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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하여 세계의 식자·단체와의 행보〉
2023년 9월 29일
1957년 9월 8일, 제2대 회장 도다(戶田) 선생님은 「원수폭금지선언(原水爆禁止宣言)」을 발표. ‘유훈의 제일’로서 핵무기의 폐절을 청년에게 맡겼다. 이 선언이 창가학회(創價學會) 평화운동의 원점이다. 지금까지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세계 식자(識者)들과 핵무기 폐절에 관한 대화를 거듭해 왔다. 여기서는 신념을 공유하고 함께 행동한 식자·단체와의 행보를 소개한다.
저널리스트 커즌스 박사
우리가 최초의 불을 켜자
1945년 8월 18일, 미국 평론지 「Saturday Review」에 “현대인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라는 글이 실렸다. 집필한 사람은 30세의 젊은 편집장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 1915~1990) 씨. 그 속에서 이렇게 논했다.
“1945년 8월 6일로 인간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마츠다 센(松田銑) 번역〉
그는 핵무기(核武器)의 출현(出現)에 경종(警鐘)을 울리는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라고 표현한 것이다. 인류를 파멸(破滅)시킬 수 있는 핵시대의 도래(到來). 그러므로 ‘세계인으로서의 인간’을 향한 인간의 변혁(變革)을 호소했다.
1949년, 커즌스 씨는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원폭의 상흔(傷痕)이 남아 있는 거리를 시찰하고 피폭자의 취재를 거듭하며 원폭의 잔학성이 가슴에 머물렀다.
귀국 후, 핵무기 폐절 행동을 강화했다. 1955년, 원폭에 화상을 입은 ‘원폭처녀’ 25명의 미국에서의 치료 실현. 1963년에는 케네디(John F.Kennedy, 1917~1963) 대통령의 특사로서 소련(당시)의 흐루쇼프(Nikita Sergeevich Khrushchyov, 1894~1971) 수상과 만나 동서(東西)의 대화를 추진. 그해 미국 상원(上院)에서 부분적핵실험정지조약이 가결되자 케네디 대통령은 오랜 세월에 걸친 그의 평화를 향한 공헌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
1987년, 커즌스 씨는 이케다 선생님과 첫 만남을 새긴다. 세 번의 대화는 대담집(對談集) 『세계시민(世界市民)의 대화(對話)』로 결실을 맺었다.
미국의 양심으로 칭송받은 커즌스 씨는 “세계인의 양심(良心)의 불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그 최초의 불을 켜자.”라며 행동했다. 그 신념은 창가(創價)의 정신과 서로 깊이 울리고 있다.
퍼그워시회의 전 회장 스와미나탄 박사
우선 선제불사용의 법(法) 정비를
2005년 7월, 핵무기 폐절을 목표로 하는 과학자의 연대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의 연례대회가 히로시마(広島)에서 개최됐다.
회기(會期)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그 반환점이 되는 25일, 이 회의의 회장 망콤부.S.스와미나탄(Monkombu Sambasivan Swaminathan、1925~2023) 박사가 히로시마 이케다평화기념회관을 방문해, 기념 강연을 실시했다.
인도 농업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한 박사는 1960년대 쌀과 밀의 고수확품종의 개발·보급에 공헌해 농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식량상(世界食糧賞)’을 수상했다. 미국 「타임」지(誌)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아시아인 중 한 명”으로 박사를 선택했다.
박사는 강연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스텝(단계)이 있다며 그 첫 번째로 ‘핵무기의 선제불사용(先制不使用) 법(法)의 정비(整備)를 핵보유국에게 의무화하는 것’을 꼽았다.
박사가 이케다 선생님과 처음 대담한 것은 2002년 10월. ‘핵무기 폐절과 간디의 비폭력의 이상(理想)’ 등을 테마로 2시간 반에 걸쳐 대화를 나누고 대담집을 발간할 것을 약속했다.
