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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젓가락
다음날 오후 3시.
도치씨는 은행대출을 받자마자 도암의 사무실로 내달렸다.
대출을 받자 도치씨의 머리속은 죽을 아내 보다 자신의 재혼상대를 결정할 생각으로 가득 찼다. 벌써 아내가 죽은 것처럼 착각했다.
이제 남은 건 내 남은 인생의 상대는 누구일까? 아니 누구를 선택해야할까? 먼저 우아영과 혜림을 찍었다.
그러나 도치씨는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좋다는 격언을 떠올리고 우아영이나 혜림이 아닌 다른 여자를 공상해봤다.
도치씨가 공상할 수 있는 모델은 당연히 요즘 뜨는 탤런트나 가수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탤런트 이름을 나열하려고 하자 얼굴이나 몸매는 기억나는데 이름은 알 듯 말 듯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지 그 애? 아 썅! 요즈음 머리가 왜 이리 먹통이야? 모두 마누라 때문이야. 드라마 속의 탤런트에 관심만 보여도 나를 얼마나 몰아 붙였어? 그러니 내가 여자탤런트 이름 기억할 여유가 있었겠어? 당연히 모르는 게 맞지. 허지만 이젠 탤런트 그림을 복사해서 지갑에 넣고 다녀도 누가 뭐랄 사람 없겠지. 아니야. 지갑엔 몇 장 못 넣어. 아예 스크랩북을 만들자. 내 인생의 새로운 짝을 찾는 기준표로 활용하려면 앨범 정도는 돼야지.”
도치씨는 문방구에 들러 작은 앨범을 하나 샀다. 족히 50명은 담을 수 있는 용량에 기록편의성이나 스크랩활용도가 아주 마음에 든 스마트앨범이었다. 도치씨는 스마트앨범을 크로스백에 집어넣고 거스름돈을 받으며 알바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분명히 도치씨는 윙크하는 기분으로 눈을 찡긋했는데 예쁘장한 알바는 도치씨의 윙크를 눈치 채지 못했다. 빤히 도치씨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 지카바이러스 걸렸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저씨 한쪽 눈이 이상해요. 꼭 병신 같아요.”
도치씨는 물건을 훔친 좀 도둑처럼 얼른 문방구를 뛰쳐나갔다. 미처 알바에게 욕해줄 틈도 없었다. 아니, 아니. 욕이 아니라 자신의 들뜬 심정을 몰라주는 알바가 야속했다. 지금 도치씨는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나는 콘도라 같은 기분인데 자신의 속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알바가 그래서 얄미웠다.
허지만 도치씨의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모두 도치씨를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며 도치씨는 도암의 사무실로 가는 인사동 네거리 모퉁이를 돌아섰다.
네거리를 돌아 서자마자 통통하고 탄력 붙은 엉덩이가 눈에 띄었다. 바로 눈앞에 걸어가는 여자의 엉덩이였다. 꼭 혜림의 엉덩이하고 닮았다. 도치씨는 혜림을 떠올렸다.
만약 내가 다른 여자하고 어떻게 되면 혜림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또 우아영은? 둘 다 미치고 팔짝 뛰겠지? 큭큭큭.
간밤에도 도치씨는 뜬눈으로 날을 샜다.
자야지자야지 마음 뿐,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상념들로 분주했다. 아내를 죽인다는 중압감이나 가책 때문이 아니었다.
포로수용소 같았던 결혼생활의 지난날과 아내 사망 후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설레임이 도치씨를 잠못들게 했던 것이다.
엉덩이를 흔들고 앞서 걸어가는 여자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지난밤의 상념들을 재정리하느라 무겁던 눈꺼풀의 취기도 싹 달아났다.
이제 곧.
경제권도 확보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자유에 만취된 도치씨에겐 앞서 걸어가는 여자의 엉덩이쯤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결혼 전 총각시절엔 그토록 장가간 친구가 부럽더니, 결혼생활이 깊어갈수록 노총각 싱글 친구들이 부러웠던 도치씨는 아직도 애가 없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내를 죽이려고 작정하기 이전엔 유모차에 탄 아기만 봐도 걸음을 멈추었고, 노란병아리가방매고 스툴버스 타는 아이들 보면 한숨만 쉬던 도치씨였다.
그러나 이젠 그런 모든 부러움이 축복으로 느껴졌다.
