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신앙고백서 14.창조와 인간의 #타락 (1)
We believe that God created man from the dust of the earth and made and formed him in his image and likeness-- good, just, and holy; able by his own will to conform in all things to the will of God.
우리가 믿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땅의 흙으로부터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지어 빚으셨다는 것과, 이에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것에 순종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것은 한 분이시며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그 세 위격들의 보이시는 참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은 영적인 것에서만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 또는 영과 혼과 육체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의 인성 전체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것이다. 사람의 육체가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비천하다거나 영혼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여겨지게 된 것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 그리스도께로부터 징벌과 심판을 받은 것에 기인한 것이다. 사람도 값지고 귀한 물건을 만드는데는 그만큼 값지고 귀한 재료를 쓰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인성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지으시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좋았던 땅의 흙 중에서도 가장 좋은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셨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께서 신성이신 성자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동등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세 위격들간에는 우열이 없이 동등하신 것처럼, 사람의 영혼과 육체 또는 영과 혼과 육체도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해 우열이 없고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사람의 영에는 성령께서 거하셔서 혼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뜻을 알려준다. 사람의 혼은 지성으로는 생각과 판단을 하고 감성으로는 희로애락 등의 기분을 느끼는 정신활동과,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활동을 주관하며, 영으로부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뜻을 전달받아 무언가를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육체에 전달한다. 육체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부 환경의 정보를 혼에 전달하고, 혼으로부터 오는 의지대로 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는 아무것에도 훼방이나 구애를 받지 않고 오로지 자기자신만의 의지로써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을 기꺼이 즐겁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But when he was in honor he did not understand it and did not recognize his excellence. But he subjected himself willingly to sin and consequently to death and the curse, lending his ear to the word of the devil.
그러나 사람은 그러한 존귀한 가운데서 자신의 탁월함을 깨닫거나 인식하기는 커녕, 스스로의 의지로 마귀의 속삭임에 자신의 들을 귀를 내어줌으로써 죄에, 그리고 사망과 저주에 차례로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하늘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반역을 저지르고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해서 땅으로 떨어진 사탄은 동산의 동물 중에서 가장 간교한 뱀에게 깃들어 하와에게 접근을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왜 마귀가 뱀에게 깃들어 동산에 잠입하도록 놔두셨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주님께서는 동산의 사람들이 뱀의 유혹을 넉넉히 물리치고 이기기를 바라셨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하와에게 접근한 뱀은 사탄을 상징하는 가상의 생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선하게 지으신 피조물 중 하나라고 봐야 한다. 뱀이 와서 하와에게 말을 걸었을 때 하와가 아무런 이질감이나 거부감없이 뱀과 대화를 나눴다는 성경의 기록으로 봤을 때 태초에 지음받았던 동물들은 첫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과 자기들만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지금처럼 일반적으로 뱀이 기어다니는 것은 범죄로 인한 주님의 심판으로 받은 형벌이기 때문에 그 전 동산에서의 태초의 피조물로서의 옛 뱀의 모습이 어떠한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주님의 복음이 먼저 전파된 서구 유럽에서의 뱀의 이미지는 날개달린 무시무시한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면에, 오랫동안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중국 영향권의 동양에서는 긴 수염과 뿔이 달린 뱀처럼 생긴 용이 매우 상서롭고 길한 짐승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동산의 뱀은 동양의 용의 몸통에 서양 용의 날개를 붙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동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즉, 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접근한 방식은 땅을 기어서 온 것이 아니라 천사처럼 하늘을 날아서 다가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주님께서 하와를 지으신 가장 큰 목적은 남편인 아담을 옆에서 잘 돕게 하는 것이었다. 아담은 사실 가장 탁월하고 순전한 존재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굳이 하와가 아니어도 그럭저럭 동산을 잘 관리하면서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와는 그런 아담을 돕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담보다 능력이나 가치가 떨어지거나 열등해서는 안되었고 적어도 동등해야 했다. 게다가 통상적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적어도 돕는 대상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므로, 하와가 아담을 돕는 배필이라는 것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열등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세속적인 남성우월주의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와는 지금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도와야 하는 아담을 홀로 두고 자기 혼자 떨어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뱀의 접근을 허용하고 유혹과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와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먼저 따먹음으로써 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아담을 돕지 않고 혼자 있는 불순종으로써 죄를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하와가 왜 아담을 돕지 않고 있었는지를 유추해 볼 때, 마치 사탄이 처음에는 고귀한 천사장으로 지음받았다가 교만함에 빠져 북극집회를 주도하려고 반역을 저지른 것처럼, 하와도 자기 생각에는 자기가 아담보다 열등하지 않고 어떤 점에서는 더 탁월한데도 불구하고 아담을 돕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교만하여져서 고의적으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교만함에서 시작된 하와의 죄악은 뱀의 유혹에 부채질되어 선악과를 따먹는데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절대로 그녀 자신이 무식해서나 어리석거나 미련해서가 아니다. 도리어 그녀는 아담과 방불한 탁월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말이 참으로 그러한가 깊게 생각하고 내린 자의적인 결론과 판단이었던 것이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스스로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어 돕는 배필로서 아담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관하는 자로서 아담을 부리려 했던 것이다. 하와의 죄악은 선악과를 따먹은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서 마땅히 배필로서 도와야 할 남편인 아담에게 도리어 선악과를 건네어줌으로써 아담마저도 시험하고 유혹하여 함께 죄를 짓게 만들어 파멸시켜버린다. 하와도 아담과 같은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막상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는 반드시 죽게 될 자신의 처지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엄청난 두려움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혼자 벌받아 죽는 것이 아니라 남편인 아담까지 범죄하게 만들어 같이 죽게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하와가 아담을 유혹한 방법은 다름아닌 자신에 대한 아담의 사랑으로 시험하는 것이었다. 즉, 그녀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내밀면서 자기를 버리고 동산에서 홀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인지, 아니면 선악과를 같이 먹음으로써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버리고 자기와 함께 죽기까지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하게 한 것이다. 이 모든 일 후에 그리스도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도 하와는 왜 남편에게 선악과를 건네었냐는 그리스도의 질문에 대답하기는 커녕 뱀이 유혹해서 먹었다는 동문서답을 하는 뻔뻔함을 보인다. 교만과 허영과 유혹과 회피라는 하와의 죄악의 일련의 과정에서 보이는 이러한 속성은 하와의 후예인 여자들에게 고스란히 유전된다.
전통적인 해석대로, 아담이 하와와 작당해서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하와가 건넨 선악과를 아무런 거리낌없기 기꺼이 먹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뱀의 유혹을 받은 것은 아담이 아니라 하와였기 때문에 아담은 도리어 하와가 다가오기 전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와가 선악과를 건네었을 때 아담은 절망스러운 당황과 고민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와의 속셈대로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고 하와를 죽게 두는 대신에 자신만 동산에서 주님과 지낼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죽는 순간까지 잠시동안 만이라도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과 같이 사랑하는 하와와 함께 할 것이냐 하는 연합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태초의 순전하고 탁월한 지혜를 총동원해서 그가 내린 결론은 하와가 건넨 선악과를 먹는 것이었다. 아가서에서는 이러한 아담의 선택에 대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표현하지만, 이는 사랑의 고결하고 탁월한 힘에 대한 찬사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사랑에 대한 어리석은 희생과 헌신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거짓된 사랑을 사랑이라 믿으며 어리석고 미련하게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아담의 속성은 그의 후예들인 남자들에게 고스란히 유전된다.