4년 뒤인 2006년 4월 2일, 대담집 『녹색혁명(綠色革命)과 마음의 혁명』이 발간. 그 속에서 박사는 말했다.
“핵보유국이 최소한 해야 할 일은 핵의 ‘선제불사용정책’을 채용하고 엄수(嚴守)하는 것을 법으로 정(定)하는 것입니다. ‘선제공격’은 영원히 금지해야 합니다.”
IPPNW(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의) 공동창립자 라운 박사
무슨 일이든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1961년 미국 심장전문의 버나드 라운 박사는 인생의 큰 전기가 될 강연에 참가한다.
‘핵전쟁으로 인류는 2000년까지 사멸(死滅)할 수 있다’는 강연 내용에 충격을 받은 박사는 동료들과 협력해 핵무기로 인해 어떤 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지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 후, 박사는 교류가 있던 소련(당시)의 의사 예브게니 차조프(Yevgeniy Chazov, 1929~2021) 씨에게,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이야기를 나눌 것을 제안. 1980년 12월, 미국 의사 3명, 소련 의사 3명이 모여 대화의 장을 가졌다.
대화는 최초, 정치신조(政治信條)의 차이로 책상을 두드리고 호통을 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핵무기의 문제에 대해 끈기 강하게 논의해 3개월 후,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 IPPNW(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의, International Physicians for the Prevention of Nuclear War)가 탄생했다.
1985년, 박사는 IPPNW를 대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인류가 창조한 것은, 인류에 의해 컨트롤 될 수 있다.”<타시로(田城明) 아키라 번역>라고 기념 강연에서 말했다.
1987년 5월, SGI 등이 주최하는 <핵위협전(展)>이 모스크바에서 열려, 박사는 개막식에 달려왔다.
1989년 3월에는 이케다 선생님과 두 번째 회견에 임한다. 그 때 선생님은 박사의 기념 강연에 공감의 뜻을 전하며 “인간이 만들어낸 것은 무엇이든 반드시 인간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 NGO ICAN(핵무기폐절국제캠페인)
SGI에게 받은 지대한 계발
SGI와 ICAN<핵무기폐기국제캠페인(운동), 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의 만남은 2007년 10월. 틸만 러프(Tilman Ruff, 1955~) 당시 의장이 IPPNW(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의)의 가타오카 카츠코(片岡勝子) 일본지부 사무총장(당시)과 함께 창가학회(創價學會) 본부를 방문했다.
ICAN의 창립 모체는 IPPNW다. 회담에서는 청년을 중심으로 한 핵 폐절의 흐름을 강화하기 위해 ICAN으로부터 SGI에게 국제 파트너로서의 협력 요청이 있었다.
지금까지 SGI와 ICAN은 핵무기의 인도적(人道的) 영향(影響)에 관한 국제회의(國際會議)나 법적(法的) 규제(規制)의 교섭회의(交涉會議) 등에 참가. 또 단편 인터뷰 영상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 - 히로시마(広島)·나가사키(長崎) 여성들의 피폭체험(被爆體驗)’의 제작이나 <핵무기 없는 세계로의 연대(連帶) - 용기와 희망의 선택>전(展)의 제작·세계 순회 등도 협동해 왔다.
2015년에는 SGI와 ICAN 등이 협력해 30개국의 청년이 히로시마에 모여 ‘핵무기 폐절을 위한 세계청년서밋’을 열었다.
2017년 7월, 유엔본부에서 「핵무기금지조약(核武器禁止條約)」이 채택됐다. 국제회의에서 시민의 소리를 전달하는 등 이 조약 통과에 기여한 ICAN은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ICAN의 베아트리스 핀(Beatrice Fihn, 1982~) 사무국장(당시)은 말했다. “사람들이 포기할 뻔한 어려운 시대에 있어서도 SGI가 일어서는 에너지와 용기를 계속 발휘해 왔다는 사실에 많은 깨달음을 받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