아내의 불륜도 떠져보면 축복이고, 불임도 축복이며, 도암을 만난 것도 축복이었다. 도치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도암의 말대로 옥황상제의 독애 때문이라고 믿었다.
도치씨는 크로스백에 든 오천만원다발을 한번 손끝으로 한번 만져 본 후 도암의 인생삼담실 문을 열었다.
도암이 반색했다.
“어서오시오 도치선생.”
“늦을 줄 알았죠?”
“아이구, 옥황상제님이 조금 전에 다녀가시면서 도치선생 엘리베이터 탔다고 일러 주던데. 정직한 놈이라고 잘 봐주라면서.”
“옥황상제님이 또 왔다 갔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시는데 뭘 그리 놀라요?”
“옥황상제님이 백수같아서요.”
“에이, 이사람. 옥황상제는 천궁天宮에서 예까지 오는데 0.3초 밖에 안 걸려. 그러니 틈만 나면 오시지.”
도암의 말을 수긍하며 도치씨가 말했다.
“아 그래서 도암도사님이 자리를 못 뜨시는 거군요. 불알에 곰팡이 끼는 이유가 맞네요.”
도암이 아랫도리 중앙에 손을 찔러 넣고, 손끝에 냄새를 묻혀 코로 맡아보며 말했다.
“흠, 오늘은 좀 더 심하네. 이제 열나흘 남았소?”
도치씨가 말했다.
“걱정마십시오. 이미 찍어 놨어요.”
“벌써? 어디요? 거기가?”
“그건 어떤 사람 때문에 말씀드릴 수가 없구요.”
“어떤 사람인데?”
“글쎄! 제가 도암도사님 모시고 잉어 체포하러 간다니까 질투 내는 사람인데요. 자기는 메기 잡으러 가서 맨 날 허탕 치는데 잉어가 웬 말이냐 대요.”
“저런 죽일 놈 봤나? 낚시라면 조선釣仙인 도치선생을 물로 보네? 내 이놈을 당장 옥황상제한테 보내 버릴까?”
괴목테이블 위에 놓였던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도암을 만류하며 도치씨가 말했다.
“이번 한번은 그냥 봐주세요. 몰라서 그런 건데요.”
도암이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도치씨에게 손바닥을 펴 보였다.
도치씨가 얼른 크로스백안에서 오천만원 돈 봉투를 꺼내 도암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도암이 흡족하게 말했다.
“제법 되네? 오만원짜리라서 그런가보지?”
“확인해 보세요.”
“옥황상제가 벌써 확인했는데 뭘 또 확인해보나?”
“네에?”
도치씨가 놀라 되물었다.
“도치선생이 은행에서 여기 오면서 여자 엉덩이 따라 온것도 아는데 그건 기본이지.”
도치씨가 더 놀랬다. 조금 전 인사동네거리를 돌아설 때 앞서가던 여자의 엉덩이를 따라 왔던 것까지 알고 있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란 것이다. 길가면 늘린 게 여자 엉덩이들이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도암은 도치씨가 건네 준 돈 봉투 속에 어제 써준 현금차용증을 네 겹으로 접어 넣은 후 붉은 실로 묶었다. 그 행위가 이상해서 도치씨가 물었다.
“뭐하세요?”
도암이 안경테 너머로 도치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옥황상제님한테 송달해야하잖나?”
“네에?”
“이걸 오늘밤 도치선생하고 땅에 묻는단 말이야. 그리고 그 위에 나무젓가락을 꽂아두는게여. 그리고 내일아침에 가서 파보면 알아. 꽂아 두었던 젓가락이 땅속에 들어가 있으면 옥황상제 내궁내시가 무사히 가져갔다는 증거야!”
“네에? 내궁내시는 또 뭡니까?”
“요새 말로 비서지. 자금비서.”
“아 네. 그렇군요. 신기합니다.”
“오늘밤 도치선생하고 함께 묻으러 감세. 낼 새벽엔 내가 좀 볼일이 있으니 도치선생이 직접 가서 파보시게. 잘 송달 됐나 안됐나 결과는 전화로 알려 주고.”
도치씨는 도암이 참 양심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오천만원중의 일부는 도암이 슬쩍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써준 오천만원현금차용증까지 함께 땅에 묻어버린다는 도암이야 말로 이 시대의 진실한 인생상담사라고 마음속으로 격찬했다.
