 관람 중에 졸 수도 있을 거라며 염려를 전해왔다. 한창때(고등학생 시절이긴 하지만)는 하루에 세 편을 작파한 적이 있는 이 몸이시다. 염려 붙들어 매시라고라고라...라고 알려 주었겠지.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던 마눌은 <오디세이>에서 합류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에는 톰 홀랜드와 젠데이아(Zen-day-a)가 주연(주요) 배우로 출연한다. 두 사람은 <스파이더맨:홈 커밍>(2017)에 함께 출연, 인연을 맺은 후 연이어 후속 두 편에서까지 주연을 맡더니 기어이 올해 초(2026.1) 결혼하여 부부가 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한 두 블록버스터 영화의 촬영 시기도 비슷했다는 데 <오디세이>가 2025년 초, 중반, 그리고 <스파이더 맨>은 2025년 하반기에서 2026년 초까지라고 한다.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유니버설 픽처스) 촬영을 위해 스파이더 맨(컬럼비아, 마블/소니 픽처스) 제작자들이 최대한 톰과 젠데이아 두 사람의 일정을 배려해 주었다고. 놀란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은 톰 홀랜드는 연인(후일 와이프)인 젠다이아의 캐스팅도 은근슬쩍 들이밀었고 놀란 감독은 지혜의 여신 아테네(그리고 트로이의 아테네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 1인 2역) 역으로 젠다이아를 박아 넣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두 사람 모두 1996년 생. 나의 둘째 딸 로미도 같은 해에 태어났다.
<스파이더맨..> 속의 젠데이아와 톰홀랜드(위), <오디세이>의 톰(아래). 두 사람은 올해 초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영화의 저변에 깔린 주제는 '귀향(또는 귀환)'이다.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는 프리퀄(배우를 바꿔가며 '시즌'을 이어가는 스파이더맨은 전편前編 모두가 프리퀄 격이긴 하지만)인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에서 '큰엄마'인 메이 파커를 잃는다.
* 대한민국의 영화수입업자, 번역자들은 반성할 일이다. 아무리 번역(aunt)하기 나름이라지만 '이모'였던 메이가 언제부턴가는 '숙모'가 되더니 '노웨이홈'에서부터 '큰엄마'가 되었다.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큰엄마'가 맞다. 그녀는 큰아버지 벤 파커의 아내이기 때문. 피터를 자식같이 돌보고 아끼며 키우는 점에서는 '이모'가 한민족의 정서에 맞기는 하다만.
이모에서 숙모, 마침내 ‘큰엄마’가 된 메이 파커의 죽음.( <… 노웨이홈>의 한 장면)/"사람들은 네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이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단다."라는 명언을 남긴다.
자신의 실수로 그녀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주변의 지인들 기억 속에서 자신을 지우는 숙명을 택한다. <.. 브랜뉴데이>에서는 연인 MJ와 절친 네드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귀환) 피터 파커의 고뇌와 활약을 그린다. 틴에이저였던 피터와 MJ, 네드는 모두 22살 전후의 청년(MJ, 네드는 MIT 졸업반)이 되었다. 첨단의 화려한 CG와 경쾌한 대사 속에 빛나는 유머는 스파이더맨이 갖는 덕목이다.
프리퀄에서 피터가 MJ에게. 이웃들의 위험, 불행을 막기 위한 피터의 고통스런 선택의 순간.
그러더니 <…브랜뉴데이>에서 피터는 “나는 스파이더맨이고 동시에 피터 파커다!” 라며 그의 ’귀환‘을 알린다.
인문학 고전 <오디세이>의 주제어는 두말할 것도, 덧붙일 것도 없이 '귀향(Nostos)'이다. 영화 속에서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바로 '제우스의 법칙(Zeus's Law)', 즉 '환대의 법칙(크세니아 Xenia, Law of Hospitality)'이 그것. 놀란 감독은 '환대의 법칙'을 깨뜨리는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비극을 불러오는 핵심 장치로 연출했다. 트로이의 멸망, 그리고 구혼자들(suitors)로 들끓는 '이타카'의 위기 등이 이 환대의 법칙을 어겼기 때문인 것으로 그려냈다.
https://youtu.be/FKyf1ueDjl0?si=vqEhIGE0S77oUQtr
OST 중 하나인 <Zeus's Law>. 오디세우스의 영웅담을 전하는 가수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읊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박혀오는 트랙.