도암이 괴목테이블 밑에서 칠보 함을 꺼내 도치씨 앞으로 밀며 말했다.
“그래 마누라 죽인 후 새장가는 바로 갈 거지?”
도치씨가 얼굴이 빨개지며 어물거렸다.
“아이고. 도암도사님! 장가 한번가면 됐지 또 가요? 천부당만부당. 이제 장가라면 진절머리가 납니다.”
“마누라 죽이고 혼자 산다고? 입에 침이나 발라.”
도치씨가 정색으로 말했다.
“입에 꿀을 발라도 참말입니다.”
도암은 도치씨를 빙그레 바라보며 찬찬히 일렀다.
“인명이 재천이라 죽을 사람은 당연히 죽어야겠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혼자 산다는 게 말이 되나? 좋은 세상에 또 언제 오겠나? 목숨 붙어 있을 때 후회 없이 사시게.”
자신의 속마음까지 편하게 해주는 도암의 자상함에 도치씨는 감개무량했다. 칠보상자의 뚜껑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런데 도사님. 이 상자가 꼭 보석함 같네요. 기분이 이상합니다.”
도암이 말했다.
“죽는 목숨이나 죽이는 팔자나 모두 축복 아니야? 죽는 목숨은 구질구질 고통 안 받고 죽어 행복이고, 죽이는 놈은 인생의 찰거머리 떼어냈으니 축복이재. 그래서 칠보 함에 넣었소. 왜? 불만인가?”
“아 아닙니다. 뜻을 알고 나니 홀가분합니다. 그런데요. 무슨 약이 이렇게 많습니까?”
칠보 함 뚜껑을 열어 본 도치씨가 입을 헤벌리고 물었다. 도암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석 달 치야.”
“네에? 이걸 90일 동안 먹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왜 짧나?”
“아니요 너무 길어서 그럽니다. 90일 동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겹게 매일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이 사람아. 아무리 마누라가 죽을죄를 지어 죽지만, 죽고 극락왕생해야 할 거 아니야? 저 세상 가서 살길 찾아 놓고 죽게 해야재? 올 때 10달에 비하면 갈 때 석 달은 엄청 빠른 게야!”
“아! 그렇군요?”
도치씨는 고개를 꺼덕였다. 찬바람에 서서히 말라 시드는 가을국화와 여름밤 태풍에 꺾인 장미의 참혹함을 비교연상 했다. 그래서 도암의 말이 극히 인간적이고 이치에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첫댓글 주인공 도치라는 인간 골때리내요,,
살생하는 자가 저는 살기를 바라고
탈렌트나하고 멋지게 사는 꿈을 꾸고있으니 요..?
네에? 도치씨만한 사람 어디있다구요?
고통 받을까봐 살살 죽이려는 도치씨마음을 그렇게 이해 못하세요?
얼마나 착한사람이에요?....ㅋㅋㅋ
도치는 세살먹은 놈 철따구도 없는 자네요..소설속이니까 봐주지
마누라죽이는 환상에 젖어 은행 대출 해가면서
환상속에 이쁜 여자들이나 그려보고 더구나 엘범 까지 사서.
스크렙할 꿈꾸고,
오늘은 다들 왜 도치씨를 가지고 난리들이고 욕하는지 모르겠네요...ㅋㅋ
젠틀맨님은 그런 생각든적 단 한번도 없었어요?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는 법인데 이상하네요?'
너무 사이가 좋으셔서 그런가? 아니면 무덤덤해서 그럴까요?...ㅋㅋㅋㅋㅋ....에공^
도치같은 마음 먹는놈 잘되는것 하나못봤는데
도치의 장래는 어찌될지 궁금 하네여~~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무섭다구요...도치씨가 그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치의 철면피한 얼굴이 못마땅 합니다
ㅋㅋㅋㅋ
도치씨 같이 양심고운 사람이 어디있다구요....ㅋㅋㅋ
잘봐주세요
미안 하지만 옥황상제께서 도치 좋라고 아내 죽이지 안을지도 모르오
그럼 좋다 말겠지?
ㅋㅋㅋ
그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죽어야 할 사람은 죽어야 한다지 않아요?
ㅋㅋㅋㅋ
고운 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