영화 거의 전편에 흐르는 "환대를 받고 싶다면,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If you wish to receive hospitality, you must show hospitality.)"는 메시지는 성경 속 예수의 메시지와도 완벽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오 7, 12/루카 6, 31)
(사도 바오로의 기록이라고 전해지는) 히브리서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리서 13, 2)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는 때로는 제우스 크세니오스(Zeus Xenios), 즉 ‘환대하는 제우스’라고 불렸다. 이 말은 ‘네가 맞는 손님 가운데 인간으로 변장한 제우스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네가 크세니아를 준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우스는 남루한 차림으로 너를 방문할 것이며, 만약 성심껏 대접하지 않으면 신의 벌이 내릴 것이라는 얘기다.(송원섭, 중앙일보, 2026.8. 2)
히브리서에서 바오로는 정확히 이 '제우스 크세니오스'를 짚어서 서한(letter)에 기록했는데 당시 헬리니즘 문화권의 정통 지식인이었던 그는 아마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듣거나 보았던 것이 거의 틀림이 없으렷다.
* 아시는가.
놀란 감독 본인은 무종교/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라고 알려져 있다. 부모의 영향으로 놀란과 삼(3) 형제 모두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인근 하이게이트(Highgate) 지역의 가톨릭계 초, 중, 고교를 다녔다. 당연히 가톨릭 분위기에 익숙했을 것인즉 실제 그의 작품 속에는 가톨릭 영성이 짙게 묻어나는 장면이 많다. 나의 두 딸 생각에 눈물 줄줄 흘리며 보았던, '사랑'이 주제였던 <인터스텔라>에서 더더욱.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적 영향은 '신앙심의 발로가 아니라, 자라면서 접했던 가톨릭 교육과 문화적 파편들이 주변에 흘러 다니며 형성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시기는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 말기인 기원전 13세기 경(청동기 시대)이다. 이것이 '맹인'이었다고 전해지는 천재 음유시인 호메로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지고 기록된 시기는 기원전 8세기 경(철기 시대). 그리스 알파벳(Alpha-Beta) 문자가 발명된 시기가 기원전 9-8세기라고 하니 문자가 발명되고 이로써 대서사시를 기록했던 시기가 얼추 비슷하다는 것이 경이롭다. 영화 속에서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에서 자행한 학살, 방화, (환대의 법칙) 파괴로 한 문명(청동기)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자책한다. 대사 속에 '청동기 시대(Bronze Age)'가 거론(내 기억이 맞다면)되는 것 또한 신기하다. 호메로스가 실제 인물이었는가 하는 문제와 그가 구술하고 이를 문자로 기록했다는 이가 복수였다는 설(說) 등은 고대 그리스 인문학에 무지하기 짝이 없는 내가 들먹일 일은 전혀 아니다. 성경의 <요한묵시록>(사도 요한이 나이 90세가 넘어 에페소 동굴에서 기록. 일설에는 눈먼 요한이 구술, 수행하던 제자가 문자로 기록했다고도 한다.)이나 <베드로 1,2서>(문맹인 베드로가 구술, 제자가 기록)가 후세에 전해진 과정도 호메로스의 그것들과 유사할 것이다.
서울대 김헌 교수의 <오뒷세이아> 2026년 완역판. 그는 최근 방송에서 고대 그리스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발음이 ‘오뒷세이아’라고 했다.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인류의 정신적 발전기라고 부른 '축의 시대(Axial Age)'는 대략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다. 이 시기에 세계의 네(4) 지역에서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탄생'했는데 유교와 도교, 힌두교와 불교, 유대교,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다.(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교양인, 2010, p.2) 약 800여 년의 기간을 축의 시대라고 칭한다면 호메로스가 <오디세이>를 읊은(또는 기록한) 기원전 8세기 경도 이에 포함될 수 있겠다. 기원전 6세기 이후의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의 뿌리는 온당, 호메로스가 될 수 있겠기 때문이겠지. 유대교(구약이 문자로 비로소 기록된 시기도 바빌론 유폐 시기인 기원전 6세기 경이다)와 그리스도교는 이들 그리스(헬레니즘 포함) 문화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상상할 수 있겠다.
카렌 암스트롱의 걸작 중 하나인 <축의 시대>. 80세가 넘은 그녀가 개정판을 낸다면 아마도 호메로스까지 그 시대를 넓힐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파이더맨>과는 달리 <오디세이>에는 여하한 CG가 없다. '저게 CG가 아니라고?' 놀라게 되는 장면조차 모두 실사(또는 실물 크기의 세트나 모형. 11미터 트로이 목마 조각, 18미터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 35미터 노르웨이산 실물 선박 개조가 그 예)란다. 실제 촬영 로케이션도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모로코 아이트벤하두(축구장 두 개 규모의 트로이 세트), 시칠리아 파비냐나 아일랜드의 산타 카테리나(이타카),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보이도킬리아 해변의 네스토르 동굴(외눈박이 괴물의 실제 그 동굴), 그리고 지중해 바다 위 등이다. 트로이 목마 안에서 그리스 병사들이 자신들이 배설한 분뇨와 차오른 바닷물에 익사하는 등의 고통받는 장면도 실제 그 안에 들어가서 촬영했을 정도로 놀란 감독의 리얼리즘 철학은 말 그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평균키 213센티의 거한들과 153센티의 멧데이먼 대역 여배우 데빈 달튼(촬영 당시 34세)
CG가 아닌 실제 세트나 현장에서의 촬영이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출처: Thread, ID: ‘muraipick‘)
<오디세이>의 음악을 맡은 이는 루드비히 고란손(Ludwig Goransson). <테넷>, <오펜하이머>에 이어 세 번째 놀란 감독과 합을 맞췄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적 분위기와 신비로움을 더하기 위해 전통 악기와 합창, 현대적인 사운드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완성했다.(The Guardian) 듣는이에 따라 호불호가 다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OST ‘Zeus’s Law’ 속의 웅혼한 울림으로 전해지는 단어들이 인상적이다.
(탕탕탕....)
A face(한 인간)
A fleet(한 함대)
A War (한 전쟁)
A Man (한 남자)
A Thought(한 생각)
A Trick (한 계략)....
https://youtu.be/PSrLog7hbmI?si=8XZ3CI5-7wlBhgjm
OST <Let’s go home>. 부하들을 독려하고 격려하며 험한 바닷길과 사선을 헤쳐가는 오디세우스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트랙.
https://youtu.be/rtSRE-cb3zE?si=G_lh7ItFP-jU-woQ
OST < When I'm home>. '제우스의 법칙'이 무너진 이타카 집(home)에서의 오디세우스의 심상이 전해 져 오는 듯.
https://youtu.be/s4ee2MxZfe4?si=UDaAceAUui3qhPpc
OST <The Odyssey Theme>.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온전히 전해져 오는 음악. 기타와 북소리, 몽환적이면서도 힘찬 코러스의 화음이 멋지다. 개취이겠지만. 강추.
사족 1.
<스파이더맨…>과 <오디세이>에서 톰 홀랜드(조상이 잉글랜드, 북아일랜드인. 본인의 노력으로 완벽한 뉴욕 퀸스(스파이더맨의 배경) 지역의 엑센트를 구사했다고)가 캐스팅된 사유에 대한 뇌피셜.
천방지축이나 정의롭고 순수. 무구한 틴에이저, 그리고 청년의 이미지(스파이더맨). 정신적으로는 정의롭고 반듯한 20세의 청년으로 성장했으나 여전히 완력으로는 소년기에 머물러 있는 연약한 아들 텔레마코스.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가 톰. 실제 그의 키는 170센티를 겨우(?, 이게 어디냐..) 넘는다고. 젠데이아(흑인 아빠와 백인 엄마 사이의 혼혈)는 178센티 정도라는 구만. 왕년의 톰 크루즈(170센티, 그러고 보니 그의 이름도 톰)와 니콜 키드먼(179-180센티) 커플의 재현.
걸인 행색으로 돌아온 아버지 오디세우스에게 아는 듯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Welcom home, stranger!"
스파이더맨에서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 암살자 집단 더 핸드(The hand)와 데미지 컨트롤(DODC)에서의 한판. 피터 파커 said, “Wow, it’s cooool!”.
사족 2.
<오디세이>의 고증 논란, ‘헬레나’, ‘아테네 여신’ 등 인종 문제 중심의 PC 주의 운운은 20세기로 돌아가서 치고 박고들 하실 것.
트로이 전쟁의 원인(영화에서는 아가멤논의 야욕이 원인이라고도 함)이 된 절세미녀 헬레나 역의 흑인 배우 루피타 뇽오(Lupita Nyong’o). 멕시코 출생의 케냐계 미국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